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0일 목요일

중앙 [사설] 낙하산 대책, 또 시늉에 그쳐선 안 된다

기획재정부가 어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 낙하산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감사 등 임원을 아무나 하지 못하도록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산하에 ‘임원 자격기준 소위원회’를 만들어 임원 직위별로 세부자격 요건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조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5년 이상 관련 업무 경력이 있어야 공기업 임원이 될 수 있도록 한 호주나 그리스의 예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기관 개혁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알맹이인 낙하산 근절 대책이 빠져 과연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져 왔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11월 공공기업 사장단과 만나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그때부터 정치권에서는 ‘낙하산 파티’가 더 극성을 부렸다. 공기업 사장·감사에 이어 최근엔 사외이사까지 정치권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앉고 있는 판국이다. 한국전력은 최근 조전혁·이강희 전 국회의원과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3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는데 이들은 전력이나 에너지 분야에는 아무런 경험이 없다. 이래서야 경영진 견제라는 사외이사 제도의 본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기업 부채와 방만 경영의 이면에는 노조에 휘둘린 사장과 이를 눈뜨고 지켜본 감사·사외이사들 탓이 크다. 이들이 질끈 눈감지 않았으면 노조원 일자리 세습 등 수많은 엉터리 합의사항들이 어떻게 이사회를 통과했겠는가. 그런 점에서 늦었지만 정부가 낙하산 문제에 손을 대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낙하산을 근절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제도와 장치를 서둘러야 한다.

 뉴질랜드·영국·프랑스의 예를 참조할 필요도 있다. 세 나라는 공공기관장을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뽑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은 물론 프랑스의 경우 의회에 별도의 검증위원회도 설치하고 있다. 공기업 개혁을 위해 정치적 임명을 해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공공기관장의 정치 중립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결과다. 낙하산 근절, 이번에야말로 시늉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앙 [사설] 시장 정상화를 위해 부동산 규제는 풀어야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과열기에 도입됐던 규제 가운데 마지막 족쇄로 꼽혔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연내에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형주택 공급 의무비율을 대폭 완화하고, 재건축 조합원이 분양받을 수 있는 신규 주택을 기존 보유 주택 수까지로 늘리기로 했다. 이 밖에 수도권 주택 전매제한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고, 저금리 모기지대출의 지원 대상도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재건축에 관한 규제는 사실상 거의 다 풀리고, 주택 수요자에 대한 지원도 크게 확대되는 셈이다. 이제 막 살아나는 듯한 부동산시장의 불씨를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 풀겠다고 밝힌 재건축 규제는 그동안 부동산시장이 얼어붙는 바람에 사실상 적용되지 않았던 것을 이번에 영구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것이고, 주택 수요자에 대한 금융지원도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다.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에는 직접적으로 약발이 듣는 부양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난해 말부터 추진돼 온 일련의 부동산 규제완화 조치가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그동안 마비상태에 빠졌던 부동산 거래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도입됐던 각종 규제를 원점으로 돌려 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지금 이 같은 규제를 푼다고 해서 과거처럼 부동산 시장이 과열로 치달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부동산 투기가 만연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규제를 풀더라도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신규주택 수요의 감소로 과거처럼 주택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집값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가계의 보유 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70%가 넘는 상황에서 집이 팔려야 빚도 갚고, 노후자금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규제 때문에 거래 자체가 끊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문제는 국회다. 규제가 실제로 풀리려면 국회가 관련 법안을 처리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 [사설] 60년의 기다림과 반나절 만남 … 이젠 시간도 없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3년4개월 만에 금강산에서 재개됐다. 남측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82명이 20일 금강산에서 북한 가족 178명과 한 핏줄의 정을 나눴다. 이산가족들은 설렘과 기쁨, 슬픔과 아쉬움의 만감이 교차하는 재회의 시간을 나눴다. 2박3일 행사가 끝나면 북측 신청자 88명이 다시 남측 가족 372명과 만난다. 60여 년을 넘는 기다림과 11시간의 만남. 그리고 기약 없는 이별이 시작되는 행사다. 이산가족의 그 아픔과 한(恨)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산가족은 한반도 분단이 빚은 최대 비극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정치의 장벽에 막혀 1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마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이제 새로운 접근을 할 때가 됐다.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임계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예정됐다 무산된 상봉 행사의 대상자는 남측 96명, 북측 100명이었다. 그러나 그새 남북에서 각각 두 명과 세 명이 사망했다. 20일에는 감기로 거동이 불편한 김섬경(91)씨 등 두 명이 구급차로 상봉장으로 이동했다.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는 김씨의 말에 남북 당국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지금까지 12만9287명이다. 이 가운데 5만7784명이 사망했다. 2003년 이후론 해마다 평균 3800명이 운명했다. 나머지 생존자도 여든 이상이 절반을 넘어섰다. 북측 가족들은 더 절박하다. 이번 행사에서 남측은 아흔 살 이상이 25명인 반면, 북측에선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2000년 이래 이산 상봉은 19차례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연례 행사가 됐다.

 이산가족 문제의 진전을 위해선 남북 간에 새로운 포괄적 합의가 필요하다. 첫째는 원칙이다. 남북이 상봉과 정치를 분리한다는 데만 합의하면 지속성은 보장된다. 남한이 남북관계에 상관없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듯 북한도 이산가족 문제에서 같은 접근을 하도록 하는 합의다. 남한은 대북 인도적 지원 규모를 대폭 늘리는 등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상봉 방식의 전면적 개선이다. 현재의 규모와 횟수로는 대다수 이산가족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상봉의 상시화나 정례화가 이뤄져야 한다. 상봉의 형식과 절차는 체제 불안감을 가진 북측이 주도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선정 때는 현재의 추첨 방식을 고령자 우선순위로 바꾸는 것이 현실적이다. 마지막은 이산 상봉 제도개선을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과 연계하는 방안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DMZ 평화공원 구상의 구체적 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공원에 상봉 행사장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금강간 이산가족 면회소만으로는 이산가족 상봉의 규모 확대나 상시화가 쉽지 않다. 시간이 많지 않다.

