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목요일

중앙_[사설] 지방선거 룰 확정, 이젠 정책으로 승부해야

두 개의 규칙이 따로 놀 뻔했던 지방선거가 하나의 규칙으로 통일됐다. 어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 당원 및 국민 여론조사 결과 ‘기초선거 무공천’ 당론이 53.4% 대 46.6%로 뒤집힌 것이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이 기호 1번, 새정치연합이 기호 2번을 부여받게 됐다. 간결한 여야 대결구도가 확립돼 유권자들은 후보자 선택 과정에서 혼란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선거의 안정성과 정치의 투명성이라는 큰 틀의 관점에서 일단 잘된 일이다.

 새정치연합의 입장 번복으로 상황이 정리되자 새누리당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 바꾼 안철수가 책임져라” “오늘로 새 정치는 땅에 묻혔다” 같은 비난을 쏟아내는 건 온당하지 않다.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새누리당이 먼저 뒤집은 게 혼돈의 시작 아니었나. 현실론에 바탕해 자기들이 약속을 깬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상대방이 뒤따라 약속을 깬 건 나쁜 일이라는 주장을 새누리당이 계속한다면 후안무치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무공천 문제에 관한 한 국민 약속을 차례로 어긴 여야는 오십보백보, 모두 패자다. 서로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자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지방선거 후보 공천권을 쥐고 주민자치를 식민지처럼 부리는 국회의원의 못된 행태는 제도적으로 혁파해야 할 한국 정치의 큰 숙제다.

 두 달도 안 남은 지방선거는 무공천 문제로 너무 많은 소모를 한 탓에 활기를 잃어버렸다. 2006년, 2010년 지방선거 때 판을 흔들었던 정권심판론이나 무상급식 논쟁 같은 대형 이슈는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60%대 고공 지지율이나 포퓰리즘 공약에 대한 학습효과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정당과 예비후보자들이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바람에 민심의 한가운데를 파고들지 못하고 있는 게 더 큰 이유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룰의 통일을 계기로 쟁점 없는 선거, 이미지 선거로 흐르는 선거판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상대 인물을 헐뜯는 네거티브, 불법·관권 선거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여야는 고단한 지역 민생을 챙기는 생활밀착형의 실천 가능한 정책 개발에 승부를 걸기 바란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이 무너지고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친노 세력이 득세하는 일대 세력개편이 진행될지 주목된다. 새 정치 같은 가치 문제가 아니라 죽기살기식 세 대결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00여 명에 이르는 기초선거 후보 공천을 놓고 조직과 세를 장악하고 있는 옛 민주당 기득권 세력과 수백 명 규모에 불과한 안철수 세력 간 당내 경선이 공정성 논란을 낳을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옛 민주당 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안 대표의 새 정치를 따라 출마를 준비해온 사람들은 실망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 대표가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가 이리떼에 포위됐다는 비유는 한국에서 중도·합리를 표방하는 정치의 한계를 생각게 한다. 

중앙_[사설] 논문만 써내는 공학 교육엔 미래 없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공과대학 혁신방안은 우리 공과대를 ‘학술지 논문만 써내는 공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4년제 공과대 졸업생은 연간 6만9000여 명으로 인구 수에 대비해 선진국 수준을 넘어서지만 우리 공대는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논문만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대를 혁신해야 한다는 위원회의 현실 인식은 타당하다.

 우리 공대가 처한 연구 부문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이 해마다 쏟아내는 연구 성과가 대학 담을 넘어 산업체·국책연구소 등과 공유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학 교수들의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만 따지는 정부와 대학의 평가 관행도 한몫한 게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이 연구를 위한 연구, 정부 돈을 타내기 위한 내실 없는 연구에 쏟아부어졌다. 2012년 기준 4년제 대학의 연구개발 투자액 대비 기술료 수익률은 1.0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미국 전체 대학 평균(3.38%)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 대학의 연구 성과가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번에 공대 재정 지원 사업과 교수 평가를 실용연구 중심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산업체 현장 전문가가 대학 사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도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논문 수와 같은 정량평가만 없애면 공학 교육이 혁신된다고 보긴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공대의 학부 교육, 전공 교육을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인문학을 바탕으로 공학 등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하는 통섭 교육이 오히려 공학 교육을 혁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선진국 대학들이 노벨상 수상자에게 교양 강좌를 맡겨 신입생 교육을 시키거나 통섭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현실은 참고할 만하다. 공학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은 산업계와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창출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 정부와 학계·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개선 방안을 찾기 바란다. 

중앙_[사설] 심상치 않은 '나홀로 원화 강세' 신경 쓸 때다

원화 환율이 심상찮다. 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8개월 만에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저항선인 1050원이 깨졌으며, 어제는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에도 장중 한때 1031원까지 내려갔다. 길게 보면 원화 강세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선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해 800억 달러에 육박했고, 올해도 24개월째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정책의 점진적 축소) 충격이 완화되면서 한국 증시와 채권 시장에 다시 외국인 투자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최근 환율변동은 하락속도가 빠른 데다 주변 경쟁국들과 비교해 ‘나홀로 급락’이란 점이 눈에 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엔 약세를 밀어붙이고, 중국 위안화도 지난해와 달리 연초부터 약세로 돌변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외환당국이 쉽게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못할 만큼 주변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시선이 “수출 대기업만 편드느냐”는 쪽으로 싸늘하게 바뀌었다. 또 우리 정부가 2010년 G20 회의에서 경상수지 4% 이상의 흑자는 스스로 관리하자고 제안한 것이 자충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달 말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나올 예정이고, 25일의 오바마 대통령 방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예전처럼 ‘환율 하락→수출 타격→경제 충격’이란 공식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시대는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 생산비중이 늘어났고 기술·품질 등 비(非)가격경쟁력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환율은 예민하고 중요한 경제변수다. 환율이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된다는 것도 순진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미국·유럽·일본이 왜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하락시켜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에 매달리겠는가. 소비와 투자가 좀체 되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수출이 우리 경제에서 맡아야 할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중·장기적으로 꾸준한 연구개발(R&D)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통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단기적으론 과도한 환율변동이나 ‘나홀로 원화 강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때다. 

조선_[사설] 與, 野에 對국민 사과 요구할 입장 아니다

새정치연합이 10일 국민 여론조사와 당원 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후보 공천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번복했다. 결국 2012년 대선 때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던 '기초 불(不)공천'은 우리 정치의 수준만 드러낸 채 모두가 지키지 못하게 됐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3월 2일 신당 창당을 접고 민주당과 합당하겠다고 했을 때 "기초 불공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공약 파기를 먼저 선언한 새누리당을 '거짓 세력'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불공천 고수' 입장을 강하게 밝혔다. 하지만 새정치연합만 공천하지 않을 경우 참패를 당할 것이라는 반발이 당내에서 점차 거세지자 견디지 못하고 지난 8일 국민·당원 뜻에 묻겠다고 물러났다.

기초 불공천이란 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신당을 창당하겠다던 국민 약속을 저버릴 만큼 큰일인지에 대해선 이미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누리당은 공천하는데 야당만 공천을 하지 않을 경우 벌어질 많은 문제는 야권 합당 당시에 이미 제기됐었다. 결국 불공천이란 것은 신당 창당 약속을 어기는 데 따른 국민 비난을 모면하려는 명분이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10일 안 대표나 김한길 대표는 이런 국민의 의문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다. 진솔한 자성(自省)도 없었다.

그런데 야당 못지않게 어이없는 것은 여당의 행태다. 새정치연합의 약속 번복 결정이 발표된 뒤 새누리당 대변인은 "더는 새 정치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며 "안 대표는 정치판을 어지럽게 만든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대선에서 모두 공약했던 것을 먼저 깬 정당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남에게 사과하라고 삿대질한다니 뻔뻔함이 도를 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공약을 지켜보려 했던 쪽은 야당이다. 지금 여당이 야당에 사과를 요구하려면 자신이 먼저 제대로 국민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여(與) 원내대표의 한마디 사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기초 불공천은 처음부터 함부로 공약할 사안이 아니었다.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팽팽하게 맞서는데도 무슨 대단한 개혁이라도 하는 것처럼 포장해 경솔하게 공약한 것 자체가 포퓰리즘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안 대표, 문재인 의원 세 사람 모두가 문제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안 대표는 이날 "당의 공천 받아 당선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줄세우는 중앙 정치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협할 수준"이라며 "권력자의 쪽지가 들락거리고 추악한 매관매직(賣官賣職)과 함께…"라고 공천 현실을 비판했다. 비록 기초 불공천 공약은 없던 일로 됐지만 안 대표가 말한 이런 문제점은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여야는 선거 후에라도 공천의 폐해를 줄일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_[사설] 수입품 '바가지' 없애려면 수입 原價 공개 훨씬 확대해야

관세청이 9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립스틱의 국내 판매가는 수입 원가의 9.2배에 달했고, 와인은 4.8배, 등산화는 4.4배 비쌌다. 진공청소기와 유모차도 국내 판매가가 수입가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관세청이 공개한 수입 가격에는 운송료·관세(關稅) 등이 포함돼 있어 수입 원가라고 할 수 있다. 국내 판매 가격이 수입 원가에 비해 몇 배씩 높은 것은 독점 수입 업체들이 높은 마진을 붙여 바가지를 씌우기 때문이다.

수입품 바가지에 화가 난 소비자들은 진즉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직접 구매로 몰려가고 있다. 인기 겨울 점퍼인 캐나다 구스의 국내 소매 가격은 100만원을 웃돌지만 인터넷을 통해 외국에서 직접 구매하면 배송비·관세를 다 내고도 70만원대에 살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해외 직접 구매액은 2010년 2억5000만달러에서 작년 10억4000만달러로 4년 만에 4배 늘어났다.

수입품에 덤터기를 얹지 못하게 막으려면 정부가 수입 원가를 소비자에게 대폭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가 수입 원가와 국내 판매 가격을 비교해본 뒤 국내 점포에서 살 것인지 해외에서 직접 구매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관세청은 그동안 수입 원가를 공개하면 기업의 영업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며 공개를 꺼렸다. 이번에도 품목별로 2~3개 그룹으로 나눠 평균 가격만 공개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몇개 품목만 골라 원가를 공개하는 것만으론 소비자들의 갈증을 달랠 수 없다. 세부 품목 하나하나의 원가를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해도 모든 수입품의 원가를 공개한다는 원칙 아래 공개 대상을 전면 확대해야 한다.

대부분 명품 브랜드는 한두 개 업체가 수입부터 국내 유통까지 독점해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싼 가격에 구입하고 있다. 정부는 독점 수입권을 갖고 있지 않은 다른 수입업체(병행 수입업체) 숫자를 122개에서 230개로 늘려 수입품 가격 하락을 유도하겠다고 한다. 병행 수입업체 숫자를 이 정도 늘려서는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쉽게 유명 브랜드 제품을 수입·판매할 수 있도록 수입·유통시장을 전면 자유화해야 한다.

