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국방 개혁 기본계획(2014~2030년)을 6일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작성된 계획을 수정·보완한 박근혜 정부 개혁안이다. 현 정부 내 단기 과제와 더불어 중·장기 청사진이 담겨 있다. 큰 흐름은 첨단 무기 위주의 군 구조 개편과 병력 감축이다. 현재 63만3000명의 병력이 2022년까지 11만 명 줄어든다. 해군·공군·해병대(13만5000명)는 변화가 없고, 육군은 38만7000명 체제가 된다. 병력 감축은 저출산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라고 한다. 대신 지금까지의 양적 군 구조에서 기술 집약형으로 바꾸겠다고 국방부는 설명한다. 병력 부족분은 부사관 증원과 예비군 전력의 정예화로 메우겠다는 방침이다. 군의 간부화가 진척되면 병사가 첨단 장비를 맡는 일이 준다. 군사기술 혁명(RMA)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 중심의 현대전 양상을 고려하면 첨단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은 시대적 대세다. 정밀타격이 전장의 결정적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급격한 병력 감축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군사적 능력(capability)을 중시하는 개편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육군의 작전체계를 전방 2개 야전군 사령부(사령관 대장)에서 군단 중심으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군단은 1·3 야전군 사령부의 군정 기능과 작전 지휘 기능을 모두 행사하게 된다. 항공단·방공단·군수지원여단 외에 공군의 항공지원작전본부(ASOC)도 편성해 군단장이 지상 전투 때 공군 화력을 직접 요청할 수도 있다. 3군 병립 체제에서 공지(空地) 합동작전이 초보적이나마 제도화되는 의미는 적잖다. 1·3군 사령부는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폐합된다. 대장 자리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다. 2026년까지 군단은 8개→6개로, 사단은 42개→31개로 줄어든다. 이번 기본계획은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다. 한·미 양국이 2015년으로 예정됐던 미군 전작권의 한국군 전환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연기냐, 그대로 가느냐에 따라 군 지휘구조가 영향을 받는다. 과제도 적잖다. 기본계획은 연평균 7.2%의 국방비 증가를 바탕으로 책정됐다. 지난 5년간 국방비 증가율은 4%대에 그쳤다. 복지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방비를 더 늘리긴 쉽지 않다. 전투력 증강이나 부사관 충원 계획의 축소가 예상된다. 경제력이 곧 국방력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다른 하나는 3군 합동성 강화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은 우리 군의 고질적 병폐인 자군(自軍) 중심주의를 도마에 올렸다. 이를 뜯어고치는 논의가 당시부터 본격화됐지만 이번 계획에도 합동성 강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의 차이는 바로 이 부분이다. 미국은 강력한 통합전투사령부 중심체제다. 최근엔 공지(空地) 전투를 넘어 공해(空海) 전투 개념을 도입했다. 중국과 일본도 통합작전 능력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3군과 자군이 아닌 국군으로의 개혁을 멈춰선 안 된다.
중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예측해보는 일은 대한민국 경제에 아주 중요해졌다. 그런 점에서 매년 초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총리가 정부에 업무보고를 하는 형식을 빌려 그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고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밝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떤가. 중국 정부는 경제 성장 목표치를 7.5%로 제시했다. 재정을 통한 지속적인 경기 부양 의지도 내비쳤다. 위안화 환율의 상하 변동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밝혔다. 중국의 성장률 7.5% 목표는 우리에겐 나쁘지 않다. 이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다. 애초 중국 경제의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구조조정 요구도 거세지면서 성장률 목표를 7.0% 정도로 낮출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발표 당일 코스피 지수가 크게 오른 이유다.
중국이 ‘8%대 고속 성장(바오바: 保八)’을 포기하고 7%대 성장으로 목표를 낮춰 잡은 지 올해로 3년째다. 7%대 성장은 수출 위주 고속 성장에서 내수 중심으로 중국 경제의 큰 틀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이 신호를 제대로 읽고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 중국은 우리 수출에서 26%를 차지한다. 중국 내수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면 우리 수출에 빨간불이 켜질 수도 있다. 위안화 가치 하락에도 대비해야 한다. 최근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한 달 새 1% 넘게 급락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위안화 환율 변동폭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급락을 이끌고 있거나 최소한 방치하겠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중국 제품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로선 엔저 공습에 이어 위안화 공세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중·일에 끼인 샌드위치 위기가 다시 현실화될 수 있다.
중국은 2년 후 국내총생산(GDP)이 19조원으로 미국을 제칠 것으로 전망된다. 거대 중국과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게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다행히 요즘 한·중 협력 무드는 부쩍 좋아지고 있다. 정부·기업이 힘을 합해 세심하고 꼼꼼하게 중국 진출 전략을 다시 가다듬어야 할 때다.
나라가 부유해지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질병이 있다. 바로 비만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성인 비만율이 1998년 26%에서 2012년 32.4%로 올랐다. 역대 최고치다. 특히 고도비만(체질량지수 30 이상) 인구는 같은 기간 2.3%에서 5%가 됐다. 고열량·저영양 정크푸드에다 약물 오남용이 날로 증가하고, 아이의 식습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불완전 가정이 느는 점을 감안하면 고도비만 인구 증가 곡선이 더 가팔라질 것이다. 비만은 고혈압·당뇨·심장병·뇌질환 등의 만성병과 중증질환을 야기한다. 관절질환과 우울증도 비만에서 비롯된다. 비만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질병이라면 고도비만은 중증질환에 가깝다.
질병으로 끝나지 않는다. 심한 비만 환자는 일자리를 못 구해 저소득층으로 떨어진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정크푸드에 빠져 비만이 악화된다. 대인 관계도 점점 좁아져 외톨이로 전락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비만이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5조5981억원(2010년 기준)에 달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일찍이 비만의 문제점에 눈을 뜨고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셸 오바마가 나서 ‘레츠 무브(Let’s Move)’라는 범국민 캠페인을 벌인다. 모든 가공식품에 열량 표시를 의무화했고 지난달 말에는 열량 표시 글자 크기를 10배 이상으로 키우는 방안을 공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만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우리는 2005년 국가비만위원회와 국가비만관리종합대책을 만들고 비만 치료에 건보를 적용하려 했으나 계획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실체가 뭔지도 잘 모를 ‘헬스플랜 2020’ ‘국민영양관리기본계획’에 흡수돼 잘 보이지도 않게 됐다. 2010년까지는 연 10억원 정도 예산이 있었으나 올해는 영양 표시 등에 4억원밖에 안 쓴다. 모든 비만 환자에게 당장 건보를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선 고도비만 환자부터 검토해야 한다.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급하다. 국가적인 비만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국방부가 5일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방 개혁 기본 계획 2014~2030'을 확정했다. 앞으로 8년간 육군 병력 11만1000명을 감축해 2022년까지 국군 총병력 수를 현재의 63만3000명에서 52만2000명으로 줄이기로 한 전(前) 정부의 결정을 재확인했다. 기존 육군 1·3군사령부를 통합한 '지상군작전사령부(지작사)'의 창설 시기를 2015년에서 2018년으로 3년 늦추는 것도 들어 있다.국방부가 이번에 내놓은 안(案)은 '개혁'이라는 말을 붙이기 쑥스러운 수준이다. 국방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방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정부부터 죽 내려온 국방 기본 개혁을 일부 손질한 정도에 그쳤다.문제는 전임 정부 시절 국민적 논란을 빚었던 육·해·공군의 합동 작전 능력 강화 방안이 이번에 아예 빠졌다는 점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爆沈) 때 육·해·공군이 제각각 움직이면서 어떤 합동 대응도 하지 못하는 우리 군의 치명적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자 국방부는 민간 전문가 그룹의 검토를 거쳐 합참의장에게 작전 지휘 권한인 '군령권(軍令權)'과 인사(人事)·작전 지원 권한인 '군정권(軍政權)'을 함께 주고, 그동안 군 인사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작전 지휘 계통에서 벗어나 있던 각군 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군(軍) 상부 지휘 구조 개편안을 만들었다. 2011년 국회에 이 개편안을 법안으로 만들어 제출했던 당사자가 바로 현 김관진 국방장관이다. 전(前) 정부 국방개혁안에는 군 장성(將星) 수를 현재의 440여명에서 380명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도 들어있었다.그러나 군 상부 지휘 구조 개편안은 육군의 독주(獨走)를 우려한 해·공군과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을 불렀다. 당시 친박계와 야당이 반대하면서 이 개편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새 국방 개혁안 발표에 앞서 이 문제부터 국민에게 설명했어야 했다. 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슬그머니 지상군작전사령부 창설 시기를 3년 뒤로 늦춰서 육군 장성 10명을 당분간 감축하지 않도록 꼼수를 썼다는 비판을 자초했다.병력 규모 역시 우리 안보 수요와 여야가 공약했던 복무 기간 단축, 저출산 같은 사회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국방부가 감군(減軍)에 따른 대안으로 추진 중인 부사관 확충 문제도 작년 한 해 당초 3000명을 뽑으려다 예산이 없어 1500여명밖에 충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국방 개혁안이 이런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고 대안을 모색했는지 의문스럽다.