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복음 -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
젊을 때 어떤 것을 지향하느냐. 그것은 그 사람의 평생, 인생 전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캠퍼스 선교단체 모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캠퍼스에서 복음전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끌고 갈 수 있는 주인공인가 아니면 말아먹을 주인공인가.
한국교회는 오늘날 거센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 비판과 비난, 모두 정당하다. 그런 비판과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한국교회는 미래가 없어 보인다. 한국교회는 한 300만, 400만으로 줄어들어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숫자가 줄어드는 숫자는 엄청나다.
40이 됐을 때,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도 많을 수도 있다. 세계교회 역사에 유래가 없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숫자가 이렇게 크게 늘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또다른 기록은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쇠퇴하는 역사는 없었다.
무거운 마음이 있다. 우리 세대가 쇠퇴하고 있는 형편무인지경으로 무너지고 있는 한국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기독교인인 것을 박수쳐주는 사람이 있었나. 세상에서는 교회다니는 것을 숨기고 위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사회에서 지식인들에게는 교회 근처를 맴도니?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비난을 받고 있다. 보수기독교는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집단으로 여겨진 것이 오래됐다.
한국사회에서 목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선호도가 있지 않다. 동종업종에서 꼴찌했다. 목사는 신뢰도 하위부분에 있더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뭐가 다르냐. 교회만 다닐 뿐이야. 권력집단이 돼서 기득권을 옹호하는 세력이 돼버렸다. 기득권층일 대변하는 사람들이 돼버렸다.
하나님 도대체 어떤 분이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사랑은 뭐야?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을 갖지도 않고, 사랑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답답하다. 세상을 살면서 목사인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하고 있다. 관계가 맺어진 후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이다.
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한국교회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데 여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 전체 정황을 모르고, 바깥쪽은 계속 무너지고 있는데, 한국교회 전체가 우리교회다. 무너지고 있다.
한국교회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가. 80년대에도 한국교회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점점 더 비판적으로 되겠구나. 사랑하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왜 그런가. 예수님과 사도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따라갈만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나도 그렇게 될 것인가. 이 기간동안 끊임없이 이 문제가 질문이었다. 성경에는 놀라운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가. 성경을 보면 분명히 놀라운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우리가 보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가. 왜 유명한 목사님들은 계속 사고를 치는가. 이미 잠재돼있고 구조적인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 이와 함께 한국교회는 더 빠른 속도로 쇠퇴할 것이다.
어느날, 어떤 일본사람에 대한 글을 읽다가 정말 놀랐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과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오노다 히로. 마지막 황군. 생존한 두 명의 동료와 정글로 들어감. 지방순찰대와 교전 중 동료 두 명 사망. 홀로 생존한 오노다는 매일 전투 일지를 적음. 직속상관 명령 없이는 투항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옛 상관 타나구치 소령의 설득 끝에 투항했다.
오노다 히로(1922년생) 22세에 첩보장교로 필리핀 참전. 52세의 나이로 귀국. 시퍼렇게 날 선 군도와 깨끗하게 손질된 99식 소총, 600발의 탄환과 6발의 수류탄을 소지. 지난주에 사망.
대단히 훌륭하다? 존경스럽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일본이 망했는데도, 이 사람은 전쟁을 끝까지 했다. 일본 제국에 이렇게 충성된 황군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일본이 귀국했을 때 이 사람을 대영웅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똘아이’. 못말리는 사람. 세상이 바뀌었는데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기존에 체제에 충성된 사람. 이 사람만큼 치열한 사람은 없어. 필리핀군 30명을 죽였고 100여명을 죽였다. 대단한 사람. 이 사람의 헌신과 치열함. 시대착오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바보다. 자기인생 전부를 버린 사람이다. 이 사람은 람보와 비교도 안 된다. 39년 동안 싸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일본으로 돌아와서 일본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남미에 이민가서 정글에서 살아남기 캠프를 연다. 정글에서 서바이벌 캠프를 해서 젊은이들 정신교육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일본으로 돌아와서 죽었어. 이 사람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열심이다.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해. 한국의 기독교인들 40일 특별새벽기도, 십일조. 십일조를 이해하지 못해. 1년 한 달 월급보다 많은 돈을 교회에 바치고 있어. 이 정도의 열심히면 대단한 것 아닌가. 교회 안 다니면 결혼 안하겠다고들 하는데. 이 정도의 정신력과 헌신도를 가지고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 아닌가. 우리도 그렇게 믿고 살고 있어. 그런데 오노다 히로에게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도 박수 치는 사람 없다. 우리도 매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뭘 놓친 것인가. 왜 이렇게 됐는가.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놓쳤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기도한다. 왜 예수를 잃어버렸다는 것인가. 그 이유는?
