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 ‘사학비리 1호’로 지목돼 교육계에서 퇴출된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 측이 상지대 운영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상지대 이사회 정이사 9명 중 6명을 구재단 측 인사로 채운 데 이어 김 전 이사장의 차남 김길남씨를 새 이사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종전의 채영복 이사장과 상지대 구성원이 추천한 이사 등은 구재단 측을 견제할 수 없게 되자 이사회 전날 사임했다. 공금횡령과 부정입학 등의 비리를 저질러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사장에서 해임된 김문기씨가 꼭 20년 만에 학교 운영의 전권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상지대 구재단의 복귀를 지켜보는 교육계 시선은 착잡하고 씁쓸하다. 과거 상지대는 사학비리의 상징이었지만 비리재단이 물러난 뒤에는 시민의 대학으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학교 최고 지도자인 총장은 교수협의회·교직원노조·총학생회·총동문회에서 후보를 추천해 이사회에서 선출하고, 예산안은 대학본부에서 제출하면 총학생회에서 검토해 확정하는 식의 민주적 운영제도를 정착시켰다. 구재단이 없는 동안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 게 사실이다. 이제 와서 학교가 구재단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은 20년간의 개혁이 물거품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어렵게 시민의 대학으로 일궈놓은 공적 자산을 하루아침에 구세력에게 넘겨주는 꼴이다. 학교 구성원이나 지역주민들이 허탈해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교육부 소속 행정위원회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2010년 8월 상지대 이사의 과반 추천권이 구재단 쪽에 있다고 판정해 학교를 분쟁 속으로 몰아넣었고, 이후 구재단 쪽 이사들이 이사회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해 1년 이상 총장 선임을 못하는 등 학교가 마비되었는데도 교육부는 어떠한 정상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7년 ‘임시이사에 의한 정이사 선출은 무효’라며 김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이 분쟁의 발단이지만, 이후에라도 교육부와 사분위에서 사학비리 근절 의지를 분명히 보여줬더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리사학의 부자세습은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한다. 사립학교는 특정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교육 기관이라는 전제가 흔들리면 유사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분규사학에 오도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교육계가 상지대 사태를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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