정부의 국방 개혁 계획은 북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같은 비상사태 때 우리 군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한 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쯤으로 이번 국방 개혁을 내놓은 건 아닌지 국방부에 묻고 싶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한국전력 처장급(1급) 고위 간부 3명이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부하 직원으로부터 접대를 받다가 국무조정실 암행 감찰에 적발됐다고 한다. 접대를 한 직원은 올 초 정기 인사에서 승진했다. 간부 중 한 사람은 접대 현장에서 이 직원으로부터 100만원을 받았고, 다른 직원이 준 100만원도 받았다고 한다. 이 간부는 홍보용 기념품 구입용 예산 200만원을 백화점상품권으로 바꿔 착복한 것으로 조사됐다.3년 전에도 한전 직원 70여명이 하도급업체 등으로부터 15억원어치의 뇌물, 룸살롱 접대, 골프 접대를 받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러자 한전은 검사 출신을 팀장으로 하는 30명 규모의 '기동감찰팀'을 꾸려 비리를 차단하겠다는 쇄신책을 내놨다. 그러고도 다시 비리가 터진 것을 보면 기동감찰팀은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을 모면하려는 눈속임용 급조품이었던 모양이다.한전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자(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선 지난해 전직 사장 등 30여명이 기소됐다. 인사 청탁, 납품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고 협력업체와 하도급업체로부터 받은 뇌물을 위에 상납한 혐의다. 당시 기소된 사람 중에는 인사 청탁으로 한수원 부장한테서 1000만원을 받은 한전 부사장도 들어 있었다.한전은 한수원의 모(母)기업으로서 자회사를 감시·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한전은 자회사 모범이 되기는커녕 자회사 직원들과 한통속으로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한수원은 최근 원전 비리에 연루된 직원들 재판을 맡고 있는 부산지방법원에 직원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모기업부터 썩어 있다 보니 자회사도 내놓고 비리 직원을 감싸고 나서는 꼴이다.지난해 불량 케이블을 교체하느라 원전 3기가 가동을 멈추면서 9600억원가량의 손실을 끼친 것으로 추정됐다. 전력난 때문에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찜통더위를 참아내야 했던 관공서와 기업, 일반 가정이 입은 피해는 숫자로 계산하기 힘들다. 온 국민에게 고통을 뒤집어씌우고도 몇 달 되지 않아 비리 사건이 또 터졌다. 한전과 그 자회사 조직 내부에 부패의 유전자가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는 증거다. 정부가 한전과 그 자회사 전 직원을 상대로 특별 감사와 수사를 반복해서라도 부패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국민이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일본 정부가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가상(假像) 화폐' 거래 규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신종(新種) 사이버 머니인 비트코인(bitcoin)을 화폐가 아니라 상품으로 간주하고, 거래에 소비세를 매길 방침이다. 은행·증권사 같은 금융회사들은 비트코인을 취급 못하게 금지하겠다는 것이다.비트코인은 엔지니어들이 2009년부터 기술자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한 새로운 사이버 머니다.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의 간섭을 피해 현금이나 상품과 교환할 수 있어 전 세계에서 인기가 확산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작년 초 개당 13달러에서 11월 1200달러로 100배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도쿄에 있던 세계 2위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 곡스가 5억달러(약 5000억원)어치의 비트코인이 사라졌다며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혼선이 빚어지자 일본 정부가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국내에선 한 해 1조원 이상이 거래되는 인터넷 게임 머니 시장이 형성돼 있다. 게임 머니가 불법 거래되는가 하면 게임 머니를 둘러싼 분쟁 끝에 살인사건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작년 7월엔 비트코인과 원화를 바꿔주는 거래소가 국내에 설립됐고 하루 거래량은 3억원 수준이다. 비트코인도 언제 게임 머니처럼 사회적인 부작용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독일은 작년 7월 비트코인을 주식·채권과 같은 '금융상품'으로 보고 거래 차익에 25%의 자본이득세를 매기기로 했다. 우리 대법원도 2012년 온라인 게임 머니를 재화(財貨)로 판단하고 세금을 매긴 게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006년 제정한 전자금융거래법은 비트코인처럼 발행기관이 없는 사이버 머니에는 적용하기도 어렵다. 인터넷상에서 새로운 결제 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법을 만들 수는 없다. 신종 사이버 머니를 어떻게 다룰지 기본 규칙을 법으로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아온 ‘국가정보원 협조자’ ㄱ씨가 자살을 시도해 중상을 입었다. ㄱ씨는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문서 3건 가운데 싼허변방검사참의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를 입수해 국정원에 전달한 인물이라고 한다. ㄱ씨의 자살 시도는 국정원이 이번 사건의 몸통임을 사실상 확인시켜주고 있다. 국정원은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검찰 진상조사팀에서 세 차례 조사받은 ㄱ씨는 지난 5일 3차 조사를 받고 돌아간 뒤 숙소인 서울 영등포구의 한 모텔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검찰은 ㄱ씨가 ‘변호인 측 증거를 반박할 자료를 구해달라’는 국정원 요청을 받고 중국 관인을 위조해 문서를 만든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ㄱ씨는 검찰에서 이 같은 내용을 진술한 뒤 심리적 압박에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짙다.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진 뒤 국정원이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자 극심한 배신감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한 모텔 방 벽면에 ‘국정원’이라고 쓰인 혈흔이 남아 있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국정원은 그럼에도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획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조직을 돕던 사람이 자살을 기도했는데 ‘우리도 속은 것 같다’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나섰다니 후안무치하다. 위조 사실을 덮기 어렵게 되자 ‘무능론’으로 버틸 요량인가. 아직도 거짓과 조작과 은폐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국민을 바보로 여겨선 안된다.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엉터리 도장 하나 확인 못했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이제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직접 입장을 밝히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일 때다. 국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검찰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ㄱ씨가 생명에 이상은 없다고 하나 상태가 중해 진상규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핵심 참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검찰은 무엇을 했나. ㄱ씨가 국정원에 불리한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개인 숙소에 방치한 이유는 뭔가. 검찰은 국정원의 증거조작을 묵인했는지와 별도로, 핵심 참고인의 신병관리에 소홀했던 점만으로도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없다. 검찰이 그나마 남은 명예라도 지키는 길은 간첩사건 증거조작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윗선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낱낱이 파헤치는 일뿐이다. 국정원의 꼬리 자르기 시도에 휘말려 면죄부를 줬다가는 특별검사의 재수사를 목도하는 처지로 전락할 것이다.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을 주거나 부담금을 부과하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탄소세)를 놓고 부처 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 제도가 수입차에 유리하고 국산차에 불리하다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볼멘소리가 잇따르면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놓고 정책을 비판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뚜렷한 해명 없이 그저 “검토 중”이란 말만 되풀이하니 답답할 뿐이다.윤 장관은 엊그제 언론 인터뷰에서 “이 제도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애초 환경부가 생각한 시행방안보다 완화하는 방향으로 새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초안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다. 얼핏 보면 부처 간 대립 양상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환경부도 국내 자동차 업계의 반발에 밀려 당초 안을 이미 포기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문제는 환경부의 애매한 태도다. 당초 방안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면 있는 대로, 방향을 바꿨으면 바꾼 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텐데, 이도 저도 아닌 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만 하니 공연히 논란만 확대되는 형국이다.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중립-부담금 구간으로 구분해 저배출 차량을 사면 보조금을 주고, 고배출 차량을 사면 부담금을 물리는 제도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차는 소비자 가격이 올라가고, 적게 배출하는 차는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고, 자동차업체의 친환경 기술경쟁력은 배가될 공산이 크다. 친환경차·소형차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중·대형차를 선호하는 자동차 문화도 바꿔나갈 수 있다. 부담금과 보조금이 재정 균형을 이룬다면 큰 예산 없이도 정책 목표를 이룰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방침을 정하고 박근혜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4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 통과로 확정되기까지 큰 이견이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나올 수는 있지만 국무위원이 나서서 정부 정책의 혼선을 부채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나라다. 온실가스의 13%가 자동차에서 나온다.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협조해 정착시켜야 하는 게 탄소세인 것이다. 환경부가 마련한 당초 시행방안이 현실에 맞지 않다면 기준을 조정해서 시행하면 될 일이다.