불교의 중심사상은 윤회, 해탈 / 4성제. 예수님의 중심사상은? 가장 많은 대답은? 사랑, 섬김. 선교, 제자도, 구원, 거듭남. 이런 것들. 이 것들은 예수님의 중심사상이 아니다. 예수님의 중심사상은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막시즘의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계급갈등, 변증법적 유물론, 노동의 소외이다.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예수의 중심사상에 하나님 나라는 확실하다. 하지만 이를 모르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가 선명하지 않다면, 중심사상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의 제자인가. 한국에서 이 것이 가능해져버렸다. 정말 믿지도 않고 공부하지도 않는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다.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를 듣지 못해. 우리가 가지고 싶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지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지 못해. 만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가 예수의 제자라고 스스로 말하기는 굉장히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마가복음 1장 15절.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고 나서 첫 번째 ‘가르침.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하셨다. 마가복음 1장 15절은 마가복음 전체의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을 요약한 것이다. 마가복음 1장 15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보다 더 중요하다. 마가복음을 보고 마태와 누가가 자기의 복음서를 쓴다.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다. 그러니까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읽었다. 한 세대가 지난 후 사도요한이 조금 더 다른 내용들, 기록된 내용에 신학적 사색을 넣어서 쓴 것이 요한복음이다. 마가복음은 가장 원시적 복음을 담고 있는 문서다. 마가복음 1장 15절이 마가복음 전체를 요약하고 있는 구절이라면 굉장히 중요한 구절이지. ‘청년의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헷갈리는 이유가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라고 번역했다. kingdom of God. 마태복음은 kingdom of heaven이라고 쓰여져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해 쓰인 성경. 하나님 나라와 천국은 같은 단어다. 천국이 마태복음에 나와. 천국이라고 하면, 천당이 떠올라. 죽으면 가는 곳이라는 개념이 있다. 천국과 천당이 같은 개념인 줄 알아. 새번역은 이번에 천국을 하늘나라라고 번역했다. 천국은 하늘나라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할까.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으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다. 그러면 이 하나님 나라를 예수께서 갑자기 말씀하신 것일까. 새로운 개념이었나?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는 예수께서 가장 처음 쓰셨다고 생각. 그 이후부터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가 문헌에 나타난다. 구약에는 거의 나오지 않아. 예수님이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구약을 보게 되면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개념이 나온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셔서 왕이고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도,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다른 이방민족에게도 왕이시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다. 다스림의 주권에 우리를 동참시키셨다. 하나님이 놀라운 주권을 주셨는데, 사람들이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신이 되고 싶어한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갖고 싶어한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 이 사건은 오늘날 일어났으면, 존속살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특별가중처벌된다. 반인륜적 범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후 반인륜적 범죄가 나타났다. 인간 속에 있는 인간의 잔인성이 드러난 것. 자기가 남보다 더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실제로 가인과 아벨 이후로 지금까지 잔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사회다. 남을 짓밟고 일어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루저가 된다.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파레토의 법칙. 20:80. 1:99으로. 자본주의가 가져온 무서운 결과. 이 것은 가인과 아벨부터 시작된 역사다. 친구들 왕따할 때, 사회적인 일종의 살인을 당하는 것인데, 사회적인 살인을 당하는 친구들. 당하는 사람은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구약성경은 인간의 잔인함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구약성경이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느꼈나? 성경에서 피비린내가 난다. 범죄, 강간, 살인, 살육 이런 이야기가 구약성경에 가득차 있다. 이 것이 무슨 성스러운 경전인가. 인간이 이렇게 악한가. 구약성경에 끔찍한 일들이 가득찬 이유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잔인해질 수 밖에 없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누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과 슬픔이 가득차있다. 여기가 낙원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세상은 끔찍한 곳이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반민주적인 상황 때문에 어려워했다. 당시에 청년들은 꿈을 꾸고 이상을 추구했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은 젊은 시절에 꿈도 꾸지 못한다.
성경은 고통을 다루고 있다. 악을 다루고 있다. 악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 교회에서 마치 예수를 믿으면 고난을 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악을 만들어내는 인간, 인간의 자기중심성.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 구조적, 제도적 차원의 악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이 그런 책이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를 그대로 두지 못하셔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되겠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이 흘러나가게 하겠다. 깨지고 상한 세상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놓친 것이다. 구약의 앞부분에도 그런 복선들이 깔리는데, 뒷부분에는 그 날이 오면, 주님의 날이 임하면, 마지막 때, 메시아가 오셔서, 이 세상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소망이 선지서 후반으로 갈 때 나온다. 구약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주님의 날이 임하면 메시아가 오셔서 이 땅을 회복할 것이다. 이 불의한 세상, 패역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고 깨어지고 망가진 피조세상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 날이 메시아가 오실 때 온다.
역사가 흘러가는데 주님께서 오셔.
이 때가 the day of the lord.
이 세대(this age)-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실 수 없어. 이 때에는 약한 자가 고난을 보고 힘이 없는 자가 피해를 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을 회복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면 age to come(오는 세대)-하나님의 다스림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때.
말라기 이후에 300년 동안 예언도 없어. 그러다가 마태복음 1장 1절이 시작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라. 세계라.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보다 더 중요함. 그리스도의 아랍어, 헬라어는 메시아다. 같은 단어다. 예수 메시아의 족보라.
