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중앙 [사설] 위안부 문제 긍정적 신호 주고받은 한·일 정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를 수정하지 않고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행’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두 정상이 주고받은 간만의 긍정적 신호가 꽉 막힌 한·일 관계를 푸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아베 총리는 14일 국회 답변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쓰라린 경험을 당하신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아베 내각에서 고노 담화를 수정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아베 총리가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는 워싱턴의 압력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물론 무리가 있다. 역대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계승해온 고노 담화를 공연히 문제 삼아 한·일 관계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장본인이 꺼냈던 칼을 슬그머니 도로 집어넣은 데 불과하다. 더구나 아베 내각은 고노 담화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작업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정하지 않을 거면서 검증은 뭣하러 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이다. 그러니 고노 담화의 훼손 내지 무력화가 아베 총리의 본심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상대가 있는 외교 게임에서 100% 완승이나 완패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항공모함이 방향을 선회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혜량(惠諒)도 필요하다. 더구나 대중(對中) 견제를 위해 한·미·일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보는 미국의 화해 압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한·미·일 정상은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만난다. 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다음 달 한·일 등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있다.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한·일 관계 경색이 경제에 미치고 있는 주름살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만큼 동북아 전체를 바라보는 대국적 안목과 국익의 바탕 위에서 전략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에서 역사 교과서까지 모든 과거사 문제를 일거에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박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아베 총리의 의도와 진정성은 우리도 여전히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무조건 뿌리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당장 일대일로 만나기가 껄끄럽고 부담스럽다면 헤이그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함께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모처럼 두 정상이 주고받은 긍정적 신호를 허공에 날려버리는 것은 한·일 모두에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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