[사설] 與 중진들, 서민층 먹고사는 문제로 얼굴 붉히고 싸워보라

19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고성(高聲)을 주고받으며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가 유력한 정몽준 의원은 친박 핵심인 최경환 원내대표를 향해 "(현대중공업 주식) 백지 신탁 해야 하는 정몽준은 서울시장 출마가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돌아다니지 않았느냐. 내가 모를 줄 아느냐"고 했다. 최 원내대표는 "기자들이 온갖 사안에 대해 다 내 생각을 물어보는데 그 정도 얘기도 못 하느냐"고 맞받았다. 이어 다음 당권을 노리는 김무성 의원이 "대선 때 고생한 동지들이 (자리를 못 받고) 방치돼 있다"고 하자 황우여 대표가 "여러 곳에 얘기했지만 안 되고 있다"며 넘어가려고 했다. 이러자 김 의원은 "나는 귀가 없는 줄 아느냐. 누구누구 사람만 챙겨지는 걸 다 아는데 뭔 소리냐"고 쏘아붙였다. 비주류인 정병국 의원도 "(친박 주류가) 편 가르기를 하는 듯한 모습들이 보인다"고 가세했다.

최고중진연석회의에는 최고위원과 4선(選) 이상 중진들만 참석한다. 여권 리더들만 모이는 셈이다. 회의의 정치적 무게나 영향력도 그만큼 무겁고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자리에서 누가 누구를 상대로 뒷담화를 했느니 안 했느니, '대선 승리 사은품'을 누가 독식했느니 안 했느니 시비가 붙은 것이다.

현실 정치인들이 자리와 세력을 놓고 다투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여권 중진들의 당 공식 회의라면 남북문제, 공기관 개혁, 경제 활성화, 복지 재원(財源) 마련, 양극화 해소, 교육비 절감, 청년 취업 같은 관심사들이 주(主)의제가 돼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국가적·국민적 관심사의 해법을 찾기 위해 논쟁하면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국민 귀에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그들이 주류와 비주류로 편을 갈라 '박심(朴心)'이 있다 없다 투닥거리고, 지구당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밖에 없다.

지금 새누리당 중진들은 모이기만 하면 서로 삿대질하고 싸운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지켜야 할 선(線)을 지키지 않는 것은 누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들의 시도 때도 없는 설전(舌戰)은 국민은 안중에 없는 그들의 마음가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 [사설] 정부가 '공기업 낙하산' 자격 기준 만들 資格 있나

기획재정부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산하에 '임원 자격 기준 소위원회'를 만들어 공기업의 임원 직위별로 세부 자격 요건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을 불렀던 공기업 낙하산 인사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작년 12월 공기업을 개혁하겠다고 칼을 빼든 후에도 도로공사 사장과 한국전력·한국서부발전·석탄공사·예금보험공사·자산관리공사·기술보증기금 감사 자리에 정치권 출신을 잇따라 앉혔다. 새누리당 지구당 위원장들이 평생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금융회사 감사·사외이사로 갔고 검사 출신은 전력 회사 사외이사로 꽂혀 내려갔다. 이런 사례를 일일이 꼽아보는 것조차 이젠 지겹다.


정부는 당초 공공 기관 정상화 대책에서 낙하산 인사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낙하산 인사와 공기업 부실(不實)이나 방만 경영은 직접 관계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도 했다. 그랬던 정부가 이날 뒤늦게 낙하산 대책을 거론이나마 한 것은 공기업 개혁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공기업 임원의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더라도 이를 실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포스코·KB금융지주·KT 같은 민간 회사의 사외이사에까지 청와대가 입김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아무 비밀이 아니다. 공기업을 선거 전리품(戰利品)으로 여기는 집권 세력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공기업 임원 자격 규정은 언제라도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굳이 공기업 임원들의 자격 요건을 만들겠다면 '권력 실세(實勢)와 가까운 사람' '집권당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공천을 받고도 낙선한 사람' '대선·총선 캠프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한 사람'이라고 해두는 것이 차라리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지금 정부가 공기업을 개혁하겠다고 공기업 경영진과 노조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진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믿기 어려운 것도 바로 정부가 최근까지 자격 없는 사람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에 '공기업 임원' 자격 요건을 정할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조선 [사설] 국민 세금으로 해운업만 특혜 지원하겠다는 건가

금융위원회는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출자를 받아 연내에 해운(海運)보증기구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항공·발전사업에도 지원은 할 수 있으나, 주로 해운회사들이 선박을 주문할 때 보증을 서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한다.

해운업계는 최근 전 세계 물동량 감소로 1·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까지 알짜 자산을 팔고 있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금 불황의 고통에 빠져 있는 업종은 해운만이 아니다. 작년에만 612개 건설업체가 문을 닫았고, 중소 조선회사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이들에 자금을 지원했던 저축은행들도 흔들리고 있다. 증권업계는 증시 거래대금이 급격히 감소해 점포와 인력을 다투어 줄이고 있고, 이번 불황에 증권회사들이 몇 개나 문을 닫을지 모르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이런 불황 업종들이 단체로 들고일어나 해운보증기구 같은 정부 지원 기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 일일이 하나씩 만들어 줄 것인가.

해운·조선업체들에 대출과 보증 서비스를 맡아줄 선박금융공사를 만들겠다는 것은 지난 대선(大選) 공약이었다. 당초 정부는 특정 업종에 특혜를 주기 위한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통상 마찰의 소지가 있다며 선박금융공사 설립에 반대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부산 지역구 의원들의 요구가 거세자 결국 해운보증기구를 부산에 신설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해운업에 대한 자금 지원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도 보증기구를 따로 만들겠다는 것은 선거용 선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정책금융기관은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중소기업진흥공단·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10여 곳에 달한다. 국민 돈으로 정책 금융을 공급하는 공기업이 넘치다 보니 업무 중복도 심각하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업무의 63%가 중복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대출받은 업체들 중 51%가 다른 정책금융기관의 대출·보증을 이중으로 받았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기업 수출을 지원하는 업무가 대부분 겹칠뿐더러 외국에선 주로 민간이 하는 일을 두 공기업이 독과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경영 부실로 인한 구멍은 매번 국민 세금(稅金)으로 메워주고 있다.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 정부가 출연금으로 넣어준 예산도 지난 10년간 6조원에 이른다. 해운보증기구에도 하염없이 국민 세금이 투입될 것이다.

