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군수·구청장과 시·군·구의원을 뽑는 기초 지방자치선거에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정치권 대립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7일까지 기초 자치선거 공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안철수 대표와의 회동 여부에 답을 주지 않으면 지방선거 보이콧을 검토하겠다"는 극단적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논란은 여야 모두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기초 선거 불(不)공천'을 공약한 게 시발점이다. 국회의원들에게 돈 주고받는 공천, 그렇게 당선된 기초단체장·의원들의 비리,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화(隸屬化)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위헌(違憲) 소지가 있다''여성 같은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공천 유지로 돌아섰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끌고 온 근본 책임은 여당에 있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을 떠나선 존재할 수 없다. 여당이 공약 파기에 대해 사과까지 한 마당에 다시 '불공천'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결국 여당만 후보를 내고 야당은 공천을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후유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야당이 후보를 내지 않으면 야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로선 지지 정당 선택 기회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사실상 야당 후보라고 주장하기 위한 야권 후보들의 편법이 난무하면서 선거판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야당 공천을 바랐던 후보들과 지지자 수만명이 출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탈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당 지지표가 분산돼 야권이 참패하고 시·도지사 선거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선거 불복(不服) 논란으로 이어질 게 뻔히 보이는 상황이다.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한 달 뒤엔 후보들이 정해져야 한다. 기 싸움을 벌이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이번 선거는 현행법대로 기초 공천을 실시하되 4년 뒤 지방선거 공천 여부는 여야가 합의해 법 개정 시한까지 미리 정하는 타협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야당으로선 '기초 불공천'을 명분으로 합당까지 했으니 방향을 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유권자도 야당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불가피하게 이행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게 됐다는 사정을 이해할 것으로 본다.
기초 선거에 정당 공천을 할 것이냐 여부는 선악(善惡)의 문제는 아니다. 공천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효과 중 어느 쪽이 큰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야당 내부에서도 불공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야당이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공약 파기를 매섭게 비판하고, 선거 후에 초당적(超黨的) 차원에서 기초 지방자치선거 제도 전반에 대해 논의한다면 지금보다 더 넓은 여론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야당에 퇴로를 열어줄 수 있는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설마 혼자 후보를 내고 혼자 뛰어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것이 청와대나 여당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선거 파행은 승패를 떠나 국정의 중대한 실패다. 공약을 파기해 이 사태를 부른 여당이 선거 파행까지 막지 못하면 선거 후 혼란에 대한 책임도 모두 져야 한다. 당장 야당을 무시하거나 자극하는 행태부터 그만둬야 한다.
기초 선거 불공천을 4년 뒤로 늦춘다고 해서 지방자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기초 선거 불공천과 같이 정치 현실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변화는 상당한 적응 기간을 갖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여당이 책임을 통감하고 야당은 판을 엎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타협하는 것이 옳다. 여기서 더 나가면 국민과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겉 명분일 뿐이고 속 생각은 따로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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