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1일 금요일

사설을 읽어야 편집이 보인다.

1. 신문 사설 - 편집 읽기의 열쇠

  어느 신문도 독자들에게 단순한 객관적 보도나 광고 전달 기능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다. 독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현장 사실을 최대한 객관적 시각으로 취재해 기사화하고 이를 1면 머리기사로 다듬어 편집하게 된다. 동시에 그 사실과 관련한 분석이나 해설기사는 3면 종합 해설면의 머리기사로 편집한다. 기사는 기자 자신의 주관은 최대한 절제해 작성하는 것을 미덕으로 하고 있다. 신문이란 그 자체가 공적 매체이므로 취재에서 편집까지 기자 자신의 주관이 무분별하게 드러나는 것은 설득력도 떨어질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엄밀한 의미의 객관보도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도의 객관성을 주장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위선'이라고 통렬히 논박하고 있기도 하다.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그것을 객관 보도라는 형식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논란과 별개로, 기자 자신이 기사를 통해 자신의 설익은 개인적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위해서라도 삼갈 필요가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바탕으로 튼튼한 논리를 전개해 현실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것이 기사 작성과 표제 구성의 원칙이다.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서 써라."

  그런데 기사나 편집과 달리 특정한 사안에 대한 가치판단이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을 오히려 미덕으로 하는 지면이 있다. 사설이 곧 신문사의 시각을 확연히 드러내는 영역이다. 사설은 어느 신문이든 그 지면에서 '특별대우'를 받는다. 종합해설면에 가거나 맨 끝 면에 자리하거나, 아무튼 독자들의 눈길이 많이 가는 곳에 자리한다. 신문의 사설을 주의 깊게 읽고 난 뒤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독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신문들의 사설이 지닌 영향력은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만큼 크다.

  사설이란 말 그대로 신문사의 설, 곧 주장이다. 객관적 형식을 중요시하는 신문 편집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독자적인 것은 또 아니다. 신문이 편집되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가치판단의 기준은 곧 신문의 편집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 방향이 농축된 것이 바로 신문의 사시다. 사시란 어느 신문이든 자신들이 지향하는 목표를 대내외적으로 공포한 것이다.

  조선일보: 1)불편부당 2)산업 발전 3)문화 건설 4) 정의 옹호

  동아일보: 1)민족의 표현 기관으로 자임함 2)민주주의를 지지함 3)문화주의를 제창함

  중앙일보
  1)사회정의에 입각하여 진실을 과감 신속하게 보도하고 당파를 초월한 정론을 환기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밝은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고취한다.
  2)사회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경제후생의 신장을 적극 촉구하고 온갖 불의와 퇴영을 배격함으로써 자유언론의 대경대도를 구축한다.
  3) 사회공기로서의 언론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이성과 관용을 겸비한 건전하고 품위 있는 민족의 목탁이 될 것을 자기한다.

  한국일보: 1)춘추필법의 정신 2)정정당당한 보도 3)불편부당한 자세

  사시로만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들이 진실만을 추구하고 보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실상 사시는 그냥 '모양 갖추기'일 뿐 사시로서 제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사설을 통해 신문사의 편집 방향을 읽는 것은 비단 독자들만의 신문 독법에 그치지 않는다. 기사를 쓰고 표제를 작성하는 일선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잗들 또한 사설 읽기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문사가 특정 사안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사설은 편집 읽기의 열쇠가 된다.



3. 사설 바로 보기

  논실위원들은 신문 편집국과는 별도 조직인 논설위원실 소속이다. 어느 면에서는 그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은연중 기자에게서 지사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이었던 점을 되새겨보면, 논설위원과 그들이 쓴느 사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나 기대가 어떤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창간 이후 오랫동안 사설이 1면에 위치해있었다. 신문이 주장을 그만큼 강조했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의 무게도 컸다. 그러나 사설이 한 신문사의 의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상식이 조금씩 확산되면서, 사설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객관화됐다.

  신문 지면이 대부분 회의를 통한 공동작업이듯이 신문 사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체로 사설의 주제가 회의를 통해 결정되기는 하지만, 주필의 의사가 거의 그대로 관철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논설위원들 개개인의 소신이 그대로 사설에 나가는 것은 차라리 드물다고 보아야 한다. 논설주간이나 주필에 의해 얼마든지 첨삭이 이뤄지고 주필이 요구하는 대로 사설을 쓰지 않았을 때 논조까지 재조정되는 예가 허다하다.

  사설은 신문사의 의견이나 주장이므로 형식적으로도 개개인의 의사를 넘어서있다. 논설위원들의 개인 의견을 털어놓는 지면은 칼럼이다. 신문사의 주장을 써야 하는 사설과 달리 칼럼에서는 얼마든지 개인 주장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논설위원이 쓰는 칼럼의 경우도 주필이나 논설주간이 데스크를 보고 있다. 칼럼은 일반 논설위원들의 집필에도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기자들은 물론 편집국장의 지면 구성에 큰 변수가 된다.

  사설은 속보성을 다투지 않기에 거의 바꾸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만 2002년 12월 19일 16대 대통령선거가 있던 날 아침 조선일보는 밤사이에 사설을 전격 교체했다. 2002년 12월 18일 밤 10시 20분 정몽준이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를 긴급히 사설에 반영한 것이다. 조선일보가 밤사이에 나라의 명운 결정짓는 날 사설을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 사설로 바꿨다. 독자들로부터 이회창 후보를 위해 편파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언제나 불편부당을 내세웠던 신문이 선거날 아침에 아예 내놓고 이 후보에 투표하라면 유권자들을 선동한 것이다.

  사설의 배경에는 신문사의 사익이 원천적으로 가로놓여 있다. 사설은 이미 사설이 아니다. 신문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특정 사기업, 그것도 그 기업을 족벌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특정 개인의 사설로 전락한 것에 다름 아니다.



4. 신문사주와 편집 주체

  신문사는 일반 회사와는 달리 기업으로서의 이윤 추구보다는 전체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공기관이라고 믿고 있다. 주식회사 형태로 되어 있음에도 우리 신문들의 소유 구조는 상당히 독특하다. '사주'에 의해 철저히 전제적인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기자로서 아무런 경험도 없는 언론사주의 입김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사주들에 의한 편집 개입은 점점 노골적으로 잦아지고 있다.

  사주들의 일차적 관심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이윤이다. 신문 편집의 궁극적 주체가 사주들이므로 대부분 우리 신문들의 편집 방향이나 사설 논조가 친자본이고 노동자들에 적대적인 것은 필연이다. 독자들은 여기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사설을 비롯한 모든 신문 지면의 편집 주체가 결국 사주이어도 그것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대답은 부정적이리라고 믿는다.

중앙 [사설]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가 맞는 방향이다

한·미·일 3국이 24~25일 네덜란드 핵 안보정상회의 기간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3국 정상회담 개최는 미·일 간에 공감대가 형성돼 우리 정부에 공이 넘어와 있다고 한다. 정부는 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회담이 성사되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처음 얼굴을 맞대게 된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도 흔한 일이 아니다. 아베 총리가 요청한 한·일 정상회담은 이번 회의 기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베 총리가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박 대통령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3국 정상회담은 바람직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면 답은 명확하다. 회담이 우리 정부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부담은 막중하다. 미국이 주문하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미·일 협력이 한국 때문에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기 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아베는 고노·무라야마 담화 계승을 밝혀 회담 무산의 비난을 피할 퇴로를 마련해 놓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월의 아시아 순방 때 당초 일정에 없던 방한을 하는 점도 고려해봐야 한다. 동맹은 호혜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3국 정상회담이 필요한 상황 변화도 생겼다. 첫째는 북한이다. 북한의 핵 개발에 브레이크를 걸면서 상황 악화 조치를 막는 것은 발등의 불이다. 북한은 지난주 “핵 억제력을 과시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밝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사하지 않았나.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17일 방북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북한 접근에 속도를 내는 진의를 파악하고 필요시 정책을 조율할 수도 있다. 둘째는 유럽에서의 신냉전 기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동북아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입장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러시아의 서진(西進)과 중국의 굴기를 동시에 대하고 있다. 미국은 일정 부분 중·일 화해를 모색할지도 모른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은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인 통일기반 구축이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위한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3국 간 협력 없는 통일대박론은 공허하다. 3국 정상회담을 받느냐 마느냐의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잡는 적극적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점에서 한·미·일 고위급 협의체의 부활은 검토할 만하다. 3국 간 협력이 중국과의 협력을 해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우리 스스로 탈피할 때 새 지평이 열린다. 3국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전후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새 한·일 관계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 거대한 체스판이 움직일 때는 유연해져야 외교적 공간이 커진다. 