경향 [사설]집값만 자극할 경기활성화 부동산정책

정책 당국자들에게 ‘규제 완화’는 바이블이 된 것 같다. 경기활성화에 사활을 건 대통령의 채근에 당국자들은 앞뒤 재지 않고 풀어헤친다. 국토부가 엊그제 내놓은 부동산 대책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치솟는 전·월셋값에 신음하는 서민들을 어루만져주기는커녕 효과도 불분명한 경기활성화 대책만 가득하다.

이번 대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초과이익환수제 및 소형평형의무비율 폐지 방침이다. 여기에 1%대 저금리 대출상품 대상을 기존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서 5년 이상 무주택자로 확대했다. 동시에 수도권 아파트 전매제한 기한을 1년에서 6개월로 앞당겼다. 요컨대 ‘난제를 해결해줄 테니 재건축을 해라. 싼 이자에 선착순으로 돈을 빌려줄 테니 집을 사라,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어도 무방하다’란 취지로 해석된다. 경기만 살릴 수 있다면 투기소득을 챙기든, 빚쟁이가 되든 관계없다는 뜻이다. 이번 대책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개발업자들이다. 서울 수혜 물량의 79%가 몰려있는 강남권 역시 특혜를 입는 곳이다. 이들은 초과이익환수제와 소형평형의무비율을 대못이라고 주장해왔다. 내친김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까지 거론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거래활성화의 마중물이 돼 시장을 자극해서 내수에 숨통을 틔워주길 기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 소형평형의무비율 등은 단순히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측면만이 아닌 서민층의 주거불안 해소라는 의미가 적지 않았다. 결국 자산가의 이득보호를 위해 공공성이 약화되는 결과가 됐다. 정책발표 초기 반짝할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경기부양으로 이뤄질지에 대해선 회의적 견해가 많다. 이는 지난 1년간의 부동산 대책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 등 가진 자 위주의 규제 완화와 빚 권하는 부동산 정책을 내놨지만 거래활성화는커녕 전세가격만 오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동산시장이 임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매활성화 대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인위적 부양으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인식 자체가 시대착오적임을 의미한다. 현재 부동산 상황은 과거와 달리 대전환기다. 단순히 시장상황만 갖고 판단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매매활성화 대책은 치솟는 전셋값을 잡기는커녕 집값만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의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경향 [사설]환경부에 환경규제를 확 풀라고 하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규제 완화 메시지를 던졌다. 환경 규제가 기업활동과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으므로 대폭 완화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환경 정책이란 규제를 기본으로 하는 것인데, 규제를 풀라고 하면 무슨 정책을 어떻게 입안해서 환경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심히 의문스럽다.

박 대통령은 “개구리가 사는 호수에 우리는 그냥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며 “현실에 대한 고민없이 규제를 만들었을 때 기업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환경 규제를 호수에 무심코 던지는 돌에, 기업은 그 돌에 맞아 죽는 죄없는 개구리에 비유한 셈이다. 안일한 공무원의 탁상행정을 우화에 빗대어 꼬집은 것이겠으나, 환경부 공무원들로선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내년 업무보고 때는 환경 규제가 확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기업과 국민 사이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기업으로부터 “규제 완화 잘했다”는 반응을 얻어내야 하는 숙제가 환경부에 주어진 셈이다.

기업은 대부분의 정부 규제를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여기는 게 보통이다. 새로운 규제가 추진되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엄살을 피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과거 환경영향평가법이 시행될 때도 그랬고,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이 강화될 때도 그랬다. 하지만 정부가 환경기준을 꾸준히 강화해오지 않았다면 기업 경쟁력은 갈수록 도태되었을 것이고,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9위의 경제강국이 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꼭 필요한 규제는 반드시 지키고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히 철폐하라”고 했는데, 산업계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숙제를 앞에 둔 환경부가 옥석 구분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사실 대통령의 뜻을 파악한 환경부는 한발 더 나가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 앞에서 “환경 규제를 개혁하여 창조경제를 견인하겠다” “규제를 수요자 눈높이에서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 “통합환경관리제를 시행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환경부가 아니라 규제완화부, 환경경제부를 보는 느낌이다. 

환경부는 환경오염으로부터 국토와 국민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로서 존재의 의미가 있다. 그동안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우리나라의 환경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한참 더 강화해야 할 환경보호 정책이 박근혜 정부 내내 후퇴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경향 [사설]국민연금 동원해 공기업 부실 메울 셈인가

기획재정부는 어제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공기업 개혁을 올해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한국경제가 더 높이 도약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면서 “공공기관부터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현실성 없는 낙하산 대책도 문제지만 연기금을 동원해 공기업 자산을 사들이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개혁하자면서 공기업에 또 다른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래놓고 무슨 공기업 개혁인가.

이번 대책에는 그간 논란이 된 낙하산 해결 방안도 포함됐다. 공기업 임원의 자격 요건을 담은 지침을 만드는 게 골자다. 임원추천권을 가진 공공기관운영위 산하에 임원 자격 기준 소위를 구성키로 했다. 일정 자격을 갖춘 인사 외에 무분별한 보은성 인사를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침 하나 만든다고 낙하산 인사가 사라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근본 원인보다 규정 먼저 챙기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공기업 낙하산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신임 사장에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이 내정됐다고 한다. 친박계인 김학송·김성회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일찌감치 한자리를 꿰차고 있다. 공공기관장도 모자라 이제 감사·사외이사도 낙하산 천지다. 지금도 공공기관운영위가 있지만 청와대 말 한마디에 모든 게 결정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 자격 기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이참에 공기업을 산하기관으로 둔 정부 관료들의 자리라도 늘리자는 꼼수는 아닌지 모르겠다.