SBS의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 <짝>에 출연한 여성이 촬영지의 숙소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출연자 전모씨는 ‘너무 힘들어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신변을 비관하는 일기를 남겼다고 한다. 경찰이 수사 중인 상태에서 방송사 측의 프로그램 제작·진행 방식과 전씨의 죽음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씨가 친구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등을 살펴보면 방송사 측의 제작 방식 등으로 인해 전씨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잖게 추정할 수 있다. 전씨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작진은 그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려 했으며, 울거나 약한 모습을 바란 것 같았는데 오히려 씩씩한 모습을 보이자 당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친구가 그런 것이 부담이 됐는지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화장실 앞에까지 쫓아와 힘들다’ 등의 문자를 보내왔다”고 증언했다. 제작진이 전씨를 모델로 ‘특정 주제 짜 맞추기’를 하려 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2011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과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외모와 학력, 재력으로 배우자감을 평가하는 풍조를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또 ‘애정촌’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6박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차지하도록 무한경쟁을 벌이게 하는 방식은 출연자들에게 격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젊은 남녀가 몇 년에 걸쳐 경험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희로애락을 며칠 만에 압축적으로 겪게 했던 것이다. 이번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늘 잠복해 있었던 셈이다. SBS는 5일로 예정됐던 <짝>을 방영하지 않았다. 또 보도자료를 통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유족들과 출연자들을 위로했다지만 그런 정도로 마무리할 일이 아니다. 경찰 수사가 나오는 대로 관련자 문책과 프로그램 폐지 등을 포함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다른 방송사들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예능 프로그램 전반의 윤리적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불륜 현장을 덮쳐 배우자와 연인들이 서로 육탄전을 벌이게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다. 시청률이라는 주술에 묶여 계속 막장으로 치닫다가는 제2, 제3의 사고가 잇따를 수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국가정보원 ‘협조자’ 조선족 김아무개씨가 자살을 기도했다. 김씨는 위조된 문서를 국정원에 전달한 정황이 드러난 상태다.
그의 자살 동기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혼자서 통째로 문서의 내용과 도장을 조작한 데 따른 책임감을 느꼈을 경우다. 또 하나는 자신은 국정원의 지시를 따른 단순한 심부름꾼인데도 국정원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자 억울함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다.
현재로서는 후자의 개연성이 더 높아 보인다. 우선 김씨는 자살을 시도한 모텔 방의 벽에 자신의 피로 ‘국정원’이라는 글자를 남겼다. 국정원에 대한 원망 말고는 다른 해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또 국내에 거주하던 김씨에게 접근해 “변호인이 법원에 낸 문서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해 달라”고 요청한 국정원 직원이 있었다. 필요하다면 중국 정부에 공식 요청하면 될 터인데, 민간인에 불과한 김씨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면 그건 처음부터 문서를 위조하라고 지시한 거나 다름없다. 적어도 김씨가 문서를 위조한 사실을 알면서도 정식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영사 증명서까지 붙여 검찰에 제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이 문서 위조의 주범이고, 김씨는 그저 단순 종범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훨씬 높다.
김씨는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중태라고 한다. 증거위조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회피와 부인으로 일관해온 국정원으로서는 옳다구나며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검찰 역시 수사 대상이다. 국정원이 위조한 문서임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검찰도 국가보안법상 무고, 날조 혐의로 국정원의 공범이 된다. 검찰이 그런 치욕을 벗어나려면 국정원에 대한 수사 강도를 한층 높여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우선 누가 김씨를 중국으로 보냈고, 누가 김씨로부터 문서를 넘겨받아 이인철 영사에게 넘겼는지 밝혀야 한다. 이 인물을 찾아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도 강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국정원이 증거조작에 훨씬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김씨는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검찰은 프라이버시를 내세워 이 유서에 담긴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하지만, 국가 중대사와 관련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검찰의 명예와 직접 관련된 문제다. 이번에도 진실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면 검찰은 ‘국정원의 하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국방부가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이 기간에 현재 63만3000명인 병력을 2018년부터 5년간 11만1000명 줄이고, 군 구조를 ‘1·3군 사령부-군단’에서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군단’ 체제로 개편해 군단 중심의 작전 효율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군사전략을 적극적 억제에서 능동적 억제로 수정하기로 했다. 적극적 억제가 상대의 도발에 단호한 응징으로 위기 상황을 조기에 종결한다는 개념이라면, 능동적 억제는 도발 징후가 있으면 선제타격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속 빈 강정이다. 어려운 과제를 모두 차기 정부로 미룬데다 늘어놓은 개혁 내용도 현실성이 없는 것이 태반이다.
우선, 군 구조 개혁의 핵심인 지작사 창설 시기를 전작권 전환 시기를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단서를 단 것은 사실상 군 구조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로 예정되어 있는 전작권 전환 시기를 북한의 도발 위협 증가를 이유로 다시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박 정권의 임기 안에 전작권 전환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인데, 지작사 창설 시기를 전작권과 연계했다는 것은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걸 뜻한다. 사실, 지작사 중심의 군 구조 개혁안이 나온 것이 전작권 전환이 논의조차 되지 않던 노태우 정권 때부터라는 점을 생각하면, 둘을 연계하는 것 자체가 억지다. 이는 대북 억지 전략을 자위 차원에서 능동적 억제로 전환하겠다는 방향과도 모순된다. 전작권이 없는 군이 어찌 능동적 억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군 병력을 줄이는 문제도 박 정권 임기 동안에 1만5000명만 줄이고, 차기 정부에서 4년간 9만6000명을 줄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또한 병력을 줄이는 시늉만 하고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군은 병력을 줄이는 대신 전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매년 평균 7.2%의 국방예산 증가를 요구하고 있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 등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요구다.
한마디로 이번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지금처럼 육군 중심의 낡은 군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것과 같다. 이런 계획이 합참의장 때 전작권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이명박 정권 때 국방장관으로서 직을 걸고 군 상부 지휘구조를 개혁하겠다고 공언했던 김관진 국방장관 주도로 이뤄졌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더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이런 안을 그대로 추인했다는 사실이다.
대기업의 올해 국내 투자가 예상보다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6일 발표한 매출 상위 600대 기업의 올해 국내 투자 계획을 보면, 지난해보다 6.1%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연평균 투자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대신에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투자 확대를 기대했으나 대기업 쪽의 호응이 신통치 않은 셈이다.
600대 기업은 국내 전체 민간기업 투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투자 여력도 이들 기업에 몰려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대 재벌의 현금유보액은 400조원을 넘는다. 이들 대기업이 돈줄을 풀어야 전체 투자가 살아나고 내수 경기에 훈풍이 돌 수 있다. 기업의 국내 투자는 지난 2년 동안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올해 투자 증가율 전망치는 전경련 자체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한다. 지난해 대비 6.1% 증가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증가율로 계산하면 4%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은행의 올해 기업 설비투자 증가율 예상치(5.8%)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현상은 대기업의 투자 계획치와 실적치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600대 기업의 투자 계획치 증가율은 13.9%였으나 실적치는 전년 대비 4.9% 증가에 그쳤다.
