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3일 목요일

중앙 [사설] 국민 얕잡아 본 청와대의 '천해성 파동' 해명

중앙 [사설] 국민 얕잡아 본 청와대의 '천해성 파동' 해명


청와대는 최근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처를 부활하면서 국가안보실 내에 안보전략비서관을 신설했다. 이 자리에 통일부 엘리트 관료로 분류되는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을 앉혔다. 그런데 근무 1주일 만에 그를 남북회담본부 상근대표로 보내고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을 새로 골랐다. 인사대상을 바꾸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태도는 신중하지 못한 소통과 인사의 문제를 다시 드러냈다.

 청와대의 설명은 너무 엉성한 것이다. 민경욱 대변인은 천 내정자는 통일부 핵심 요원으로 통일부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돌려보내 달라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수준 낮고, 황당한 변명이다. 부처 핵심 관리를 국가안보 요직에 차출하면서 사전에 장관의 양해를 얻지 않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로서는 밝히기 곤란하다고 판단한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국민에게 좀 더 성의 있게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국민이 이런 엉터리 설명을 납득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얕잡아 본 것이다.

 철회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천 내정자가 과거 정권에서 보여준 언행에 대해 정부 내 안보나 검증 부서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거나 아니면 그가 기존의 국가안보실 인사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것 등이다. 외교안보 관련 요직에서 미스터리 인사 파동은 처음이 아니다. 정권 출범 직전엔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안보 분야에서 활동하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돌연 사퇴한 적이 있다.

 김정은 정권의 대남 도발과 장성택 처형 등 불투명한 사태로 한반도 상황은 유동적이다. 이럴수록 외교안보팀은 허점이 없이 잘 짜여져야 하며 그런 구성과 업무자세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다.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비밀스러운 사안이 아니라면 정부는 최대한의 투명성으로 국민에게 성의껏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치밀한 인사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 

중앙 [사설] '유서대필' 강기훈씨의 23년, 누가 책임지나

중앙 [사설] '유서대필' 강기훈씨의 23년, 누가 책임지나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려온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1991년 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됐던 강씨가 23년 만에 혐의를 벗게 된 것이다.

 어제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권기훈)는 자살 방조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강씨 재심 재판에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91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고 검찰의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유서를 작성했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앞서 국과수는 지난해 12월 강씨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는 감정 결과를 제출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에 사법 정의가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91년 5월 김씨가 투신자살한 뒤 검찰은 강씨를 자살 배후로 지목했다. 이어 “강씨 필적이 김씨 유서와 같다”는 국과수 감정 결과로 강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권고 후 강씨가 재심 개시를 청구했으나 검찰의 즉시항고와 대법원의 늑장 처리로 2012년 10월에야 대법원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이렇게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강씨는 ‘유서 대필자’라는 그림자에 갇혀 살아야 했다. 문제는 그가 구속되고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검찰과 법원의 여과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후에도 7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강씨 사건은 한국 사법시스템에 내재된 ‘인권 불감증’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강씨는 무죄 선고 후 “사법부의 권위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때 세워진다”고 말했다. 법의 이름으로 인격을 짓밟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무죄 판결이 확정된다면 검찰, 나아가 사법부는 강씨에게 고개 숙여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2, 제3의 강기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길이다. 

중앙 [사설] '유서대필' 강기훈씨의 23년, 누가 책임지나

중앙 [사설] '유서대필' 강기훈씨의 23년, 누가 책임지나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려온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1991년 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됐던 강씨가 23년 만에 혐의를 벗게 된 것이다.

 어제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권기훈)는 자살 방조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강씨 재심 재판에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91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고 검찰의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유서를 작성했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앞서 국과수는 지난해 12월 강씨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는 감정 결과를 제출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에 사법 정의가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91년 5월 김씨가 투신자살한 뒤 검찰은 강씨를 자살 배후로 지목했다. 이어 “강씨 필적이 김씨 유서와 같다”는 국과수 감정 결과로 강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권고 후 강씨가 재심 개시를 청구했으나 검찰의 즉시항고와 대법원의 늑장 처리로 2012년 10월에야 대법원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이렇게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강씨는 ‘유서 대필자’라는 그림자에 갇혀 살아야 했다. 문제는 그가 구속되고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검찰과 법원의 여과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후에도 7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강씨 사건은 한국 사법시스템에 내재된 ‘인권 불감증’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강씨는 무죄 선고 후 “사법부의 권위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때 세워진다”고 말했다. 법의 이름으로 인격을 짓밟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무죄 판결이 확정된다면 검찰, 나아가 사법부는 강씨에게 고개 숙여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2, 제3의 강기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길이다. 

조선 [사설] 임금피크·통상임금·근로단축, 한 테이블에 놓고 풀어야

조선 [사설] 임금피크·통상임금·근로단축, 한 테이블에 놓고 풀어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2일 정년(停年)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16년 대기업부터 60세 정년이 의무화되면서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기업이 60%를 떠안고, 나머지는 근로자와 정부 지원으로 메운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에 1인당 연간 최대 840만원을 지원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60세로 정년이 늘어난 것은 임금도 60세까지 제대로 주라는 것"이라며 경총의 제안에 반발하고 있다. 여기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갈등까지 겹쳐 올해 임단협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경총이 주요 회원 기업 232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6%가 올해 노사 관계가 작년보다 불안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임단협에는 정년 연장,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핵심 쟁점은 노사가 그 비용을 어떻게 나누고 부담하느냐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대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기업들이 추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 6조~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막대한 비용을 기업들이 모두 부담하기는 어렵다. 기업들은 정기 상여금을 줄이는 등 임금 체계를 개편하고 초과근로수당 지급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노조는 현행 틀 안에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임금 총액을 높이려 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최대 법정(法定) 근로시간이 현행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 경우 기업들은 그만큼 임금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근로자들은 근로시간이 줄어들더라도 기존 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사안별로 따로따로 다투다 보면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어렵고 노사 갈등만 더 증폭될 위험이 있다. 정년 연장, 통상임금, 근로시간 문제를 하나로 묶어 전체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놓고 노사가 서로 주고받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 초과근로 시간을 줄여 임금이 줄면 통상임금 범위를 재산정하면서 일부 보전하고, 정년을 연장하되 임금피크제를 앞당겨 도입하는 식의 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이런 패키지 딜을 하려면 모든 이슈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협의할 창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역할을 할 노사정위원회는 작년 12월 철도 파업 사태 때 한국노총이 불참(不參)을 선언하면서 유명무실하게 됐다. 정부와 노동계는 우선 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할 방안부터 서둘러 찾아야 한다.