더 걱정은 연기금 동원령이다. 자산 매각이 지연되자 나온 대안의 하나다. 공기업 부채 축소와 본사 지방 이전 과정에 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살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시한을 정해놓고 자산 매각을 독촉하는 마당이니 이대로라면 헐값 매각 시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를 연기금의 풍부한 자금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하지만 연기금이 어디 정부 쌈짓돈인가. 정부가 시킨다고 국민연금이 총대를 멜 리도 없겠거니와 만만한 게 연기금이라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매입한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건가. 전 국민의 노후가 걸린 국민연금을 정부 맘대로 운영하겠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가뜩이나 500조원을 웃도는 공기업 부채의 대부분은 이런 식의 정부 정책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공기업 개혁도 이 같은 잘못을 바로잡자는 것 아닌가. 공기업의 ‘상전’ 노릇하겠다는 관료들이 계속 버티고 있는 한 공기업 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한겨레 [사설] 인권위원마저 논공행상 자리로 만든 박 정권

국회가 20일 국회 선출 몫의 국가인권위원으로 유영하 새누리당 경기 군포 당협위원장을 선출했다. 유 위원에 대한 표결은 민주당의 반대 속에 찬성 138명, 반대 88명, 기권 8명으로 나왔다. 검사 출신으로 다양한 정치 이력을 가진 유 위원은 인권위원으로서 여러모로 부적격이다. 그의 임명은 다수당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유 위원의 그간 행적은 인권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민주당에 따르면 유 위원이 나이트클럽 사장에게 향응을 제공받아 징계를 받기 전 검찰에서 사직했고, 2011년에는 토마토저축은행 부행장으로 근무하다 영업정지 전 퇴사해 논란을 일으켰으며,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범인을 변호했다. 인권 관련 경력이라곤 고작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여권이 이런 그를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인권위원에 임명한 것은 대선 승리에 따른 논공행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후보로 세 차례나 총선에 출마했던 그는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 캠프에서 일했다. 엄정한 독립성이 요구되는 인권위원 자리를 대선 승리의 전리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인권과는 거리가 먼 현병철 위원장을 두 차례에 걸쳐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인권위의 위상을 크게 추락시켰다. 인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정권이라면 그를 바로잡아야 할 터이지만 이 정권은 한술 더 뜨고 있는 것이다.
유 위원 임명은 최근 현 정권의 무리한 논공행상식 인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내부 절차를 무시하고 박상증 목사를 밀어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을 도왔던 이들에게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주려다 보니 여기저기서 무리수를 두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 캠프에서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 특별직능단장을 맡았던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임명된 안 사장은 대선 당시 트위터에서 “이완용보다 더 나쁜 사람이 노무현, 문재인”이라는 등 상식 이하의 글들을 올린 것이 최근 문제가 됐다.
집권 1년여를 맞으면서 현 정권이 무리한 논공행상을 밀어붙이는 것은 큰 문제다. 정권 핵심들 입장에선 자리는 제한돼 있고 사람은 넘쳐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인권위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같은 고유한 영역의 기관들까지 마구 정권의 전리품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기관들에는 정치색과 관계없이 거기에 걸맞은 인사들을 배치해야 한다. 집권세력은 무리한 논공행상 인사를 재고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후안무치한 검찰의 강기훈 사건 상고

검찰이 2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강씨는 무죄 선고 직후 “어떤 방식으로든 유감을 표시해줬으면 한다”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런 강씨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검찰이 거꾸로 매를 들고 나선 격이다.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게 딱 이런 경우일 것이다.
검찰은 과거 대법원이 인정한 바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감정 결과가 이번 재심에서 배척되었다며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무죄 선고는 이미 따져볼 것 다 따져보고 내려진 것이다. 1991년 감정 이후 국과수에서 2차례에 걸쳐 감정을 했고 여러 국내 감정 전문가들이 감정을 했으나, 그 모든 결과가 첫번째 국과수 감정 결과와 반대였다. 검찰 쪽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필적 모두를 강씨가 사후조작했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생떼일 뿐이다.
게다가 강씨는 간암세포 제거수술을 받은 뒤 현재 투병중인 중환자다. 검찰의 ‘시간 끌기’는 강씨의 생명을 좀벌레처럼 갉아먹을 것이다. 금전적인 배상도 늦어진다. 형사보상금이나 손해배상 청구소송 모두 무죄 판결이 확정되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상고를 하려거든 강씨가 치러야 할 정신적 신체적 손상만큼의 몫을 검사도 감내해야 공평한 게임이 성립된다. 하지만 검사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직권남용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국가와 법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다.
검찰은 유달리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시국사건에 집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 7년간 무죄를 선고받은 재심 시국사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검찰이 불복한 사건이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48년 만에 무죄가 나왔으나 검찰이 상고한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을 비롯해 유럽 간첩단 사건, 조총련 간첩사건,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검찰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다. 최근만 해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재상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2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해서도 상고를 포기했고, 민주당 이석현 의원과 새누리당 이성헌 의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검찰에는 이제 더 기대할 것이 없다. 남은 건 대법원 몫이다.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 당시 이 사건 서류를 3년 이상 들여다봤다. 이미 충분한 심리가 이뤄진 만큼 대법원이 진실규명을 위한 최종단계를 서둘러 마무리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또 하나의 약속’ 상영이 그렇게 두려운가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가 참여연대, 민변 등과 함께 ‘롯데시네마’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들은 20일 낸 신고서에서, 복합영화상영관 시장의 2위 업체인 롯데시네마가 상영관을 터무니없이 적게 배정하고 단체관람 대관 요구를 일방적으로 거절하는 등 불공정행위의 혐의가 짙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큰 만큼 공정위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 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다. 우리나라의 최대 경제권력인 삼성을 정면으로 겨냥한 영화여서 개봉 전부터 사회적 관심이 뜨거웠다. 한편으로는 삼성을 다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불이익이 예상되기도 했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복합영화관 운영회사 쪽에서 삼성과의 관계를 고려해 상영관 배정을 꺼릴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리고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로는 19일 현재까지 이 영화의 누적 관객수는 40만2761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한 지 보름 만에 40만을 넘어섰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 쪽에선 상영관만 충분히 확보되었더라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관객이 들 수 있었다고 장담한다. 예매율이나 좌석점유율을 기준으로 하면 관객들의 높은 관심이 입증되었는데도 롯데시네마와 같은 대형 복합영화관 운영회사 쪽에서 배정한 상영관이나 상영 시간, 상영 장소 등을 보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지역 복합영화관 60곳 가운데 현재 <또 하나의 약속>을 상영하는 데는 19곳뿐이다. 특히 롯데시네마의 경우 전국적으로 <또 하나의 약속>에 배정한 상영관과 스크린 수가 같은 달 개봉한 다른 영화들에 견줘 24~40%에 그친다고 한다. 상영 시간도 황금 시간을 벗어난 오전, 오후나 늦은 밤 시간대에 집중 배치해 관객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봐야 한다. 삼성과 롯데라는 두 재벌기업 사이의 ‘보이지 않는 유착’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인 상영관 배제나 축소 의혹이 제기된 것은 사실 <또 하나의 약속>이 처음이 아니다. 국내 배급 및 상영 시장을 소수의 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선 영화 제작자나 관객은 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지금까지 영화시장의 독점 문제를 조사한 적이 없다. 이번 기회에 철저한 조사와 함께 시정 방안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2014년 2월 19일 수요일