우리 경제의 실질성장률은 2011년 이후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세계경제의 평균 성장률에도 3년째 밑돌아 대외여건의 악화를 탓할 수도 없게 됐다. 내부의 구조적 요인에 따른 성장 능력의 약화가 더욱 심각하다고 봐야 한다. 내수와 수출의 불균형 해소가 시급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처럼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정부도 내수 경기 활성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제 정책 방향은 거꾸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수출 비중이 높은 대기업의 요구는 적극 수용하는 반면 중소기업과 서민·중산층의 경제적 애로를 덜어줄 방안은 막연하기만 하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나 규제개혁 등에서는 성장잠재력 약화를 초래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대기업의 수출과 투자에 의존하는 성장전략의 유효기간은 지난 지 오래다. 거시정책의 초점을 내수 활성화를 위한 수요 진작에 둔다면,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함께 소득불균형 완화를 위한 경제민주화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북한이 지난달 21일 이래 동해에서 방사포(다연장로켓)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네 차례에 걸쳐 15발 발사했다. 첫 발사 때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됐고, 그 사흘 후부턴 키 리졸브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에서 “키 리졸브 훈련 중에 의도적인 긴장을 조성하는 무력 시위성 도발”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단기간에 여러 종류의 방사포와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 발사체의 사거리가 50~500㎞인 점에 미뤄 남한 전역을 위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북한의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과 더불어 “추가적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물샐틈없는 감시·대비 태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 발사체 가운데 우리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방사포다. 미사일은 정밀 타격이 가능하지만 발사 징후가 포착당한다. 요격이 가능한 셈이다. 반면 방사포는 징후 파악도 요격도 어렵다. 북한은 이번에 신형 300㎜ 대구경 방사포 여섯 발을 발사했다. 최대 사거리가 200㎞로 추정되는 신형 무기다. 북한이 지난해 5월 여섯 발을 발사하면서 알려진 미사일급 로켓이다. 이번에 키 리졸브를 빌미로 성능 개량을 위한 발사에 나섰을 수도 있다.
이 방사포의 사거리는 새로운 차원의 위협이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다. 개성 인근에서 발사하면 육·해·공군 본부가 위치한 계룡대가 사정권에 들어온다. 황해도에서 쏴도 오산·평택 주한미군 기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들 시설은 지금까지 지대지 미사일로만 타격 가능한 것으로 상정돼왔다. 일각에선 300㎜ 방사포가 러시아 위성위치확인시스템(글로나스)을 이용한 유도 기능도 갖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구경이 되면 다양한 포탄도 탑재할 수 있다. 방사포는 미사일보다 싸고 대량 발사가 가능하다. 북한은 107·122·240·300㎜ 방사포를 5000여 문 보유하고 있다 .
방사포는 방어 대책이 마땅치 않다. 우리 군은 맞대응 전력으로 다연장로켓과 에이태킴스 지대지 미사일 등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의 로켓 요격 시스템인 ‘아이언돔’이 있지만 고가인 데다 명중률이 검증되지 않았다. 정부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체계 고도화에 맞춰 안보·방어 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재래식 무기의 균형 전략을 넘어 궁극적으로 남북 신뢰구축을 통한 군축의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 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특히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면 정책이 미칠 영향과 효과를 사전에 면밀히 검토한 뒤 시행해야 부작용을 줄이고 혼선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려면 정확한 시장 상황과 통계부터 파악한 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교하지 못한 제도 개선안을 불쑥 발표했다간 시장의 반발로 정책 효과가 흐지부지되거나 며칠 만에 보완대책을 내놓아야 하기 일쑤다. 지난달 26일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2·26 전·월세 대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어제 주택임대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인 집주인에 대해서는 세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등의 2·26 전·월세 대책 보완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2년간은 세금을 물리지 않되 세율 14%인 분리과세는 2016년부터 적용하고 필요 경비율도 60%로 올려주는 내용이 담겼다. 월세 임대자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 전세 보증금에도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지난달 대책 발표 후 시장 불만이 커지자 일주일 만에 부랴부랴 ‘땜질 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달 발표한 전·월세 대책은 임대차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현실을 반영, 월세 가구의 세 부담을 줄이고 과세 사각지대였던 고액 임대자에 대한 세금 추징은 늘려 민생 안정과 내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게 골자였다. 큰 방향은 맞았지만 대책이 발표되자 시장에선 “은퇴자 등 생계형 임대업자가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일부 집주인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고 월세 공제혜택과 확정일자인까지 받지 않는 조건을 세입자에게 제시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정부 의도와 달리 월세에서 전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시장 반응에 따라 춤추는 대책으론 정책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다. 이번 보완책도 단기적 시장 안정 효과는 있겠지만 임대차시장의 과세투명성과 과세 형평이란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해 보인다. 정부는 먼저 시장 통계부터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 세금을 내지 않는 임대사업자가 몇 명인지,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 조치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졸속입법 시비도 피하고 땜질 처방도 줄일 수 있다.
직역(職域)단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해당 직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소비자인 시민들의 권익을 높이고 공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측면이 결코 간과돼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변호사윤리장전 개정은 실망감을 던져 주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윤리장전을 전면 개정한 것은 2000년 개정 이후 변화된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최근 변호사와 관련된 범죄와 비리가 잇따르면서 윤리의식을 높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도 컸다. 변협은 이번 개정에 대해 “건전한 법률시장을 다지는 데 단단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개정된 내용을 보면 직역 이기주의에 치우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성공보수 선(先)수령 금지’ 조항을 폐지한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성공보수는 의뢰인이 승소했을 경우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보수다. 따라서 승소했을 때 주고받는 게 정상이다. 기존 윤리장전 33조가 “변호사는 성공보수를 조건부로 미리 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못 박은 것도 불리한 입장에 놓이기 쉬운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해당 조항을 폐지한 것은 “미리 성공보수를 받아 놓지 않으면 승소 후 받기 어렵다”는 변호사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성실한 소송 수행을 담보하기 어렵다거나 패소 시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등의 부작용은 감안되지 않았다. 아울러 국선변호인이 맡은 사건을 사선(私選)으로 전환하기 위해 피고인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변호사가 법원이나 수사기관의 공정한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규정하는 등 법조 윤리 강화를 위한 노력도 기울인 게 사실이지만 변호사들의 이익을 우선시한 것만큼은 부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법원·검찰과 함께 법조삼륜(法曹三輪)으로 불리는 변호사단체인 변협은 사회적 책임이 그 어떤 직역단체보다 더 크고 무겁다고 할 수 있다. 변호사윤리장전은 변호사들끼리만 알고 고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법률서비스 소비자인 시민들에 대한 약속이란 면에서 외부 의견도 폭넓게 수렴했어야 한다. 변호사가 단순한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법률가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변협은 더 깊이 고민해 주기 바란다. 의뢰인의 고통을 해결하기보다는 돈벌이에 연연하는 변호사집단은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가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리커창 총리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업무 보고에서 올해 중국 국방 예산이 전년보다 12.2% 늘어난 8082억2000만위안(약 141조1400억원)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금융 위기의 영향을 받은 2010년에만 7.5%의 한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을 뿐 1989년 이후 매년 10% 이상 국방 예산을 늘려 왔다. 이런 추세면 이르면 10년 후, 늦어도 2032년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군사비 지출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이에 맞서 미국 국방부는 4일(현지 시각) 발표한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 "(현재 50% 수준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둔 미국 해군 자산을 2020년까지 60%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역시 2년 연속 방위비 예산을 증액했다. 일본은 아베 정권 출범 직후인 지난해 11년 만에 처음으로 방위비를 늘린 데 이어 올해도 전년 대비 2.8% 오른 방위 예산을 짰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미·일(美·日) 대 중국' 간의 각축이 군사비 지출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 집계에 따르면 2012년 세계 각국의 군사비 지출 총액은 199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미국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군비 지출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 특히 동북아는 인접 국가 간에 군비 경쟁을 벌이는 거의 유일한 지역으로 꼽혔다. 