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파문이 점입가경이다. 피고인 유우성씨의 법정 증인으로 나선 탈북자 ㄱ씨가 자신의 신변 노출로 북한에 있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겼다며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그는 정보 유출의 배후로 국가정보원을 의심했다. 국정원이 탄원서 내용을 토대로 언론 인터뷰를 주선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증거조작으로 코너에 몰리자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비공개 증인을 여론공작에 악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ㄱ씨가 사건에 휘말린 것은 지난해 12월 법정 출석에 이어 올 초 재판부에 낸 탄원서가 발단이다. 그는 유씨의 간첩 혐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정원이 증인으로 내세운 인물이다. 그가 낸 탄원서는 “증인으로 나선 사실이 알려져 북한에 있는 자녀가 보위부 조사를 받고 협박당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탄원서마저 문화일보에 보도된 뒤 가족과의 연락이 아예 두절됐다고 한다. 그는 “비공개 탄원서가 어떻게 유출될 수 있느냐”며 배후로 국정원을 지목했다. 또 “국정원이 탄원서를 토대로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비공개 법정 출석과 탄원서가 외부로 유출된 것은 심각한 사안이다. 비공개 증언은 법정에 출석한 참고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이런 안전장치가 무용지물이라면 어떻게 공익 목적의 제보나 법정의 진실 규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가 언론에 그대로 보도된 것은 특정 목적을 노린 여론공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족의 신변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보도한 언론사의 무책임한 행태도 문제지만 이것이 여론공작의 산물이라면 더욱 묵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정원의 일탈행위는 도를 넘었다. 북 보위부 출신의 ㄱ씨는 국정원의 협조자이자 신변보호 대상자다. 아무리 사정이 다급하더라도 신변 노출을 무릅쓰고 여론공작에 활용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ㄱ씨가 소송을 준비하자 국정원 직원이 극구 만류했다니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치졸한 여론공작으로 증거조작을 덮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한심할 따름이다. 국정원은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우리도 피해자”라며 거짓말로 일관해왔다. 더 이상 국정원에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만이 국정원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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