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1일 금요일

경향 [사설]의원입법 ‘규제’는 국회 입법권 침해 발상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 기세 속에서 국회의 의원입법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규제개혁회의’에서 “의원입법을 통한 규제 양산을 막아야 한다”며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 심의장치 도입 마련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즉각 제도 도입 방침을 밝혔고, 어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구체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국무조정실은 지난 2월 신년 업무보고에서 ‘국회 문턱을 넘은 모든 의원입법에 대해 사후 규제 영향 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한마디로 규제 심사를 이유로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미국과는 달리 행정부가 법안 제출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입법 심사까지 하겠다는 것은 3권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의원들이 법안을 낼 때마다 규제 평가를 이유로 개입할 경우, 입법권에 대한 심대한 제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회가 마구잡이 입법을 통해 규제를 양산한다’는 주장 자체는 근거가 박약한 선동의 언어이다. 국회 제출 법안 중 의원 발의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맞다. 지역구 선전용 등 부실 법안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법안 발의가 많은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입법은 국회 고유권한이고, 의원 발의가 많은 것은 입법을 국회가 주도한다는 징표이다. 의원 발의 법안은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그 자체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한다”(국회 입법조사처)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의원 발의 법안 중 실제 통과되는 것은 19대 국회의 경우 10% 정도다. 법안은 상임위 심사, 정부와의 협의 과정을 거친다. 현재의 입법 과정에서 정부와의 협의 없이 의원 발의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소위 ‘나쁜 규제’를 도입하는 의원입법에 대해 행정부가 견제할 장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원입법이 규제를 양산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행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다. 국회가, 야당이 경제살리기의 발목을 잡는다는 프레임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부 무분별한 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국회 스스로 공청회와 청문회, 상임위 심의 등 기존의 심사 시스템을 내실화해 개선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나서 의원입법 규제 필요성을 주창하고, 정부·여당이 법으로 이를 강제하려는 발상은 턱없다. 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헌법 제40조는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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