동북아가 세계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현실은 지역의 평화(平和)를 위협하는 것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중국 리커창 총리는 이날 "우리는 군대의 실전 능력을 끊임없이 향상시킬 것"이라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정 국가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역사 문제에서 역행(逆行)하는 일본을 겨냥한 발언이다. 중국과 일본은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영유권을 놓고 양측 군함과 항공기가 수시로 대치하는 아슬아슬한 국면을 1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양측의 작은 실수나 오판(誤判)이 대형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한국 국방 예산은 중국의 5분의 1에 못 미치고,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올해 국방 예산은 3.5% 증액에 그쳤다. 급격히 늘어나는 복지 예산과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리기 쉽지 않을뿐더러 중·일과 같은 규모의 국방비를 쓰겠다고 나서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대안도 아니다. 한국은 중·일 각축(角逐)보다 핵·미사일로 무장한 북의 위협에 우선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국의 활로는 결국 한·미 동맹과 주변 주요국을 상대로 한 외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 변수와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강국들의 각축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국가적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지난 1월과 2월 교육부 차관을 지냈던 김응권·김영식씨가 전북과 충남의 지방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두 대학은 최근 2년 사이 교육부 대학 평가에서 하위(下位) 15% 대학으로 분류돼 '재정 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됐던 곳이다.이들 말고도 2000년대 들어 교육 차관을 지낸 14명 가운데 설동근 우형식 서남수 이종서 이기우 서범석 최희선 김상권 이원우씨 등 9명이 대학 총장으로 갔다. 같은 기간 교육부 장관을 지낸 15명 가운데서도 김도연 이상주 한완상 송자 김덕중씨 등 5명이 퇴임 후 대학 총장이 됐다. 서남수 현 교육부 장관은 차관(2007~2008년)을 마치고 대학 총장을 거쳐 장관이 됐다. 그의 후임 총장직도 교육부 차관보 출신이 이어받았다.지금 교육부의 최대 현안은 대학 구조조정이다. 고교 졸업생 감소로 대학 입학 정원은 현재 56만명에서 2023년 40만명 이하로 급격하게 줄일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부실 대학에 대해 세금 지원을 축소하거나 강제 퇴출시켜야 할 입장이다. 이런 회오리 속에서 대학들이 교육부 고위직 출신을 모셔 가는 것은 그들이 뛰어난 경영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전관예우(前官禮遇) 관행에 기대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2012년 교육부가 대학들에 연구개발비 등으로 나눠 준 국민 세금은 8조1000억원이나 된다. 총장 자리에 영입된 전직(前職) 고관들은 이 돈을 받아 가기 위해 과거 자기 부하였던 후배들에게 머리를 숙이게 된다. 장·차관이 대학 총장으로 가면 갑을(甲乙) 관계가 뒤바뀌어 후배들에게 애걸하고 감독을 받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이러니 장·차관이라 해도 현직에 있을 때부터 부하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가 윗사람의 영(令)이 서지 않는 부서로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간 최근 5년 근무 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업체 등엔 취업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그러나 대학은 비영리 기관으로 분류돼 교육부 고위직들이 퇴직 후 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법조계 뺨치는 교육부의 전관예우 관행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대학 개혁은 고사하고 보조금을 둘러싼 부패(腐敗)의 연결 고리도 끊어내기 어렵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정부가 5일 월세(月貰)를 놓는 집주인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을 내놨다. 2주택 이하 보유자이면서 연간 임대소득이 2000만원 이하인 영세 임대사업자에 대해 앞으로 2년간 소득세를 물리지 않고, 2016년부터 분리과세로 전환한 뒤에도 필요 경비 비율을 높여 세금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달 26일 '임대차 시장 선진화 방안'에서 밝혔던 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이 일주일 만에 크게 후퇴한 것이다.정부의 당초 월세 대책은 월세 가구에 대한 세금 감면을 통해 서민 생계를 안정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월세 가구의 세 부담이 주는 대신 집주인의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나 월세 임대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는 은퇴자 등 생계형 임대사업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월세 시장에선 집주인들이 임대소득이 노출되지 않도록 세입자들에게 '소득공제 포기 각서'를 받으려 한다는 말까지 나돌며 큰 혼란을 빚었다. 임대차 시장 대책은 정부가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의 후속 조치로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이다. 그런 정책이 일주일 만에 보완책을 내놔야 할 정도로 큰 결함을 드러냈다. 공무원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책상머리에서 만들어 낸 졸속 작품이었다는 비판을 받아도 싸다.정부는 작년 8월 세법 개정 때도 근로소득세 인상 기준을 '연소득 3450만원'으로 잡았다가 월급쟁이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발표 3일 만에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에 따라 기준 금액을 5500만원으로 올렸다. 올 1월엔 카드회사들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금융회사의 전화 영업(텔레마케팅)을 3월 말까지 전면 금지시켰다가 4만7000여명에 이르는 상담사들의 집단 실직(失職) 우려 때문에 이를 뒤집기도 했다.정부가 하는 말을 국민이 믿고 따를 때 경제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처럼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언제 또다시 정책이 바뀔지 몰라 기업과 개인은 투자와 소비 활동을 주저하게 된다. 이래서는 경기 회복의 새싹이 꽃을 활짝 피우는 시기가 계속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안전행정부 유정복 장관이 어제 6·4 지방선거에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장관직을 사퇴했다. 선거관리 주무 장관이 직접 선거판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셈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총동원령’에 따라 취약지대로 꼽히는 인천의 선거를 위해 지명도 높은 현직 장관을 징발한 결과다. 국무위원 자리가 집권당의 선거전략에 따라 휘둘리고, 활용되는 잘못된 행태가 다시금 벌어진 것이다.유 장관이 오랫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 격으로 활동했던 점을 감안할 때 유 장관의 출마에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작동했다고 봐야 할 터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유 장관의 사의 표명을 접한 자리에서 “인천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요한 지역’ 인천의 선거에 나서는 유 장관을 대놓고 격려·지원한 꼴이다. 명백한 선거개입 발언이다. 이렇게 박 대통령의 지원 속에 안행부 장관이 여당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선 마당에 공무원의 선거중립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다. 공정선거를 감독해야 할 안행부 장관까지 ‘선거용’으로 쓰는 걸 보면, 지방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원칙 따위는 저버리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친다.그러니 지방선거에 차출하기 위해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취임한 지 9개월 만에 중도 퇴임시켰을 것이다. 정창수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새누리당 강원지사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3년 임기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새누리당이 민주당 소속 최문순 현 강원지사에 맞설 만한 인물을 찾지 못하자 임명된 지 9개월밖에 안되는 공공기관장을 빼내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정 사장은 당초 임명 때부터 낙하산 논란이 컸던 인물이다. 임명할 때는 전문성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낙하산 인사를 내려 꽂더니, 지방선거에 필요하니까 강제로 징발한 꼴이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이렇게 선거판의 ‘졸’쯤으로 취급하면서, 공기업 개혁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이기 십상이다.박 대통령은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선거 분야에서도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책과 정견을 통해 경쟁하는 새로운 선거문화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지방선거 승리에 혈안이 되어, 선거관리 주무 장관마저 광역단체장 후보로 징발하고, 취임 9개월의 공공기관장을 차출하는 식의 비상식이 계속되는 한 선거의 정상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국정이 선거논리에 좌우되면 민생과 경제를 돌보는 국정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월세 대책을 발표한 지 1주일 만에 또 보완대책을 내놨다. 월세 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이 시장 불안과 임대사업주 반발로 이어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생계형 임대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2년 유예하고 공제 혜택을 확대해 세 부담이 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노령 임대소득자를 겨냥한 전형적인 선거용 대책이다. 그렇다고 전·월세 시장의 근본 문제가 해소될지 의문이다. 정부 대책은 공신력이 생명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1주일 만에 뒤집히는 정부 정책을 어떻게 믿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이번 보완대책은 생계형 임대사업자 보호가 주된 목적이다. 월세 소득공제로 임대 가구주의 세원이 노출돼 세 부담 증가-월세 인상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다. 연간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 2주택 보유자는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을 2년간 유예하고 소득공제 폭을 확대해 추가 부담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기본 방향이다. 이를 위해 현재 45%인 필요경비 인정비율을 60%로 확대하고 400만원의 기본공제도 신설됐다. 과세 형평성을 감안해 전세임대소득자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과거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 추징도 1주일 만에 사실상 백지화됐다.