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은 어제 남측 정부가 상호 비방·중상 중단 합의를 깼다고 남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이) 남북이 합의한 비방과 도발 중지에 대해 벌써 약속을 깨고 있는 것은 내부의 불안을 막아보려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남과 북은 요즘 이렇게 비방·중상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며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핵안보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영변 핵시설이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건보다 더 큰 핵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에 북한은 “심히 못된 망발” “무지와 무식의 표현”이라며 천박한 어투로 실명비판했고 정부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버린 행위”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드레스덴 구상을 발표할 때도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경제난 속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다”며 북한 비판을 계속했다.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제 집안에서나 조잘대며 횡설수설하는 아낙네 수준” “저급한 정치인” “꼬락서니”라는 시궁창 언어를 쏟아냈다. 지난 1일에는 “치마를 두르고 60이 넘도록 정치를 배웠다는 게 고작”(북한) “시정잡배도 입에 담길 꺼릴 표현을 사용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남한)라고 남북 공방전을 했다.
두번 다시 대화하지 않을 것처럼 상대의 최고 지도자를 향해 저질스럽고 혐오스러운 발언을 하는 북한은 알아야 할 게 있다. 그럴수록 혐오감은 그 욕설의 대상이 아니라, 그 욕설을 입 밖으로 내놓은 쪽에게 돌아간다. 설사 앞으로 대화를 끊고 적대하기로 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체제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이 있다면 마땅히 삼가야 한다. 그런 자기 존중의식이 없는 집단을 위해 부드럽게 말하고, 조건 없는 지원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도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상대로 인정한다면 자극 발언은 피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북한을 궁지로 몰아가는 발언을 꼭 앞장서서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우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을 어떻게 신뢰 구축 과정으로 이끌지를 고민해야 할 대통령이라면 같은 말이라도 불필요하게 북한의 화를 돋우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 대통령은 논객도 평론가도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최고 정책결정권자이다. 북한이 그러니 나도 그러겠다는 맞대응으로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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