조선 [사설] 北, 이산가족 눈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려는가

조선 [사설] 北, 이산가족 눈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려는가

지난 12일 7년 만에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은 한·미 합동 키리졸브 훈련 기간에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은 앞서 20~25일 6일간 금강산에서 두 차례 상봉 행사를 갖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그대로 수용했다. 키리졸브 훈련이 24일부터 시작되니 북 주장대로라면 24~25일 이틀간 상봉은 못하게 된다.

키리졸브 훈련은 1994년부터 매년 해오고 있는 방어 훈련이다. 21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훈련을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비인도적이다. 북도 동계(冬季) 훈련을 실시했다. 그런 북이 이러는 것을 보니 굳이 2월 말에 상봉을 하자고 날짜를 잡은 것 자체가 키리졸브 훈련 일정과 겹치게 한 다음에 훈련 중단을 압박하려는 계산이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북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이산가족들의 눈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북 수석대표로 나온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접촉에서 이른바 '존엄(尊嚴) 모독' 중단도 요구했다고 한다. 북에서 '존엄'이란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말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정은과 북 정권 핵심들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 비판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등을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모독하고 막말 비난을 퍼부어온 쪽은 북이다.

결국 북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국내 언론의 김정은 비판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북도 이제 자유민주 체제 아래서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북이 이러는 것은 간접적으로 우리 언론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북은 얼마 전 김정은과 그 일행이 어린아이들 사는 방에 구두를 신고 들어간 사진을 배포했다. 북이 시비를 거는 것은 우리 언론들이 그 장면을 비판한 직후다. 아이들의 인권을 모독한 행위를 비판한 것을 '존엄 모독'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장성택 처형 후 얼어붙어 있는 북한 간부들이 이런 요구를 통해 김정은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북이 2차 만남을 제안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14일 재개된다. 접촉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북의 일련의 행동은 '대화 공세'에 가깝다. 그러나 청와대 설명대로 북측 의도를 알 수 있고, 김정은 직계(直系) 라인인 국방위원회와 통일전선부 사람들과 직접 얘기할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대화의 불씨는 살려나가되, 접촉에서 별 소득을 얻지 못할 경우 북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도 면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경향 [사설]남북, 의견 차이보다 대화 부족이 문제다

경향 [사설]남북, 의견 차이보다 대화 부족이 문제다

남북은 어제 새벽까지 고위급 접촉을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남북 최고 지도자를 대리해서 남북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기대할 만했는데 아쉽게 됐다. 그러나 오늘 다시 만난다니 다행한 일이다. 남북은 상호 비방·중상 중지, 이산가족 상봉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계 두 쟁점에서 대립했다. 비방·중상 중지 문제는 한마디로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흉보는 남한 언론보도를 남측 당국이 막아달라는 것이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북측이 남북화해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고, 김정은 제1비서의 행태를 바꾼다면 개선의 여지는 생기겠지만, 남북 당국이 논할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실제 쟁점은 이산 상봉과 훈련 연계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북측은 군사훈련 기간에 상봉을 할 수 없다며 20~25일 상봉 기간과 겹치는 24, 25일 훈련의 연기를 요청했고, 남측은 훈련과 상봉은 별개라며 거부했다. 사실 단 이틀이 문제라면 대립할 일도 아니다. 북측에 그게 그렇게 절실한 일이라면 남측이 훈련을 미루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남측이 이산 상봉 무산을 각오하면서까지 꼭 그날 훈련을 강행해야 할 불가피한 사정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훈련 기간에 상봉을 못할 이유 역시 없다. 한·미 훈련에 맞대응하느라 북한이 번거롭게 되었다 해도 그게 상봉을 포기해야 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양측은 각자의 명분 지키기를 우선하고 상대를 이해하거나 양보하는 자세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만에 하나 남북이 대화하고 협력해온 관계였다고 해보자. ‘이틀의 차이’는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은 자기 원칙만 내세웠다. 나의 선의를 상대가 악용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관계에서는 그런 실랑이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 원했던 비밀 접촉이 아닌 공식 회담이었다. 서먹서먹한 당사자 간에 그런 자리에서 마주 앉으면 허심탄회한 협상, 실질적 토의가 쉽지는 않다. 남북은 막힌 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위급 접촉을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공개 회담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비밀 접촉을 포함한 다양한 대화를 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무죄 난 강기훈·부림 사건, 조작극 실체 밝혀야

경향 [사설]무죄 난 강기훈·부림 사건, 조작극 실체 밝혀야

진실의 힘은 강했다. 양심과 존엄을 지키려는 지난한 투쟁은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한국의 드레퓌스’로 불려온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사건’ 재심에서 23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 관련자 5명도 33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불의한 권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든, 부끄러운 역사를 사법부가 바로잡은 것이다. 다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는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간부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자살방조)로 기소돼 3년간 옥고를 치른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작성한 필적 감정서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는 당시 조작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그러나 국과수가 지난해 말 강씨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는 감정 결과를 새로 내놓으면서 공소사실은 무너지게 됐다. 부림사건 재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는 고호석씨 등 5명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된 사실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강기훈씨가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간 파렴치범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모진 삶을 겪는 동안, 유서대필 사건 수사책임자들은 승승장구했다.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올랐고, 곽상도 주임검사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을 지냈다. 지금의 검찰은 또 어떤가. 강씨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는 기간 내내 재판을 지연시키고, 과거 수사를 변호하려는 듯한 행태를 보였다. 법원 역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자성이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강씨가 “내가 생각했던 재심이 아니다”라고 탄식했겠는가. 