이번 대책은 임대소득으로 살아가는 노령층이 주된 수혜자다. 하지만 지방선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근본 대책은 아니다. 2년간 한시적으로 세 부담을 유예하는 ‘땜질용’ 대책이라 그 후에는 기약이 없다. 그나마 집을 가진 임대소득자는 혜택을 받지만 집 없는 서민들은 기댈 언덕도 없다. 앞선 전·월세 대책에도 전체 근로소득자 1500만명 가운데 소득이 낮은 500만명은 소득공제 혜택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작 서민들을 위한 전·월세 대책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무엇보다 정부의 정책 혼선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민생활과 직결된 조세 정책은 철저한 준비와 사전 점검이 필수다. 새 정부 경제팀은 지난해 8월 세법 개정 때도 소득공제 기준선을 놓고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이번에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세입자의 월세 소득공제가 월세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일종의 상식 아닌가. 세수에 눈이 먼 채 “그동안 못 받은 세금까지 징수하겠다”고 호기를 부렸던 걸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정부 정책은 국민 불신만 키울 뿐이다. 며칠 후에는 또 어떤 전·월세 보완대책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김용담 규제개혁위원장이 임기 3개월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엊그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규제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검토해야 하는데 나는 그 일을 하기에는 모자라 자리를 내놨다”고 말했다. 규개위는 규제정책을 심의·조정하는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김 위원장은 능력 부족을 얘기했지만 “법률상 규개위는 규제를 강화 혹은 완화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완화 여부를 심사하는 것으로만 운영하고 있다”는 발언에 비춰보면 규제 완화 일변도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규제 완화는 박근혜 정부의 최대 관심사이다. 박 대통령은 “꿈속에서 꿈까지 꿀 정도로 규제 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게 규제 완화”라고 말해왔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 내수활성화로 이어지는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현재의 규제 완화 움직임은 불합리한 규제를 손봐 합리성을 키우기보다는 경기활성화란 명분 아래 일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진 자들의 이익 제고 방편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훨씬 크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당장의 효과도 불분명하다. 지난해 말 여당은 재계 주장대로 외국인투자촉진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했지만 현재까지 외자유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촉법 통과에 목을 맸던 기업들은 상황 변화를 내세워 뒷짐만 지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입지규제 최소지구 지정 등 최근의 부동산 규제 완화 역시 서민들의 주거복지보다는 서울 강남 주민들과 도심 요충지에 땅을 가진 몇몇 재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다. 반면 정작 필요한 규제는 뒷전이다. 금융위는 금융범죄자의 금융사 경영 자격을 박탈하는 대주주 적격성심사제를 기존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증권·보험·카드사로 확대하려 했으나 재벌 반대에 막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잘못된 규제 완화로 인한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외환위기 이후의 카드대란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출발점은 규제 완화였다. 2008년 금융위기가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다. 규제 체계의 조정은 제로섬게임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누군가에게는 비용이 전가된다. 당연히 민주적 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른다. 현재의 규제 완화는 머지않아 규제 강화를 불러올 게 뻔하다. 지금이라도 규제 개혁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진정한 새정치는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새정치’를 핵심고리로 이뤄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신당 창당 선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의 말이 나오기가 바쁘게 새누리당에서는 “신당 놀음보다 민생부터 챙기라”(최경환 원내대표), “민생이 정쟁에 우선한다는 원칙 아래 복지 3법 등 시급한 현안을 조속히 처리하자”(황우여 대표)는 등 민생 공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집권여당이 선거를 ‘민생 대 정치’의 대결구도로 몰고가는 것은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정치가 민생의 발목을 잡고 야당이 민생의 훼방꾼이라는 식의 논리는 여당이 선거 때마다 써먹는 단골 메뉴다. ‘선거의 여왕’인 박 대통령이 이런 ‘민생 세일즈’의 중요성을 놓칠 리 없다. 그렇지만 과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생을 앞세울 자격이 있는지는 참으로 회의적이다.
우선 박 대통령의 말이 나온 지 몇 시간 뒤 최측근인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인천시장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부터 한편의 코미디다. 안행부 장관은 국민의 안전과 치안을 책임지는 민생 분야의 핵심 장관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4대 악 척결을 비롯해 폭설 피해,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등 챙겨야 할 민생 현안도 산적해 있다. 박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민생을 내팽개치고 정치로 달려간 유 장관을 엄히 질책해야 마땅할 텐데 오히려 박 대통령은 선거 중립 의무를 저버리면서까지 그를 ‘격려’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의 삶을 돌아보면 박 대통령의 민생 타령은 후안무치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악화되는 취업난, 청년실업의 증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계부채, 경기악화에 따른 정리해고 증가 등 서민들의 삶의 붕괴는 각종 통계가 웅변한다. 박 대통령이 민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예로 든 잇따른 생활고 비관 자살도 따지고 보면 이 정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이런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한다.
더욱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면 민생을 정치의 대척점에 놓는 것부터 허구적이고 기만적이다. 민생과 정치는 결코 대립항이 아니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관계도 아니다. 정치와 민생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좋은 정치는 좋은 민생의 선결요건이다. 민생은 내팽개치고 정치에만 몰두한다는 식의 논리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혐오감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교묘한 술책일 뿐이다. 오히려 민생은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의미를 국한해 볼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야 마땅하다. 선거에서 거짓된 ‘민생 신화’를 추방하고 대신에 제대로 된 정치적 격돌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민생을 살리는 길이다.
남북한 당국 모두 관계 개선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소극적인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과는 달리 서로 믿지 못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 진행중인 한-미 군사훈련에 일부 원인이 있다. 북쪽은 이 훈련에 맞서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를 바다 쪽으로 연이어 쏘고 있다. 다음달 한-미 훈련이 모두 마무리될 때까지 이런 신경전이 이어질 수 있다. 양쪽의 움직임이 상승작용을 해 위기로 비화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할 때다. 한-미는 훈련을 절제된 방식(로 키)으로 진행하고 북쪽은 자극적인 대응을 삼가는 게 올바른 태도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5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포함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을 협의할 남북 적십자사 실무접촉을 12일 갖자고 제안했다. 정부의 제안은 형식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적십자사 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실무적으로 주도하기는 하지만 근본적 해법은 남북 관계 전반과 연관된 큰 과제다. 게다가 남북 당국은 2월14일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하면서 새로운 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부가 북쪽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적십자사 실무접촉을 제안해 의도적으로 남북 대화의 속도를 늦추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5일 “앞으로 북한이 우리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속된 말로 국물도 없다”며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과거처럼 (북한에) 뭔가를 주고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를 풀어가려면 이런 태도로는 안 된다. 북쪽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조처 완화·해제 등 남북 경협 활성화를 바라고 있으며, 이는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이들 사안과 군사적 긴장 완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 등을 책임 있게 논의하려면 반드시 차관급 이상의 고위급 접촉이 이뤄져야 한다.
신뢰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북쪽에 비해 모든 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우리 정부가 먼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한겨레>가 3회에 걸쳐 ‘의료영리화가 바꾸는 세상’을 연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격의료,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 등에 이어 취임 한 돌을 맞은 지난달 25일엔 경제자유구역의 외국 영리병원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밝힌 게 계기가 됐다.
연재물을 보면, 미국의 영리병원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어떤 반칙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연방정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내려고 과잉진료를 일삼는다. 병원은 특히 65살 이상의 응급실 내원 환자 가운데 절반 넘게 입원시키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의사들에게 제시한다. 입원시킨 환자 수를 의사 실적으로 평가하다 보니 의사들은 없는 병도 만든다.
