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보조금을 규정 이상으로 과다 지급해 시장을 혼탁하게 한 이동통신사들이 정부 당국으로부터 강도높은 제재를 잇달아 받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3사 모두에 45일간의 순차적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데 이어 방송통신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에 14일과 7일의 영업정지 및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 번의 잘못에 대해 두 기관에서 이중으로 처벌하는 사상 유례없는 고강도 조치가 내려진 셈이다.
당국에서 이통사 보조금을 제재할 때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갈래로 나타난다. 싼값에 단말기를 살 수 있도록 보조금 주는 것을 왜 제재하느냐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와 보조금의 원천이 결국 다수의 기존 가입자들이 내는 요금인 만큼 전체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둘 다 일정부분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보면 보조금 하나만 떼어내 생각해서는 정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장 이번 제재로 곤경에 빠진 쪽은 이동통신망에 가입할 길이 막혀버린 소비자와 수입이 끊기게 된 영업판매점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이 이통사들은 영업정지 기간 동안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도리어 이득을 챙기기도 한다. 물어야 할 과징금이 수백억원이라고 해도 매월 요금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그 몇 배에 달하기 때문에 보조금을 써서라도 가입자를 뺏어오는 게 유리하다. 지금까지 수차례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졌어도 이통사가 끄떡도 않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다. 당국의 제재가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시장이 뒤틀려 있는 것이다.
시장 왜곡의 책임은 이통사 못지않게 정부 당국에 있다. 보조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했다가 허용하고는 다시 규제하는 쪽으로 오락가락하면서 보조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시장 상황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다. 사업자 보호 위주의 요금정책으로 이통사들의 수입을 불려줌으로써 과열 마케팅을 방조한 측면도 있다. 시민단체의 원가 공개 요구를 끝까지 거부해 요금 인하 여지를 앞장서 차단한 것도 정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는 규제의 악순환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그러려면 시장의 판이 새로 짜여야 한다. 이통사는 보조금이 아니라 요금으로 경쟁하고, 그 속에서 소비자 이익이 최대화될 수 있도록 시장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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