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9일 수요일

경향_[사설]한국 대표은행 도쿄지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은행 전 도쿄지점장이 그제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추모공원의 불탄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금융당국이 우리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사건을 검사 중이었고, 그가 핵심 당사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말에는 KB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대출업무를 담당하던 재일동포 직원이 자살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 은행 도쿄지점 출신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는 것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5000억원대의 대출사고가 발생한 뒤 검사범위를 확대해 지난 2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도쿄지점에서 각각 600억원대와 130억원대의 부당대출 의혹을 잡고 검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된 도쿄지점들은 삼류 대부업체 수준의 영업을 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 은행에서는 대출이 쉽지 않은 한국계 기업과 교민에게 최소한의 자격요건도 따지지 않은 채 부실대출을 해줬다. 브로커까지 나서 대출자를 연결해 줬다 하니 기가 찬다. 일본 주류층을 상대로 영업을 해 금융영토를 넓히라고 했더니 교민을 상대로 고금리로 손쉽게 장사하면서 뒷돈을 챙긴 셈이다. 일부 직원은 이렇게 챙긴 돈을 한국으로 들여와 건물을 샀다. 어떤 이는 한국에서 대부업까지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의 경우 부실 대출이 비자금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단서도 파악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잇단 사건이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닌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먹이사슬’ 형 조직범죄임을 의미한다. 국내 금융계에서 도쿄지점은 출세 코스로 꼽힌다. 더구나 사건이 발생한 은행들은 한결같이 정부 입김이 강한 곳이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실세들이 좌지우지했다. 당시 기업은행장 역시 특정 인맥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도쿄지점 비리는 국가적 망신 차원을 넘어 은행들의 해외지점 관리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사안이다. 불법행위가 장기간 조직적으로 진행됐음에도 경고음은 없었다. 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해외진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며 앞다퉈 중국과 동남아에 점포를 대거 신설해왔다. 이들 점포가 도쿄지점과 다르리라는 보장이 없다. 내부통제 없는 해외진출은 사상누각이다. 해외점포 전체에 대한 총괄 점검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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