유명 수입 브랜드를 파는 국내 점포들은 자기들이 팔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애프터서비스(A/S)를 아예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진품(眞品)에 대해서도 시내 백화점 점포가 제품 교환 등 A/S를 해주지 않고 있다. 우리도 법을 바꿔 일본처럼 다른 경로를 통해 수입된 제품에 대해서도 정식 매장에서 보증서 없이 A/S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_[사설] 장애인들 "우리도 市外버스 타게 해 달라"

'장애인의 날'인 오는 20일 장애인 200명이 서울에서 부산·대구·세종시로 가는 고속버스 좌석을 예매해 휠체어에 탄 채 고속버스 탑승을 시도하는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고속버스·시외버스에도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바닥이 낮은 저상(低床)버스를 도입하거나 장애인 리프트를 설치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중증 장애인들이 자신이 사는 시·군 이외의 지역으로 나갈 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자가용이나 KTX 정도밖에 없다. 저상버스는 전국적으로 시내버스의 14.5%를 차지하고, 서울은 4대 가운데 1대가 저상버스다. 하지만 고속·시외·광역·공항버스의 경우엔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다. 이 때문에 KTX 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출신 장애인들은 명절에도 고향 집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로 이웃한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가는 것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영국·덴마크 같은 유럽 국가들은 일찌감치 저상 시외버스를 늘려 장애인들 불편을 덜어주고 있다. 독일의 장거리 고속버스·관광버스는 장애인이 탄 휠체어 몸체를 버스 바닥에 고정시켜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저상버스는 일반 버스보다 제작비·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시외·고속버스에 전면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하루 중 일정 시간대에는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는 리프트나 램프를 장착한 버스를 운행하거나 대형 고속·시외버스 회사에는 전체 버스 가운데 일정 비율의 버스에 장애인석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이동권(移動權)은 국가가 보장해줘야 하는 기본 인권 중 하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경향_[사설]무공천 철회와 ‘안철수 실험’ 실패가 주는 교훈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제 실시한 전 당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에 따라 6·4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안철수 대표가 주도한 무공천 당론이 당원들에 의해 번복된 것이다. 이는 새누리당의 공약 파기에 의해 기초 공천 폐지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이 홀로 공천 폐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의로 무공천하는 것이 무리한 결정이었음을 야당 지지자와 당원이 확인시켜준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새정치’의 상징으로 무공천을 내세우는 것이 정치적 실책이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기도 하다. 

안 대표는 이번 무공천 번복을 계기로 새정치의 방향과 내용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공직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써 시민을 대의해 통치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이다. 공천을 포기한다는 약속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에서 정당 간 경쟁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우선해야 할 가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야당에 요구되는 제1과제는 집권당을 견제하고 그 대안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 스스로 견제하기 어려운 선거를 한다는 것은 야당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실의 정치 지도자는 신념윤리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책임윤리를 섬겨야 한다. 집권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책임감만큼 야당에게 중요한 덕목은 없다. 안 대표는 자신의 신념을 시민들이 선택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당원들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더 의식했다. 안 대표도 “야당이 선거에 참패한다면 정부·여당 독주를 견제할 최소한의 힘조차 잃게 될 것이라고 (국민은) 걱정하셨다”면서 “그것이 정치개혁에 대한 제 생각과 엄중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고 인정했다. ‘안철수의 실험’이 왜 실패했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안철수 실험의 실패는 무엇보다 그의 새정치가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의 새정치는 정당의 역할, 의회의 활동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둔 반정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이번 무공천 갈등과 번복이 야당 지도자의 책임성에 맞게 새정치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심사숙고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당내 문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이제는 선거 체제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새정치연합이 민생중심을 제시한 만큼 선거 의제를 그런 방향으로 잡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당 대 당의 당당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하루빨리 제1야당다운 모습을 갖춰야 한다.

경향_[사설]속출하는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 정부는 뭘 하나

은행에서 유출된 고객정보를 이용해 전화금융사기를 벌인 일당 9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가 처음 현실화된 것이다. 또 경향신문 취재 결과 내로라하는 금융보안 전문가의 가족도 보이스피싱 수법에 5000만원을 털렸다고 한다. 당초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간 “2차 피해는 없다”며 큰소리쳤던 금융당국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이라도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에 적발된 금융사기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이다. 하지만 고객이 꼼짝없이 당한 것은 개인 신상을 손금 보듯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씨티은행인데요. 17%짜리 대출을 사용하고 계시죠?” “새로운 저금리 대출이 있으니 전환해 보시죠”라는 식이다. 이름·주소·전화번호는 물론 금융거래 내역까지 훤히 꿰뚫고 있으니 은행 직원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해 사례가 다르긴 하지만 오죽하면 이 분야 전문가인 오길영 신경대 교수의 부인도 감쪽같이 속아 사기를 당했을까.

이번에 드러난 사기 피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유사 범죄가 생길지 알 수 없다. 올 초 KB국민·롯데·NH농협카드에서 1억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데 이어 2개월 만에 KT에서 또 1200만건이 털렸다. 2011년 이후 유출된 개인정보만 2억건을 넘는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유출된 신용카드 번호와 신상정보가 시중에 버젓이 거래되고 있으니 뭔일이 벌어질지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다. 개인정보를 악용한 사기 사건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고객들로선 참으로 답답한 노릇 아닌가.

정부는 지난달 개인정보 수집 관행을 바꾸고 유출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주민번호를 대체할 새로운 거래 수단을 내놓겠다고 해놓고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미 빠져나간 개인정보는 실태 파악조차 안되는 상황이다. 이래놓고 개인에게만 “조심하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제2, 제3의 피해를 막으려면 추가 유출 방지는 물론 개인정보 불법 거래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도 검토할 때가 됐다.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했다가는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경향_[사설]대법원의 첫 ‘담배소송’ 판결이 아쉬운 이유

국내 첫 ‘담배소송’이 15년 만에 흡연 피해자들의 패소로 끝났다. 대법원은 흡연 후 암에 걸린 환자와 가족들이 담배 제조사인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에게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의학계 견해 등을 반영해 판결을 내렸을 터이나, 헌법적 권리인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담배에 설계·표시상 결함이 있는지, KT&G와 국가가 담배의 위해성을 은폐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는지,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쟁점에서 KT&G와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제조물로서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고 제조·판매 과정에도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세 번째 쟁점에 대한 판단이다. 대법원은 “흡연과 (상고심까지 온) 원고들의 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상고심 재판부가 판단 대상으로 삼은 것은 폐암 가운데 비소세포암과 세기관지 폐포세포암이다. 항소심에서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된 소세포암(폐암)과 편평세포암(후두암)에 대해서는 별도의 판단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법원이 흡연과 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인했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담배의 해악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지난해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130만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흡연 남성은 비흡연자보다 후두암 위험이 6.5배, 폐암 위험이 4.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흡연 피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미 연방대법원이 2009년 필립모리스에 7950만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선고한 것은 담배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담배협회는 대규모 담배소송을 준비 중인 건보공단을 향해 “대법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야 할 곳은 건보공단이 아니라 KT&G를 비롯한 담배협회 회원사들이다. 대법원이 흡연과 일부 암 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했다고 흡연을 용인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판결문 오독(誤讀)이다. 대법원 판결은 담배의 위해성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인과관계와 책임에 대한 법률적 판단임에 유의해야 한다. 시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흡연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이 위축돼서도 안될 일이다.

한겨레_[사설] ‘님을 위한 행진곡’이 그렇게 무섭나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님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이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정부가 억지 핑계를 대며 기념곡 지정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도 빼앗고 민주화운동의 역사까지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의 생생한 역사 그 자체다. 1980년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광주 들불야학을 이끌다 1979년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전남대생 김종률이 백기완의 시에서 가사를 따와 만든 노래다.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고, 금세 퍼졌다. 민주화운동의 현장마다 이 노래가 불렸다. 민주화를 위해 흘린 피와 땀이 노래 속에 짙게 배어 있는 까닭이다. 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에서도 이 노래는 빠지지 않았다. 국가기념일이 된 1997년부터는 정부 주관 행사에서 공식 제창됐고, 역대 대통령들도 함께 불렀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민주화는 이 노래와 함께 전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노래를 부정하겠다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망동이다.
지금 정부가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8일 국회에서 기념곡 지정 문제에 대해 “워낙 강한 반대 여론이 있기 때문에 자칫 국론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답변했다.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는 이 노래가 “북한과 관련된 노래”라는 등의 억지 주장을 폈다고 한다. 엊그제는 보훈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듯한 단체들이 신문 광고를 내어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색깔론을 폈다. 정 총리가 말한 ‘반대 여론’은 아마 이들 단체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보훈처가 의견수렴을 한 것도 대부분 이들 단체였다.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의 이런 짜맞추기를 여론이라고 하니 가당치도 않다.
국회는 이미 지난해 6월 이 노래를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국 시·도의회와 시·군·구의회 의장협의회도 같은 결의안을 냈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 도전하는 것이다. 되레 더 큰 국론분열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정부는 공식 기념곡 지정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_[사설] ‘단일 규칙’ 찾은 지방선거, 정책경쟁으로 승부해야

새정치민주연합이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벌여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이유야 어쨌든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이 기초공천을 폐지한다는 대선 공약을 차례로 어긴 셈이 됐으니 체면을 구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 규칙을 둘러싼 혼선을 정비해 지방선거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한 경기 두 규칙’이라는 기이한 선거가 될 뻔했는데 유권자들로서도 쓸데없는 혼선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여야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기초선거 공천 제도의 여러 폐해를 거론하며 공천 폐지를 앞다퉈 약속하더니 막상 지방선거가 닥치자 약속을 뒤집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여야 모두 공약 파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먼저 공약을 파기해 혼선을 초래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훨씬 무겁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이 변변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안철수 대표의 정계은퇴를 요구하고 새정치연합을 비아냥대는 데 앞장서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다. 공약을 한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자신과는 무관한 남의 일인 것처럼 이 문제를 끝까지 외면한 것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여야는 정당 공천을 하기로 결정한 만큼 이번 지방선거부터 공천을 혁신해 국민이 기초공천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는 데 힘을 써야 한다. 공천 비리, 지방자치의 중앙 예속,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 줄세우기 등 기초공천제의 폐해로 지적돼온 문제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심각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돈 공천’을 하는 등 잇속 챙기기와 기득권 강화에 공천권을 활용하는 정당이 있다면 엄중한 심판이 따라야 할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새정치연합 창당의 핵심 명분으로 내걸었던 기초선거 무공천이 무산됐으니 어느 정도 책임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 결정에 이른 과정을 되짚어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선거의 규칙과 관련한 대선 공약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상황에서 한쪽만 약속에 집착할 경우 선거의 유효성에 의문이 생기고 국민의 선택권이 왜곡되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책임론이니 지도부 사퇴니 따위의 말이 나온다면 이는 핵심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내부의 합의된 절차에 따라 결론을 냈으니 당의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집권세력의 일방독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진력하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제1야당의 올바른 태도다.
사실, 먹고살기 고달프고 일상이 팍팍한 이들에게 기초공천 문제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의제였다. 정치권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지 않은 문제를 놓고 너무 오래 논쟁을 벌여왔다. 이제는 규칙 논쟁에 마침표를 찍고 민생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정치권은 생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고단한 사람들의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도 살고 서민 대중의 고단한 삶도 기지개를 켤 수 있다.