우리는 재심 무죄가 시작일 뿐이라고 본다. 푸른 청춘의 꿈을 송두리째 짓밟은 거대한 공안조작극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는 일이 보다 중요한 과제다. 사건을 짜맞추는 데 관여한 인사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제2, 제3의 강기훈이나 고호석이 나올 수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 형사적 책임을 추궁할 수는 없다 해도 최소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검찰은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재심 결과를 받아들이고 상고를 포기하는 것이 도리다. 만에 하나 검찰이 상고를 강행한다면 대법원이 신속히 재판절차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도 각성할 필요가 있다. 황당한 공안조작극이 가능했던 것은 판검사들 외에도 진실에 눈감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과 시민사회도 겁을 먹거나 무력해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다. ‘그 시절’로의 회귀를 막으려면 권력이 보여주는 ‘거짓’에 매몰돼선 안된다. 진실이 무엇인지 눈을 부릅떠야만 권력의 불의한 욕망을 견제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한-미 군사훈련 일정, 유연성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한-미 군사훈련 일정, 유연성 필요하다


12일 밤늦게까지 이어진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쪽이 오는 24일 시작될 예정인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후로 미뤄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지금대로라면 20일부터 시작되는 상봉 일정 가운데 뒤쪽 이틀이 훈련과 겹치게 돼 적어도 일부 행사가 파행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북쪽이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을 군사훈련과 연계한 것은 원칙적으로 옳지 않다. 이런 식이라면 양쪽이 군사훈련을 하는 시기에는 어떤 인도적 행사도 할 수 없게 된다. 범위를 넓혀보면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간 교류의 상당 부분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산가족 상봉 날짜도 남쪽은 17~22일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20~25일로 늦춘 것은 북쪽이다. 또한 키리졸브 훈련은 해마다 해온 것인데다 지휘소(CPX) 훈련이어서 내용이 바깥으로 노출되지 않는다. 이어지는 독수리 연습에서도 지난해 북쪽이 큰 경계심을 나타낸 미국의 전략폭격기 따위는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지난해 한-미 훈련 기간 동안에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크게 높아졌던 사실을 고려하면 훈련을 강행하는 것이 최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훈련을 단 이틀만 늦추면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겹치는 것을 피할 수 있기도 하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훈련임을 강조하지만 열흘 정도의 시일이 남은 만큼 조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북쪽 태도가 강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북쪽은 지난달부터 한-미 훈련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이날 접촉에서는 훈련 일시 연기로 물러섰다. 반면 정부의 태도는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
과거 정부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전후해 쌀·비료 등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한 것은 상봉 행사가 그만큼 북쪽에 부담이 되는 점을 고려한 측면이 크다. 게다가 이산가족 상봉은 북쪽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남 정책 수단 가운데 하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북쪽에 무조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할 것만을 요구해서는 남북 관계가 잘 풀리기가 어렵다.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무산된 주된 이유도 북쪽은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를 함께 진행하기를 바랐으나 남쪽이 이를 무시한 데 있다. 변수가 이번에는 한-미 군사훈련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12일 접촉에서는 이 사안 외에도 여러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혔다면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길로 가든 출발점은 원만한 이산가족 상봉이 될 수밖에 없다. 14일 재개될 고위급 접촉에서 분명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강기훈·부림 사건 무죄, 가해자들 통절히 반성해야

한겨레 [사설] 강기훈·부림 사건 무죄, 가해자들 통절히 반성해야


1981년의 ‘부림’ 사건과 1991년의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나란히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각각 33년과 23년 만에 조작의 진상이 밝혀졌으니 사필귀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그동안 감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진실 규명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특히 몹쓸 병까지 얻어 투병 중인 강기훈씨로서는 누명을 벗었다는 후련함보다 원통함과 아쉬움이 더 짙게 남을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는 13일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김기설씨의 유서와 같은 흘림체끼리 비교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애초 필적감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 왔던 이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나마 바로잡히긴 했으나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은 자못 무겁다.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 진실을 지켜내야 할 사법·언론 등 어느 한 분야도 제구실을 못 했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론 황당한 사건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데 일조한 판검사들의 통절한 반성이 요구된다. 정통성이 부족한 권력에 항거하는 대학생 등의 시위와 분신이 잇따르자 6공 정권은 공안정국 조성에 나섰고 급기야 ‘유서 대필’이란 해괴한 사건을 만들어냈다. 국과수는 애초 흘림체인 유서와 정자체를 비교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시했다가 검찰의 재감정 요청에 응하는 등 감정 과정부터 논란거리였다.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두고도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됐다. 이번 재심 재판부가 흘림체끼리 비교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한 것을 보면 당시 무리하게 필적감정과 기소를 밀어붙인 검찰과 허술한 증거를 쉽사리 믿고 진실을 외면한 법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조작 가능성을 감지하고도 서둘러 진실을 파헤쳐 좀 더 빨리 진상 규명을 독려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앞으로 남은 절차만이라도 서둘러서 강씨의 물적·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재판이나마 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림 사건 재심 재판부 역시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불법감금과 자백 강요 등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최근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흥행에 성공하자 당시 수사검사들은 고문은 없었다며 영화 자체를 허구로 단정했다. 일부 수구·보수 언론들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유죄가 재심에서도 뒤집히지 않았다며 부림 사건의 조작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영화와 그 실제 주인공을 폄하하는 인사들의 주장을 전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관련자들 가운데 이호철·설동일씨 등이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각각 근무 중이어서 애초 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 신청을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사건 피해자들과 영화를 섣불리 깎아내릴 일은 아니었다. 뒤늦게나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무죄와 함께 사건이 조작으로 밝혀진 마당에 이에 가담한 가해자들, 특히 경찰과 검찰 등 조작에 앞장선 인사들의 통절한 반성을 촉구한다.

2014년 2월 12일 수요일

경향 [사설]남북, 대결과 갈등 시대 벗어날 돌파구 열어야

경향 [사설]남북, 대결과 갈등 시대 벗어날 돌파구 열어야

남북은 어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을 수석대표로 한 고위급 접촉을 했다. 북측이 먼저 이런 대화 방식을 요청했고 내용도 비공개를 원했다고 한다.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성과를 내는 실질적 대화를 위한 의지의 표현이기를 바란다. 협의 내용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북 수석 대표 모두 각각 최고 지도자를 대리하는 위치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남북 간 주요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남북 경색과 교착 국면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그걸 물려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간 북한은 수시로 대남 위협을 하거나 대화 의지 없는 대화 공세로 갈등을 유발했고, 남측 역시 경직된 태도로 대화의 문을 열지 못했다. 장관급 회담으로 국면을 전환할 계기가 있었지만, 회담 대표의 격을 따지는 실랑이로 좋은 기회를 차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7년 만의 고위급 접촉이기에 기대감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현재 남북 경색의 주요인은 5·24 대북 제재 조치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이 초래한 이 대북 조치를 어떻게 해서든 남북이 풀지 않으면 남북 관계 회복의 장을 펼칠 수 없다. 물론 기존의 견해차를 고려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천안함 침몰 책임을 부정하고, 연평도 포격을 남한의 군사적 도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이 얼마나 입장을 바꿀 수 있을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일정한 수준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절충안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남북이 5·24 조치를 푼 이후 어떤 남북 관계를 맞을지에 대한 전망만 공유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최근 중대 제안에서 밝힌 바와 같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주요 의제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피할 필요가 없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초래한 문제이므로 북한 핵협상을 재개하는 고리로 삼을 수도 있고,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물론 다른 현안들과 마찬가지로 하루 이틀에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게 바로 지속적인 남북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채널의 대화가 상시적으로 열려야 한다. 이번 고위급 접촉이 그런 대전환의 결실을 낳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남북 교류·협력이 활성화되고, 이산가족이 정례적으로 만나고, 다시 금강산 관광을 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경향 [사설]법원, 재벌 비리에 온정주의로 돌아서나