중앙 [사설] 책임은 여권에 있지만 풀기는 야당이 풀어라

원자력 방호방재법안은 2012년 세계 핵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핵 평화 공동선언’을 주도했던 한국이 국내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후속 조치다. 2년 전에 처리했어야 할 법안은 정권이 바뀌고 국회가 바뀌면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는 국가의 지속성과 안정성 문제를 진작 환기하지 않은 정부와 집권 세력에 우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3월 18일자 사설). 그러나 국가 운영 집단으로서 야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만큼 민주당이 이 문제를 풀어주길 촉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흘 뒤 있을 네덜란드 핵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국회가 다른 법안들과 연계해 이것(원자력 방호방재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고 있어 유감이다. 국제사회에서 선제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처지에 약속한 것마저 못 지키게 되면 국익에 큰 손상이 될 것”이라며 방호법 처리를 요청했다. 국회는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요청은 정치인이나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내적 요구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나라의 영속성과 국격을 지켜내기 위한 국가원수로서 당부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정권이 아니라 민주당이 집권했더라도 국가원수가 하는 이런 유의 요청은 국회가 수용해줘야 한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위(미방위) 소관인 방송법안을 새누리당이 받아들여 주면 다른 112개 법안도 일괄 처리해 주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이런 주장은 당파적이고 비합리적이다. 방송법안과 방호법안은 정치적 거래의 대상에 올랐다는 것 말고는 어떤 점에서도 연계의 근거가 없다. 더구나 방송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 중에서 유일하게 ‘법안 처리 0’을 기록한 가장 비생산적이고 정파적인 미방위의 소관 사항으로 보편성이 떨어진다.

 국회는 정치권이 운영하지만 국민의 것이다. 민주당이 비상식적인 정치적 합의 운운하면서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자의적인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단독 국회라도 열겠다는 심산인데 그 이전에 황우여 대표나 최경환 원내대표 같은 이의 사과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중앙 [사설] 금융범죄집단의 일원이 된 금융감독원 간부

금융감독원 간부가 거액의 사기대출 사건 범인들로부터 땅과 향응을 받고 조사 상황을 알려줘 주범의 해외도피를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회사의 부정과 부실을 감시·감독하고 불법·부당행위를 조사해야 할 금감원의 간부가 금융회사의 부실을 초래할 것이 뻔한 사기대출이라는 범죄행위에 또다시 연루된 것이다.

 경찰과 금감원에 따르면 문제가 된 금감원 조사팀장은 KT ENS의 1조8000억원대 사기대출 범인들로부터 카지노와 골프 접대를 받은 것은 물론 시가 6억원 상당의 땅 지분을 공짜로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기대출이 적발되자 금감원의 조사상황을 범인들에게 일일이 알려주고, 급기야 주범의 해외도피까지 도왔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정도가 아니라 금융감독기관의 간부가 아예 금융범죄집단의 일원이 된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금감원 직원의 비리와 뇌물수수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거의 매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는 금감원의 전·현직 직원 8명이 고가의 승용차를 받거나 보험계약을 강요하는 등 부정행위에 연루돼 기소됐고, 지난해에는 선임검사역이 8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금감원은 그때마다 재발 방지를 다짐하면서 내부감찰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리와 부정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래서야 금융시장을 지탱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금융감독 업무를 어떻게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이제 금감원 직원의 비리를 개인적인 일탈만으로 볼 수 없게 됐다. 또 내부통제만으로 이 같은 비리를 근절할 수 없음도 확인됐다. 우선 금융감독기구 직원의 비리는 별도의 입법을 해서라도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엄중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차제에 민간기구로 돼 있는 금감원의 조직과 업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이러한 비리를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중앙 [사설] 끝장토론,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어제 청와대에선 규제 개혁 장관회의가 열렸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민간인 60여 명과 관계부처 장관까지 모두 160여 명이 참석해 이른바 ‘끝장토론’도 펼쳤다. 토론 시작부터 기업인들은 자동차 튜닝, 푸드 트럭, 공장 진입로, 인턴 지원자격, 공인인증서 등 각종 규제의 폐해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TV 생중계로 회의를 지켜본 국민이라면 이 나라가 왜 규제왕국으로 불리는지,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규제를 ‘암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로 부르는지 잘 알게 됐을 것이다. 끝장토론이 노린 것 중 하나가 규제 철폐에 대한 국민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었다면 충분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토론은 기업인 질문→장관 답변→대통령 코멘트→장관 재답변→다시 대통령 코멘트 형식으로 이뤄졌다. 토론 중간 수시로 박 대통령이 끼어들어 즉석 민원해결사 역할도 했다. 129 시스템을 거론하며 “국민이 모르면 애쓴 공이 없다”며 홍보를 강조하는 특유의 스타일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관들의 규제 철폐 약속은 국민 앞에 생중계됐다. 과거처럼 대통령 앞에서만 약속하고 돌아서면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되풀이하기엔 뒷목이 켕기게 됐다는 의미다. 이런 TV 생중계 토론을 한 달 또는 분기별에 한 번씩 정례화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그 자체가 규제 개혁의 강력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 해법도 총망라됐다. 정부는 이날 규제를 새로 만들려면 그만한 비용이 들어가는 기존 규제를 폐지하는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미등록 규제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되 안 되면 일몰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2016년 정권 말까지 최소 20%의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규제총량제는 참여정부 때 처음 도입했지만 건수 위주로 운영돼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엔 규제총량제를 비교적 성공리에 운용 중인 영국 모델을 참조해 규제 철폐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과 달리 규제를 건수 위주로 등록하고 있어 비용 위주로 바꾸려면 비용 측정·평가 모델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도만 촘촘히 짜는 것으로 그쳐선 곤란하다. 중앙 정부 부처들의 규제 고삐를 푸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풀뿌리 규제까지 원스톱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규제의 정점은 지방자치단체 일선 공무원이다. 마지막 단계인 지자체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중앙부처 규제를 열심히 풀어봐야 헛일이다. 중앙 부처와 달리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도 잘 먹히지 않는다. 선출직 지자체장들은 대통령보다 지역 주민 민원을 우선시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보이는 규제만 풀어서도 안 된다. 말단으로 갈수록 법적 근거도 없이 내부지침이라며 기업을 옥죄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보이지 않는 규제’까지 낱낱이 뒤져 없애야 한다. 특히 환경·노동·산업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어 한꺼번에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덩어리 규제는 대통령이 직접 챙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끝장 토론이 일회성 행사로 그쳐선 안 된다. 말은 끝장 토론이지만 사실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중앙 [사설] 갑상샘암 세계 1위, 과잉 진단·수술 막아야

19일 의대 교수 등으로 이뤄진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가 공개한 갑상샘암 통계는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2011년 한 해 4만 명 가까운 사람이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인구 10만 명당 81명꼴로 세계 1위의 발생률이다. 세계 평균의 10배가 넘고 의료가 사회화된 영국의 17.5배, 의료가 상업화된 미국과 비교해도 5.5배에 이른다. 뭔가 석연찮은 수치다.

 이에 대해 의사연대는 “환자의 90% 이상이 과잉 초음파 검사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사능 누출사고 등 갑상샘암을 대량으로 일으킬 만한 요인이 없었는데도 이런 것은 병원들이 건강검진 수입을 올리려고 과잉 초음파 검사를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갑상샘암 발생률은 세계 1위인데도 사망률은 84위다. 별로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수술을 남발했다고 의심할 만한 통계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과잉 진단’과 ‘과잉 수술’이 환자에게 불필요한 신체·심리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암 수술은 부작용도 적지 않으며 갑상샘을 제거하면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암 진단 자체로도 환자와 가족들에게 불안감과 부담을 안긴다. 게다가 ‘과잉 의료’는 국민의료비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2012년에는 24만 명의 갑상샘암 환자가 약 2500억원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썼다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의사연대와 달리 외과의사들은 악성인 미분화암이나 임파선 전이가 있을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수술이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충분한 자료와 의학적 근거를 확보해 갑상샘암에 대한 진단·치료 기준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별도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작은 암은 건강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은 환자 복지와 국민의료비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진행해야 할 것이다.

중앙 [사설] 연공보다 성과 임금 체계 피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가 임금 체계 개편 매뉴얼을 내놓았다. 핵심은 세 가지다. 기본급을 중심으로 임금 구성을 단순화하고 근속 기간에 따라 임금 차이가 벌어지는 연공급(年功給·호봉제)을 줄이며 성과급 비중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할수록, 즉 호봉이 높을수록 임금을 올리기보다는 각자의 능력과 업무에 따라 임금을 주자는 내용이다. 외국에서 이미 보편화한 직무·역할급 체계를 도입하자는 취지다.

 임금 구조 개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정년을 의무적으로 60세로 늘리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호봉제를 유지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규 사원을 뽑지 않거나 정년 연장을 피해나가려 할 것이다. 게다가 몇 달 전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인정 범위를 넓혀놓은 상태다. 임금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연차에 따른 상여금 등의 추가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이대로 가면 고용과 경영 사정이 동시에 나빠지는 상황이 곧 올 것이다.

 고속 경제성장 시대에는 평생직장 문화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이 그랬고 우리가 이를 받아들였다. 평생직장을 유지하는 데는 연공서열과 호봉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자리가 부족한 저성장 시대다. 일본의 기업들도 일찌감치 옛 관행에서 벗어났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시점에서 임금구조의 유연성은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 호봉제 완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계에서는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두 노총이 반대 입장을 냈다. 고령자 임금을 깎아 사측의 이윤을 유지해주려는 편향적인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봉급생활자의 호주머니 사정이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런 우려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부는 임금구조 개편이 사측 이윤 보장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노동계는 임금구조 개편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별로 없다. 고착 상태에 빠진 노사정위원회가 활력을 되찾아 대타협을 이루어내야 한다. 

