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정년 연장에 따른 후속 대책의 하나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내놨다. 오래 근무하면 임금이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연공급 중심체계에서 직무성격이나 능력별 생산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성과급 중심체계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이 매뉴얼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임·단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하나의 전범(典範)처럼 제시했다는 점에서 노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노동부는 이 매뉴얼에서 현재 임금체계가 60세 정년제 및 고령화 추세에 맞지 않는다며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30년 경력의 생산직 근로자 임금이 초임의 3.3배로 독일(1.97배)이나 프랑스(1.34배)보다 월등히 높아 기업으로 하여금 중장년층 인력 고용을 꺼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공에 따른 자동상승분을 줄이고, 수당과 상여금을 기본급에 연동시키지 말 것이며, 성과에 연동한 상여금 비중을 높이라는 등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모두 이 맥락에서 나왔다.
2년 뒤로 다가온 60세 정년시대에 대비하려면 임금체계나 고용관계를 지속가능한 구조로 보완하는 작업이 노사 모두에 절실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제도와 환경 속에서 원만한 관계정립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근로자의 임금총액을 깎아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데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40대 이후 연령층의 임금조정을 주문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고용안정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40대에 임금 손해를 본 근로자들이 50대가 되어 명예퇴직·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된다고 해도 보호장치가 없는 것이다. 사용자 숨통은 틔워주고 근로자 발목은 잡는 편파적 구조다.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성과급제로 바꾸는 것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할 사안은 아니다. 호봉제와 성과급제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어느 것 하나를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업종별로, 사업장별로, 개별기업의 노사문화에 따라 정답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이 현재 연봉제를 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무늬만 연봉제인 곳이 많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문제는 정부가 민간에 지시하거나,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식으로 진행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해법을 도출해야 할 문제다.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였다간 공연히 갈등만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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