경향 [사설]법원, 재벌 비리에 온정주의로 돌아서나

서울고법이 수천억원대 기업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들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경제 건설에 이바지했다거나 건강이 나쁘다는 등의 이유로 실형을 면해줬다. 과거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던 데서 유래한 ‘3·5 법칙’이나 ‘정찰제 논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민주화 요구가 확산되면서 재벌 비리에 ‘불관용’ 입장을 견지하던 법원이 경제민주화 이슈 퇴조와 함께 온정주의로 회귀하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

재판부는 김 회장에 대한 양형 사유로 “회사 자산을 개인적 치부에 활용한 전형적 (기업범죄) 사안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사재를 털어 배임·횡령액 등을 변제한 점도 참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설사 이러한 사유가 타당하다 하더라도 집행유예까지 선고한 것은 대법원 양형기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형기준을 보면 김 회장에게 적용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죄의 경우 액수가 300억원 이상이면 감경하더라도 징역 4~7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재판부는 김 회장의 배임액을 1585억원으로 판단하면서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사후적 경합범’이라는 법리를 들어 이 사건은 양형기준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해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재판부는 구 회장에 대해서도 “범죄 가담 정도가 중하지만 고령으로 간암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법원이 재벌 총수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줄 때마다 판결문에 단골로 등장하던 문구가 되살아난 것이다.

한국의 재벌은 총수 중심으로 경영 체제를 수직 계열화함으로써 적잖은 성과를 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회장님’ 1인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돼 경영의 투명성이 떨어지고 비자금 조성과 편법 상속 등 불법·탈법행위가 잇따랐다.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으려면 무엇보다 기업과 기업인들의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재벌 기업들은 준법경영, 윤리경영, 투명경영의 원칙 아래 거듭나야 한다. 동시에 기업의 일탈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도 필요하다. 법원은 재벌 비리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엄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다하기 바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조선 [사설] "증거·자료 갖고 起訴하라"는 검찰총장의 자아비판

조선 [사설] "증거·자료 갖고 起訴하라"는 검찰총장의 자아비판

김진태 검찰총장은 11일 간부회의에서 "최근 특수·공안 구분 없이 여러 중요 사건에서 무죄(無罪)가 선고되고 있어 우려된다"며 "합리적 의심을 가질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와 자료를 준비한 다음 기소(起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의 발언은 무엇보다 지난 6일 검찰이 서울 수서경찰서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을 의식했을 것이다. 법원의 무죄 선고 이유는 검찰 기소 내용이 객관적 자료들과 맞아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 실무 책임자였던 권은희 경정이 서울경찰청 간부와 통화했다고 하거나 서울청에서 수사 자료를 넘겨받지 않았다고 한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권 경정 통화 내역엔 문제의 서울청 간부와의 통화 사실이 기록돼 있지 않았고, 서울청 수사 자료는 권 경정 수사팀에 넘겨져 있었다. 이런 사실은 검찰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석현(민주당) 의원과 이성헌(새누리당) 전 의원은 저축은행과 관련해 불법 정치자금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최근 잇따라 2심까지 무죄 선고를 받았고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이석현 의원 경우 검찰은 돈 준 사람이 '2008년 5만원권으로 준 것 같다'고 한 진술을 믿고 기소했다. 5만원권은 2009년에야 발행이 시작됐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놓쳤다가 법정에서 망신당했다. 이성헌 전 의원은 검찰 내부에서도 기소할 만한 충분한 입증 자료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기소를 강행했다고 한다.

2004년 2447건이던 '1심 무죄'는 작년 5224건으로 9년 사이 두 배 넘게 늘었다. 무죄율은 세 배로 늘었다. 검찰의 간판이라는 중수부·특수부가 맡은 수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경험담을 책으로 펴내면서 '짜맞추기 수사, 표적 수사에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판이다.

검찰이 부도덕(不道德)한 것도 문제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을 빼먹고 애꿎은 사람들을 무리하게 기소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검찰은 무죄판결이 늘어나는 이유가 큰 건을 터뜨리겠다는 검사들의 무모한 공명심(功名心)에서 비롯된 것인지, 검찰 내부의 검사 훈련 과정이 부실하기 때문인지 그 원인부터 정밀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지금 그 해법(解法)을 찾지 못하면 검찰은 도덕성이 부족한 데다 무능한 조직으로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조선 [사설] 통신사들, 보조금 뿌리는 걸 보니 휴대폰 요금 크게 내려야

조선 [사설] 통신사들, 보조금 뿌리는 걸 보니 휴대폰 요금 크게 내려야

가입자 유치를 위한 이동통신 회사들의 과열 경쟁으로 휴대전화 보조금이 휴대전화 가격을 웃도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주말 일부 휴대전화 판매점에서는 출고가(出庫價) 90만~100만원인 최신 스마트폰에 최대 120만원의 번호 이동 보조금을 붙여서 팔았다. 스마트폰을 공짜로 주면서 요금 할인 혜택을 더 얹어준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보조금이 많은 판매점 정보가 퍼져 나가면서 지난 11일 새벽에는 서울 동대문 지역 일부 점포에 수백명의 고객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작년 한 해 SK·KT·LG 등 이동통신 3사에 대해 세 차례 보조금 조사를 벌여 모두 178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73일간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도 통신사들은 지난 1월 설날을 앞두고 100만원 안팎의 보조금을 뿌리며 다른 회사 고객을 빼앗아오는 싸움을 재개(再開)했다. 방송위가 조사 방침을 통보했는데도 통신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게릴라식으로 보조금을 뿌렸다.

고객 입장에서 최신 스마트폰을 공짜로 받는 게 당장은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비싼 통신요금을 부담하며 보조금을 다 물어내야 한다. 통신사들이 지난해 물어낸 과징금 1787억원은 사상 최대 규모지만, 그 금액은 2조5000억원으로 추정되는 3개 통신사 작년 순익(純益)의 10%도 안 된다. 지금의 휴대전화 요금이 보조금과 과징금을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비싸다는 이야기다.

