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하에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규제 개혁 의제 하나만 갖고 끝장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느닷없이 규모를 키우고, 방송 생중계 등 보여주기식 행사의 의도에는 눈을 감는다 해도 걱정과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예상대로 이날 회의는 규제 완화 합창대회였다. 대기업들은 작심한 듯 규제의 폐해를 얘기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규제만 풀어주면 일자리 창출은 문제없다고 호언했다. 소상공인들은 규제로 인한 시간·비용 낭비를 꼬집었다. 해당 부처 장관들은 제도 개선 등을 약속했고, 대통령은 중간중간 의견을 표명하는 등 만기친람식 통치 행태를 보여줬다.
잘못된 규제를 부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부처 간에 규제를 떠넘기고, 처리 지연 등 공무원들의 고질적 ‘갑질’도 변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잘못된 규제 사례 및 작동 패턴과 규제 개선 의지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우선 행사가 반쪽짜리였다. 규제 완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회의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담아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 ‘규제=손톱 밑 가시’로 등식화되는 양태도 바뀌어야 한다. 규제 중에는 비타민과 같은 것도 있다. 공공성,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는 지속적으로 갖고 가야 한다. 규제 완화만 말하던 박 대통령이 회의에서 처음으로 완화와 강화 사이의 균형을 얘기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태도로 미뤄 짐작하면 규제 완화는 후퇴없이 진행될 게 뻔하다. 이 과정에서 충분히 의미 있지만 기업들 입장에서 거추장스러운 규제들이 한꺼번에 무장해제될 가능성이 크다.
카드사 개인정보 규제만 해도 그렇다. 금융사의 정보유출은 개인의 정보보호보다는 정보활용에 급급한 금융사들의 잘못된 행태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건 발생 뒤에도 금융당국은 여전히 기업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 완화 역시 도심에 땅을 가진 재벌과 서울 강남 부유층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다. 개발제한 해제 지역의 용도변경 허용, 농지·산지 규제 완화 등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가시 제거란 명분으로 진행된 규제 완화가 기업들의 잇속챙기기로 둔갑한 것을 숱하게 봐왔다. 규제 완화의 오작동 사례는 흘러넘친다. 외환위기 이후의 카드대란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출발점도 경제 살리기를 앞세운 규제 완화였다. 규제는 한번 풀리면 다시 묶기 힘들다. 그만큼 부작용과 기회비용의 철저한 분석이 앞서야 한다. 다기화돼 있고 중층적인 한국 경제의 문제가 규제 완화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문제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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