미국의 실태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을 연상시킨다. 영리 자회사가 투자자에게 자금을 조달하고 그 이익을 배당하는 통로가 되면 병원은 투자자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비슷한 편법을 강요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도 결국 재벌 주도의 영리 체인병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과 달리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는 공공성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지만, 성적은 훨씬 좋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보면, 영국인이 한 해 의료비에 3405달러를 쓰는 동안 미국인은 8508달러를 지출한다. 미국인의 의료비는 영국인의 2배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정작 영국인의 평균수명은 81.1살로, 미국인의 78.7살을 앞지른다. 미국은 한 해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17.7%에 이르는 막대한 의료비를 쏟아붓고도, 훨씬 적은 돈을 쓰는 영국(9.4%)보다 성과가 저조했다.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평가한 보건의료제도 평가 순위에서 영국은 전체 191개국 가운데서 18위를 차지한 반면, 미국은 한참 뒤진 38위에 머물렀다. 이 평가에서 한국은 미국보다도 못한 59위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공공의료체계도 아니고 민간의료체계도 아닌 기형적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근간으로 의료체계가 짜여 있어 공공의료체계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국 의료기관 병상 수의 90% 가까이를 민간이 차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공공이냐 민간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나라가 택해야 할 길은 당연히 영국의 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국의 길을 따라하려는 것 같아 불안하다. 부디 두 나라의 사례를 깊이 있게 연구 검토하기 바란다. 의료 영리화의 길은 하루빨리 접어야 한다.
지난달 20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담화를 재검증하겠다고 말해 한국정부로부터 “역사인식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강력한 항의를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달 28일 스가 장관은 검증 조사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정부의 반발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그런 오불관언의 자세는 그제 사쿠라다 요시타카 교육부 차관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고노담화 수정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해 “진실은 하나”라며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속이거나 사실을 날조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 고노담화를 부정하지 못한 채 수정하고 싶어하는 속내를 간혹 내비치는 것에 그쳤다. 그런데 최근 재검증을 내세워 고노담화의 수정을 위해 한발 한발 다가서더니 이제는 ‘거짓말’ ‘날조’라는 과격하고도 노골적인 용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정부가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수정을 넘어 부정하고 폐기하겠다는 의사표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노담화는 한·일관계의 토대이다. 따라서 교육차관의 날조 망언은 양국관계의 뿌리를 흔드는 외교 전쟁 선언이나 다름없다. 마침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4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그게 마치 국제무대에서 한·일이 외교전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일본 대 국제사회의 대결 구도라는 것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국제사회는 인권 무시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건 아베 신조 총리가 잘 알 것이다. 그는 현재 북·일 간 일본인 납치 문제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납치 문제에 관해 국제사회가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반인권적 정책에는 눈감는 이중성만 드러낼 것이다. 인도주의 문제로서 납치 문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할수록 반인도주의 행태를 보이는 아베 정부의 모순도 그만큼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앞에 두려움을 느낄 줄 안다면 이제 그만해야 한다. 양국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물론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해서도 고노담화 수정을 포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정부를 지지할 나라는 없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세력의 통합신당 추진에 대한 새누리당의 비판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새누리당 주요 당직자들이 나서 안 의원이나 야당의 주요 출마 예상자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지형이 급변하는 데 따른 위기감의 발로일 테지만 집권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은 아니다.
새누리당이 민주당과 통합하기로 한 안 의원더러 약속을 어겼다고 비판하는 모습은 참 볼썽사납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4일 안 의원을 겨냥해 “모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안 의원은 새정치를 열망했던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조차 있는지 의문이다”고 공격했다. 안 의원이 야권연대에 부정적이었고 독자신당을 추진하다가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전격 선회한 것을 약속 위반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약속 파기”라며 안 의원을 공격하는 건 제 얼굴에 침 뱉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권 통합을 촉발한 계기는 다름 아닌 새누리당의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의 번복이었다. 대선 때 국민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놓고 은근슬쩍 넘어가려 드는 게 지금의 새누리당이다. 정당공천 문제 이외에도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빌 공 자’ 공약이 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기초선거 공천 폐지 공약에 대해 청와대와 대통령은 아무 말도 없고 원내대표가 파기해 버렸다. 새누리당이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겠는가.
최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엔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 폐기에 대해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하고 이해를 구했다는,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내놓았다. 여권의 책임 있는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머리를 숙인 적이 없다. 기초공천 폐지에 관한 새누리당의 태도는 참으로 무책임하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 대해 “기회주의적이고 약삭빠른 모습”이라고 한 것이나, 부산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개인의 이익을 노린 양다리 정치” 운운한 것도 문제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 진영의 후보를 깎아내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이런 식의 적반하장 정치, 막말 정치, 약속 위반 정치를 계속하면서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유권자한테 표를 달라고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 정치에서 남을 헐뜯어 이득을 보려는 행태는 용납돼선 안 된다. 새누리당은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돌아보길 바란다.
공공기관 임원에 대한 ‘낙하산 인사’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의 산하기관에선 임원추천제도의 파행 운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원추천위원회의 심사는 요식적 절차에 그치는가 하면, 아예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위원회가 구성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른 부처 산하기관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공기관 임원 자리를 이런 식으로 낙하산 인사들이 꿰어차면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기관 정상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온 폐해다. 업무 경험이나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 정치권이나 주무부처의 힘에 기대 기관장과 감사, 집행임원과 비상임(사외)이사까지 꿰어차는 관행은 그야말로 후진적이다. 자질과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채 낙하산으로 임원이 들어선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경영성과가 저조할 뿐 아니라 내부의 비효율과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줄이고자 하는 제도적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 결정판이 참여정부 말기에 도입된 임원추천제도다. 이 제도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과 기획재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각 공공기관은 비상임이사와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임원을 발굴하고 심사한 뒤 적격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고, 이들을 대통령이나 정부 각 부처의 수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임원추천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국민적 비난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낙하산 인사가 그 반증이다. 각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가 법과 지침이 요구한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데는 정치권과 정부 각 부처의 책임이 크다고 봐야 한다. 정치권과 주무부처 등 외부의 입김에 휘둘려 임원추천위원회의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기관 혁신은 낙하산 인사 관행을 근절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정치권이나 정부의 일방적인 입김에 휘둘린 결과가 바로 방만경영이고 부채의 누적이다. 일부 과도한 복리후생의 뿌리도 낙하산 인사 관행에 있다고 봐야 한다.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 경영진일수록 내부의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막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는커녕 요식적 절차로 전락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다. 공공기관 정상화는 말로만 될 일이 아니다.