통신사들이 휴대폰을 공짜로 뿌린 뒤 비싼 통신요금을 부과해 본전(本錢)을 뽑는 식의 영업은 고객들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보조금을 받지 못한 채 비싼 통신요금만 물고 있는 대다수 고객은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는 통신사들이 통신요금 인하 경쟁을 벌이도록 요금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중앙 [사설] 남북 고위급 접촉, 한반도 변화 기폭제 돼야

중앙 [사설] 남북 고위급 접촉, 한반도 변화 기폭제 돼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약소국 조선을 놓고 열강이 경쟁하던 구한말을 연상시킨다는 얘기가 들린다. 패권국 영국에 신흥국 독일이 도전함으로써 촉발됐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과 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한국의 국력과 위상도 당시와는 판이하다. 그럼에도 과거를 되새기는 것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일 것이다.

 현상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주체적 노력을 통해 현상을 타파할 것인가. 상당 부분 우리의 의지와 선택에 달린 문제다.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대립과 갈등 구도 속에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고 국익을 도모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외치(外治)의 핵심이어야 한다. 그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남북관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 나아가 통일의 양 당사자인 남과 북의 관계 개선에서 변화의 물꼬를 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제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 접촉을 주목하는 것은 한반도 정세의 변화 필요성에 서울과 평양이 공감대를 이룬 징표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제 접촉은 의제조차 사전 조율되지 않았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다음 주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차질 없는 진행부터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금강산 관광,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5·24 조치 등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현안이 폭넓게 논의됐을 것으로 본다. 이른바 ‘중대 제안’에 대한 북측의 설명도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남북 최고지도자의 위임을 받은 고위급 실무대표 간 탐색전의 성격이 강했을 것이다.

 올 들어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며 대화 공세에 열을 올려 왔다. 정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라고 북한에 촉구해 왔다. 이산가족 상봉 합의로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가 꿰어지자 북한은 바로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고, 정부는 이를 전격 수용했다. 이번 접촉을 계기로 남북은 대화의 분위기를 살려나가야 한다. 장관급 회담이나 총리 회담으로 대화의 격을 높이는 동시에 정례화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발(發) 훈풍을 동북아에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핵 문제에서 진전이 없으면 남북관계 개선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핵 무력과 경제발전의 병진 노선을 채택한 북한을 설득함으로써 핵 문제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제시한 선행조치들을 북한이 이행함으로써 북·미 대화와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남북이 진정성을 갖고 대화와 협력의 기조를 흔들림 없이 이어나갈 때 한반도는 100년 전과 같은 수모와 굴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중앙 [사설] 준법경영으로 '오너 리스크' 고리 끊어야

중앙 [사설] 준법경영으로 '오너 리스크' 고리 끊어야


   대기업 총수의 범죄에 대한 법적 잣대가 엄격해지고 있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 회장이란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아서도, 과도한 처벌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제 서울고법 형사5부는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등)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로 기소된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 “재벌 회장에 대한 정찰제 판결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은 2012년 8월 김 회장 법정구속 이후 이어져 온 ‘재벌 엄벌주의’ 흐름에 변화 조짐을 보인 것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간 법원이 대기업 총수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고 양형(量刑·형량 결정)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기업 수사에 배임죄가 활용됨으로써 ‘모든 기업인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 점에서 서울고법 재판부가 “개인 치부를 위해 회사 자산을 활용한 전형적인 사안과 거리가 있다”거나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참작했다”고 밝힌 것은 재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은 사안별로 유·무죄를 판단하고 개개인의 형사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곳이다. 기업인이 주식회사를 자기 소유로 착각하고 회사 돈을 개인적 용도에 쓴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서울고법 재판부가 김 회장 판결문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법질서와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투명하고 정상적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집행유예 판결이 ‘재벌 봐주기’의 시발점이 되거나 그렇게 오해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제 준법경영 시스템 구축은 기업 경영의 기본이다. 준법경영이 확고히 자리 잡지 않는 한 ‘오너 리스크’란 이름의 한국적 퇴행현상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한겨레 [사설] 원격의료 비용으로 병원 짓고 의사 배치해야

한겨레 [사설] 원격의료 비용으로 병원 짓고 의사 배치해야


정부가 의사-환자 사이의 원격의료를 추진하면서 든 두 가지 좋은 점이 치료효과와 경제성이었다. 그런데 <한겨레>가 11일치에 보도한 ‘2013년 원격의료(스마트케어) 보고서’를 보면, 그 근거가 와르르 무너진다. 이 보고서는 원격의료를 밀어붙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주한 것이니, 실제 원격의료의 문제점은 더 많을 수 있다.
우선 치료효과 면에서 보면, 모두 26개 항목의 평가지표에서 22개가 ‘의미 없음’으로 평가된 반면 ‘의미 있음’은 4개 항목에 그쳤다고 한다. 원격진료를 한다고 해서 고혈압, 당뇨 환자가 더 잘 관리된다거나 사망률이 줄어든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새로운 치료 약이나 기술이 나왔다고 해서 무턱대고 써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게다가 원격의료는 부작용이 크다. 위험스러운 합병증을 놓치거나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질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원격의료 사업의 경제성도 2배 이상 부풀려졌다고 한다. 산업부는 원격진료 상담사 1명이 하루 30명의 환자를 상담하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봤지만, 산업부의 의뢰를 받은 보건산업진흥원은 67명을 상담해야 손익분기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원격의료를 하려면 병원이 장비를 갖춰야 하고, 환자들도 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 병원은 투자를 한 만큼 환자에게 이용료를 물리려 들 것이다. 아니면 건강보험이 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돈을 버는 건 정보통신 분야의 기업일 테고, 허리가 휘는 건 국민들이다.
정부가 연구결과를 비틀고 부풀리면서까지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것은 아마도 ‘창조경제’ 때문일 것이다. 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원격의료를 창조경제라고 부르며 꼭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냉정한 전문가들은 수익모델이 불확실하고 기술 발전 속도가 더디며 정보 및 기술의 호환성 문제가 걸려 있어 산업 발전 전망 자체가 불투명하다고 보고 있다. 설사 돈벌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건 창조경제가 아니라 파괴경제일 뿐이다.
정부는 스스로 발주한 연구보고서까지 왜곡한 게 드러난 만큼 국민에게 사과하고 원격의료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대신 원격의료를 운영할 돈으로 병원이 없는 도서·산간지역에 우선 병원부터 짓고 의사를 배치해야 한다. 원격의료 기기로 산모의 출산을 도울 수는 없지 않은가.