한겨레_[사설] ‘사교육 구멍’ 숭숭 뚫린 선행학습금지 시행령

교육부가 9일 이른바 ‘선행학습금지법’의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사교육비의 주범인 선행학습을 막자는 것이니, 그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또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도 제법 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내면 학교에 지원하는 예산을 줄이고, 대입 논술·면접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선 내용을 출제하는 대학은 입학정원을 줄이겠다는 내용 등이다. 하지만 이 법령이 질병의 원인은 놔두고 증세만 치료하는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고3이다. 이과 수학 과목의 경우 대다수의 일반고는 오래전부터 2학년까지 고교 3년 과정을 모두 가르치고, 3학년 때는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을 해왔다. 그런데 선행학습금지법이 적용되면 3학년 1학기에 그 어렵다는 ‘적분과 통계’와 ‘기하와 벡터’ 두 과목을 동시에 배워야 한다. 그러니 고3 학생들 사이에서는 “재수해서 고4년을 다니든가, 아니면 학원 가서 미리 배우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 과목의 수능 시험 범위를 모두 반으로 줄이거나, 두 과목 중 한 과목만 선택하게 하는 등으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
또다른 문제는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자사고와 특목고(외고·과학고)는 얼마든지 선행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반고에는 족쇄를 채우고 귀족학교에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니, 안 그래도 심각한 입시 경쟁에서의 불공정 격차가 더 확대될 뿐이다. 국가가 정해주는 필수 이수단위를 자사고·특목고도 일반고와 동일하게 맞춘 뒤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 것이다.
결정적인 건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못 하도록 하지만 학원에서는 허용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학원들은 이런 ‘선행학습 독점권’을 내세워 더 기승을 부릴 우려마저 있다. 학원도 선행학습을 규제하지 않는 한 ‘풍선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선행학습금지법을 도입한 취지는 사교육의 폐해를 없애자는 것이다. 연 20조원을 넘는 과다한 사교육비는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효과가 불확실한 선행학습 금지에 매달리기보다는 대학별 논술고사부터 폐지하는 게 합리적이다. 교육분야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학부모와 학생·교사 10명 가운데 8~9명 정도가 논술을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해 우선적으로 폐지해야 할 과목이라고 지목했다. 정부가 나서서 논술부터 없앤다면 사교육 근절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알리게 돼, 이후 다른 대책들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울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다._2교_16.7매

울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다._2교_16.7매
아버지가 가출했다. 아버지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고 감정기복이 심해지셨다. 어머니와의 말다툼도 잦아졌다. 그 날도 으레 하루 한차례씩 있었던 의견다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현관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거실에서 울고 계셨다.
“네 아빠 집 나갔다”
5년 전 가을이었다. 자동차 열쇠는 TV 옆에 놓여있었고 까만색 그랜저도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었다. 멀리 가지 못하셨으리라. 집 가까이에 있었지만 졸업하곤 발길이 닿지 않았던 초등학교에 가봤다.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에 섰다. 그때, 구령대 옆 의자에 털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버지다.
아버지 옆에 가서 앉았다. 더, 살고 싶지 않단다. 미웠다. 아버지가 돼서 아들한테 죽고 싶단다.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슬쩍 아버지 얼굴을 봤다. 조혈모세포 이식 부작용으로 얼룩덜룩해진 두 볼 위에 눈물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갑자기 목이 먹먹해지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내 내 볼에도 눈물이 흘렀다. “딸꾹!” 그런데 갑자기 딸꾹질이 났다.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숨죽여 울다가 딸꾹질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다 큰 21살 사내놈이 울다가 딸꾹질이라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
살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가 농담을 한다. 그리고 울지 말라고, 엄마랑 영배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라고 한다. 다 큰 남자 둘이 어린아이처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추운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다. 그리고 2010년 봄, 군대 영장이 나왔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소양강 처녀가 치마를 흩날리고 서 있는 소양대교를 넘어 102보충대대로 갔다. 행사 진행 장교가 입대 장정들을 행사장 앞쪽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입대 소감을 말할 장정을 따로 단상 앞으로 불렀다. 손을 들고 단상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딱 두 마디 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나라 잘 지키다가 건강하게 돌아가서 집 잘 지키겠습니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봤다. 목이 메었다. 22개월 동안 집 생각에 어깨가 들썩거리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리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머리가 길어져 군인티를 벗을 즈음 다시 백혈병에 걸렸다. 아버지는 다시 머리를 밀어야 했다.
“아들, 아버지 머리 밀어주라”
3년 만에 다시 이발기를 잡고 아버지 머리를 밀었다. 병원을 가려고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는 전화번호 2개가 적힌 쪽지를 주셨다. 이종란 노무사님과 공유정옥 선생님의 번호였다. 그리고 넷이 손을 잡고 기도한 후 병원으로 출발했다. 가족 모두 집에 함께 손을 잡았던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2012년 8월 30일, 동생 영배가 군 복무 중에 휴가를 내서 병원으로 왔다. 병원 문에서부터 울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정해진 면회시간이 아니라서 들여보내줄 수 없단다. 전투복을 입고 온 동생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는지 중환자실 출입문에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어줬다. 동생과 함께 주치의에게 목 인사를 하고 아버지를 보러 들어갔다.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자고 있었다. 일주일째다.
“아버지, 나 왔어요, 눈 좀 떠봐요”
영배가 울부짖었다. 주치의는 이젠 수면 약물을 줄여서 깨워도 의식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버지의 심장이 멈췄다. 심장박동을 표시하는 모니터에는 굴곡 없는 선 하나가 지나갈 뿐이었다.
“누나, 나는 성배차 타고 갈게”
성배차? 까만색 그랜저, 8년간 아버지의 출퇴근길을 함께 했고 우리 가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아버지차를 막내삼촌이 성배차라고 불렀다.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에 울음이 터졌다. 발인 전날에 조문객을 맞이하다가 쓰러진 엄마를 119 구급대가 데려가서 홀로 빈소를 지킬 때도, 장례식 내내 고모들이 영정사진 앞에서 엉엉 울었을 때도, 불교 집안으로 시집 가 교회에 가 본 지 오래라는 막내이모가 아버지를 위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예수님하며 기도를 했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막내삼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결국 나를 무너뜨렸다.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중후한 자동차가 이제는 내 차란다.
내게는 너무 무거운 그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추모의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희뿌연 연기가 나오는 공장이 보였다. 아버지가 8년간 다니던 직장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 공장 덕분에 아버지는 장학금 한번 받은 적 없는 두 아들의 등록금을 내줄 수 있었다. 직원 할인으로 최신형 벽걸이 TV를 거실과 안방에 각각 한 대씩 장만해 놓을 수 있었다. 팔다리에 기운이 빠지기 전까지 한 달에 20만 원짜리 고급 헬스장을 단돈 1만원에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여 만에 그 공장 앞을 다시 찾았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을 위해 법원에 제출할 성명서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파란색 목줄을 맨 수많은 노동자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활동가들 앞을 오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서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도 아프기 전에는 반올림과 나 같은 젊은이들을 외면하셨나요?’
회사 아저씨들은 관리직이었던 아버지는 반도체 공정 클린룸에 들어간 적조차 없다며 아버지의 고장 난 몸이 공장 작업환경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분명히 현장에 자주 들어갔다고 했는데. 성명서를 받는 날에도 파란 목줄 노동자들은 지독히도 무관심했다. 단지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공장 옆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만 관심을 보였다.
지난 3월 6일에는 황유미 누나의 7주기 추모제가 있었다. 누나는 꽃다운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있었으면 나보다 네 살 누나니까 누나다. 누나는 아버지와 다른 생산라인에서 다른 일을 했다. 하지만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고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누나와 아버지, 그리고 떠난 반도체 노동자들을 추모하려 갓 전역한 동생과 함께 강남역 8번 출구로 갔다. 입춘이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칼바람은 매서웠다. 가족 잃은 슬픔 있는 사람, 자본권력에 분노하는 서비스센터 노동자들, 또 하나의 약속 영화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황유미 누나의 아버지 황상기 아저씨가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아저씨는 누나가 왜 아팠는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주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아저씨는 딸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나도 아버지랑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면서 싸우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내 아버지는 개인적, 유전적으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장사에 계율은 필요없다

장사에 계율은 필요없다

유대인이 보기에 모든 위험은 성공의 기회를 품고 있고
위험이 클수록 이윤이 높다.
유대인은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조건 뛰어든다.


장사는 장사일 뿐이다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는 계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먹을 수 없다고 해서 장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시카고의 유대인 돼지 사육농장은 7백만 마리를 키운다.그리고 미국 도축업계의 10%가 유대계이다.


모험 속에 부(富)가 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뛰어들지 않는 사람은 평생을 평범하게 산다."

록펠러는 리마(Lima)유전을 매입하고자 했지만 이사회의 반대에 부딪쳤다.
리마 유전의 유황함량이 높다는 이유였다.
록펠러는 품질이 떨어지지만 정유법만 개발되면 큰 돈을 벌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분명 정유법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을 투자해 정유법을 찾아냈다.



플레이보이 경영술

유대인에게 장사의 금기(禁忌)는 없고,
특히 여성도 그들에겐 상품으로 보인다.

유대인 휴 헤프너(Hugh Hefner)는 1926년생으로 잡지사에서 경영과 시장에 대해 공부를 한 후 1953년 마릴린 몬로의 누드사진 표지로 초판을 5만부 발행하여 성공하고 15개월이 지나자 30만부에 이르는 기적을 이뤘다.
1970년대는 최고 650만부를 판매했다.


리히톈슈타인 국적을 팔다

리히텐슈타인은 회사 규모나 이윤에 상관없이 국민이라면 매년 25달러의 세금만 내면된다.그리고 규정에 의하면 25만 달러만 내면 국적을 살 수 있었다.

유대인 로웬스타인은 이 나라 국적을 산 후 이를 상품으로 팔았다.
많은 회사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회사의 명의를 로웬스타인으로 사용하고 돈을 지불했다.


유대인에게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품이 된다.

유대인의 돈 사랑에서,
찬물먹고 이를 쑤시던 우리의 옛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반추한다.

