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여군에게 지속적으로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가해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아온 육군 장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육군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오모 대위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노모 소령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초범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실형을 면해줬다고 한다. 군대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자살에 이르도록 괴롭혀도 전과가 없으면 풀려난다는 말인가. 군은 죽음으로 폭력에 저항한 피해자를 또다시 모독하고 유족을 더 큰 고통 속으로 몰아넣으려는가.
오 대위는 지난해 10월 직속상관인 노 소령으로부터 성관계를 강요받는 등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려왔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군법원은 직권남용과 가혹행위, 욕설과 성적 언행을 통한 모욕,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추행 등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오 대위가 받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노 소령의 범죄와 오 대위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사실상 인정했다. 군형법상 가혹행위죄의 입법 취지를 거론하며 “가벌성이 더욱 커진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이 같은 가혹행위는 선진육군의 사기와 미래를 저해하는 요소인 바, 보다 엄중하게 벌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군사법제도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주문(主文)은 “집행유예 4년”이었다. 판결문의 생명인 논리적 정합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판결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첫째, 엄격한 상명하복체계를 가진 군 내부의 성범죄는 민간 영역에서보다 철저히 단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반대였다. 둘째, 노 소령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무죄를 주장하며 유족과 합의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통상적으로 형량을 감경하지 않는다. 셋째, 군은 지난달 성군기 위반 사건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징계권자의 감경·유예권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원칙은 재판에서부터 관철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석연찮은 판결 뒤에 혹여 사건을 축소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군검찰이 항소한다고 하니 상급심에서는 보다 준엄한 심판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오 대위는 유서에서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의 마지막 호소마저 외면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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