한겨레 [사설] 남북 대화, 탐색전 넘어서 구체적 결실을

한겨레 [사설] 남북 대화, 탐색전 넘어서 구체적 결실을


남북이 12일 판문점 남쪽 지역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 접촉을 가졌다. 차관급인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원동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수석대표다.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정권의 출범 이후 이뤄진 접촉 가운데 최고위급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번 접촉은 남북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상대의 반응을 알아보는 탐색전의 성격을 갖는다. 사전에 의제를 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살펴보면 양쪽이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는 거의 드러나 있다. 남쪽은 이산가족 상봉의 원활한 진행과 상봉 정례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및 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사업에 대한 협력, 핵 문제에 대한 북쪽의 진정성 있는 태도 등을 강조해왔다. 반면 북쪽은 24일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어렵게 이뤄진 만남인 만큼 정상회담 등 더 높은 차원의 대화에 대해서도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의견교환 정도는 했을 법하다.
남북이 차관급 이상 고위급 접촉을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12월 장관급 회담 이후 무려 6년 2개월 만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비슷한 만남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은 남북 관계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현 정부 출범 뒤에도 남북 관계는 파란을 겪었다. 지난해 봄 내내 북쪽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한-미 군사훈련, 개성공단 폐쇄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6월에는 수석대표의 급 문제로 각료급 회담이 개최 직전 무산되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지금의 남북 관계 역시 불안한 상태다. 오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예정돼 있지만,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의 중단을 요구하면서 이를 남북 관계와 연계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남북의 평화공존을 전제로 하는 한 북한과 관련된 어떤 정책이건 실효성이 있으려면 남북 관계 진전이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경제공동체 형성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정부는 이제까지 북쪽의 ‘비정상적 행태’에 대한 비판을 앞세웠을 뿐 남북 관계를 푸는 데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북쪽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만으로는 어떤 사안도 진전시키기가 쉽지 않다.
남북이 한 차례의 만남으로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우선 원활한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적 긴장을 낮추기 위한 노력,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곧 의제를 좀더 진전시켜 논의를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조선 [사설] 재벌 총수들, 회사 돈에 손대는 순간 '犯罪' 인식 가져야

조선 [사설] 재벌 총수들, 회사 돈에 손대는 순간 '犯罪' 인식 가져야


서울고등법원은 11일 한화그룹 김승연(62)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김 회장이 부실 계열사의 빚을 갚기 위해 우량 계열사 돈을 지원해 우량 회사에 1585억원 손실을 끼쳤다며 김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벌금 50억원과 300시간 사회봉사명령도 함께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4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김 회장은 작년 2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減刑)됐다. 대법원이 2심에서 인정된 배임 액수 1797억원 가운데 일부가 잘못 계산됐다는 취지로 파기함에 따라 다시 네 번째 재판이 진행됐다.

김 회장에 대한 재판은 재벌 그룹이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열사끼리 자금을 불법적으로 이동(移動)한 것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김 회장 측은 "김 회장 개인이 횡령한 것도 없고, 실제로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것도 없으므로 배임(背任)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회장의 행위는 과거의 잘못된 뿌리 깊은 관행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우량 계열사의 자금을 가져다 다른 곳에 지원한 행위는 그 회사에 손실을 입힌 범죄"라고 했다. 부실 계열사 회생을 위해 자금을 지원해 나중에 돌려받았더라도 법률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법률이 상거래의 주체로 인정한 법인(法人)이다. 회사가 번 돈은 법인 돈이지 오너 대주주나 경영진 개인 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인들은 회사 돈과 대주주 개인 돈을 구별하지 않고 손을 대고, 회사 돈을 마치 호주머니 돈처럼 이곳저곳으로 옮기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기업인들은 1·2심과 대법원에 이어 파기환송심 재판부까지 네 번 연속 김 회장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뜻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든 도움이 되든 상관없이 이사회 결의도 없이 법인 돈을 빼내는 순간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자각(自覺)해야 한다.

서울고법은 이날 기업어음(CP)을 사기 발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이 선고된 구자원(79) LIG 회장에게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벌 오너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2012년 1월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 이후 2년 만이다. 줄줄이 법정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재벌 총수들이 이번 판결의 의미를 잘못 받아들이지 않을지 걱정이다.

경향 [사설]교과서적 당위론에 머문 안철수의 새정치

경향 [사설]교과서적 당위론에 머문 안철수의 새정치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가 어제 소위 ‘새정치’의 기본구상을 밝혔다. 정의로운 사회, 사회적 통합, 한반도 평화를 새정치의 3대 가치로 천명했다. 다음달 창당을 앞둔 안 의원이 새정치의 밑그림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다. 새정치의 첫번째 가치인 ‘정의로운 사회’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지역·성별 등의 차별이 없는 사회, 민주적 공공성이 회복된 사회로 정의했다. ‘사회적 통합’의 방안으론 지역·이념·세대·계층의 갈등구조 해결을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 로드맵으로는 여야 합의가 가능한 대북정책을 마련하고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제안했다. 이념적 지향이나 노선을 가늠키 힘든, 아름다운 수사로 치장된 교과서적 당위론을 펼친 모양새다. 특히 민생문제를 탈이념적으로 접근하는 ‘삶의 정치’, 사회경제적 비전으로 ‘삶의 경제’를 내걸었다. 안철수신당이 탈이념 실용주의 정당을 지향할 것임을 내보인 것이다. 여하튼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운위되기도 한 ‘안철수 새정치’의 틀을 내놨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날 제시된 새정치 구상으로는 여전히 안철수신당의 정체성이 뭔지를 알 수가 없다. 안철수신당이 무엇을 위한 정당이고, 어떤 정책을 추구하는지가 잡히지 않는다. 정의·통합·평화 등의 상식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울 뿐, 구체적 실행 계획이나 이념적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 재건, 공교육 내실화, 경제민주화와 참여경제 실현, 성장친화형 복지 실천 등의 사회경제적 비전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것과 차별되는 게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책 중에서 좋은 것만 뽑아 집약한 꼴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이면 누구나 낼 수 있는 정책”이다. 노선과 정책에서 차별점이 없다면, 기존 정당 말고 굳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이념을 초월하는 실용주의가 정체성이 되는 정당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실용’은 결국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과 정치혐오의 반사이익에 기대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는 포장에 그치기 십상이다. 낡은 정치의 타파만을 외치는 것으론 안된다. 낡은 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비전과 정책 대안을 벼리는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것을 대변하고 추진할 걸맞은 인물과 세력은 필수일 터이다. 그렇게 해서 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아니고 ‘안철수신당’인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과거 제3당들처럼 ‘거품 정당’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앙 [사설] 특진비, 상급병실료 잘 줄였다 … 쏠림 막을 대책 필요