최태성 개정 고급 한국사(최신)

http://www.ebsi.co.kr/ebs/lms/lmsx/retrieveSbjtDtl.ebs?sbjtId=S20130001114&mnuCd=48

울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다._1교_16.6매

울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다._1교_16.6매
아버지가 가출했다. 5년 전 가을이었다. 자동차 열쇠는 TV 옆에 놓여있었고 까만색 그랜저도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어떻게 가출한 줄 알았을까요? 메모가 있었나요? 멀리 가지 못하셨으리라. 집 가까이에 있었지만 졸업하곤 발길이 닿지 않았던 초등학교에 가봤다.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에 섰다. 그때, 구령대 옆 의자에 털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버지다.
아버지 옆에 가서 앉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단다. 미웠다. 아버지가 돼서 아들한테 죽고 싶단다.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슬쩍 아버지 얼굴을 봤다. 조혈모세포 이식 부작용으로 얼룩덜룩해진 두 볼 위에 눈물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갑자기 목이 먹먹해지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내 내 볼에도 눈물이 흘렀다. “딸꾹!” 그런데 갑자기 딸꾹질이 났다.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숨죽여 울다가 딸꾹질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다 큰 21살 사내놈이 울다가 딸꾹질이라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
살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가 농담을 한다. 그리고 울지 말라고, 엄마랑 영배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라고 한다. 다 큰 남자 둘이 어린아이처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추운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다. 그리고 2010년 봄, 군대 영장이 나왔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소양강 처녀가 치마를 흩날리고 서 있는 소양대교를 넘어 102보충대대로 갔다. 행사 진행 장교가 입대 장정들을 행사장 앞쪽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입대 소감을 말할 장정을 따로 단상 앞으로 불렀다. 손을 들고 단상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딱 두 마디 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나라 잘 지키다가 건강하게 돌아가서 집 잘 지키겠습니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봤다. 목이 메었다. 22개월 동안 집 생각에 어깨가 들썩거리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리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머리가 길어져 군인티를 벗을 즈음 다시 백혈병에 걸렸다. 아버지는 다시 머리를 밀어야 했다.
“아들, 아버지 머리 밀어주라”
3년 만에 다시 이발기를 잡고 아버지 머리를 밀었다. 병원을 가려고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는 전화번호 2개가 적힌 쪽지를 주셨다. 이종란 노무사님과 공유정옥 선생님의 번호였다. 그리고 넷이 손을 잡고 기도한 후 병원으로 출발했다. 가족 모두 집에 함께 손을 잡았던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2012년 8월 30일, 동생 영배가 군 복무 중에 휴가를 내서 병원으로 왔다. 병원 문에서부터 울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정해진 면회시간이 아니라서 들여보내줄 수 없단다. 전투복을 입고 온 동생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는지 중환자실 출입문에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어줬다. 동생과 함께 주치의에게 목 인사를 하고 아버지를 보러 들어갔다.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자고 있었다. 일주일째다.
“아버지, 나 왔어요, 눈 좀 떠봐요”
영배가 울부짖었다. 주치의는 이젠 수면 약물을 줄여서 깨워도 의식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버지의 심장이 멈췄다. 심장박동을 표시하는 모니터에는 굴곡 없는 선 하나가 지나갈 뿐이었다.
“누나, 나는 성배차 타고 갈게”
성배차? 까만색 그랜저, 8년간 아버지의 출퇴근길을 함께 했고 우리 가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아버지차를 막내삼촌이 성배차라고 불렀다.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에 울음이 터졌다. 발인 전날에 조문객을 맞이하다가 쓰러진 엄마를 119 구급대가 데려가서 홀로 빈소를 지킬 때도, 장례식 내내 고모들이 영정사진 앞에서 엉엉 울었을 때도, 불교 집안으로 시집 가 교회에 가 본 지 오래라는 막내이모가 아버지를 위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예수님하며 기도를 했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막내삼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결국 나를 무너뜨렸다.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중후한 자동차가 이제는 내 차란다.
내게는 너무 무거운 그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추모의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희뿌연 연기가 나오는 공장이 보였다. 아버지가 8년간 다니던 직장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 공장 덕분에 아버지는 장학금 한번 받은 적 없는 두 아들의 등록금을 내줄 수 있었다. 직원 할인으로 최신형 벽걸이 TV를 거실과 안방에 각각 한 대씩 장만해 놓을 수 있었다. 팔다리에 기운이 빠지기 전까지 한 달에 20만 원짜리 고급 헬스장을 단돈 1만원에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여 만에 그 공장 앞을 다시 찾았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을 위해 법원에 제출할 성명서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파란색 목줄을 맨 수많은 노동자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활동가들 앞을 오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서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도 아프기 전에는 반올림과 나 같은 젊은이들을 외면하셨나요?’
회사 아저씨들은 관리직이었던 아버지는 반도체 공정 클린룸에 들어간 적조차 없다며 아버지의 고장 난 몸이 공장 작업환경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분명히 현장에 자주 들어갔다고 했는데. 성명서를 받는 날에도 파란 목줄 노동자들은 지독히도 무관심했다. 단지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공장 옆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만 관심을 보이며 서명을 해줬다.
지난 3월 6일에는 황유미 누나의 7주기 추모제가 있었다. 누나는 꽃다운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있었으면 나보다 네 살 누나니까 누나다. 누나는 아버지와 다른 생산라인에서 다른 일을 했다. 하지만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고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누나와 아버지, 그리고 떠난 반도체 노동자들을 추모하려 갓 전역한 동생과 함께 강남역 8번 출구로 갔다. 입춘이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칼바람은 매서웠다. 가족 잃은 슬픔 있는 사람, 자본권력에 분노하는 서비스센터 노동자들, 또 하나의 약속 영화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서 문단을 나눠야 합니다. 한 문단이 너무 길어요.
황유미 누나의 아버지 황상기 아저씨가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아저씨는 누나가 왜 아팠는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주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아저씨는 딸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나도 아버지랑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면서 싸우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내 아버지는 개인적, 유전적으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정말 잘 고쳤네요. 금방 글이 이렇게 좋아지다니. 조금 욕심을 내서 제 마음대로 이렇게 고쳐 봤어요. 내가 고친 게 가장 좋다는 건 아니지만 한번 비교해 보세요. 

2014년 4월 9일 수요일

울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다._1교_16.6매

울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다._1교_16.6매
 
아빠가 가출했다. 5년 전 가을이었다. 자동차 열쇠는 TV 옆에 놓여있었고 까만색 그랜저도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었다. 멀리 가지 못하셨으리라. 집 가까이에 있었지만 졸업하곤 발길이 닿지 않았던 초등학교에 가봤다.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에 섰다. 그때, 구령대 옆 의자에 털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빠다.
 
아빠 옆에 가서 앉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단다. 미웠다. 아빠가 돼서 아들한테 죽고 싶단다.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슬쩍 아빠 얼굴을 봤다. 조혈모세포 이식 부작용으로 얼룩덜룩해진 두 볼 위에 눈물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갑자기 목이 먹먹해지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내 내 볼에도 눈물이 흘렀다. “딸꾹!” 그런데 갑자기 딸꾹질이 났다.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숨죽여 울다가 딸꾹질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다 큰 21살 사내놈이 울다가 딸꾹질이라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
살고 싶지 않다던 아빠가 농담을 한다. 그리고 울지 말라고, 엄마랑 영배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라고 한다. 다 큰 남자 둘이 어린아이처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추운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다. 그리고 2010년 봄, 군대 영장이 나왔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소양강 처녀가 치마를 흩날리고 서 있는 소양대교를 넘어 102보충대대로 갔다. 행사 진행 장교가 입대 장정들을 행사장 앞쪽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입대 소감을 말할 장정을 따로 단상 앞으로 불렀다. 손을 들고 단상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딱 두 마디 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나라 잘 지키다가 건강하게 돌아가서 집 잘 지키겠습니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 가운데 아빠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봤다. 목이 메었다. 22개월 동안 집 생각에 어깨가 들썩거리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리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빠는 내 머리가 길어져 군인티를 벗을 즈음 다시 백혈병에 걸렸다. 아빠는 다시 머리를 밀어야 했다.
“아들, 아빠 머리 밀어주라”
3년 만에 다시 이발기를 잡고 아빠 머리를 밀었다. 집을 나서기 전 아빠는 전화번호 2개가 적힌 쪽지를 주셨다. 이종란 노무사님과 공유정옥 선생님의 번호였다. 그리고 넷이 손을 잡고 기도한 후 병원으로 출발했다. 가족 모두 집에 함께 손을 잡았던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2012년 8월 30일, 태풍을 뚫고 영배가 병원으로 왔다. 나라 지키는 군인이 운다. 간호사 선생님은 정해진 면회시간이 아니라서 들여보내줄 수 없단다. 전투복을 입고 온 동생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는지 중환자실 출입문에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어줬다. 동생과 함께 주치의에게 목 인사를 하고 아빠를 보러 들어갔다. 아빠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자고 있었다. 일주일째다.
“아빠, 나 왔어요, 눈 좀 떠봐요”
영배가 울부짖었다. 주치의는 이젠 수면 약물을 줄여서 깨워도 의식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빠의 심장이 멈췄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 하기는 했지만 심장박동을 표시하는 모니터에는 굴곡 없는 선 하나가 지나갈 뿐이었다.
 
“누나, 나는 성배차 타고 갈게”
성배차? 까만색 그랜저, 8년간 아빠의 출퇴근길을 함께 했고 우리 가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아빠차를 막내삼촌이 성배차라고 불렀다. 발인 전날에는 조문객을 맞이하다가 쓰러진 엄마를 119 구급대가 데려가서 홀로 빈소를 지켰다. 장례식 내내 고모들은 영정사진 앞에서 엉엉 울었다. 불교집안으로 시집가 교회에 가본지 오래라는 막내이모는 아빠를 위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예수님하며 기도를 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그러나 막내삼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결국 나를 무너뜨렸다.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중후한 자동차가 이제는 내 차란다.
 
내게는 너무 무거운 그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추모의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희뿌연 연기가 나오는 공장이 보였다. 아빠가 8년간 다니던 직장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 공장에 다니는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그 공장 덕분에 아빠는 장학금 한번 받은 적 없는 두 아들의 등록금을 내줄 수 있었다. 직원 할인으로 최신형 벽걸이 TV를 거실과 안방에 각각 한 대씩 장만해 놓을 수 있었다. 팔다리에 기운이 빠지기 전까지 한 달에 20만 원짜리 고급 헬스장을 단돈 1만원에 다닐 수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1년여 만에 그 공장 앞을 다시 찾았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을 위해 법원에 제출할 성명서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파란색 목줄을 맨 수많은 노동자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활동가들 앞을 오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서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아빠, 아빠도 아프기 전에는 반올림과 나 같은 젊은이들을 외면하셨나요?’
회사 아저씨들은 관리직이었던 아빠는 반도체 공정 클린룸에 들어간 적조차 없다며 아빠의 고장 난 몸이 공장 작업환경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아빠는 분명히 현장에 자주 들어갔다고 했는데. 성명서를 받는 날에도 파란 목줄 노동자들은 지독히도 무관심했다. 단지 아빠의 목숨을 앗아간 공장 옆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만 관심을 보이며 서명을 해줬다.
 
지난 3월 6일에는 황유미 누나의 7주기 추모제가 있었다. 누나는 꽃다운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있었으면 나보다 네 살 누나니까 누나다. 누나는 아빠와 다른 생산라인에서 다른 일을 했다. 하지만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고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누나와 아빠, 그리고 떠난 반도체 노동자들을 추모하려 갓 전역한 동생과 함께 강남역 8번 출구로 갔다. 입춘이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거대한 빌딩이 만들어내는 칼바람은 매서웠다. 가족 잃은 슬픔 있는 사람, 자본권력에 분노하는 서비스센터 노동자들, 또 하나의 약속 영화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황유미 누나의 아버지 황상기 아저씨가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아저씨는 누나가 왜 아팠는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주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아저씨는 딸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나도 아빠랑 약속을 했다. 부녀간의 약속과는 다른 부자간의 또 하나의 약속을. 그리고 약속을 지키면서 기다린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내 아빠는 개인적, 유전적으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중앙_[사설] 세계서 인정받는 문화 한류, 제대로 뒷받침해야

올 런던도서전에 주빈국으로 나선 한국이 깜짝 화제가 된 책 덕분에 출판 한류 바람을 일으켰다. ‘주빈국’이란 영어 문자 그대로 마켓 포커스(market focus)가 된 셈이다. 한국 출판물이 현지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가 하면 판권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했던 한국이 문학과 출판물을 내세운 ‘콘텐트 코리아’의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8일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제43회 런던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황선미씨의 『마당을 나온 암탉』 영어판은 영국 대형서점 포일스의 워털루점 종합베스트 1위에 올랐다. 또 다른 대형서점 워터스톤에서는 ‘3월의 책’으로 뽑혔다. 비영어권 문학에 배타적인 영국 출판 시장 벽을 한국 소설이 뚫은 것이다. 모성이라는 낯익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비극적 결말로 깊은 인상을 남긴 『 … 암탉』은 이질적인 문화 차이를 보편성 깊이로 극복했다.