조선 [사설] 美 금리 인상, 1년 안에 景氣 살려야 충격파 막는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9일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국채와 모기지(주택담보부채권) 매입 축소가 끝나고 나서 6개월쯤 후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돈줄을 조이게 되면 오는 10월쯤 더 이상 국채 등을 추가 매입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내년 4월 전후로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 금리 인상에 대비할 시간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미국이 통화 공급을 축소하면서 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세계경제는 크게 출렁거렸다. 1994년 금리 인상 때는 곧바로 멕시코에 금융 위기를 불러왔고, 2004년엔 중국의 긴축정책과 맞물리면서 전 세계 주가를 폭락시켰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후반 미국 금리 인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1995~1996년 엔화 가치가 36% 떨어졌던 반면 한국은 국제 금융 시장 정보에 어두워 원화를 고(高)평가하고 있었다. 결국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봤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엇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엔화 가치를 작년 한 해 22%나 떨어뜨렸다. 중국도 지난 4년간 강세였던 위안화를 1월 중순 이후 약세(弱勢)로 전환시킨 후 두 달 새 위안화 가치를 3%쯤 낮추었다. 미국이 금리 인상 방침을 공개한 이상 달러화는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외환 당국은 엔·위안이 약세일 때 원화만 거꾸로 가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 1000조원 넘는 빚을 지고 있는 가계(家計)가 금리 상승으로 입을 쇼크를 줄일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부실 중견그룹이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중소기업들도 금리 상승에 대비해 필사적으로 부채(負債)를 줄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국내 경기가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내년 초 금리 인상의 충격파가 겹쳐지면 경기 회복이 계속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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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규제 개혁, '件數 줄이기'로 가면 백전백패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앞으로는 공무원 평가 시스템을 전면 손질해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규제 개혁에 적극 나서는 공무원이 좋은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보신주의에 빠져 국민을 힘들게 하는 부처와 공무원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회의에선 중견·중소기업 대표와 자영업자 등 민간 부문에서 60여명이 참석해 정부의 과잉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청와대 회의가 전국에 생중계된 것도 이례적이다. 규제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무리 공무원을 다그치고, 청와대가 '끝장 토론'을 생중계하더라도 규제 개혁의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기 쉽지 않다. 정부는 이날도 작년 말 현재 1만5269건인 등록 규제를 2016년까지 1만3069건으로 2200건 줄이겠다고 밝혔다. 역대 정권이 규제 철폐와의 전쟁에서 실패해온 이유는 이렇게 규제 건수(件數)를 줄이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새 정권이 '규제 개혁'을 들고 나오면 있으나 마나 한 규제, 자기들한테 별 실속 없는 규제들을 걸러내 건수를 채워 보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정말 기업들이 신발 속 돌멩이처럼 여기는 규제는 꼭꼭 숨겨 두었다가 규제 개혁 목소리가 시들었다 싶을 때 다시 기업들을 괴롭히고 나오는 것이다.

기업 현장에는 '법보다 무서운 것이 시행령, 시행령보다 무서운 것이 시행규칙, 시행규칙보다 무서운 것이 고시(告示), 예규(例規)'라는 말이 있다. 국회나 중앙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하나 만들면 담당 부서가 시행령으로 규제를 몇 개 추가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고시나 예규를 만들어 더 까다로운 절차를 깔아놓는다. 정부가 지난해 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메디텔(병원 입원 환자를 위한 호텔)과 관광호텔 신축에 대한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놨지만 여태 지자체 허가가 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이 투자 계획을 제출하면 담당 부처가 지자체를 비롯, 관련 부서 담당자들을 한데 모아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일괄 허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말단 공무원들이 고시·예규 같은 것을 주물러 투자를 가로막는 여지가 줄어들 것이다. 일본처럼 특정 지역에선 웬만한 규제를 완전 면제해주는 '규제 특구(特區)' 지정도 검토해볼 만하다.

18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 중 의원 발의 법안은 1663건으로 정부 제출 법안 690건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 가운데는 공무원들이 자기가 앞장서기 난처한 법안을 의원들에게 갖다준 '청부(請負) 입법' 사례가 적지 않다. 의원들에게 청부 입법을 부탁하는 공무원은 가혹하다고 할 만큼 응징을 해야 규제 남발이 줄어들 수 있다. 국회도 입법조사처 같은 곳에서 의원입법의 경우 규제 신설·강화가 적절한지, 새 규제가 어떤 경제적 파장을 불러올지를 미리 심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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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성과급 賃金, 공무원·공기업 앞장서면 기업도 뒤따를 것

고용노동부가 19일 근속 기간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호봉제보다는 업무 성과·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주는 성과급·직무급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임금 체계 개편 매뉴얼'을 내놨다.

고용부의 임금 매뉴얼은 크게 봐서 맞는 방향이다. 2016년부터 근로자 정년(停年)을 60세로 늘리는 법이 시행된다. 과거 50대 중반이면 은퇴하던 직장인들이 대거 회사에 남게 된다. 만 51~59세인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15만명이 혜택을 보게 된다.

문제는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현재의 호봉제 방식을 그대로 두고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과도해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공장 근로자는 신입 근로자와 30년 이상 근무자의 임금 격차가 3.3배나 된다. 독일(2.0배) 프랑스(1.3배)보다 훨씬 격차가 크다. 임금 시스템 개편 없이 정년만 늘려놨다가는 기업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직장인들 사이에도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근속 기간에 맞춰 오르는 봉급을 받아오던 직장인에게 갑자기 후배보다 월급을 덜 받고 일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임금피크제를 과도기 대책으로 도입하면서 장기적으론 성과·능력, 직무의 난이도(難易度)·중요도에 따라 봉급을 결정하는 성과급·직무급으로 바꿔가야 한다.

직종에 따라선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 공장에선 오랜 연륜을 지닌 숙련 기술자들이 훨씬 성과를 낼 수 있다. 일정 연령이 됐다고 일률적으로 월급을 깎기보다는 급여를 성과·실적에 연동하게 되면 근로자들도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년과 임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55세 과장'이 '45세 부장'의 지휘를 받으면서도 거리낌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임금 체계 조정은 노사 합의로 자율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들에 권고하기 앞서 공무원·공기업부터 솔선하면 많은 기업이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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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만지기만 하면 터져 나오는 금감원 非理 의혹

금융감독원의 팀장급 간부가 KT 자회사 협력업체들이 벌인 1조8000억원대 사기 대출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금감원은 자체 감찰을 통해 이 간부가 올 초 사기범들에게 금감원이 사기 대출 조사에 나선 사실을 알려줘 주범의 해외 도피를 도운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사기범들은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KT 자회사인 KT ENS에 휴대전화 단말기와 내비게이션을 납품한 것처럼 꾸며 허위 서류를 만든 뒤 이를 담보로 16개 금융회사로부터 463차례에 걸쳐 무려 1조8335억원을 대출받았다. 대출받은 돈은 대부분 만기가 된 기존 대출금을 갚는 데 사용됐고, 대출금 미상환액은 2894억원이다. 사기범들은 이 돈으로 주식·부동산 투자를 하거나 해외 원정 도박을 즐기기도 했다.

금감원 간부가 사기 대출 과정에서 금융회사 대출 담당자를 소개해줬는지, 대출 압력을 행사했는지 아직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간부가 오래전부터 사기범들과 어울리며 수억원대 금품·향응을 받은 사실이 금감원 자체 감사로 드러났다. 수사 당국은 금감원 간부가 사기 대출 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금감원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이 뇌물을 많게는 수억원 받고 저축은행의 비리를 눈감아준 사실이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금융회사 감사 자리에 퇴직 직원을 내려보내지 않기로 하는 강력한 자정(自淨) 노력을 약속해야만 했다. 이런 파문을 겪는 와중에도 금감원 간부는 버젓이 사기범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다. 금융기관의 탈선(脫線)을 감시하라고 만들어 놓은 조직에서 금융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국민 눈에는 금감원이 구제 불능의 조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제 금감원이 스스로 임직원 윤리와 기강을 바로잡을 능력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금감원 수뇌부에 개혁적인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3~5년에 걸쳐 조직 구성원부터 내부 통제 시스템, 임직원 윤리 의식 등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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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한·미·일 정상회담, 日에 오판 메시지 돼선 안 된다

정부가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한다. 정부는 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일 양자 정상회담은 시기상조지만 3국 회담에는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다. 정부 관계자는 "3국 정상이 사진을 함께 찍고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도 18일 일본 의회에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일 간) 미래 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대통령의 임기 첫해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아베 총리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이후 한·일 관계를 파탄 내기로 작정이나 한 사람처럼 반(反)역사적 언행을 거듭해왔다.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듯한 말을 하더니 급기야 작년 12월 A급 전범이 합사(合祀)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했다. 1월에는 중·고교 학생들에게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가르치도록 했고, 2월에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를 재검증하겠다고까지 했다. 우리로선 한 가지도 묵과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3국 정상 간 회담이라도 성사된다는 것은 악화되기만 하던 한·일 관계가 마침내 방향을 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 정세가 불투명한 가운데 4차 핵실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지금 한·미·일 공조 복원을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일 양쪽의 여론조사에서 관계 회복을 원하는 목소리가 50%를 넘고 있다. 한·일 어느 쪽에도 득이 될 수 없는 지금의 교착 상태는 깨야 한다.