중앙 [사설] 선행학습 금지, 혼란 없는 교육정상화 출발점 돼야

그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 일명 선행학습 금지법은 학교 등 공교육 기관과 학원 등 사교육 업체의 선행학습 조장 행위를 규제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교육부는 이 법안을 두고 공교육 정상화의 출발점이라고 자평하고 있으나 선진국에선 유례가 없는 법안이어서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 법안엔 초·중·고교생이 자발적으로 한 학기, 길게는 몇 년을 앞당겨 미리 공부하는 걸 봉쇄하려는 내용은 없다. 따라서 우수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우려는 크지 않아 보인다. 법 제정 취지대로 학교가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내는 건 그 자체로 온당하지 않다. 학생은 제 학년과 제 수준에 맞게 배울 권리를 갖고 있다. 대학 역시 고교교육의 안정화라는 차원에서 논술 등의 문제를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하는 등 공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규제의 실효성 확보에 있다. 수많은 공교육 기관이 출제하는 시험이 교육과정 범위 안에 있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시·도교육청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 학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학교에 대한 감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선행학습의 개념이 교육당국은 물론 교사·학부모·학생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영재학교나 과학고 등 일부 학교는 대학과목 선이수제(AP과정)를 두고 있다. 이처럼 고교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학교마다 교육과정의 범위나 심도가 서로 다르다. 교육 수요자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무엇이 선행학습이고, 어느 범위까지 허용되는지 좀 더 상세한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선행학습을 주로 조장하는 건 사교육 업체인데도 법안은 학원의 선행학습 광고만을 규제하고 있다. 이 정도 규제로 사교육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바라는 건 공교육의 내실이다. 학교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굳이 선행학습을 찾아갈 이유가 없다. 선행학습 금지는 단기적 대안일 뿐이다. 해법은 공교육의 질 향상이다. 

중앙 [사설] 우리를 하나로 만든 심석희의 막판 질주

짜릿했다. 전율이 일었다. 그제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전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엎치락뒤치락 선두다툼을 벌이던 선수들이 마지막 바퀴에 접어든 순간, 소리 없는 아우성이 전 국민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최종 주자 심석희 선수가 스케이트 날을 쭉 뻗으며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열일곱 살 소녀는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었다. 아름답고 늠름한 젊음이다.

 평균 나이 20.8세의 여성 4명이 한국 선수단에 안겨준 금메달은 단순한 1등의 징표가 아니었다. 오랜 훈련을 견뎌내며 고국에서 선전을 고대하던 국민 모두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메달을 향해 물불 안 가리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쟁 상대들을 자신감과 저력으로 물리친 당찬 패기는 한국 젊은이의 밝은 초상이다.

 스포츠는 한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종합 건강진단서다. 오늘날 올림픽이 국가 간의 소리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는 까닭이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선명한 국가의 깃발 아래 애국심과 사회단결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심석희 선수의 마지막 한 바퀴, 최후의 한걸음은 한국 사회에 드리웠던 심란하고 착잡한 그늘을 단박에 걷어냈다. 그 담대한 기상이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우리 모두 저처럼 해나갈 수 있다면 역전의 주인공 심 선수의 한마디처럼 “소름 끼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소치 겨울올림픽이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한국 대표팀은 오늘까지 여성 선수들이 따낸 4개 메달로 조촐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어느 대회보다 풍성한 이야기와 감동을 남겼다. 물론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의 후폭풍으로 잡음도 일었고 부끄러운 과거도 드러났다. 그러나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2연패의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가 지적했듯 메달 색깔에 집착하는 묵은 사고방식은 여기까지다. 4년 뒤 평창 겨울올림픽에 등장할 미래의 심석희들을 위해서 어른들이 큰 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중앙 [사설] 지금 안전기준으론 기후변화에 맞설 수 없다