 이미 전 세계에 두루 퍼진 K팝과 드라마, 영화와 게임을 즐기며 한국 문화의 가벼움을 맛본 외국인들이 이제 한국 문학과 출판물을 읽으며 그 이면의 무게를 헤아리게 시작했다. 이번 런던도서전은 그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주빈국 작가로 초대받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좋은 번역’의 중요성과 그 부족함을 입 모아 강조했다지만 번역 이전에 원전의 완성도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다. ‘마음을 여는 책, 미래를 여는 문’이란 주빈국 주제는 이런 점에서 출판 한류의 꿈을 대변한다.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제시한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국민과 예술인들이 더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문화 한류의 길을 내고 세계인의 눈길을 끌어 모은 건 대체로 문화인 개개인의 피땀 어린 노력 덕이었다. 나랏돈 한 푼 만져본 일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를 헤쳐 나가느라 예술혼을 맘껏 발휘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창작의 자유만 보장해 달라는 예술인들 호소는 귀 기울일 구석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새해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콘텐트의 고부가가치 성장산업화를 내세우며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문화기술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영화, 게임, 음악, 뮤지컬, 애니·캐릭터 등 5대 킬러콘텐트 육성을 통한 한류 재점화도 다짐했다. 이번 런던도서전은 문화가 구호나 지원을 먹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행정은 통치행위로서 예술을 이용하려 하지만 예술은 체질상 행정을 믿지 않는다. 문화가 창조경제의 한 축으로 작동하려면 문화융성 같은 행정 캠페인보다는 예술혼을 향한 허심탄회한 존중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앞서가는 예술가를 따라잡으려면 행정도 아트의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 세계로 뻗어가는 문화 한류를 뒷받침할 행정 아트를 기대한다. 

중앙_[사설] 선행학습 금지, 어설프게 하면 사교육 천국 된다

교육부가 어제 입법예고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일명 선행금지법)’ 시행령에서 밝힌 선행의 기준은 매년 4월 발표되는 연간 교육과정 진도계획이다. 학교가 이 계획보다 앞질러 가르치는 행위는 선행에 해당된다. 선행학습을 한 중·고교는 재정지원금을 삭감당하거나 심할 경우 정원감축이란 불이익도 당한다고 한다.

 과도한 선행학습이 학생들에게 입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특히 대학 역시 고교 교육의 안정화라는 차원에서 논술 등의 문제를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하는 등 공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의 선행 판단 기준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모든 학교가 모든 교과를 똑같이 가르치고, 똑같이 진도를 나간다고 가정한다면 교육부의 선행 기준은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미 자율형사립고(자율고)나 특수목적고교·영재고 등에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교육과정 편성이 풀려 있는 일부 학교에선 언제든지 고1 때부터 입시 과목을 앞당겨 가르칠 수 있다. 결국 교육부의 선행 기준은 일률적인 규제가 가능한 공립 일반고에나 적용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고3 이전에 입시과목을 끝내는 게 현재 학교의 관행이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선행 기준은 가뜩이나 학력 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공립 일반고의 교육과정 운영을 혼란케 할 가능성도 있다. 교육부는 입법예고의 취지에 맞게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입법예고안이 몰고 올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학교 규제로 인한 풍선효과다. 학교가 진도계획에 발목 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사교육은 활개를 칠 게 불 보듯 뻔하다. 학교가 법률에 묶여 못하는 걸 사교육이 해주겠다는데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한 실정이다. 게다가 처벌 규정도 마땅치 않다. 업체가 선행학습을 한다고 광고를 할 리 만무한데도 입법예고안은 이처럼 허점투성이다. 사교육 풍선효과를 막을 수 있는 근본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중앙_[사설] 버려지는 외국인·다문화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국제결혼과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이들이 여러 문제로 양육을 포기한 다문화·외국인 아이들도 늘고 있다.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본국에서 데려온 중도 입국 자녀와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이 국내에서 출산한 자녀의 경우 외국 국적이어서 법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호·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지 취재 결과 국내에서 버려지는 외국인 아이들은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육원 등 보호시설에 갈 수 없는 것은 물론 그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은 뜻있는 사람들이 가정을 잃은 외국인·다문화 가정 출신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그룹 홈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최소한의 보호만 받고 있다. 그룹 홈도 아이들의 국적 문제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후원금에 의지한다니 운영이 힘들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국제화 시대를 맞아 수많은 외국인 신부·노동자를 필요로 하게 됐다. 이들은 한국 사회와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고마운 존재다. 버려진 외국인 아이는 이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생긴 문제다. 아이들은 본국과 부모와의 연결이 끊어진 상황에서 기댈 곳이라곤 한국 사회밖에 없다. 따라서 국적을 떠나 한국 사회에서 책임지고 지원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생활을 하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돌봐야 한다. 국적을 떠나 한국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문을 여는 게 보편적 인권 존중의 자세일 것이다.

 특히 이들은 한국어가 서툴러 주변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힘들고 한국 생활에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다. 부모 한쪽이 한국인인 다문화 가정 출신 아이들도 정부의 보호 대상이긴 하지만 적응 문제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창 예민한 시기에 또래 아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해 정서 성장에 문제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국 생활에 필요한 언어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면서 이들을 최대한 보듬어야 한다. 

조선_[사설] 安 대표, 왜 '철수 정치'라는 말까지 듣는지 성찰해 보길

새정치연합 안철수 대표는 9일 기초선거 불(不)공천 여부를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결정키로 한 데 대해 거듭 "불공천 소신을 접고 후퇴하겠다는 뜻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최종 결과가 어떻든 안 대표가 공을 떠넘긴 것은 사실이다. '유(U)턴 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안 대표는 이날 "만에 하나 당원과 국민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그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스스로 '퇴로(退路)'까지 열어둔 셈이다.

안 대표는 대선 후보직도 그렇게 끝까지 간다고 하더니 결국 사퇴했고, 신당도 국민 앞에 수도 없이 반드시 창당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접어버렸다. 이번에 또 자신이 거듭해 온 다짐과는 달리 방향을 틀고 있다. 세간에 '철수 정치'라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 대표는 중요한 고비마다 뒷걸음질을 하게 되는 이유를 밖에서 찾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에게서 답을 찾지 않으면 이런 일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안 대표는 지난 대선 때 국회의원 수 축소, 의원 세비 삭감, 정당 국고 보조 감축, 중앙당 폐지를 들고 나왔었다. 민주당과 대선 후보 단일화 경쟁을 하면서는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 대통령이 낫다"는 말도 했다. 그는 지난해 독자적으로 신당 창당을 추진할 때는 소선구제 개편을 통한 다당제 실현, 대통령 결선투표제 실시를 주장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실현된 것이 없고 실현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존재하는 정치 현실이 문제가 많다 해도 여기까지 오게 된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이 현실을 바꾸려면 그 역사에 대한 경험과 고뇌라는 바탕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안 대표는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하나도 거치지 않은 사람이다. 현실 속에서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어려움에 마주치면 쉬운 길을 찾게 된다. 안 대표가 기성 정치를 비판할 때 많은 국민이 신선하게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과 맞닥뜨린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안 대표가 그 너머로 한 번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기초 불공천은 수만명의 탈당과 야당의 지방선거 참패를 부를 수 있는 문제다. 그간의 안 대표 모습을 보면 이런 역효과와 부작용을 깊이 고민했다는 흔적이 없다. '개혁' '약속'이라는 겉포장에만 매달리다 피할 수 없는 벽에까지 몰린 것만 같다.

안 대표와 같은 사람이 우리 정치에서 해야 할 역할은 반드시 있다. 안 대표는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봤으면 한다. 그래서 자신의 처신도 결국엔 '새 정치'를 내건 또 다른 인기 영합주의일 뿐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앞으로 '철수 정치'라는 비아냥은 다시 듣지 않게 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_[사설] 아동 학대 막으려면 아동보호기관 제 역할 하게 바꿔야

경북 칠곡의 계모(繼母)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기관으로 전국에 50곳 있다. 이 기관들은 아동 학대 신고가 들어올 경우 긴급 상황으로 판단되면 12시간 이내, 그렇지 않은 때는 72시간 이내에 현장에 나가 학대 여부를 조사한다. 조사 결과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긴급히 격리할 필요가 있으면 3일간 의료기관이나 아동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다. 그 뒤에도 계속 격리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치단체장에게 장기 보호를 요청하게 된다.

아동보호기관마다 상담원은 6~10명 정도인데 학대 신고 건수는 2009년 9309건에서 작년 1만3706건으로 늘었다. 전국에서 38분에 한 번꼴로 아동 학대 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셈이다. 아동보호기관 관계자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찾아갈 때 이동 거리가 평균 91㎞, 걸리는 시간은 2시간이라고 한다. 정부가 2005년 아동복지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떼어 넘기면서 아동보호기관에 대한 예산 지원과 관심이 뚝 떨어졌다.

아동 학대의 84%는 부모(양부모·계부모 포함)에 의해 일어난다. 학대받는 아이는 함께 지내야 할 부모가 무서워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아동보호기관 상담원은 현장 조사를 할 때 이런 아동 심리를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칠곡 사건에서도 아동보호기관 사람들은 피해 아동이 '넘어져 다쳤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는 바람에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현장 조사 뒤 아동을 격리시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피해 아동은 나중에 고모와 변호사의 도움으로 계모·친아버지와 따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계모가 동생을 죽였고 평소 자신들을 학대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동보호기관 상담원들이 제 역할을 하려면 현장 조사 요령, 격리 조치 여부 판정 지침을 평소 정확하게 몸에 익히고 있어야 한다. 상담원들은 연 1회 직무교육을 받게 돼 있다. 교육 횟수 자체가 적은 데다 그마저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동 학대를 막으려면 정부가 예산을 더 지원해서라도 기관 수를 대폭 늘리고 상담원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 아동보호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전면 개편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_[사설] 강덕수 前 STX 회장은 뭐가 두려워 증거 지웠나

검찰이 8일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에 대해 회사 돈 540억원 안팎을 횡령하고 3100억원대 배임을 한 혐의 등으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 전 회장은 비리 금액도 많지만 수사를 앞두고 컴퓨터상의 서류를 없앤 흔적이 드러났다고 한다. 검찰이 STX그룹을 압수 수색했을 때 강 전 회장과 임원들이 사용하던 컴퓨터의 파일들이 디가우징(강력한 자력으로 자료를 삭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술로 완전히 삭제된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를 동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강 전 회장은 쌍용양회 사원으로 출발, 2001년 쌍용중공업을 비롯, 은행 빚으로 범양상선(STX팬오션), 대동조선(STX조선해양) 등을 잇달아 인수해 그룹을 재계 서열 13위로 키웠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해운·조선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그룹 전체가 경영난에 빠진 끝에 작년에는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고 강 전 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강 전 회장은 이달 초 검찰에 출석하면서 정·관계 로비 의혹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해외 출장이 많아 전혀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뭘 숨기겠다고 복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컴퓨터 기록을 삭제했는지 궁금하다. 검찰은 증거 인멸을 도와준 사람들을 밝혀내야 한다.