그러나 불안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 사람들은 과연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거둘 것인가. 더 이상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을 것인가. 더 이상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격을 유린하는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현실은 바뀐 게 없다. 일본이 정상들 회동 분위기를 만들려고 연기한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도 머지않아 공표될 것이다. 일본과 아베가 이번 회동을 과거사 부정의 면죄부로 오판(誤判)한다면 한·일 관계는 3국 정상회담 이전보다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과거사 문제에서 한·중이 연대해 일본을 비판하는 듯한 구도가 형성됐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일본과 만나는 것은 동북아 3국 간의 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낳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미·일 복원을 위해 노력하되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우리의 외교 원칙은 확고하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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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집단소송제 확대하되 '소송 地獄'은 되지 않아야

법무부 자문기구인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개정위원회가 증권 분야에만 적용되고 있는 집단소송제도를 기업의 가격·입찰 담합 비리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최근 법무부에 제출했다.

요즘 고객 정보 유출 사고처럼 소비자 개개인이 받는 피해액은 적더라도 수백만명이 동시에 피해를 보는 사건이 많아졌다.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본 피해자들 가운데 몇 명이 대표로 소송을 내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소액(少額)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내지 않고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집단소송제를 확대해 환경·노동·독점·제조물 책임에 따른 소비자 피해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유방 확대 수술에 사용하는 실리콘 젤의 부작용과 관련한 집단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법원은 당시 집단소송제를 이용해 200만명의 피해자들에게 3조원 넘는 배상금을 주라고 실리콘 젤 제조 회사들에 판결했다. 국내에선 2005년 주가조작·허위공시·분식회계로 인한 소액주주 피해에 대해서만 집단소송이 허용됐다. 그 후 4건의 집단소송이 법원에 접수됐지만 최종 판결에 도달한 사례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까지 5년간 교복값·라면값·휘발유값·통신비 등 각종 담합행위를 한 기업 976곳을 적발해 3조원 넘는 과징금을 물렸지만 매년 담합행위는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비싼 교복값을 지불한 소비자들은 정작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없다. 금융회사들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 역시 정부 당국의 감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기업에 행정 제재를 가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담합 등으로 인한 불특정 다수(多數)의 손해에 대해 피해자가 쉽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이 가능한 범위를 확대해가는 게 바람직하다.

집단소송제를 확대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기획 소송' 변호사들이 끼어들어 건실한 기업에도 위협을 가할 소지가 충분하다. 소송당한 기업이 나중에 잘못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도 소송 자체만으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과잉 소송을 막으려면 법원이 소송 초기부터 적극 개입해 소송 제기 요건에 합당한지를 걸러내는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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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사설]의원입법 ‘규제’는 국회 입법권 침해 발상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 기세 속에서 국회의 의원입법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규제개혁회의’에서 “의원입법을 통한 규제 양산을 막아야 한다”며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 심의장치 도입 마련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즉각 제도 도입 방침을 밝혔고, 어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구체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국무조정실은 지난 2월 신년 업무보고에서 ‘국회 문턱을 넘은 모든 의원입법에 대해 사후 규제 영향 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한마디로 규제 심사를 이유로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미국과는 달리 행정부가 법안 제출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입법 심사까지 하겠다는 것은 3권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의원들이 법안을 낼 때마다 규제 평가를 이유로 개입할 경우, 입법권에 대한 심대한 제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회가 마구잡이 입법을 통해 규제를 양산한다’는 주장 자체는 근거가 박약한 선동의 언어이다. 국회 제출 법안 중 의원 발의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맞다. 지역구 선전용 등 부실 법안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법안 발의가 많은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입법은 국회 고유권한이고, 의원 발의가 많은 것은 입법을 국회가 주도한다는 징표이다. 의원 발의 법안은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그 자체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한다”(국회 입법조사처)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의원 발의 법안 중 실제 통과되는 것은 19대 국회의 경우 10% 정도다. 법안은 상임위 심사, 정부와의 협의 과정을 거친다. 현재의 입법 과정에서 정부와의 협의 없이 의원 발의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소위 ‘나쁜 규제’를 도입하는 의원입법에 대해 행정부가 견제할 장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원입법이 규제를 양산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행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다. 국회가, 야당이 경제살리기의 발목을 잡는다는 프레임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부 무분별한 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국회 스스로 공청회와 청문회, 상임위 심의 등 기존의 심사 시스템을 내실화해 개선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나서 의원입법 규제 필요성을 주창하고, 정부·여당이 법으로 이를 강제하려는 발상은 턱없다. 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헌법 제40조는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경향 [사설]낯부끄러운 SK텔레콤의 통신대란

그제 밤 SK텔레콤 통신망에 장애가 생겨 5시간 넘게 휴대전화 서비스가 중단됐다. 최대 560만명의 고객이 피해를 봤다니 전례 없는 대규모 ‘먹통 사고’다. 사고 이후 회사 측은 늑장 대응도 모자라 파문 축소에 급급한 걸 보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고객 서비스로 먹고사는 대기업 계열의 1위 통신사업자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다. 이동통신사들은 근래 상대방 회사의 고객을 뺏기 위한 진흙탕 싸움으로 물의를 빚은 터다. 잿밥에 눈이 멀어 고객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마저 잊은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이번 통신대란은 최대 가입자를 확보한 1위 사업자인 데다 휴대전화 이용량이 많은 퇴근시간대에 발생해 이용객 불편이 더 컸다. 전화를 거는 상대방의 위치를 찾아주는 통신 장비에 이상이 생겨 일어난 사고라고 한다. 작은 결함 하나가 5시간 넘게 휴대전화 불통 사태를 불렀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회사 측은 사고 이후 1시간 반쯤 지나 “복구가 완료됐다”고 했으나 통신 장애는 5시간 넘게 계속됐다. 회사가 사고 사실을 공표한 것도 5시간이 지난 뒤였다. 영문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한 고객들만 바보가 된 셈이다.

이동통신사들의 서비스 먹통 사고는 거의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이번에 사고를 낸 SK텔레콤은 1주일 전에도 통신 장애가 발생해 문제가 됐다. 지난해 9월에는 울산지역에서 SK텔레콤 가입자들이 1시간가량 데이터 사용에 불편을 겪기도 했다. LG유플러스도 지난해 말 2시간여에 걸쳐 휴대전화 서비스가 중단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SK텔레콤은 파문이 확산되자 어제 하성민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피해 고객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돈으로 때우겠다’는 식의 말 한마디로 그냥 뭉갤 사안인지 모르겠다.

통화 품질 확보는 이동통신사가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간 휴대전화 서비스가 2G→3G→LTE(롱텀에볼루션)로 바뀔 때마다 “망 투자에 막대한 돈이 든다”면서 요금 인상을 주도한 게 누구인가. 그 많은 시설 투자비는 어디 가고 툭하면 먹통인가. 더구나 근래 이동통신 3사는 상대방 가입자 뺏기 경쟁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지난해 불법 보조금으로 적발돼 이동통신 3사가 낸 과징금만 1800억원이다. 통신사들이 연간 수조원씩 쏟아붓는 마케팅비는 뭘 말하는가. 기본이 뒷받침되지 않은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으로 쌓는 것은 한낱 모래성일 뿐이다.

경향 [사설]부하 여군 죽음으로 몰고간 장교에 집행유예라니

부하 여군에게 지속적으로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가해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아온 육군 장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육군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오모 대위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노모 소령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초범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실형을 면해줬다고 한다. 군대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자살에 이르도록 괴롭혀도 전과가 없으면 풀려난다는 말인가. 군은 죽음으로 폭력에 저항한 피해자를 또다시 모독하고 유족을 더 큰 고통 속으로 몰아넣으려는가.

오 대위는 지난해 10월 직속상관인 노 소령으로부터 성관계를 강요받는 등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려왔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군법원은 직권남용과 가혹행위, 욕설과 성적 언행을 통한 모욕,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추행 등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오 대위가 받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노 소령의 범죄와 오 대위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사실상 인정했다. 군형법상 가혹행위죄의 입법 취지를 거론하며 “가벌성이 더욱 커진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이 같은 가혹행위는 선진육군의 사기와 미래를 저해하는 요소인 바, 보다 엄중하게 벌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군사법제도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주문(主文)은 “집행유예 4년”이었다. 판결문의 생명인 논리적 정합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판결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첫째, 엄격한 상명하복체계를 가진 군 내부의 성범죄는 민간 영역에서보다 철저히 단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반대였다. 둘째, 노 소령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무죄를 주장하며 유족과 합의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통상적으로 형량을 감경하지 않는다. 셋째, 군은 지난달 성군기 위반 사건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징계권자의 감경·유예권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원칙은 재판에서부터 관철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석연찮은 판결 뒤에 혹여 사건을 축소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군검찰이 항소한다고 하니 상급심에서는 보다 준엄한 심판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오 대위는 유서에서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의 마지막 호소마저 외면해선 안된다.

