2014년 4월 10일 목요일

중앙_[사설] 지방선거 룰 확정, 이젠 정책으로 승부해야

두 개의 규칙이 따로 놀 뻔했던 지방선거가 하나의 규칙으로 통일됐다. 어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 당원 및 국민 여론조사 결과 ‘기초선거 무공천’ 당론이 53.4% 대 46.6%로 뒤집힌 것이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이 기호 1번, 새정치연합이 기호 2번을 부여받게 됐다. 간결한 여야 대결구도가 확립돼 유권자들은 후보자 선택 과정에서 혼란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선거의 안정성과 정치의 투명성이라는 큰 틀의 관점에서 일단 잘된 일이다.

 새정치연합의 입장 번복으로 상황이 정리되자 새누리당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 바꾼 안철수가 책임져라” “오늘로 새 정치는 땅에 묻혔다” 같은 비난을 쏟아내는 건 온당하지 않다.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새누리당이 먼저 뒤집은 게 혼돈의 시작 아니었나. 현실론에 바탕해 자기들이 약속을 깬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상대방이 뒤따라 약속을 깬 건 나쁜 일이라는 주장을 새누리당이 계속한다면 후안무치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무공천 문제에 관한 한 국민 약속을 차례로 어긴 여야는 오십보백보, 모두 패자다. 서로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자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지방선거 후보 공천권을 쥐고 주민자치를 식민지처럼 부리는 국회의원의 못된 행태는 제도적으로 혁파해야 할 한국 정치의 큰 숙제다.

 두 달도 안 남은 지방선거는 무공천 문제로 너무 많은 소모를 한 탓에 활기를 잃어버렸다. 2006년, 2010년 지방선거 때 판을 흔들었던 정권심판론이나 무상급식 논쟁 같은 대형 이슈는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60%대 고공 지지율이나 포퓰리즘 공약에 대한 학습효과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정당과 예비후보자들이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바람에 민심의 한가운데를 파고들지 못하고 있는 게 더 큰 이유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룰의 통일을 계기로 쟁점 없는 선거, 이미지 선거로 흐르는 선거판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상대 인물을 헐뜯는 네거티브, 불법·관권 선거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여야는 고단한 지역 민생을 챙기는 생활밀착형의 실천 가능한 정책 개발에 승부를 걸기 바란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이 무너지고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친노 세력이 득세하는 일대 세력개편이 진행될지 주목된다. 새 정치 같은 가치 문제가 아니라 죽기살기식 세 대결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00여 명에 이르는 기초선거 후보 공천을 놓고 조직과 세를 장악하고 있는 옛 민주당 기득권 세력과 수백 명 규모에 불과한 안철수 세력 간 당내 경선이 공정성 논란을 낳을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옛 민주당 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안 대표의 새 정치를 따라 출마를 준비해온 사람들은 실망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 대표가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가 이리떼에 포위됐다는 비유는 한국에서 중도·합리를 표방하는 정치의 한계를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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