검찰이 작년 5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압수 수색에 나섰을 때도 압수 수색 전날 밤에 일부 사무실 컴퓨터를 통째로 새것으로 교체한 사실을 발견했다. 2010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수사 때는 한화그룹 사무실에서 압수 수색 전날 중요 자료를 밤새워 파쇄(破碎)해 정작 검찰이 들어갔을 때는 잡지·소설책 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현행 형법은 자신의 범죄에 대한 증거를 없애는 것은 처벌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수사를 앞두고 회사의 공식 서류를 없애는 것은 법으로 보장된 자기방어권을 행사하는 차원을 넘어 범죄를 은폐·조작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국회는 회사 공식 서류를 조작·폐기하는 데 대해 처벌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경향_[사설]여전히 실효성 의심스러운 선행학습금지법

교육부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금지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세부사항을 담은 시행령안을 마련,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논술이나 구술·면접 등 대학입시에서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을 출제하는 대학에 정원 감축 및 재정적 제재를 가한다는 방안이다. 입학정원이 줄고 정부지원이 끊기는 것은 대학에 치명적 타격이 되기 때문에 제도상으로만 보면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게 한다.

거듭 지적하지만 선행학습을 억제하고자 하는 이 법의 기본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남들보다 앞서 가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초등학생은 중학교 공부를, 중학생은 고교 공부를 하는 작금의 무한경쟁식 선행학습은 분명 소모적이며 비교육적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교육당국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그 의지를 구현할 실질적 수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구두선에 그치고 만다.

선행학습금지법의 문제는 선행학습의 개념이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어디까지가 예습 또는 심화학습이고 어디까지가 선행학습인지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불법을 적발해 제재한다는 규제의 공식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어렵다. 당장 고교 유형에 따른 형평성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교육부는 선행교육 금지조항이 일반고와 특목고·자사고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했지만 특목고와 자사고는 설립 취지 자체가 전문심화교육을 목적으로 한다는 차별성이 있다. 고교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수업단위가 일반고보다 적고 교과운영에 자율권이 부여돼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에서 하는 적지 않은 수업은 과목 명칭이야 어떻든 내용상 선행학습일 소지가 크다. 선행학습금지법이 이들 학교에 유리하고 일반고에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우수학생을 자사고·특목고에 뺏겨 슬럼화하고 있는 일반고의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제도가 사교육의 시장규모를 되레 키워줄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학교의 선행학습은 규제하면서 학원의 선행학습은 허용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들이 시행령에서 조금도 보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이름의 법률이 ‘공교육 황폐화’를 가져오는 역설을 피하려면 보다 면밀한 현장진단과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경향_[사설]무인기에 대한 국방부의 그릇된 대응

북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소형 무인기는 조악한 정찰 장비인 것으로 밝혀졌다. 송수신을 할 수 없고 영상 정보도 구글 어스 등 상업적 영상 정보 업체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소형 무인기 자체가 군사적 위협 수단인 것도 아니다. 더구나 무인기 추락은 연료 부족·엔진 고장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미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대북 정찰 및 첩보 수집 장비와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드러낸 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제한적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무인기가 청와대 상공에 떠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게 심각하고 다급한 군사적 위협인 양 과장하고 첨단 무기를 또 들여와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런 문제일수록 정부는 신뢰감을 주면서 안정감 있게 대처해야 한다. 안보불안 심리에 편승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안보불안 심리를 오히려 부추기고 그 때문에 부적절한 대응을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특히 다른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 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과 특히 휴전선 인근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면서 “방공망 및 지상 정찰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라면 불안을 조장하는 쪽보다는 객관적 상황을 알리고 안심시키는 역할을 했어야 했다. 이런 접근 태도 때문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안보상황의 엄중함과 심각성” 등의 과장된 표현을 했고, 그 때문에 시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언론도 청와대를 찍은 사진이 평양으로 전송됐다거나 무인기에 폭탄을 장착해 터뜨릴 수 있다며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정보로 곧 하늘에서 폭탄 세례가 가해질 것처럼 무책임한 선동적 보도를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방부는 어제 불안감을 해소한다며 북한과 비교할 수 없는 첨단 무인 정찰기를 공개했다. 

이런 정찰 수단의 공개는 ‘남과 북 모두 서로에 대해 정찰 활동을 한다. 따라서 정찰 자체를 두고 서로 시비할 것 없다’는 논리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 정부는 북한이 국제법과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 물론 국방부는 북한 영공에서 정찰했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활동은 상호주의로 상쇄될 수 있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게다가 군사 비밀 공개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그렇게 했다.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할 필요도 없었던 일을 한 것이다.

경향_[사설]한국 대표은행 도쿄지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은행 전 도쿄지점장이 그제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추모공원의 불탄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금융당국이 우리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사건을 검사 중이었고, 그가 핵심 당사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말에는 KB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대출업무를 담당하던 재일동포 직원이 자살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 은행 도쿄지점 출신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는 것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5000억원대의 대출사고가 발생한 뒤 검사범위를 확대해 지난 2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도쿄지점에서 각각 600억원대와 130억원대의 부당대출 의혹을 잡고 검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된 도쿄지점들은 삼류 대부업체 수준의 영업을 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 은행에서는 대출이 쉽지 않은 한국계 기업과 교민에게 최소한의 자격요건도 따지지 않은 채 부실대출을 해줬다. 브로커까지 나서 대출자를 연결해 줬다 하니 기가 찬다. 일본 주류층을 상대로 영업을 해 금융영토를 넓히라고 했더니 교민을 상대로 고금리로 손쉽게 장사하면서 뒷돈을 챙긴 셈이다. 일부 직원은 이렇게 챙긴 돈을 한국으로 들여와 건물을 샀다. 어떤 이는 한국에서 대부업까지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의 경우 부실 대출이 비자금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단서도 파악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잇단 사건이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닌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먹이사슬’ 형 조직범죄임을 의미한다. 국내 금융계에서 도쿄지점은 출세 코스로 꼽힌다. 더구나 사건이 발생한 은행들은 한결같이 정부 입김이 강한 곳이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실세들이 좌지우지했다. 당시 기업은행장 역시 특정 인맥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도쿄지점 비리는 국가적 망신 차원을 넘어 은행들의 해외지점 관리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사안이다. 불법행위가 장기간 조직적으로 진행됐음에도 경고음은 없었다. 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해외진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며 앞다퉈 중국과 동남아에 점포를 대거 신설해왔다. 이들 점포가 도쿄지점과 다르리라는 보장이 없다. 내부통제 없는 해외진출은 사상누각이다. 해외점포 전체에 대한 총괄 점검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한겨레_[사설] ‘2차 철도 파업’ 유도하는 듯한 코레일의 도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경영진과 노조가 다시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격돌 직전까지 가고 있다. 이번에는 갈등의 불씨가 대규모 전환배치이다. 코레일이 노동조합원이 중심이 된 현장 직원 726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10일 예고한 가운데, 철도노조는 이를 막기 위해 재파업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노조원 2명이 이미 9일부터 서울 수색역의 철탑에 올라 항의 농성을 시작했고 노조 간부 80여명도 서울역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코레일 경영진과 노조 간 불신과 갈등의 골이 다시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연말 사상 최장기 철도파업 때처럼 국민 불편과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질 것 같아 걱정이다.
코레일 쪽은 이번 전보인사에 앞서 자체 취업규칙인 ‘순환전보 및 정기 인사교류 시행안’을 새로 마련하고, 노조와도 몇 차례 간담회를 거친 끝에 인사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지역·직종 간 인력 불균형 해소와 경영 효율화를 위한 경영진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임을 내세워 노조의 반발을 일축해왔다. 그러나 노조 주장을 들어보면, 이번 인사는 지난해 연말 노조 파업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 ‘노조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수밖에 없다.
코레일은 고유한 업무 특성 때문에 기관사 등 현장 직원을 지역과 직무 단위로 따로 채용해 운용해왔다. 직원에게 일터와 삶터의 일치를 보장해온 것이다. 임금 및 단체협상안에도 ‘비연고지 전출 금지’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환배치 규칙을 만들어 본인 희망과 상관없이 근거지를 옮기도록 하는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 3일에는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소속의 한 조합원이 전보 대상자 통보를 받은 뒤 억울함과 불안감을 호소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코레일의 무더기 전보 조처는 현행 노동 관계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에 정기적 이동이 없었던 직무나 지역 간 인사교류가 가능하도록 갑자기 취업규칙을 바꾸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취업규칙의 개정과 시행은 사전에 노조와 충분히 협의하고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법적 효력이 있다.
코레일 경영진은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지금까지 130명을 해고하고 404명을 중징계했다. 또 노조에 16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116억원에 이르는 가압류를 걸었다. 철도노조는 이번 전환배치도 노조 무력화 시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여야의 중재로 파업을 타결하고 국회가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마당에 코레일 경영진이 역행하는 행동을 취하는 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겨레_[사설] 법률 자문까지 왜곡하며 의료 영리화 앞장서다니

보건복지부가 의료법인의 의료 영리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법률 검토 결과까지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발단은 1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과 부대사업 확대를 위해서는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자문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복지부는 바로 다음날 반박에 나섰다. “자법인 설립은 의료법에서 별도 제한규정이 없으므로 의료법상 부대사업 수행으로 한정하면 가능하다”며 이게 법률 전문가 다수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용익 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법무법인 자문 결과를 입수해 보니, 내용이 정반대였다. 법무법인 두 곳 가운데 한 곳은 의료법 개정 사안이라고 분명히 밝혔고, 다른 한 곳도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허용의 한계를 엄격히 봐야 한다”고 한 것이다.
복지부의 이런 사실 왜곡은 사회적 논의는 물론 국회에서 법률 개정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영리 자회사 문제를 강행하려는 꼼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며 국회의 입법권 침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무리수까지 두는 것인가.
의사들은 이미 파업을 통해 대다수가 이 사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서를 보면 의료법인의 절반 가까이가 “영리 자회사가 필요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 정책은 극소수 대형병원과 의료계 진출을 확대하려는 일부 재벌들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커진다.
영리 자회사는 투자와 배당이 가능한 주식회사로, 거의 모든 의료 관련 사업에서 돈을 벌 수 있다. 그 돈은 다름 아닌 병원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자회사가 병원에 건물을 임대해서 수익을 남기려면 병원은 그 임대료를 벌기 위해 의료비를 높여야 한다. 또 자회사가 의료기기와 의료용품, 의약품 등을 빌려주거나 공급하는 사업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병원이 그만큼 환자들한테서 의료기기와 의료용품 사용료를 더 받아야만 한다. 의료비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료비 상승만이 아니라 부적절한 강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자회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헬스클럽, 온천장, 바이오산업은 물론 건강식품, 화장품 사업까지 포함돼 있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공익적 비영리기관에서 돈 버는 게 주목적인 ‘의료종합상사’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의료비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할 사안이다. 마침 10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 회의는 의료 영리화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첫 자리다. 국회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_[사설] 미-중 갈등 넘어 6자회담 재개에 힘써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가 이전보다 구체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국방장관이 정면으로 설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한반도·동북아 정세를 안정시키고 북한 핵 문제를 풀기 위한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8일(미국시각) ‘한·미·일이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요구해온 비핵화 사전조처를 유연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이전보다 진전된 태도다. 유연성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여러 가능성을 찾아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처’를 일방적으로 요구해온 이제까지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태도가 좀 더 전향적인 회담 재개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특히 회담 재개에 소극적인 미국과의 협의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은 한-미 군사훈련과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 위협 등으로 긴장이 지속되는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관계가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했다. 중국을 방문 중인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과의 회담과 국방대학 강연 등에서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그는 ‘중국이 도발적이고 위험한 북한을 계속 지지하며 스스로 국제적 지위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국의 노력 등도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듯한 헤이글 장관에 맞서 창완취안 부장은 “중국은 영토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군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전쟁불사론’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2대 강국(G2)으로 꼽히는 미국과 중국이 신형대국관계 구축은커녕 오히려 불안감을 조장하는 모양새다.
미국과 중국이 사사건건 충돌한다면 동아시아 정세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두 나라를 포함해 모든 동아시아 나라들에 피해를 준다. 두 나라가 서로의 근본적인 이익을 인정하고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모든 나라에 중요하다. 특히 우리 정부는 미-중 관계가 안정되도록 균형 잡힌 외교를 펼쳐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모든 한반도 관련 사안은 남북한과 미국·중국의 뜻이 통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최대의 시금석이 바로 6자회담 재개 논의다. 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수석대표 회의는 중국과의 입장 조율을 위한 징검다리 구실을 해야 한다. 중국은 회담 재개 의지가 강한 나라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손을 함께 잡고 논의 진전을 주도해야 한다.

