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목요일

경향_[사설]속출하는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 정부는 뭘 하나

은행에서 유출된 고객정보를 이용해 전화금융사기를 벌인 일당 9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가 처음 현실화된 것이다. 또 경향신문 취재 결과 내로라하는 금융보안 전문가의 가족도 보이스피싱 수법에 5000만원을 털렸다고 한다. 당초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간 “2차 피해는 없다”며 큰소리쳤던 금융당국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이라도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에 적발된 금융사기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이다. 하지만 고객이 꼼짝없이 당한 것은 개인 신상을 손금 보듯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씨티은행인데요. 17%짜리 대출을 사용하고 계시죠?” “새로운 저금리 대출이 있으니 전환해 보시죠”라는 식이다. 이름·주소·전화번호는 물론 금융거래 내역까지 훤히 꿰뚫고 있으니 은행 직원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해 사례가 다르긴 하지만 오죽하면 이 분야 전문가인 오길영 신경대 교수의 부인도 감쪽같이 속아 사기를 당했을까.

이번에 드러난 사기 피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유사 범죄가 생길지 알 수 없다. 올 초 KB국민·롯데·NH농협카드에서 1억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데 이어 2개월 만에 KT에서 또 1200만건이 털렸다. 2011년 이후 유출된 개인정보만 2억건을 넘는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유출된 신용카드 번호와 신상정보가 시중에 버젓이 거래되고 있으니 뭔일이 벌어질지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다. 개인정보를 악용한 사기 사건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고객들로선 참으로 답답한 노릇 아닌가.

정부는 지난달 개인정보 수집 관행을 바꾸고 유출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주민번호를 대체할 새로운 거래 수단을 내놓겠다고 해놓고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미 빠져나간 개인정보는 실태 파악조차 안되는 상황이다. 이래놓고 개인에게만 “조심하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제2, 제3의 피해를 막으려면 추가 유출 방지는 물론 개인정보 불법 거래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도 검토할 때가 됐다.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했다가는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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