경향 [사설]집단적 규제 완화 합창, 그 부작용을 경계한다

정부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하에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규제 개혁 의제 하나만 갖고 끝장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느닷없이 규모를 키우고, 방송 생중계 등 보여주기식 행사의 의도에는 눈을 감는다 해도 걱정과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예상대로 이날 회의는 규제 완화 합창대회였다. 대기업들은 작심한 듯 규제의 폐해를 얘기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규제만 풀어주면 일자리 창출은 문제없다고 호언했다. 소상공인들은 규제로 인한 시간·비용 낭비를 꼬집었다. 해당 부처 장관들은 제도 개선 등을 약속했고, 대통령은 중간중간 의견을 표명하는 등 만기친람식 통치 행태를 보여줬다.

잘못된 규제를 부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부처 간에 규제를 떠넘기고, 처리 지연 등 공무원들의 고질적 ‘갑질’도 변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잘못된 규제 사례 및 작동 패턴과 규제 개선 의지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우선 행사가 반쪽짜리였다. 규제 완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회의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담아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 ‘규제=손톱 밑 가시’로 등식화되는 양태도 바뀌어야 한다. 규제 중에는 비타민과 같은 것도 있다. 공공성,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는 지속적으로 갖고 가야 한다. 규제 완화만 말하던 박 대통령이 회의에서 처음으로 완화와 강화 사이의 균형을 얘기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태도로 미뤄 짐작하면 규제 완화는 후퇴없이 진행될 게 뻔하다. 이 과정에서 충분히 의미 있지만 기업들 입장에서 거추장스러운 규제들이 한꺼번에 무장해제될 가능성이 크다. 

카드사 개인정보 규제만 해도 그렇다. 금융사의 정보유출은 개인의 정보보호보다는 정보활용에 급급한 금융사들의 잘못된 행태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건 발생 뒤에도 금융당국은 여전히 기업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 완화 역시 도심에 땅을 가진 재벌과 서울 강남 부유층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다. 개발제한 해제 지역의 용도변경 허용, 농지·산지 규제 완화 등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가시 제거란 명분으로 진행된 규제 완화가 기업들의 잇속챙기기로 둔갑한 것을 숱하게 봐왔다. 규제 완화의 오작동 사례는 흘러넘친다. 외환위기 이후의 카드대란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출발점도 경제 살리기를 앞세운 규제 완화였다. 규제는 한번 풀리면 다시 묶기 힘들다. 그만큼 부작용과 기회비용의 철저한 분석이 앞서야 한다. 다기화돼 있고 중층적인 한국 경제의 문제가 규제 완화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문제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경향 [사설]외교 시험대에 선 박 대통령

외교 관계는 반드시 상호 인식이 같거나 현안에 의견이 일치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쟁 중인 상대와도 협상하고 대화를 한다. 오히려 차이가 있고, 갈등하기 때문에 만나고 대화할 이유가 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외교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첫 대면하는 이 자리에서는 양국 관심사보다 동북아 협력, 북핵 문제, 크림반도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두 정상 간 대면은 상징적인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회담을 본격 대화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정책을 외국이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 아베 총리의 태도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건 비현실적이다. 상대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는 아베 총리가 한국을 더욱 의식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나쁜 선택을 막는 효과가 있다. 대화는 상대의 잘못을 승인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왕 대화를 하려면 3국 정상회담처럼 미국의 손에 이끌려 가기보다 주도할 필요가 있다. 약점 잡힌 일본, 긴밀해진 한·중 관계를 잘 활용하면 한·중·일 3국 관계를 협력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러자면 한·일 관계 진전이 한·중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중 간 긴밀한 관계는 대일 공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일 관계 복원이 한·중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크림 사태도 러시아와의 협력을 전제로 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충돌한다. 러시아의 크림에 대한 입장은 국제적 규범을 따르는 한국 입장과 대립된다. 

이렇게 동북아 주변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미국, 중국, 러시아의 일방적 이익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외교 전략구상을 갖고 대처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현재의 동북아 정세와 충돌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천할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미·러 갈등 상황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현성을 어떻게 보장할지도 불투명하다. 정교한 전략, 장기적 비전, 조화와 균형의 감각이 절실하다.

경향 [사설]임금체계 개편, 노사정 합의로 해법 도출해야

고용노동부가 정년 연장에 따른 후속 대책의 하나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내놨다. 오래 근무하면 임금이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연공급 중심체계에서 직무성격이나 능력별 생산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성과급 중심체계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이 매뉴얼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임·단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하나의 전범(典範)처럼 제시했다는 점에서 노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노동부는 이 매뉴얼에서 현재 임금체계가 60세 정년제 및 고령화 추세에 맞지 않는다며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30년 경력의 생산직 근로자 임금이 초임의 3.3배로 독일(1.97배)이나 프랑스(1.34배)보다 월등히 높아 기업으로 하여금 중장년층 인력 고용을 꺼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공에 따른 자동상승분을 줄이고, 수당과 상여금을 기본급에 연동시키지 말 것이며, 성과에 연동한 상여금 비중을 높이라는 등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모두 이 맥락에서 나왔다. 

2년 뒤로 다가온 60세 정년시대에 대비하려면 임금체계나 고용관계를 지속가능한 구조로 보완하는 작업이 노사 모두에 절실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제도와 환경 속에서 원만한 관계정립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근로자의 임금총액을 깎아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데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40대 이후 연령층의 임금조정을 주문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고용안정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40대에 임금 손해를 본 근로자들이 50대가 되어 명예퇴직·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된다고 해도 보호장치가 없는 것이다. 사용자 숨통은 틔워주고 근로자 발목은 잡는 편파적 구조다.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성과급제로 바꾸는 것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할 사안은 아니다. 호봉제와 성과급제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어느 것 하나를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업종별로, 사업장별로, 개별기업의 노사문화에 따라 정답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이 현재 연봉제를 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무늬만 연봉제인 곳이 많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문제는 정부가 민간에 지시하거나,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식으로 진행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해법을 도출해야 할 문제다.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였다간 공연히 갈등만 부를 수 있다.

경향 [사설]‘불량 종편’ 퇴출 책무 방기한 방통위의 과오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JTBC·채널A와 보도채널인 뉴스Y의 채널 재승인을 끝내 강행했다. 야당 쪽 상임위원들이 회의장을 퇴장하면서 반대했음에도 여당 쪽 위원들만으로 회의를 진행해 의결했다고 한다. 지난 주초 방통위가 심사위원회 심사결과를 공개하면서 공식 의결을 보류해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결국 재승인을 확정했다. 이번 기회에 불량 종편을 퇴출시켜달라는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방통위의 처사에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방통위의 재승인 처분은 납득할 수 없는 봐주기 행정이자 부실 심사의 결과물이다. 지난해 말 우선 실시한 방송 평가에서 뜻밖에도 모든 종편사에 합격점을 주었고, 이번 평가를 앞두고는 심사위원단을 정부 여당 쪽에 치우치도록 편파적으로 구성했다. 최종 심사 결과 종편 3사 모두 기준점인 650점 이상을 얻었다고 밝히면서도 그 점수가 나오게 된 세부 채점표를 보자는 야당 쪽 위원들의 요구는 합당한 이유없이 거부했다. 애초부터 짜놓은 각본대로 밀어붙여온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심사항목을 들여다보면 이런 의구심은 더 짙어진다. 심사항목 9개 중에서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공익성과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계획은 핵심 항목으로 분류돼 평가점수가 배점의 50%에 미달하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의 사유가 된다. 그런데 이 항목에서 과락을 한 종편이 하나도 없다. 종편의 막말·저질·편파 방송은 종편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인데, 여기에 낙제점을 주지 않는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평가다.

종편은 사업승인 받을 때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승인이 취소돼야 마땅하다. 보도프로그램을 계획보다 2배 이상 편성하고, 콘텐츠 투자를 약속의 3분의 1도 하지 않았으며,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재방송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이런 약속 위반에 면죄부를 준 것도 모자라 앞으로는 투자를 아예 줄이고 보도프로그램을 늘리겠다고 하는 종편사의 향후 사업계획마저 통과시켜줬다. TV조선의 경우 보도프로그램을 전체의 44%로 유지하겠다고 해 종합편성채널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종편의 위상에 맞게 보도프로그램 편성비율을 낮추라”는 하나마나한 권고를 하는 선에서 넘어갔다.