장기판에 녹아있는 항우와 유방

장기판에 녹아있는 항우와 유방

항우와 유방의 대결

진시황의 진제국은 천하통일 후 불과 15년만에 막을 내렸다.

초한전쟁(BC206~BC202)은 항우와 유방이 3년에 걸쳐 한 싸움이다.


☆초반에 우세했던 항우가 패배한 이유?

첫째,유방은 우세한 항우 군대에 대항하여 포위망을 만든 전략전술의 승리다.

둘째,유방의 모략공작으로 항우의 군사들을 이간질하여 군신간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셋째,유방의 군대는 물자가 원활히 보급되었다.

넷째,유능한 인재가 있었다.

장량의 전략전술,
소하의 군량조달과 보급로 확보,
한신의 지휘능력...


☆유방이 부하를 다스리는 특징

첫째,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어떠냐,어떻게 하지(하여-何如)?"


둘째,공적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내렸다.

☆항우는 대조적이었다.

유방은 패현출신의 백수건달이고,
항우는 귀족 출신이다.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컸다.
초반에 싸움에 연승을 올렸으며 게다가 20대로 젊었다.

훌륭한 참모 범증 등 부하의 의견을 무시하고 항상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더욱이 전리품이 생기면 혼자서 차지했다.

유방이 조직의 힘을 잘 활용했으나 항우는 그러지 못했다.

후일을 도모하지 않고 "해하전투"에 패해 31세의 나이에 자결을 했다.


항우와 유방에 대한 글 모음


☆항우와 유방 - 어떻게 사람을 얻는가?

http://me2.do/5ujf347u


☆유방과 항우

http://me2.do/GTLHB3rc

유방과 항우

劉邦和項羽
진승과 오광의 봉기가 일어나자 각지의 백성들이 호응해 봉기를 일으켰다. 농민 봉기의 폭풍은 단번에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남방 회계군에서도 강대한 농민 봉기가 일어났는데 주동자는 항량(項梁)과 그의 조카 항우(項羽)였다. 항량은 초나라 대장군 항연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향연은 진나라 대장 왕전이 초나라를 멸망시킬 때 싸움에서 패하고 자살했는데, 항량은 이 원수를 갚고 초나라를 재건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조카 항우는 몸이 웅장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항량을 따라다니며 많은 무예를 배웠다.

항량은 원래 하상(下相, 강소성 숙천현 남부) 사람인데 남과 원수진 일이 있어서 회계군 오중(吳中)으로 피신해 있었다. 항량은 문무를 겸비하였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형님으로 대접하며 따랐고, 그는 병법과 무예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이때 진승이 봉기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항량은 위훈을 세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젊은이들을 데리고 관가로 쳐들어가 군수를 죽이고 회계군을 점령했다. 그리고 며칠 만에 8천 명이나 되는 봉기군을 조직했다. 이 봉기군은 그곳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었기에 ‘자제병(子弟兵)’이라고 불렸다. 항량과 항우는 8천 자제병을 거느리고 장강을 넘어 광릉군(廣陵郡, 강소성 양주시)을 점령하고 이어서 회하를 건너 북으로 전진했다. 도중에 각지의 봉기군들이 찾아와 항량의 군대에 가담했다. 이듬해에 유방(劉邦)도 1백여 명의 봉기군을 데리고 항량의 군대에 가담했다.

유방
유방은 패현(沛縣, 강소성 패현) 사람인데 진나라 때 정장(亭長)이라는 작은 벼슬을 지냈다. 열 개의 리가 한 정(亭)이었으니, 정장은 열 개의 리를 관할하는 관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유방에게, 여산(驪山)으로 갈 민부들을 압송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민부들을 압송하여 여산으로 향하는데 도중에 매일 몇 명씩 도망을 쳤다. 유방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산에 도착하면 그 책임을 져야만 했고, 엄격한 진나라 법에 의하면 살 가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은 민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여산에 가면 매를 맞아 죽지 않으면 일에 지쳐서 죽고 말 것이다. 가령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너희를 다 놓아주겠으니 각자 제 살길을 찾아가라.”

민부들은 모두 유방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수십 명은 유방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유방은 그들을 데리고 망탕산(芒碭山)으로 들어가 숨었다. 패현 현청의 아전인 소하(蕭何)와 옥지기인 조삼(曹參)은 유방의 인품이 좋다는 것을 알고 일찍부터 친분을 맺었으며 왕래가 잦았다. 진승이 진현을 점령하자 소하와 백성들은 패현 현령을 죽이고 사람을 망탕산에 보내어 유방을 데려왔다. 사람들은 유방을 패현의 수령으로 올려놓았으며, 그를 ‘패공(沛公)’이라고 불렀다. 얼마 지나 장량(張良)도 유방을 찾아와 대오에 가담했다.

사수정(泗水亭)
지금의 강소성 패현(沛縣)에 있다. 『패현지』에 따르면 유방은 사수의 정장을 지냈다고 한다.
항량은 유방을 인재라고 여기어 그에게 군사를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유방은 항량의 수하가 되었다. 이때 각지 봉기군의 영도권은 모두 전국시대 6국의 귀족들 손에 들어갔다. 그들은 자기의 기반을 닦느라고 끊임없이 서로 공격했다. 진나라 대장 장한(章邯)과 이유(李由)는 이 기회를 타서 봉기군을 각개 격파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항량은 설성(薛城)에서 봉기군을 재정돈했으며, 호소력을 높이기 위해 모사 범증(範增)의 말을 좇아 회왕의 손자를 초나라 왕으로 세웠다. 초나라 사람들은 전국시대 말기에 초나라 회왕이 진나라의 꾀임에 빠져 진나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일에 여전히 분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왕의 손자를 그냥 회왕이라고 불렀다.


☆항우와 유방의 전쟁

http://me2.do/x5A3EoEs

항우와 유방의 전쟁

초한전
-楚漢戰
"강을 등지고 진을 치는 배수진 또한 병법에 있는 것이오.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오.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게 할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소? 또 내가 평소부터 사대부를 길들여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과 같소. 이런 형국이므로 이들을 죽을 땅에 두어 저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우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것이데, 어떻게 이들을 쓸 수 있겠소?"1)
-한신, 『사기』 「회음후열전」 중에서
중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매우 두드러진 특징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중국사가 '통일→분열→재통일→재분열'을 수없이 되풀이해 온 역사라는 것이다. 현대 중국조차도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 즉 공산당의 '통일 전쟁'에 의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중국 공산당 정부가 대만문제나 티베트·위구르의 독립운동, 한반도 통일 이후 만주(동북3성) 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역사가 그들에게 중국에서 '통일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이었던 진(秦)은 춘추전국시대의 '분열'을 통과해서 탄생했지만, 20년도 채 못 되어 진시황의 아들인 제2대 황제 호해에 이르러 무너졌다. 진(秦) 제국이 무너지면서 중국은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이 분열의 늪을 건너 탄생한 제국은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이다. 그러나 유방은 '역발산 기개세'의 영웅 항우와 초한전(楚漢戰)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전쟁을 치러야 했다. 초한전(楚漢戰)은 진(秦)이 세운 제국을 양분한 항우와 유방, 두 진영이 치른 전쟁이었던 만큼 그 규모와 양상이 예전 전쟁과는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천자 대 제후국, 제후국 대 제후국, 제후국 연합 대 제후국, 제후국 연합 대 제후국 연합의 형태로 전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중국 전체가 전쟁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진시황도 제후국들을 각개 격파하거나 혹은 제후국 연합을 상대로 통일 전쟁을 벌였으므로, 중국의 전 영토가 동시에 전쟁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초(楚)나라 왕 항우와 한(漢)나라 왕 유방이 겨룬 초한전(楚漢戰)은 진시황이 세운 진(秦) 제국을 양분한 상태에서 '통일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당시 전 영토가 전쟁의 참화에 휩싸였다고 할 수 있다.