새 한국은행 총재에 이주열 전 한은 부총재가 내정됐다. 청와대는 “한은 업무에 밝고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감각을 갖췄다”며 “조직 내 신망이 두터워 발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35년간 한은에서 근무한 통화정책 전문가다. 평소 성장보다 물가안정이라는 한은 고유 역할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김중수 총재와는 차별화된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작금의 한국경제 현실을 극복할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지 국회의 철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이번 인사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이다. 이 내정자가 한은에서 잔뼈가 굵은 검증된 인물인 데다 내부 평가도 비교적 후한 편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년간 전문성·자질 부족으로 인사 난맥상을 노출한 것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집권 2년차를 맞아 안정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하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관료 출신이 총재에 앉을 경우 예상되는 한은 내부 반발과 독립성 논란도 부담이다.어려운 경제현실에 비춰 보면 한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당장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국제금융시장 혼란이 주된 경제현안 중 하나다. 환율과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이 자칫 실물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더구나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나 저성장 기조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아킬레스건이다. 정부의 성장 위주 경제정책이 가져올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물가정책 못지않게 일자리 문제도 한은의 통화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무엇 하나 손쉬운 게 없다.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는 한은 설립 후 처음이다. 이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는 공직자의 도덕성 못지않게 금융분야 전문성과 자질 검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급변하는 금융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통찰력과 거시경제 감각을 갖췄는지가 중요한 대목이다. 정부와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정부 눈치 살피느라 시장의 신뢰를 잃은 김 총재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한은의 독립성을 무시한 채 경제 살리자고 발권력을 동원하는 일이 되풀이돼서야 되겠는가. 변화에 둔감한 한은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이 내정자의 개혁 의지도 따져봐야 한다. 한은도 개혁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자살한 병사의 조의금을 여단장이 가로챘다는 사실이 며칠 전 뒤늦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런데 ‘참으로 파렴치한 지휘관’이라는 비난 속에서 유야무야될 뻔한 이 사건의 실상은 ‘조의금 횡령’이 아니었다. 자살 시도 병사를 발견한 시각과 근무일지 등을 조작하고, 부대원에게 거짓진술을 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등 사건 자체를 은폐·조작했다는 의혹이 당시 복무자들의 증언으로 제기된 것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1년 12월4일 경기도 가평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여단 본부중대 김모 일병(당시 20세)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동료들에게 발견됐을 때 숨소리도 들리고 맥박이 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급차 도착이 늦어지고 인명구조에 실패하자 간부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망시각과 구급차 출입기록 등을 조작하고 병사들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여단장과 중대장 등 간부들은 또 김 일병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이전에도 여러번 자살을 시도했음에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왜곡하는가 하면, 빈소에 모금된 조의금 158만원을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고 임의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휘관들이 자신의 직분을 다했더라면 김 일병은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혹행위를 방지하고, 병사들의 내무생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김 일병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김 일병을 발견한 뒤에도 초동 대처만 제대로 했더라면 그를 살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간부들은 결국 김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사건 은폐조작과 조의금 횡령으로 그를 두번 세번 죽였던 것이다. 군당국은 지금이라도 이 사건의 전면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 증거조작과 은폐, 허위진술 종용 등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처해야 한다. 그것이 김 일병과 유족들에게 뒤늦게나마 사죄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군대 내 사망사건에서 사망자가 소속된 부대장의 결재가 있어야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현행 제도도 뜯어고쳐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 피의자도 될 수 있는 부대장이 수사에 관여하는 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건군 이래 사망한 군인 가운데 군 수사당국이 자살로 결론지은 이들은 1만3000여명이라고 한다. 1개 보병사단 병력보다 더 많은 이 숫자 가운데 김 일병의 경우처럼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공적인 것처럼 여겨졌던 초기 통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회의적, 부정적 수치들로 변하고 있다. 물론 현 단계에서 아베노믹스의 실패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정책은 진행 중이고, 경제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변수도 많다. 아베노믹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재도약이다. ‘잃어버린 20년’으로 설명되는 과거를 털고 체질 개선을 통해 1970~198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것이다. 2년 내 인플레이션 2% 등 구체 목표와 함께 무제한 돈을 풀면서 엔저를 유도했다. 2013년 1분기 성장률이 4.8%로 급등하고 주가가 50% 이상 오르면서 효험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1%에 그쳤다. 2013년 무역적자는 전년보다 65%나 늘어난 11조4700억엔으로 사상 최악이었다. 여기에 현재 5%인 소비세가 4월부터 8%로 늘게 된다. 일본은 1997년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린 뒤 가계 구매력이 줄면서 분기 성장률이 3%에서 마이너스 3.7%로 추락한 경험이 있다. 휘청거리는 아베노믹스의 현실은 한국 경제에 여러 교훈을 던진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구상은 본질적으로 아베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베 총리나 박 대통령 모두 현재의 경제 상태를 침체와 도약의 갈림길로 규정하며, 저성장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양적완화를 제외하고는 기업의 성장 동력과 내수 확충을 강조하는 정책 방향도 흡사하다. 일본과 한국의 GDP 대비 내수 비중은 각각 60%, 53%이다.아베노믹스에서 재삼 확인된 것은 수출대기업 활성화→내수 자극→경기확장 시도는 큰 성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17% 하락했다. 몇몇 기업이 수혜를 입었지만 기대치보다 약했다. 고용 확충 등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가는 1.6% 올라 목표치에 근접했지만 공급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진정한 소비 증가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의 이런 상황은 대기업 주도 성장론의 한계를 의미한다. 일본 경제의 장기 정체는 사회양극화, 저출산·고령화, 취업난과 비정규직 등 구조적 요인이 크다. 미래 불안감과 늘지 않는 임금으로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일본의 경제사회적 현상은 한국에 그대로 대입된다. 소비가 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소득이 커져야 한다. 아베 총리도 임금인상에 목을 매지만 기업들은 비용 증가로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해 소극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소득불평등을 낮추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베노믹스에서 배워야 할 것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 창당추진위가 3일 공동 신당추진단을 구성하는 등 본격적인 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애초 우려했던 만큼의 내부 반발은 양쪽 모두 크게 없지만 창당으로 가는 길목에는 곳곳에 복병이 널려 있어 순항을 장담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통합신당의 첫째 과제는 지분, 주도권, 계파 등의 단어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가느냐다. 당장 ‘5 대 5 정신’을 놓고 양쪽의 해석이 달리 나오는 등 벌써 미묘한 신경전도 감지된다. 친노·비노 등 민주당 내 기존 계파에 안철수 의원 세력까지 가세함으로써 신당의 내부 역학이 훨씬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은 양쪽 모두 열린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이다. 사실 신당은 통합의 명분인 새정치 구현을 위해서도 예전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소한 지분 문제 등으로 삐걱거릴 경우 국민적 지탄을 면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세를, 새정치연합은 욕심을 절제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오히려 양쪽이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정당의 조직 형태나 운영 방식 등에서 기존 정당과는 다른 참신한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정강정책 역시 양쪽의 정강정책을 적당히 더하고 빼는 짜깁기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지금의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국민의 희망과 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치열한 내부토론이 선행돼야 한다. 민주당 안에서는 “새정치연합이 민주당보다 오른쪽에 있었던 만큼 신당의 정강정책이 우클릭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강정책의 문제는 이른바 민주당 내 강경파들의 입지와도 관련된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정강정책은 내용뿐 아니라 투명하고 공개적인 결정 방식도 중요하다.
창당 작업과 사실상 거의 동시에 맞물려 진행될 6·4 지방선거 공천 문제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특히 새정치연합 후보로 지방선거를 나가려던 사람들의 거취 문제가 5 대 5 지분 문제 등과 맞물려 잡음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공천 역시 움직일 수 없는 원칙은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는 것이다. 적당한 나눠먹기나 주고받기식 공천 역시 유권자들의 등을 돌리게 할 뿐이다. 이번 기회에 새정치의 대의에 걸맞은 제대로 된 공천 방식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신당 창당의 성공 요건은 설훈 민주당 쪽 신당추진단장이 한 말에 잘 집약돼 있다. “소아를 버리고 대의를 위해 크게 간다.” 이 말이 결코 빈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역·민족 사이 갈등 고조와 외세의 개입 등으로 복잡한 국면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성숙한 대처가 중요한 때다. 러시아와 미국, 유럽연합 등 관련국들은 분열을 부추기지 말고 평화적 해법 마련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지금 관심의 초점이 되는 곳은 러시아계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데다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크림자치공화국이다. 러시아가 수천명의 병력을 투입해 크림자치공화국의 주요 시설을 장악한 것은 잘못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폭력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이익과 크림반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동의하지 않은 병력 투입은 사실상 침공에 가깝다. 러시아군의 크림반도 주둔이 두 나라 사이의 협정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병력을 주둔지가 아닌 곳에 배치한 것은 불법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즉각 주둔지 바깥의 병력을 철수하기 바란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물러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의회와 과도정부를 장악한 친서방 세력에 두려움을 가진 크림자치공화국이 친러시아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림반도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병력 다수도 크림자치공화국 쪽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게다가 크림자치공화국은 사실상 독립을 지향하는 자치 확대 여부를 두고 오는 5월 주민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지금은 지역·민족 갈등이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크라이나 정국을 주도하는 과도정부와 의회는 사태의 엄중함을 직시해야 한다. 나라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고 적극적으로 국민 화합을 꾀해야 한다. 러시아의 제2공용어 지위를 박탈하기로 한 의회의 법률 폐지안에 대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2일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적절한 결정이다. 다른 나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나친 개입을 삼가야 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4일 서둘러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기로 한 것은 친러시아 세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군사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까지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과거 서방 나라들이 본의든 아니든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악화시킨 사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국민적 통합성 유지에 있다. 궁극적 해법은 우크라이나인 자신이 민주적 방법으로 찾아야 하며, 관련국들은 한발 물러서서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