최근 기후변화 등으로 과거 보기 힘들었던 이상 기상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기상관측 기록을 갈아치운 최근 동해안 폭설을 비롯해 수퍼 태풍, 집중 호우 등이 그것이다. 동해안 폭설은 지난 6~14일 아흐레 연속 이어져 1911년 기상관측 이래 최장 기록을 세웠고 강릉에선 11일 오전 7시 역대 최대인 110㎝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서남해 전복양식장 매몰, 우면산 산사태, 서울 강남역 주변 침수 등 우리 국민을 놀라게 했던 수많은 재해의 원인이 돼왔다. 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에도 일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러한 기상 재해가 더욱 심하게,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기상상황 변화에 맞춰 각종 안전기준을 새롭게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특히 건물이 지탱하는 눈 하중과 이에 따른 설계 기준 등은 과거의 기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역별로 마련된 것이다. 이미 그 기준들이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만큼 새로운 기상상황에 맞춰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흔히 ‘기후변화 적응 안전대책’이라고 부른다. 현재 일부 부처에서 검토를 시작했지만 최근 관련 재해가 갈수록 빈발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보다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행동이 절실하다. 특히 국민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설안전 분야부터 즉각적이고도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전반적으로 고르게 변화하는 게 아니라 들쑥날쑥하면서 예측 불허라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의 특징은 안전에 대한 접근방식의 변화까지 요구한다. 예를 들어 전체 강설량이 줄더라도 특정 기간·지역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집중 폭설이 쏟아지는 만큼 설계 기준 역시 최악의 상황에 맞출 수밖에 없다.

 눈뿐만 아니라 수퍼 태풍도 마찬가지다.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한반도로 접근하는 태풍의 강도·진로·패턴 등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태풍의 강도가 세진 만큼 재해대책의 수준도 올라가야 한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여름철 집중 호우나 산사태에 대비한 대응 매뉴얼도 새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빗물이 빠져나가는 하수관 지름 기준을 정할 때에는 그간의 강우량은 물론 최근 변화한 강우 패턴과 주변 지역의 빗물 흐름까지 새롭게 감안해야 한다.

 경주의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는 단발 사건이 아니다. 단순히 인재(人災)로 돌려서도 안 된다. 넓게 보면 기후변화에 따른 천재지변이 언제든지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다는 경고다. 이번 참사를 범정부적 차원의 ‘기후변화 적응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토목·건축과 리스크 관리 분야 전문가는 물론 기상학자·환경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안전 기준을 구축해야 한다. 철저한 사전 대비만이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한다. 

조선 [사설] 여기서 부동산 溫氣 못 살리면 '경기 회복' 꿈도 꾸지 말아야

국토교통부는 1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를 연내(年內) 폐지하겠다고 했다. 연 1%대 금리의 모기지 지원 대상도 현재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서 5년 이상 무주택자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아파트 공급을 늘리고 무주택자에겐 돈을 더 쥐여줘 거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전달보다 0.2%가 올라 1월 기준으로 3년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국회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 폐지를 결정하면서 부동산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이 가계 자산의 75%를 차지하고 있어 부동산 경기가 국민의 체감(體感) 경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동안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던 것은 주택 주(主) 수요층인 30대 중반~50대 초반 계층에서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 심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35~54세 인구는 2011년 1673만명에서 정점(頂點)을 찍었다. 이들이 집을 사기보다는 전·월세를 선호해 집값 상승세는 지지부진했고 전·월세만 매년 급등했다.

주택 보급률은 2013년 현재 102.9%에 달한다. 이 때문에 신도시나 대형 단지 개발로 주택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정책은 지난 10여년 동안 실패로 끝나곤 했다. 그러나 20년 넘는 노후(老朽) 아파트만 해도 368만 가구다.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집을 넓히고 좀 더 편안한 공간으로 주택을 개조하려는 욕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가 기존 주택을 증·개축(改築)하려는 수요를 북돋우면 부동산 경기는 더 쉽게 타오를 것이다.

정부는 이날 2017년까지 주택 관련 규제 30%를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정도 규제 완화론 새로운 주택 투자가 일어날 리 없다. 규제를 찔끔찔끔 감축하기보다는 단번에 대폭 풀어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전세 주택이 대거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파동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먹히지도 않는 전세 대책을 남발할 게 아니라 저렴한 월세(月貰)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정부가 월세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하는 정책은 자금 부담이 큰 데다 다양한 월세 수요를 충족하기도 어렵다. 민간 주택 소유자들이 기존 아파트나 단독 주택을 증·개축해 월세 주택을 늘릴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작년에 사상 최대 수준인 707억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냈지만 많은 국민은 그 최고(最高)의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금 막 번지기 시작한 부동산 경기의 온기(溫氣)가 여기서 꺼지면 경기 회복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규제를 풀다 보면 특정 지역이나 일부 부동산 상품에서 투기 조짐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게 두려워 부동산 값이 오르기만 하던 시대에 투기 억제를 위해 만들었던 규제의 덫을 풀기를 주저하면 부동산 경기는 곧바로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부동산 시장에서 피어오르는 불씨를 경기 회복의 큰불로 키워가겠다는 각오로 관련 법을 신속하게 고쳐야 한다.

조선 [사설] 17년 늦은 북한인권법, 하루하루가 죄악이다

지난 17일 유엔 인권조사위원회(COI)가 낸 북한 인권실태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을 개선할 책임이 있다는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사회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은 북한 정권의 인권 말살을 더 이상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책임이 큰 우리는 계속 보고만 있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 법안심사 소위는 19일에도 북한인권법을 논의했으나 여야 이견만 확인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5년부터 북한인권법안을 거의 매년 제출해왔다. 그러나 민주당 쪽이 북한의 반발을 부르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해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보지 못했다. 제출된 법안들은 17·18대 국회 종료와 더불어 자동 폐기됐다. 이번 19대 국회 들어서도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안 5건을 냈고, 민주당은 북한 지원에 초점을 맞춘 '북한민생인권법안'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법안들은 북한인권재단 설립, 북한 인권운동을 하는 국내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그렇게 하면 반북(反北) 단체 지원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10년째 똑같은 말싸움이다.

그러는 사이 북 주민들의 현실은 인권(人權)이라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악화돼 왔다. 얼마 전 대한변호사협회가 탈북자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북한에 살 때 '인권'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62명이나 됐다.