방통위의 이번 재승인 결정은 정권의 종편 감싸기가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종편의 정권 편들기 방송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방통위가 그런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그동안 종편에 준 각종 특혜라도 떼어내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금융사기대출까지 연루… 갈 데까지 간 금감원

경찰이 어제 KT 자회사인 KT ENS의 부정대출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KT ENS 협력업체 대표들이 KT ENS 간부와 짜고 지난 5년간 금융기관 16곳으로부터 허위매출채권을 담보로 1조8355억원을 대출받아 이 중 2894억원을 빼돌리는 사상 최대 사기대출 사건이었다. 인감도장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겨온 해당 기업의 허술한 관리도 문제지만 가짜 세금계산서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대출해주는 금융권의 맹신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더 충격적인 것은 사기대출에 금융감독원 간부가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금감원 팀장급 간부(50)가 지난 1월 금감원 조사가 시작되자 사건 주범인 NS소울의 대표 전모씨(49)에게 관련 사실을 알려준 뒤 직접 만나 대응책을 협의했으며 해외도피까지 도왔다. 이 간부는 그동안 전씨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한다. 해외골프 접대는 기본이고 수억원에 이르는 금품도 받았다. 한발 나아가 그는 전씨가 2008년 구입한 경기도 시흥의 230억원짜리 농원 지분 30%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1억원을 투자했다가 1주일 뒤 회수했지만 지분은 변함이 없다. 경찰은 금감원 윗선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금융비리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금감원 직원 연루는 넌덜머리가 날 정도이다. 2011년 저축은행사건 당시 부실대출을 눈감아주고 거액을 받아 챙긴 금감원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된 것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금감원은 비리를 근절할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여태껏 깜깜무소식이다. 이번 사건은 금융비리를 척결해야 할 금감원 간부가 되레 비리를 돕는 공범 역할을 하고 금융회사에 거액의 손실을 안겼다는 점에서 과거 사건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신뢰 추락이나 도덕성 해이 지적조차 한가하게 들릴 정도다.

금융회사에 무소불위의 통제권을 갖는 금감원 직원의 비리 연루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하물며 간부가 뇌물을 받아가며 주범의 도주를 도왔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금감원은 지난해 동양 사태, 최근의 카드정보 유출 사태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금융당국 내부 감사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은 물론 총체적인 인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경향 [사설]‘오 대위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전면 재수사해야

1999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장군의 딸>은 군대 내의 성폭행과 이를 은폐하려는 군 조직의 음모를 다룬 작품이다. 미 육군의 엘리트 장교인 엘리자베스 캠벨 대위는 육사 생도시절 동료 남자생도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으나 아버지인 조지프 캠벨 장군은 자신과 군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이를 은폐·조작한다.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딸은 아버지의 측근 장교들과 차례로 육체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항거하다가 결국 살해된다. 

지난해 10월 직속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성관계를 요구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오 대위 사건’의 처리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새삼 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피해자인 오 대위는 주변의 그 누구도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려 하자 죽음을 통해 이에 항거했고, 군은 가해자인 노모 소령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은폐·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오 대위의 부대 출입기록은 그에게 성행위를 요구하다 거절당한 노 소령이 부당한 초과근무를 지시한 사실을 입증할 주요 증거였다. 그런데도 오 대위의 소속 부대는 군사법원 재판부가 출입기록을 제출하라고 명령하자 “위병소 출입관리 체계상의 계정 삭제로 기록이 없다”며 거부하다가 자신의 말을 뒤집고 출입기록을 제출했다. 이 기록에는 오 대위가 성행위 요구를 받던 시점에도 대부분 정상 퇴근한 것으로 돼 있었다. 피해자 오 대위 측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족들이 오 대위가 실제로 초과 근무를 한 사실이 수록된 ‘진짜’ 출입기록을 확보해 제출하자 그제서야 “담당 장교의 실수로 백업 파일이 있는 줄 몰랐다”며 유족들이 입수한 것과 같은 내용의 기록을 제출했다고 한다. 처음엔 증거를 은폐하고, 그 다음엔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조작했다가, ‘진짜’가 나오니까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렸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군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수사해야 한다. 가해자 노 소령 측이 제출한 허위 출입기록의 작성경위와 출처, 자료 제출 거부의 경위 등을 낱낱이 파헤쳐 범법사실이 드러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이미 김상희 여성가족위원장 등 국회의원 25명까지 나서서 재수사를 촉구한 상황이다.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하는 것만이 끝없는 절망감 속에서 죽어간 오 대위에게 조금이나마 사죄할 수 있는 길이다.

한 [사설] ‘한 경기 두 규칙’ 이대로 좋은가

기초선거 공천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여야가 서로 다른 규칙을 적용해 경기를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신나게 달려가는데 야당은 다리에 쇳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격”이라는 등의 각종 비유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공약을 어긴 정당은 이익을 얻고 공약을 지키려는 정당은 피해를 보는 ‘비정상적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한술 더 떠서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기초공천 폐지 철회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대국민 약속을 뒤집으려는 검은 속내” 등의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적반하장 정도의 표현으로는 부족한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변변한 사과 한마디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이 과연 이런 비난을 할 최소한의 자격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대국민 약속이고 신당 추진의 연결고리인 만큼 이제 와서 번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안철수 의원도 “서로 어려움을 나눠 짊어지고 가기로 약속한 사안”이라고 ‘무공천 철회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사자들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모든 걸 ‘새정치’나 ‘약속 준수’라는 말로 넘어가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우선, 분명한 사실은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꼭 새정치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에 대해서는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부정부패 등 각종 폐해가 지적된다. 반면에 정당공천 폐지가 책임정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반론도 있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공약을 파기한 터여서 정치개혁의 의미는 더욱 상실됐다. ‘새누리당을 위한 정치’라는 뜻의 ‘새정치’라면 몰라도 이런 선거는 새정치도 아니고 헌정치도 아니고, 단지 ‘엉망 정치’일 뿐이다.
기초공천을 하지 않으면 비례대표 제도까지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기초선거 공천을 하지 않으면서 비례대표 공천만 하는 건 모순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 목소리 대변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이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신뢰의 정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우직하게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신당 쪽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약속 위반’을 한 새누리당에 역풍이 불어 오히려 야당 쪽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순수’와 ‘어리석음’은 다른 문제다. 둘째, 사실상의 ‘내천’이나 후보자 간접지원 등의 꼼수를 썼다가는 그나마 약속을 지켰다는 명분마저 잃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총선·대선 등을 보면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라는 주장도 꼼꼼히 검증해봐야 한다. 기초선거 완패가 가져올 후폭풍을 감내할 만큼 신당의 체력이 튼튼한지도 의문이다. 기초선거 공천이라는 난제 중의 난제는 신당의 앞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다.

한 [사설] ‘액티브 엑스’는 없애고, 환경 규제는 강화해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민관합동 점검회의의 파장이 크다. 무려 7시간 동안이나 진행된 회의를 통해 규제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정부와 여당의 후속 작업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이견이 별로 없는 기대는 정부가 되도록 빨리 충족시켜야 한다. 반면에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과제에 대해서는 더 폭넓은 논의와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청와대 회의에서 거론된 몇몇 규제개혁 과제는 박 대통령과 참석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컸다. 전자상거래와 온라인 금융거래 때 의무화되어 있는 공인인증서와 ‘액티브 엑스(X)’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공인인증서와 액티브 엑스는, 국내 인터넷 이용자에게만 적용되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규제’의 상징이다. 오래전부터 개혁 대상으로 거론되어 왔다. 현재 관련 법률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발의돼 상정되어 있으며, 관련 업계도 개편 방안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신속한 개선을 주문한 만큼 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반면에 섣불리 폐지하거나 완화했다가는 환경을 악화시키고 시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규제까지 토론회에서 거론된 것은 유감이다. 이런 규제들은 기업에는 부담이 될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편익이 더 크다. 따라서 기업 쪽 관계자 중심으로 참석자가 구성된 회의체에서 환경이나 보건 관련 규제를 논의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부적절하다.
정부가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해 올해부터 규제를 감축하겠다는 것도 무리로 보인다. 총량관리란, 앞으로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경우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 증가분만큼 기존 규제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1만1000여건에 이르는 경제관련 규제 중심으로 우선 올해 안에 10%를 줄이겠다고 회의에서 밝혔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개별 규제의 비용 및 효과에 대한 객관적 분석부터 나와야 할 터인데 어떻게 연내에 가능한지 묻고 싶다. 무리하게 목표 이행에 집착해 꼭 필요한 규제까지 허문다든지, 아니면 단지 숫자놀음에 불과한 성과로 생색내기에 그칠 게 뻔하다.
모든 규제는 비용과 함께 편익도 뒤따른다. 비용은 주로 기업이 부담하고 편익은 사회 전체가 얻는다. 그런데 비용 총량을 기준으로 한 규제감축 방식은, 기업활동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급급해 사회적 편익은 중시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환경 보호, 경제 민주화 등에 배치될 수밖에 없다.