예수 메시아의 족보가 이렇게 된 것이다. 왜 우리는 그를 그토록 기다렸나. 악의 한 부분이 돼서 우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희생자도 되는 우리 인생을 향해서 주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때가 찼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 시간을 이야기한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이 특별히 의미를 지정한 때다. 때가 찼다. 그 때가 찼다. 시간이 흘러서 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 때가 임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의 역사를 방치할 수 없을만큼, 진흙탕 그 이하로 내려가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 때가 임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그 날이 왔다는 것이다.
우리도 인생을 흘러가는대로 살고 있다. 흘러가는 인생을 살다가 카이로스적인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것을 결정하고 결단하는 시간을 카이로스적 타임이라고 한다. 오늘 예배가 수많은 예배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우리를 방문하시고 강력하게 뭔가를 말씀하시는 그 날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갸룟유다가 배반하고 올 때, 나를 배반할 사람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다. 가까이 온 것은 중의적으로 쓰셨다고 본다. 이미 임했다는 것과 아주 가까이 왔다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누가복음에 가버나움 회당에 가신 예수님이 이사야를 읽으시면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임했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실망했었다. 눈먼 자는 눈을 뜨고 저는 자는 걷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귀신을 내어쫓으실 때 내가 성령을 힘입어서 귀신을 내쫓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우리 마음에 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새끼. 심한 욕이다. 예수님은 굉장히 거친 분이다. 욕을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는데, 하나님 나라가 너희 마음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가 완벽하게 나타나는 분이다. 빛이 어둠 가운데 들어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세상이 임하니까 그냥 회복되는 것이었다. 이미 앞으로 올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지만 이미 임했다는 말씀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고 있다고 하고 좋아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악한 세상 속에 살면서 악의 일부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다. ‘드디어 중간고사가 왔다?’ 심판의 날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쏟아진다는 것이다. 불의를 제거하고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다, 이미 임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도망쳐야 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데, 불의와 죄를 용서할 수 없으시다. 심판이 쏟아져내린다. 하나님 없이 생각하고 무시하고 있는 삶들은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다.
죄인, 하나님을 내가 종이호랑이 취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님을 가지고 놀고 있어. 무서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가지고 놀고 있구나. 내가 죄인이구나.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거기 서서 어서 오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 것이 죄의 본질이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에서 제거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죄다.
속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 속을 보신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전부 도망가야 한다. 그런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하신다. 회개는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내멋대로 살던 삶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바라봐라. 그 때 예수가 계신다. 왜 예수가 복음인가. 쏟아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신이 받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다. 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우리가 받아야 하는데 그가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다. 예수의 소식이 복음이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내 멋대로 살던 사람들이 자기가 주인노릇하고 살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데 그 심판을 예수께서 홀로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다. 역사 속에 들어왔다. 인간의 역사 속에 침투해 들어와 있다. 우리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감히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이 크리스찬이다. 크리스티아노스는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에 속한 자다. 메시아로 바꾸면 메시아의 것, 메시아 족속을 이야기한다. 깨지고 망가진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침투해 들어온 사람이 바로 메시아 족속이다. 예수께서 오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나님 다스림을 드러내고 악에 굴복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제사장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방식으로 삶을 산다. 새로운 나라가 시작됐는데, 바보들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헌신하는 것이 희생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세상이다. 하나님 없이 된 모든 것들을 심판하신다. 세상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한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 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나도 한 부분이 돼서 헌신한다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본 사람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한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미 망할 세상, 이미 망한 세상에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은 바보들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것을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초대교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었다. 성령은 우리를 겁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말씀하신다. 우리의 인격과 관계없이 우리를 뒤집어놓지 않으신다. 그런데 왜 사도들이 뒤집어졌을까. 고난을 당하는 메시아는 제자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다 도망쳤다. 그리고나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이 것을 보고 제자들이 뒤집어졌다. 세상의 방식을 좇지 않고, 사랑의 사도가 돼서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 팔고, 새로운 윤리,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초대 사도들은 십자가의 증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십자가만 있으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들은 자신들을 십자가의 증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부활의 증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시대의 방식을 가지고 살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 다닌다고,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 자격 없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내가, 하나님 나라에 예수께서 다스리셔서.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같은 자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기뻐한다. 다시 세상을 좇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때 재헌신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한다. 자격 없는 내가 예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그가 나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하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한다. 주님은 나를 가장 멋진 인생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 변하는데요? 그러면 영접 안한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을 믿게 됐는데 어떻게 구시대의 방법을 따라서 살겠나. 정말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니까 세상에서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지키는 것이다. 진리가 나를 붙들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들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투리하는, 변방의, 하층민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변했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범인들이 비범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이 것이 기독교다. 보통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고 인생이 바뀌는 것이 기독교다. 세상에서 손가락질하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인데 주님의 진리로 변화하는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찬이다. 나는 주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양쪽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주님을 의지해서 감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 인생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내 인생을 주관하기 시작하신다. 이 것에 진정성은 하나님이 아신다. 진정한 마음 속의 회심과 돌아섬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사람은 바뀐다. 오늘날 한국교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말,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고 주님의 백성으로 인생을 살아라.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면, 우리 가운데 재헌신해야 한다면 그 나라에 다시 자신을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