중앙 [사설] 특진비, 상급병실료 잘 줄였다 … 쏠림 막을 대책 필요


  보건복지부가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선택진료비(특진비)와 상급병실료(1~5인실)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공개했다. 현재 대형병원 의사 10명 중 8명 꼴인 선택진료 의사를 2017년까지 3분의 1로 줄이고, 4, 5인실에 건보를 적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특진비·상급병실료는 환자 부담의 18%를 차지해 원성이 자자하다. 큰 병원에 가면 원하지 않는데도 특진의사 진료를 받거나 비싼 1, 2인 병실에 들어가야 한다. 정부 계획대로 가면 2017년이면 환자 부담이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정부가 수십 년 된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 대폭 손질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료계의 반발 등을 우려해 미뤄 오다 이번에 과감하게 손을 댄 것이다. 두 제도는 그동안 일종의 저수가 보전책이었다. 이를 없애면 병원 경영에 어려움이 따른다. 정부가 고도의 전문적 수술이나 처치, 환자 감염관리 등의 수가를 올려 수입을 보전하기로 한 것도 맞는 방향이다. 병원들도 편법으로 수입을 벌충하느니 정당하게 경영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향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2017년까지 공공병원이나 중소병원의 간병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간병을 간호서비스에 흡수하겠다는 것도 바람직하다. 사실 특진이나 선택진료보다 간병부담이 환자들에게 더 고통스럽다. 간호인력 공급 방안 마련에 박차를 가해 일반병원 적용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특진·상급병실·간병 등 3대 비급여 부담을 낮추면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심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쏠림은 의료 왜곡의 주범이다. 정부가 지난 15년 동안 이를 방치해 오다 이번 대책으로 더 심해지게 됐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번에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 사전협의제, 상급병원 환자의 중소병원 회송의무화 등의 대책을 내놨다. 이런 대책이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이번에 밑그림 정도밖에 내놓지 않아 매우 아쉽다. 병이 깊어진 후 고치려면 더 돈이 들고 힘든 법이다. 지금이라도 쏠림 대책 마련의 속도를 높여라. 

한겨레 [사설] 새정치 경쟁,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새정치 경쟁,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신당 창당 추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가 11일 국민과의 대화 행사를 열어 새정치의 3대 가치로 정의로운 사회, 사회적 통합, 한반도 평화를 내세웠다. 새정추는 특권의 커넥션 차단,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 여야 합의 가능한 대북정책 등을 실천 방안으로 내놨다. 안 의원은 “새정치는 더불어 잘 사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며 “이를 통해 일자리, 교육, 복지의 삼각 축이 버팀목이 돼주는 따뜻한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추가 제시한 내용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린다. 또 통합, 포용, 합의, 공동체 등을 내세움으로써 중도 색채를 강조한 듯하다. 창당을 앞두고 새정치의 밑그림을 그려나간다는 차원에선 눈여겨볼 만하다.
그동안 안철수 신당을 두고는 새정치의 실체가 모호하다느니, 야권분열만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등 우려 섞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추세가 좀 꺾였다고 해도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과 지지도 면에서 앞서거나 어금버금한 것을 보면 그렇게만 보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여전히 안철수 신당 출현을 계기로 정치가 변하기를 희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새정치, 즉 정치개혁의 주도권을 놓고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인 셈이다.
민주당에서는 11일 진보적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 ‘더 좋은 미래’라는 당 혁신모임을 만들어 계파주의를 해소하고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3선 의원 중심의 별도 혁신모임도 곧 만든다고 한다. 앞서 김한길 대표는 국회의원 기득권 내려놓기 방안을 발표하는 등 일련의 정치개혁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안철수 신당으로 인해 흔들리는 당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한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선 야권의 두 정치세력이 제대로 경쟁해주길 바랄 뿐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출혈 경쟁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쇄신을 위한 선의의 덧셈 경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새정치, 즉 정치개혁이 말로는 쉽지만 구체적으로 성과를 내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안철수 신당은 창당을 앞둔 시점에서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새정치에 대한 체감지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를 내놓더라도 구체적이고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 창당 과정 자체가 새정치의 기준에 합당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실정치로 진입하는 데 따른 어려움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에게 의지함으로써 난관을 돌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4년 2월 10일 월요일

조선 [사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보는 시선

조선 [사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보는 시선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황식 전 총리의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競選)이 6·4 지방선거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아직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경선 참여 뜻은 굳힌 듯하다. 김 전 총리는 9일 본지 인터뷰에서 "기존 풍토와 다른 방향으로 사회 틀을 바꾸고 싶다"며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 전 대표도 이날 지역구민들과 함께 산에 오르면서 "이 산행이 시장 출마 양해를 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이번 경선에는이혜훈 전 의원도 참여한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서울시장 선거를 치렀지만 여야를 통틀어 총리와 여당 당대표를 지낸 중량급 인사가 당 후보를 놓고 제대로 경선을 치른 전례가 없다. 두 사람이 승리 가능성이 불투명한 경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리 정치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사건(事件)'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 만큼 국민은 두 거물 정치인이 경선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지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여당의 후보 경선은 아름답게 치러지고 끝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이명박·박근혜 진영이 맞붙은 대선 후보 경선은 공천권을 무기 삼아 지역구 위원장들 줄세우기, 야당보다도 더한 상대방 흠집 내기, 돈 선거 논란처럼 '부작용 백화점'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2008년, 2010년, 2011년 각각 치러진 여당 당대표 경선은 모두 '돈 봉투' 의혹으로 얼룩져 관련자들이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 경선에서 맞붙었던 두 사람은 지금도 원수가 돼 으르렁거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벌써부터 정 전 대표와 김 전 총리 간의 경선이 투표까지 갈 수나 있겠느냐, 후유증이 어느 정도 될 것이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 두 사람은 지금 여론 지지도에서 막상막하이고 당내 지지세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다. 여당 안에선 이미 심상찮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주류는 김 전 총리, 비주류는 정 전 대표를 중심으로 각각 뭉쳐 계파 다툼 양상으로 번질 기미가 있다고 한다. 경선 과열(過熱)을 예고하는 징후다.