한 [사설] ‘솜방망이 처벌’로는 군내 성범죄 못 막는다

부하 여성장교를 성추행하고 성관계 거부에 대한 보복으로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노아무개 육군 소령에게 군 법원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육군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20일 노 소령의 혐의 사실은 물론 피해 여성장교가 그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됐다는 점까지 모두 인정하면서도 “강제추행의 정도가 약하고 초범”이라며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솜방망이 처벌의 이유로는 궁색하다. 대체 얼마나 심한 성추행을 저질러야 엄벌하겠다는 말인가.
재판에서 노 소령은 반성은커녕 시종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피해자 쪽과 합의도 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강변했다. 후회하고 뉘우치는 반성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더구나 피해 여성장교 말고도 다른 여군 6명이 비슷한 이유로 노 소령을 고소했던 터다. 선처할 이유가 없는데도 가벼운 판결에 그쳤으니 ‘성범죄자 감싸기’란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이번 판결은 군의 성범죄 추방 의지까지 의심하게 한다. 국방부는 지난달 초 군내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성범죄 조사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첫 성범죄 사건인 이번 판결에서 그런 원칙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러잖아도 이번 사건에선 석연찮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피해 여성장교의 유서에 노 소령의 성관계 요구 사실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도, 군 검찰은 노 소령의 성관계 요구는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성추행이 벌어졌던 15사단은 피해 여성장교가 성관계 거부 이후 노 소령의 보복성 지시로 밤늦게까지 근무해야 했음을 보여주는 부대출입기록을 제출하라는 재판부의 지시에 ‘기록이 삭제됐다’고 통보했다가, 뒤늦게 ‘백업파일을 발견했다’고 알려왔다. 일부러 숨겼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노 소령 쪽은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퇴근한 것으로 돼 있는 허위 출입기록을 재판부에 내놓기도 했다. 위조 여부를 따져야 할 문제다. 의심이 사실이라면, 재판 방해까지 버젓이 저지르는 군내 법의식 마비도 그냥 둘 순 없다. 군내 성범죄를 뿌리뽑자면 엄중한 조사와 처벌의 원칙에 한 점 예외가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 [사설] 음주 강요·성희롱 없는 대학 ‘모꼬지’ 지침

모꼬지(엠티)는 대학문화와 자치활동의 상징과도 같다. 힘겨운 입시 관문을 뚫고 나온 신입생들에게는 성인으로서 대학의 자유를 처음 맛볼 기회가 모꼬지다. 경험이 앞선 선배들이 모꼬지에서 주는 도움은 대학생활의 낯섦과 혼란을 단축시켜줄 수 있다. 또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꼬지는 학과 동무끼리 친해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사회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도 선후배가 함께하는 모꼬지의 좋은 점이다.
그러나 모꼬지에 긍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동안 여러 폐해와 문제가 지적돼왔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즐거운 엠티 만들기 연구발표회’를 열고 자료집을 낸 것은 그래서 반갑다. 특히 모꼬지의 주체인 학생들이 연구팀을 꾸려 모꼬지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모꼬지 문화의 잘못된 모습으로는 ‘음주 강요’가 많이 꼽혀왔는데, 이번 학생들의 조사에서도 역시 음주 강요가 어김없이 나왔다. 못 마시는 술을 선배의 강압 때문에 마시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신입생 모꼬지철이면 터지곤 한다. 음주 강요는 우리 사회의 낡은 권위주의 문화의 잔재다.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 젊은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탓에 모꼬지가 성희롱·성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이 성희롱·성폭력이다. 학생 연구팀이 “성적 문화에 대한 개방 정도, 성적 불편함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성적인 문제의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그런 점에서 특히 눈에 띈다.
이번 연구가 현상 진단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인권지침’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불편한 상황에 처했을 때 ‘눈 찌푸리기’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모꼬지 현장에서 즉각 실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인다. 불편함을 겪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함께 눈을 찌푸림으로써 이 상황이 인권에 반하는 것임을 알아채게 하는 것이다. 모꼬지 인권지침을 널리 공유해 대학생 모꼬지가 유쾌하고 유익한 경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 [사설] 간첩 증거조작, ‘꼬리 자르기’ 수사를 경계한다

국가정보원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19일 국정원 대공수사국의 김아무개 과장을 구속한 데 이어, 국정원 직원들을 상대로 증거 조작이 어떻게 결정되고 지시·보고됐는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수사 진전에 따라 윗선의 개입 여부를 확인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설 수도 있지만 자칫 좌초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윗선 수사’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김 과장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들은 문서 위조 사실을 몰랐으며 위조를 지시하거나 보고한 윗선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 내 지시·보고 관계를 입증할 물증 확보도 쉽지 않다. 검찰은 지난주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증거조작에 연루됐을 국정원 수사팀의 명단과 지휘·보고 체계를 보여줄 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수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 탓이겠다. 이대로라면 수사가 더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검찰 수사가 ‘꼬리 자르기’로 끝난다고 해서 그런 결과가 사실로 받아들여질 리는 만무하다. 국정원은 엄격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운영되는 조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집된 정보는 일일이 평가돼 윗선으로 전달된다. 각종 공작 활동 하나하나에 대해 지시를 받고, 그 결과와 경위가 보고된다고 한다. 그런 조직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수사한 중요 사건에서 위조문서를 증거랍시고 제출한 일이 지휘·보고 체계 밖에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지시나 보고 없이 한두 사람의 독자적 판단으로 그런 일이 저질러졌다면 국정원 지휘부는 내부 감찰을 해야 한다. 그런 감찰이 지금껏 없었다는 것이 윗선의 개입을 뒷받침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정원 직원이 개입한 증거 위조가 이미 사실로 확인된 터인 만큼, 검찰은 여기서 좌고우면하며 머뭇대선 안 된다. 증거조작은 국가체제의 근간인 형사 사법체계의 신뢰를 무너뜨린 중대 사태다.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 드러난다면 그 책임을 묻고 바로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수사 대상인 국정원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은 직을 걸고 가능한 수사 방법을 다 찾아내야 한다. 사건을 애써 축소하려 들지도 말아야 한다. 파장의 크기를 의식해 엉뚱하게 형법의 모해증거위조 혐의 따위를 내세울 게 아니라, 법원칙대로 이미 혐의가 분명해진 국가보안법의 간첩날조 혐의를 적용해야 마땅하다. 총체적 조작으로 굳어져 가는 애초 간첩사건의 공소유지도 더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한 [사설] 규제 개혁, 옥석 가리기에서 출발해야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완화에 나설 기세다.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회의의 형태를 보거나 여기에 안건으로 올린 ‘규제시스템 개혁방안’의 내용을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이 회의를 ‘끝장 토론’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규제개혁이야말로 ‘경제혁신과 재도약’을 하는 데에서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유일한 핵심 열쇠” 따위의 얘기를 했다.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크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규제완화가 옥석을 가리지 않은 채 몰이식으로 진행되면 되레 국민의 후생을 떨어뜨리고 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
규제를 풀어야 할 분야가 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실에 맞지 않는, 경제·사회의 진화를 가로막는 것들이다. 박 대통령이 즐겨 입에 올리는 ‘손톱 밑의 가시’ 같은 규제 가운데 이런 게 적지 않을 것이다. 관료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거나, 먼저 진입한 경제주체들이 ‘지대 추구’ 형태로 기득 권익을 유지하기 위해 낡은 규제를 끌고 가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으로 퇴행적 규제만 콕 찍어서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네거티브 방식을 원칙으로 일몰제와 총량제를 도입하는 한편, 감축 목표까지 세워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규제 가운데 적어도 20%를 박 대통령 임기 말까지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규제가, 없애야 할 규제에 묻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대통령이 이른 시일 안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도록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관료들이 대통령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둔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규제의 당사자, 그중에서도 대기업의 민원을 이참에 별다른 검증 없이 들어줄 수도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이런 우려가 군걱정이 되게 하려면, 없애야 할 규제와 두어야 할 규제를 잘 가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경제주체들이 납득하고 제대로 추진될 것이다. 규제개혁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이날 “규제 합리화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취지의 얘기를 했다. 대통령의 이 말이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별다른 구실을 못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개편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이해당사자가 골고루 참여해 적절한 논의를 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규제완화의 편익과 비용을 제대로 분석해서 규개위 논의를 뒷받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규제에 따른 영향 분석을 하도록 제도가 갖춰져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관련 연구기관을 비롯해 학계와 시민단체 전문가나 활동가를 모아서 실무 분석작업을 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규제를 잘못 풀면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치는지를 우리는 계속 목도하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나라 밖에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1년 일본 원전사고가 빚어진 게 대표적이다.

한 [사설] 과잉진료, 갑상선암만의 문제 아니다

주변에 왜 이리도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이 많은지 그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갑상선암 환자는 지난 30년 동안 30배나 늘었고, 2011년 기준으로 국내 갑상선암 발생률은 세계 평균의 10배나 된다. 세계 의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8명의 의사가 밝히고 나섰다. 의료기관이 검진센터의 수익을 노리고 치료가 불필요한 갑상선암 환자를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적 이해와 상충하고 병원에서 입지를 줄일 터인데도, 용기있는 발언을 해준 의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과잉진료가 갑상선암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척추 수술 환자의 경우도 1999년 1만5000명 정도 하던 것이 2010년 10만368명으로 10년 남짓한 사이에 6배 넘게 증가했다. 척추질환이 마치 유행성 독감처럼 번진 것이다. 내성을 키우는 항생제와 주사제 남발은 많이 알려진 얘기다. 제왕절개 분만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단순 타박상 환자에게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촬영을 권유하는 것도 다반사다.
모두 돈벌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병원, 심지어 지방의료원이나 국립대학병원에서도 ‘매출’을 늘리는 의사에게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의사들로서는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보다 검사라도 하나 더 받게 하는 게 병원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의 인센티브도 올리는 길이 된다.
문제는 이들이 돈만 강탈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갑상선암의 경우 불필요한 진단으로 암 환자가 되면, 갑상선을 제거하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이후 평생 갑상선 호르몬을 먹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혈압 강하제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은 생명을 단축할 위험도 높일 수 있다. 심지어 합성 비타민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의료가 돈벌이로 전락하고 있는 길목에서 환자의 건강과 의사의 이해관계가 불길한 길항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의료 영리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의료 영리화 정책은 돈 가진 사람들이 병원에 투자를 해 환자를 대상으로 무제한의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과잉진료가 더욱 남발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우선 의료 영리화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기본 설계도를 다시 짜야 한다. 당장 시급한 건 과잉진료를 일삼는 병원에 대한 철저한 감시다. 명백한 과잉진료 행위를 남발하면서도 개선의 노력이 없는 의료기관에는 건강보험 급여 삭감 등 강력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때로는 병원 인증도 취소해야 한다.

