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담 규제개혁위원장이 임기 3개월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엊그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규제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검토해야 하는데 나는 그 일을 하기에는 모자라 자리를 내놨다”고 말했다. 규개위는 규제정책을 심의·조정하는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김 위원장은 능력 부족을 얘기했지만 “법률상 규개위는 규제를 강화 혹은 완화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완화 여부를 심사하는 것으로만 운영하고 있다”는 발언에 비춰보면 규제 완화 일변도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규제 완화는 박근혜 정부의 최대 관심사이다. 박 대통령은 “꿈속에서 꿈까지 꿀 정도로 규제 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게 규제 완화”라고 말해왔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 내수활성화로 이어지는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현재의 규제 완화 움직임은 불합리한 규제를 손봐 합리성을 키우기보다는 경기활성화란 명분 아래 일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진 자들의 이익 제고 방편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훨씬 크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당장의 효과도 불분명하다. 지난해 말 여당은 재계 주장대로 외국인투자촉진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했지만 현재까지 외자유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촉법 통과에 목을 맸던 기업들은 상황 변화를 내세워 뒷짐만 지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입지규제 최소지구 지정 등 최근의 부동산 규제 완화 역시 서민들의 주거복지보다는 서울 강남 주민들과 도심 요충지에 땅을 가진 몇몇 재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다. 반면 정작 필요한 규제는 뒷전이다. 금융위는 금융범죄자의 금융사 경영 자격을 박탈하는 대주주 적격성심사제를 기존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증권·보험·카드사로 확대하려 했으나 재벌 반대에 막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잘못된 규제 완화로 인한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외환위기 이후의 카드대란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출발점은 규제 완화였다. 2008년 금융위기가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다. 규제 체계의 조정은 제로섬게임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누군가에게는 비용이 전가된다. 당연히 민주적 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른다. 현재의 규제 완화는 머지않아 규제 강화를 불러올 게 뻔하다. 지금이라도 규제 개혁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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