정 전 대표와 김 전 총리는 우리 정치판의 이런 경선 악습을 끊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국회 최다선인 7선으로 각종 경선을 경험했고, 또 한 사람은 여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도 총리직을 무난하게 수행했다. 두 사람이 자신의 이름과 정치적 무게에 부끄럽지 않은 제대로 된 경선을 치러낸다면 승패(勝敗)와 관계없이 그 자체가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향 [사설]여당 사무총장 박물관의 아프리카 노동자 착취

경향 [사설]여당 사무총장 박물관의 아프리카 노동자 착취

시급 3000원에도 못 미치는 월 60여만원의 임금을 받았다. 비행기 삯을 빌미로 매월 10여만원을 공제해 실제 손에 쥐는 수령액은 50여만원에 머물렀다. 2013년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마음대로 못 떠나게 여권까지 압수했고, 해괴한 명목으로 임금을 체불해 노동자들이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다. 근로계약에 없는 일을 수시로 강요했고, 산업재해보험도 들지 않았다. 이들이 묵는 기숙사는 곰팡이 가득한 벽에 쥐구멍들이 뚫려 있고, 제대로 난방도 되지 않았다. 한두 명이 몸을 누일 정도인 작은 방에 4명이 자는 건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자리가 부족해 남자들은 아예 건물 밖 현관 앞에 돗자리로 간신히 외풍을 막아 방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지급된 하루 식비는 4000원이다. 노컷뉴스의 르포에 따르면 “유통기한이 지난 쌀포대, 3분 인스턴트 요리, 라면봉지만 뒹굴 뿐 야채나 과일 등 변변한 음식은 찾기 어려웠다”.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연상시킨다는 진단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곳은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며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사른 유신독재 시절 청계천 봉제공장이 아니다. 아프리카 어느 후진국의 노동 실상이 아니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경기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이 채용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2년 가까이 겪어온 것이다. 짐바브웨에서 온 조각가 4명과 부르키나파소 출신 무용수·연주자 8명 등 12명이 2012년부터 2년 가까이 노동착취를 당한 사실이 폭로됐다. 이들을 옭아맨 근로계약서에는 놀랍게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의 도장이 찍혀 있다.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은 홍 사무총장이 2010년 매입해 현재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조차 유린한 ‘노예 노동’이 한국 사회에서 태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더욱이 집권여당의 사무총장이 운영하는 곳에서 벌어졌다니 충격적이다. 그래놓고 소위 ‘국격’을 운위하며, 법치와 노동자 인권을 입에 올릴 텐가. 당장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위반이 명백하다. 관련 당국은 엄정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홍 사무총장은 당직에서 사퇴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노동관계법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게 행복한 삶을 꿈꾸며 한국을 찾아온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꺾인 희망’을 조금이라도 위무하는 길이 될 터이다.

중앙일보 [사설] 국가기밀과 국민 알 권리 둘 다 중요하다

중앙일보 [사설] 국가기밀과 국민 알 권리 둘 다 중요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생산한 정보에 대해 국민, 특히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접근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 안전보장과 직결된 기밀이 여과 없이 나가서도 안 된다. 국가정보 관리의 관건은 이처럼 상충된 가치들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그 점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국회 정보위원회 보안 강화에 합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국정원 개혁특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김재원, 민주당 문병호 의원은 지난 7일 정보위원 정원을 12명에서 10명 이하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또 정보위 회의실에 도·감청 방지 장비 등을 설치하고 정보위 주변을 보안구역으로 설정해 출입을 통제하기로 했다. 회의 결과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정보위원장으로 일원화하고 기밀을 누설한 국회의원·보좌진에 대한 처벌도 강화할 방침이다.

 앞서 제시한 대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보기관 등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국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제공된 정보가 의원들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함부로 유출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비밀 준수를 전제로 제공됐던 국정원 정보가 외부로 새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정원 기밀 정보가 정략적으로 이용될 경우 상상하기 힘든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주요 선진국은 엄격한 통제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익을 위한 목적에 한해서만 의원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절차 등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의회의 정보위도 회의 내용 발설 등이 금지돼 있다.

 ‘정보가 곧 안보’란 인식을 확고히 하고 보안 시스템을 강화할 때다. 아울러 기밀보호제도를 남용해 국회의 견제나 국민의 알 권리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없게끔 정보 관리 기준과 절차, 방식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가 국가 기밀이고 어디까지가 단순 정보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국정원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두 가치를 만족시킬 절충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사설] 이석기 사건에 ‘김대중 내란음모’ 들이댄 황당 검찰

한겨레 [사설] 이석기 사건에 ‘김대중 내란음모’ 들이댄 황당 검찰


검찰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재판과 관련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사건 판결을 유죄의 근거로 법원에 냈다고 한다. 1980년에 대법원이 ‘학원의 폭력시위를 조장하고 전국민적 봉기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해 내란음모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봤고, 2004년 재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하긴 했으나 구성요건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동원했다. 한마디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검찰이 주장한 것은 법률적으로 황당하다. 1980년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2004년 재심 판결의 취지를 왜곡·비약하고 있음은 어처구니가 없다. 재심 판결문 어디에도 당시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표현은 없다.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며 내란음모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재심 재판부 역시 구성요건 해당성은 인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며 편리한 대로 갖다 붙였다. 그러나 정당한 행위라는 표현만으로 구성요건 해당성은 인정했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자 엄밀한 적용과 해석을 기본으로 하는 형사법의 대원칙에도 반하는 무리한 주장이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갖는 의미에 대한 검찰의 몰지각함과 몰역사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고문조작 사건을 저질렀고, 민주화 이후 재심 법정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쿠데타 세력이 공안 검찰과 어용 사법부를 동원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 과정을 통해 정치적·법적 판단이 이미 끝난 사안이다. 검찰이 아무리 이석기 사건 유죄가 급했기로서니 이 사건을 들이댄 것은 국민적 합의와 상식을 뒤엎는 망동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차례 군사정권에 부역한 떳떳지 못한 과거에 대해 공식적·공개적으로 반성과 사과를 했고, 재심 판결문에도 그런 취지를 담아왔다. 그러나 검찰은 군사정권 시절의 숱한 고문조작, 용공조작 사건에 대해 한번도 공식적으로 반성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심지어 민청학련 사건 재심 재판 과정에선 “가혹행위가 사법경찰, 검찰 단계에서 이뤄졌지 공판 과정에서 있었던 건 아니다”라는 망발까지 일삼았다. 검찰이 80년 김대중 사건을 들고나온 것 역시 이런 내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수원지검뿐 아니라 검찰 조직 전체가 이번 기회에 선배들의 치욕의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