한 [사설] 신당 정체성 우려 낳은 ‘6·15 선언 배제 파동’

민주당과 통합을 추진중인 새정치연합이 통합신당의 정강·정책 전문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빼자고 주장해 한때 큰 논란이 빚어졌다. 새정치연합이 뒤늦게 유감을 표시하고 두 선언을 전문에 명시하기로 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으나 개운치 않은 뒷맛과 우려를 남기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두 선언을 전문 초안에서 배제하려는 이유로 “특정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념 논쟁으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물론 새정치연합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두 선언에 담긴 의미까지 폄하할 의도는 없었다고 본다. 안철수 의원도 지난 대선 당시 발표한 대북정책에서 두 선언의 정신과 어긋나는 공약을 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두 선언을 전문에서 배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역사인식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다. 6·15와 10·4 선언은 분단 극복을 위한 철학과 과제를 담은 역사적 합의다. ‘불필요한 오해’를 이유로 함부로 넣고 빼고 할 수 없는 역사적 무게가 담긴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이런 역사인식을 내보인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 때도 새정치연합 쪽은 ‘소모적 논쟁’의 가능성을 내세우며 양비론을 펼친 바 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 이런 식의 역사인식 기류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려는 새정치연합의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정강·정책 전문에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의 어려움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긍정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기술한 대목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중심이 확고하지 않으면 이리저리 흔들리기 쉽다. 논쟁과 오해가 두렵다고 역사 문제에서 주춤거리고 회피하는 것은 한 나라를 이끌겠다는 정치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동안 안철수 의원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쪽 표도 얻고 저쪽 지지도 얻기 위해 정체성을 흐릿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성공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신당의 정강·정책 수립 과정에서 경제, 복지, 노동, 외교안보 문제 등을 놓고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정책, 비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파동이 신당의 확고한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에 귀중한 교훈이 되길 바란다.

유대인은 돈을 아주 높고 귀하게 평가한다

유대인은 돈을 아주 높고 귀하게 평가한다


전세계 경제의 40%를 지배하는 유대인의 돈에 대한 철학...



탈무드에 쓰여 있는 돈에 대한 경구


☆1.몸은 마음에 의존하고,마음은 돈에 의존한다.


☆2.근심,말다툼,텅 빈 지갑은 사람을 해친다.그 중 사람을 가장 크게 해치는 것은 바로 텅빈 지갑이다.


☆3.성서는 빛을 비추어 주고,돈은 따뜻함을 베풀어 준다.


☆4.돈을 벌기는 쉽지만 쓰기는 어렵다.


☆5.돈이나 물건은 그냥 주는 것보다 대등해질 수 있어 빌려주는 것이 낫다.


☆6.가난한 사람이 언제나 옳지는 않으며,부유한 사람이 언제나 그른 것도 아니다.


☆7.금화 소리가 울리면 욕하던 입도 다물어진다.


☆8.부귀는 요새이고 빈곤은 폐허이다.


☆9.돈은 사랑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


☆10.돈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아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11.부를 추구하는 행위는 존경받을 만하다.


☆12.돈은 죄악이나 저주가 아니라 사람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유대인의 사업 십계명


☆1.네 이웃의 집(아내,하인,소나 나귀 등 소유물)을 탐내지 말라.


☆2.네 이웃을 착취하지 말라.


☆3.도적질하지 말라.


☆4.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할 은혜는 다음날까지 미루지 말라.


☆5.공정한 저울로 물건을 재라.


☆6.이웃에게 물건을 빌릴 때 문밖에 서서 이웃더러 가지고 나오도록 해라.


☆7.다른 사람의 절구를 점하지 말라.그의 생계에 꼭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8.형제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이자를 받지 말라.


☆9.적은 돈의 이자는 받지 말라.


☆10.외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되지만 같은 민족에게는 절대 받지 말라.


동양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한국인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 돈을 사랑하길 바란다.


☆중국 허쥔(何君)이 쓴 <78:22의 경영법칙>에서...

2014년 3월 20일 목요일

한 [사설] 강병규 후보자, 안행부 장관 자격 없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의 가족들이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후보자는 1997년 큰아들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 실제 거주하지 않는 집으로 부인과 아들의 주민등록을 옮긴 데 이어 2000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도 또다시 위장전입을 했다고 한다. 강 후보자의 부인은 부친한테서 물려받은 논밭을 소유하려고 농업경영계획서를 허위로 제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위장전입이 인사 때마다 등장하는 고위공직자의 ‘필수과목’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다. 강 후보자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주민등록상의 주소지에서 제대로 살아온 고위공직자 후보 하나 찾아내는 게 그처럼 어려운 일인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강 후보자는 “자녀의 학업 목적이긴 하지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장전입을 한 게 단순히 아들의 학교 진학 때문이고 본인이 사과했으니 그만 눈감아줘도 되는 것일까?
위장전입 고위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처리 기준’은 매우 들쑥날쑥하다. 새누리당이 야당이던 시절에는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면 벌떼처럼 공격해 많은 사람이 낙마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대부분 그냥 넘어가고 있다. 심지어 부동산 투기 목적 등만 아니면 ‘과거의 관행’으로 관대히 봐주자는 분위기마저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고려해 백 보 양보한다고 해도 강 후보자의 경우는 그냥 보아 넘기기 힘들다.
무엇보다 그가 다른 부처도 아닌 주민등록 업무를 관장하는 주무부처 장관이 되려는 데 문제가 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해 11월 위장전입을 차단하기 위해 전입신고 절차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올해 2월 말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가 이런 조처까지 취해 놓고 정작 ‘위장전입 범죄자’를 안전행정부 장관에 앉힌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경미한 위법 사항이라도 해당 부처 업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게 상식에도 맞는다. 게다가 위장전입을 한 것은 그가 다른 곳도 아닌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강 후보자의 위장전입 문제를 통해 다시금 확인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철학과 청와대 인사 시스템이 여전히 절망적 수준이라는 점이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강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위장전입쯤이야’ 하는 도덕적 해이와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이런 자격 미달자를 장관 후보로 지명한 것이다. 위장전입 범죄자가 국민을 상대로 법과 질서를 외치는 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지 않게 되길 바란다.

2014년 3월 18일 화요일

아경 [사설]의미 큰 천주교의 기부금 내역 등록

올해 연말정산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인천교구가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에 신자들이 낸 기부금 내역을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종교단체의 기부금 등록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서울ㆍ인천 지역 천주교 신자들은 해당 성당을 가지 않고도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기부금 내역을 출력해 제출하면 된다. 
 
기부자에 대한 서비스 단계를 넘어 불문율로 간주돼온 종교계 재정의 투명화 차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자들이 내는 헌금과 십일조, 시주금 등으로 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현실에서 기부금 내역 등록은 곧 해당 종교단체의 수입을 가늠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천주교 서울ㆍ인천교구만 349개 본당에 신자가 189만명이다. 나머지 14개 교구로 확산되면 파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동안 연말정산 때 기부금 소득공제와 관련해 잡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일부 근로소득자들이 기부금을 부풀리거나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제출해 공제 혜택을 받았다. 세무당국이 확인한다지만 표본조사나 의심이 가는 경우에 그쳤다. 천주교 교구의 이번 기부금 등록은 기부금 관련 공제를 둘러싼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재작년 근로ㆍ사업소득에 대한 연말정산 때 기부금 신고 금액은 종교기부금을 포함해 5조5700억원이었다.
 
세금과 관련해 종교단체는 '성역'으로 여겨져왔다. 신부ㆍ목사ㆍ스님 등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이 몇 차례 거론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2015년부터 종교인 소득에 일률적으로 4.4%의 세금을 매기는 안을 냈으나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을 의식한 국회가 처리하지 않고 있다. 물론 모든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다. 대한성공회도 2002년 동참했다. 일부 개신교 교회와 사찰도 자신신고 형태로 소득세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주교 교구의 자발적인 기부금 등록은 의미가 큰 진전이다. 다른 종교단체로 확산하길 기대한다. 신자들이 종교단체에 헌납하는 돈은 소득세법상 기부금이다. 이 기부금은 소득공제 등 세금 혜택을 받기 때문에 투명하게 관리돼야 한다. 그리고 그 지출과 관련된 납세 의무 또한 이행되는 것이 조세의 형평성과 공정성, 그리고 사회정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