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정치 문제와 분리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올해 대북 인도적 지원과 건전한 민간교류를 확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실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여전히 최소 수준에 묶여 있다.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관례적으로 남측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은 북측이 원하는 대북 지원과 사실상 교환 조건으로 이뤄져 왔지만, 상봉이 끝난 뒤에도 정부 태도는 변함이 없다. 대북 보복 조치인 5·24 조치를 우선시한 결과다. 인도주의 문제를 정치 문제와 분리한다는 원칙을 정부 스스로 어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대표상임의장 홍사덕)의 ‘북녘에 100만포대 비료 보내기 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민화협은 시민을 상대로 한 사람이 비료 한 포대에 해당하는 1만2000원을 후원하는 운동을 펴겠다고 한다. 100만포대는 2만t 분량으로 200여개 협동농장 6만6000㏊에 뿌릴 수 있는 규모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수십만t씩 지원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정부의 비료 지원이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최대 민간조직의 자발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화협은 남북 교류 및 화해, 통일이라는 목표 아래 여야 정당, 진보·보수의 종교·시민단체를 망라한 최대 규모의 범시민적 협의체다. 이런 민화협의 성격상 대북 비료 지원 운동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사회적 합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한 포대 한 포대 쌓아가는 것은 곧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다면 정부의 비료 지원 허용은 물론 본격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이라는 정책적 전환도 가능할 것이다. 먼저 시민이 나서 비료 한 포대에 화해와 통일의 의지를 담아 보내자.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설치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으면서 통일을 대비하는 정부라면 통일의 대상인 북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문제를 통일 준비의 우선순위에 두는 게 마땅하다. 대북 지원은 북한 사람이 남한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북한 사람의 곤란한 처지를 외면하면서 통일 준비를 한다는 건 모순이다. 정부는 비료 지원 운동에 호응해 대북 지원의 차단막을 거둬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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