유엔은 1997년 북한 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했다. 2004년과 2006년엔 미국과 일본이 각각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우리 국회가 당장 법을 제정하더라도 유엔 결의안보다 17년, 미국 북한인권법보다 10년이나 뒤처진 것이다. 이렇게 흘려보내는 하루하루가 죄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신년 회견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의사를 밝히고 당내에 태스크포스도 만들었다. 내부 논쟁이 불가피하겠지만 시간이 없다. 이번에도 법 제정에 실패한다면 비판은 민주당을 향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도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부분은 절충할 필요가 있다. 북 주민의 처참한 현실을 감안하면 여야의 입장은 종잇장 하나 차이에 불과하다.

조선 [사설] 마이스터高 성공했듯 '명품 전문대' 못 만들 것 없어

교육부가 19일 청와대 업무 보고에서 전문대 130개교 가운데 84곳을 특성화 전문대로 지정, 앞으로 5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직업교육 전문기관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지원금은 특성화 전문대 한 곳당 178억원꼴이다.

4년제 대학들이 전문대와 똑같은 학과를 개설해놓고 수험생들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항공승무원과·임상병리과·방사선과·안경과학과·피부미용과 같은 학과이다. 전문대에서 2년, 3년만 딱 부러지게 가르치면 어디에 내놔도 쓸모 있는 직업인을 키워낼 수 있는데도 4년제 대학들이 같은 커리큘럼을 만들어놓고 전문대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문대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인력 육성은 전문대에 맡기는 것이 맞다.

전문대 가운데는 4년제 대학보다 훨씬 잘 가르쳐 졸업생들을 번듯한 직장에 취직시키는 곳이 적지 않다. 철강 단지 기업들과 협약을 맺어 주문식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충남 당진 신성대, HD 중계차와 HD 스튜디오를 갖춰 차세대 방송 인재들을 육성하는 경기도 안성의 동아방송예술대, 의료과학단지와 연계해 보건의료·헬스케어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원광보건대가 바로 그런 곳이다. 경기도 이천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를 졸업한 이나래 작가는 미국 만화계에서 '맥시멈 라이드'라는 작품으로 작년 1월 뉴욕타임스가 뽑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가운데 그래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마이스터고(高) 육성이었다. 2010년 처음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21개교에서 작년 2월 처음 배출한 졸업생 3375명 가운데 93.4%가 취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제 마이스터고엔 성적이 뛰어난 중학 졸업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정부가 마이스터고 정책을 성공시켰다면 현 정부가 직업 명장(名匠)을 길러내는 '명품 전문대'를 키워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경향 [사설]선행학습 금지법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국민들 사이에는 “글쎄 그게 될까”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선행학습을 막자는 데는 찬동하지만 과연 그걸 법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선행학습 금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제정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지금도 이 의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대통령의 약속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으나, 이 법안으로 망국적인 사교육이 근절될 것이란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특별법안의 핵심은 초·중·고교 및 대학 입시에서 교육과정보다 앞선 내용을 가르치거나 시험으로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의 중간·기말고사, 수행평가는 물론 고입·대입 선발고사에서도 선행학습을 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낼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을 유발하는지 평가를 해서 교육당국이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하지 않으면 행정적 제재를 내린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선행학습 금지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겠으나 자세히 보면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우선 금지 대상이 되는 선행학습의 개념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어 사사건건 논란을 부를 공산이 크다. 예를 들어 과학고 입시에 나온 특정 문제가 정규 교육과정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 일일이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평가의 적절성과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을 우려가 있다.

규제 대상을 공교육에 한정하고 학원 등 사교육 업체는 방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초·중·고에서는 방과후 수업을 통해 선행학습에 해당하는 심화학습을 일부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이런 교육이 금지되면 학원으로 더 많이 몰리는 뜻밖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학원에선 선행학습을 내건 광고만 할 수 없도록 했는데, 이게 아무런 규제효과가 없다는 것쯤은 교육당국도 알 것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자칫 학원만 배불리는 결과를 가져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무슨 일이든 원인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선행학습을 막으려면 선행학습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작금의 선행학습 폐해는 평준화의 틀을 벗어난 특목고와 자사고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일반고는 슬럼화의 길을 걷는 고교 양극화, 공교육의 황폐화 속에서 싹텄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의 모순을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선행학습만 금지하는 것은 과거 과외금지조치가 그랬던 것처럼 수명이 오래갈 수 없다. 교육사회구조의 혁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경향 [사설]영동지역 제설 적극 지원해 붕괴사고 막아야



최근 영동지역에 기록사상 최고로 내린 눈의 여파가 예사롭지 않다. 더욱이 오늘 오후부터 또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정부와 국민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강원·경북도의 제설·복구 작업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은 주택을 비롯한 각종 건축물의 지붕이 그동안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지붕 붕괴는 많은 재산 손실을 낼 뿐 아니라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며칠 전 10여명의 귀한 청춘을 앗아간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강원·경북도에 따르면 그동안 민·관·군의 밤낮 없는 제설 작업으로 국도와 지방도 등 주요 도로에 쌓인 눈은 거의 다 치워졌다. 인근 자치단체들의 지원과 전국 곳곳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의 도움도 컸다. 그래서 교통 두절로 고립된 지역은 없어졌지만 많은 주민이 지붕에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큰 불안에 떨고 있다. 농어촌 마을의 낡은 집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더욱 그렇다. 특히 경주 참사 이후에는 집에서 삐걱거리는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다. 아예 살던 집을 그냥 놔두고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주민도 있을 정도다.

강원도 등 해당 자치단체는 지붕 붕괴 사고를 막기 위해 각종 시설물의 지붕 제설에 인력과 장비를 집중하고 있다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참다못한 일부 주민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지붕 위에 올라가 눈을 걷어내는가 하면, 주민의 지원 요청을 받은 119 소방관이 출동해 눈을 치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지붕 제설 작업은 도로 제설과 달라 장비의 도움 없이 수작업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를 지붕 붕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기간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 신속하게 눈을 치워야 한다.