한신(韓信)
중국 역사에 등장했던 숱한 통일 전쟁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전쟁은 한(漢) 제국 멸망 이후 유비의 촉(蜀)나라와 조조의 위(魏)나라 그리고 손권의 오(吳)나라가 천하 대권의 향방을 두고 치열하게 다툰 '삼국 전쟁'일 것이다. 그 인기의 비결은 단연 소설 『삼국지』(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때문이다. 이들 삼국의 통일 전쟁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또 다른 통일 전쟁을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코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겨룬 초한전(楚漢戰)을 추천하겠다.
이 초한전(楚漢戰)은 불세출의 영웅인 '역발산기개세(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뒤덮다)'의 항우, 시정잡배에서 천하의 주인인 황제의 지위에까지 오른 수수께끼 같은 인물 유방, 여황제(女皇帝)나 다름없는 권력을 휘두르며 한나라 창업의 일등공신 역할을 한 유방의 처 여태후, '바짓가랑이 고사'의 주인공에서 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대장군이 된 한신, '패왕별희'로 널리 알려진 항우와 우미인의 비극적 사랑 등 인기 드라마적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초한전의 두 주인공인 항우와 유방은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고 있는 인물이다. 먼저 항우는 초(楚)나라의 명문 장군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초(楚)나라를 호령한 명장들을 배출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명문 장군 집안의 자식답게 "글을 배워보았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쓸 때나 도움이 될 뿐이고, 검술을 익혀도 사람 한 명을 상대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인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싶다"2)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었다. 반면 유방은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으로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이름조차 확실하게 전해오는 것이 없고, 유방도 황제가 된 이후에 비로소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항우는 '역발산기개세'의 천하장사답게 대장부의 풍모를 지녔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었지만, 타고난 성격이 의심이 많고 도량이 좁아 아랫사람들을 잘 다루지 못했다. 반면 유방은 특별한 재주도 없고 인물도 뛰어난 편이 못되었지만 스스로 평가하는 것처럼 사람을 다루는 재주가 남달랐다. 유방이 항우와 자신을 평가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사람을 다루는 재주와 능력에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자신이 지닌 장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천하를 얻는 데 이를 적극 활용했으리라는 걸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남다른 재주와 능력을 지니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명확하게 깨닫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그만의 에너지였을 것이다.
초한전(楚漢戰)이 진행되는 양상과 전개과정을 볼 때, 유방이 중국의 주인이 된 것은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대 사건이었다. 유방은 결코 항우와 대적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실제 유방은 항우와 싸우는 족족 참패했다. 그런데 유방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항우는 사람들을 다루는 재주만 형편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정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인물이었다. 좀 혹독하게 말하면 항우는 '정치적 무뇌아'였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전투에서는 백 번 싸워 백 번 모두 이길 수 있는 재주와 능력을 지녔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재주와 능력'은 도대체 없는 것이다.
반면 유방은 사람을 다루는 재주와 능력도 출중했지만,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본 마음을 숨기고 몸을 낮출 줄 아는 정치적 교활함과 '토사구팽의 고사'가 증명해 보이듯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발 노릇을 해온 측근이라도 가차 없이 제거하는 정치적 잔인성을 함께 갖추고 있던 인물이었다. 유방은 마키아벨리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군주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덕목(?), 즉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잔인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평소에는 납작 엎드려 있다가도 기회가 찾아오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 인간으로서, '전투에서는 백 번 싸워 백 번 모두 져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재주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자세하게 나오겠지만, 항우와 유방이 보여준 이러한 차이가 한신에 대한 두 사람의 '판단과 입장'이 그토록 확연하게 달랐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항우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무뇌아였고 반면에 유방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치밀하고 교활했던가는 진(秦)제국을 멸망시킨 후 그들이 보여준 국가 설계도(국가 건설 전략)를 보면 알 수 있다.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
항우는 진(秦)제국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거록 전투'의 승리 이후 스스로 서초패왕에 올랐다. 그리고 (마치 황제가 된 것처럼) 19명의 제후왕들을 봉했다. 유방도 이때 항우에 의해 남정을 수도로 하는 한중 땅을 분봉 받아 한(漢)왕이 되었다. 항우는 예전의 주(周)왕조가 그랬듯 당시 중국 천하를 자신이 세운 서초(西楚) 왕국의 통치 밑에 두고자 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정치적 식견이 있었다면 진시황이 왜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의 분봉제와 제후제도를 없애고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제와 군현제를 실시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천하의 권력이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바로 그 시점에 진시황의 설계도에 따라 국가체제를 정비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과거 춘추전국시대의 질서, 즉 패왕의 정치(제후의 우두머리가 시행한 정치)로 돌아가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했다. 항우는 천하의 주인이 되어 모든 제후왕들 위에 군림하고자 했으나, 제후왕들은 과거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봉해진 영토에 대해서는 하나의 독립국가로 이해했다. 또한 항우는 춘추전국시대처럼 제후왕들의 상호간 영토전쟁과 반란을 피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실제 항우가 19개의 왕국을 봉하자마자, 제후의 자리를 둘러싼 '분열과 반란'의 조짐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결국 항우는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제후국의 분열과 반란행위를 토벌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토벌 전쟁은 악수(惡手)가 되어, 항우의 군대를 지치고 힘들게 했을 뿐 아니라 유방에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 모든 위기 상황은 정치적 무뇌아였던 항우가 자초한 것이었다.
반면 유방은 치밀하고 교활한 만큼 또한 민첩했다. 그는 항우가 스스로 불러들인 위기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즉 항우가 귀족들의 반란에 대한 '토벌 전쟁'을 벌이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재빨리 관중지역을 되찾고, 항우가 봉한 몇몇 제후 왕들을 제거하고 그 영토를 점령해버렸다. 그후 유방은 장량·진평과 같은 참모의 계략과 한신·팽월·경포와 같은 명장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항우를 제압하고 '통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권력이 확실히 자신의 수중에 들어오자, 진시황이 실시한 군현제에 따라 직할 영토는 군으로 나누어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장관을 보내 통치했다. 또한 제후왕에 봉한 통일전쟁의 일등 공신 7명 중 장사왕 오예를 제외한 6명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아들들을 대신 앉혔다. 한(漢)나라 왕실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체제를 확고하게 다져나간 것이다.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되자 유방은 항우와는 전혀 다르게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질서가 아닌 진시황이 세운 국가 질서에 따라 국가 설계 전략을 짜 나갔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초한전에서 패배한 항우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항우는 '패왕별희의 고사'처럼 '역발산기개세'의 힘과 포부를 가졌음에도 자신이 사랑한 한 여인조차 지키지 못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오직 한 여인 우희(우미인)와 함께 오강(烏江)에서 자결하고 만다. 『사기』 「항우본기」에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오강까지 쫓겨온 항우에게 '강을 건너 후일을 도모하라'는 촌로의 충언과 함께 항우의 대답이 기록되어 있다. 그 대답은 항우가 죽음을 앞에 두고 남긴 마지막 말 가운데 하나인데, 그가 지닌 '영웅의 기개'를 충분히 전달하고도 남는다.

『사기(史記)』 「항우본기」
사마천은 항우를 본기(本紀)에 넣어 황제 대우를 했다.
"나는 몸소 강동 자제 8,000명을 이끌고 장강을 건너 서쪽을 정벌했는데 지금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강동의 원로들이 여전히 나를 아껴 아무 원망도 하지 않고 왕으로 모신다 해도 내가 무슨 낯으로 그들을 볼 것인가."3)
항우가 귀족들의 반란을 토벌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유방은 좀 나쁘게 말하면 항우의 공백을 노려 '쥐새끼' 마냥 다른 제후왕들의 영토를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항우의 수도 팽성까지 공격하여 함락시켰다가, 항우의 뒤늦은 반격에 백 번 싸워 백 번 모두 졌다. 그런 유방이 어떻게 항우를 일거에 제압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유방에게 있지 않았다. 그것은 한신에게 있었다.

거록(鉅鹿) 전투
항우가 진(秦)나라의 정예부대 50여만 명을 무너뜨린 전투이다. 항우는 이 전투에서 진나라 군대를 하루 만에 아홉 차례 공격하여 모두 승리했다. 진나라에 저항하여 봉기한 저항 세력들이 승리의 기세를 장악한 중요한 전투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진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반면 항우는 각지에서 봉기한 군웅들을 제압하고 저항 세력의 수장(首將)으로 급부상했다.

항우

項羽
요약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유방(劉邦)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차지하기 위해 다툰 무장.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봉기하여 진군을 도처에서 무찌르고 관중으로 들어갔다. 진을 멸망시킨 뒤 서초 패왕이라 칭했으나 해하에서 한왕 유방에게 패배하자 자살했다.
출생-사망
BC 232 ~ BC 202
본명
국적
중국 진
활동분야
군사, 정치
출생지
중국 임회군 하상현
주요업적
진나라 멸망
이름은 적(籍), 우(羽)는 자이다. 임회군 하상현(臨淮郡 下相縣, 현재는 江蘇省) 출생.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항우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항우의 할아버지는 항연(項燕)이라는 사람으로 초나라 대장군을 지내 인물이며, 진나라와 전투에서 패해 자결하였다. 항우가 태어난 시기는 전국시대였으며 그가 장성하였을 때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였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삼촌 항량(項梁)에게 맡겨져 가난하게 자랐다. 젊은 시절 키가 8척에 이르렀고 큰 솥을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문자는 제 이름을 쓸 줄 알면 충분하고, 검술이란 1인을 상대할 뿐인 하찮은 것'이라 하여 공부를 하지않았는데 오로지 병법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항우는 이미 검술과 전투에 능했으며 각종 병장기를 잘 다루었다고 전한다. 삼촌 항량이 살인을 저질러 가족 모두가 회계(會稽, 현재의 쑤저우 蘇州)로 달아나 그곳에 정착하였다. 마침 회계군으로 행차하는 진나라 시황제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내가 저 녀석을 물리치고 황제 자리를 대신해 줄 테다'라고 호언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진나라에 반발하여 전국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중 BC 209년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으로 진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항우도 숙부 항량(項梁)과 함께 봉기하여 회계군 태수를 참살하고 인수(印綬)를 빼앗은 것을 비롯하여 진나라 병사를 휘하에 모아 세력을 형성하였다. 항량과 항우가 거병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도처에서 호걸들이 모여들었다. 진승오광이 내부 반란자에게 피살되자 더욱 세력이 확장되었고 책사 범증(范增)의 건의로 초나라 왕족 웅심(熊心:초나라 회왕의 손자)을 추대하여 봉기의 명분과 민심을 얻게되었다. 항량이 진나라와 전투에서 사망하고 진나라 장수 장한의 공격으로 진승, 오광 등이 차례로 죽자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초나라 송의가 최고 사령관을 맡아 지휘하였지만 진군하지 않자 항우는 송의를 죽이고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항우는 거록의 전투에서 앞장서 진나라 장한의 군사를 격파하고, 진나라 정예병을 패퇴시켰다. 항우는 거록의 전투에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며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여주며 가장 강력하고 유력한 인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항우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동쪽 성문인 함곡관[函谷關]을 넘어 관중(關中, 현재 산시성 위수)으로 쳐들어갔다. 항우는 진나라 시황제의 무덤을 파괴하며 황궁을 약탈하였고 이것으로 진나라는 멸망하였다. 
하지만 항우에 앞서 관중에 들어와 있던 유방(劉邦) 군사의 저항을 받았지만 함곡관에서 이를 물리치고 관중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홍문(鴻門)에서 유방을 만나 그의 사죄를 받고 오히려 그의 계략에 속아 놓아주고 말았다. 항우는 유방을 가소롭게 여기고 진나라 왕 자영(子拏)을 죽이고 도성 함양(咸陽)을 불사른 뒤에 팽성(彭城:徐州)에 도읍하여 스스로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진나라 멸망을 위해 함께 싸운 장수들의 공로에 따라 분봉하여 18명의 제후를 임명하였다. 이때 유방에게 한중땅을 주고 한왕(漢王)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항우를 따라 전투에서 공훈을 세우고도 봉토를 받지 못한 장수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항우의 실패 원인은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유방을 가소롭게 생각하였고 휘하의 제후들에게 봉토를 나누어주면서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항우 진영에서 이탈하는 부하들이 생겨나고 이들을 통솔하지 못하여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항우는 유방과 중국 천하를 두고 경쟁하였는데 팽성전투에서 고작 5만 명의 군사로 56만 명의 유방 군사를 무찔렀다. 하지만 수하의 장수들이 항우의 노여움을 두려한 나머지 한왕 유방에게 투항하는 일이 생겼고 유방은 주변 세력을 연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때문에 항우는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다. 적과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전투인 해하(垓下, 해하의 결전)에서 한왕(漢王) 유방과 명장 한신(韓信)에게 포위되어 자살하였다. 이때 그가 사랑했던 여인 우희(虞姬)와 헤어지는 모습을 두고 패왕별희(覇王別姬)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항우를 두고 후대의 사람들은 항우는 병법에 뛰어나고 힘이 장사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미숙한 인물로 평가하였다. 


☆항우

http://me2.do/xr83R7nu



장기 놀이

http://me2.do/G0hZbtna



정치인과 경영자가 유방과 항우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전략전술,용병술,성과보상,겸손,경청,인내심 등으로 유방은 창업까지는 성공적인 경영자라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대국 창업의 아버지 유방의 리더십을 배우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