문제는 제설 작업에 드는 돈이다. 강원도는 정부에 147억원의 특별교부세 지원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6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강원도로서는 턱없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우선적으로 인명 피해와 직결되는 주택 등 건축물의 지붕 제설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닐하우스·축사의 제설이나 피해 복구 작업은 그 다음의 일이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경주 참사와 같은 사고로 인명 피해가 나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전사고는 늘 설마하는 위험 불감증에서 비롯된다. 제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경향 [사설]새누리당, 막말과 억지로 ‘간첩 조작’ 못 덮는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이 수준 이하다. 품격도, 이성도 내팽개친 채 의혹만 덮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야당을 향해 국익을 생각하라면서 스스로는 외교적 결례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간첩사건 증거서류 위조를 확인해준 중국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은 어제 방송에 출연해 “선진국이 안된 국가들에서는, 정부 기관에서 발행한 문서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서로 다른 문서를 제출할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데, 무조건 우리가 위조했다고 하는 것은 국익을 팽개치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 위험한 행태”라며 일종의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중국이 후진국이어서 발뺌하고 있다거나, 특정한 의도로 한국 사법절차에 개입하려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게 집권당 국회의원이 수교국이자 최대 교역국에 할 소리인가. 중국 정치인이 한국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면 참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설화(舌禍) 제조기’로 불리는 김 의원만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서울시 공무원으로 잠입한 간첩 혐의자를 편들어 정부를 공격하며 거리로 나섰다”고 했다. 최 원내대표가 ‘간첩 혐의자’로 칭한 유우성씨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검찰이 항소심에 제출한 증거는 중국 당국이 위조 서류라고 밝힌 터다. 그런데도 사실상 간첩으로 단정짓다니, 의혹을 덮기 위해서라면 법치인식도 인권감수성도 다 팽개치겠다는 건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주당을 겨냥해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이냐”고 한 것도 치졸하기 짝이 없다.

새누리당의 행태 이면에는 어떻게든 ‘간첩 조작’ 의혹 확산을 막겠다는 속내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막말과 억지로 적당히 묻힐 수준을 넘어섰다. 의혹의 불길이 정권 전체로 번지기 전에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서는 편이 낫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민주당을 향해 “한·중 외교 마찰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자해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외교 마찰을 초래할 ‘자해행위’를 하는 이가 누구인가. 새누리당이 틈만 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국익’을 해치는 이는 또 누구인가. 새누리당의 맹성을 촉구한다.

한겨레 [사설] 변죽만 울린 국방부의 사이버사령부 개혁안

국방부가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사이버사의 정치중립 확보를 위한 개혁안을 19일 내놓았다. 사이버사에 정치중립 위반에 대한 신고시스템을 만들고 작전 내용을 검토할 사이버심리전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며, 임무 수행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한다는 것 등이다. 국방부는 또 군형법을 강화해 정치관여죄 처벌 형량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공소시효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개혁안은 겉으로 보면 그럴듯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다. 작전 내용을 검토할 사이버전 심의위원회는 사이버사 내부에 설치하고 위원장은 법무 참모가 맡는다. 외부감시를 배제한 채 장성급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대위급 참모를 위원장으로 하는 심의위가 제대로 운영될지 미지수다. 상시 모니터링 체계도 사이버사 내에 만들고 하반기부터나 시행한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방안으로는 군의 정치 개입을 근절하기에 역부족이다.
더욱이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포털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을 계속 용인한다고 한다. 또 기존 심리전 범위에 있던 군 통수권자 옹호나 정부정책 홍보 등 정치 개입이 우려되는 활동도 사실상 허가한다고 한다. 군의 정치 개입이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 마당에 익명의 댓글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사이버 심리전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문제가 심각히 제기된 만큼 그동안의 심리전은 일단 중단하고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는 게 순리다.
국방부의 개혁안은 애초부터 기대 난망이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국방부 조사본부의 수사 결과부터 미심쩍기 짝이 없었다. 심리전단이 작성한 불법 글은 공소장에서만 트위트 2867건, 블로그 183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심리전 단장 한 사람만 정치관여죄 등으로 기소되고 댓글을 쓴 요원 10명이 형사입건되는 데 그쳤다. 당시 사이버사령관이었던 연제욱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구체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나오고, 김관진 국방장관 역시 심리전 작전 결과를 보고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상태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면 철저히 진상을 밝혀서 책임있는 이들을 엄단하고 확실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3급 군무원에 불과한 심리전 단장에게 뒤집어씌우고 윗선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의혹이 꼬리를 물지만 진상도 오리무중이다. 도마뱀 꼬리 자르듯 사건을 미봉하면 언젠가 곪아 터진다. 이번 기회에 군의 정치 개입 환부를 도려낼 수 있는 근본적인 조처들을 마련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의 ‘선택적 만기친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된 중국 공문서의 위조 의혹 사건을 둘러싼 정부와 새누리당의 태도가 참으로 가관이다. 검찰-국정원-외교부의 말이 제각기 달라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짐작할 길이 없다. 게다가 조금만 민감한 대목에 이르면 “확인해줄 수 없다”며 도망치기 바쁘다. 그런가 하면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증거 위조만큼이나 중대한 범죄”라며 검찰·국정원에 대한 노골적인 감싸기에 나섰다.
이 사건은 각 기관들끼리 책임을 미루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 등 핵심적 2건의 중국 공문서에 대해 “중국 선양 주재 우리 총영사관이 정식으로 발급 요청한 것은 아니라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문서 모두를 중국 총영사관을 통해 입수했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다. 곤경에 몰린 검찰은 증거조작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진상조사팀을 구성했으나, 이미 재판 과정에서 수차례 위조 가능성이 제기됐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게 검찰이어서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의혹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국정원은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참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요즘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검찰·국정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비호는 김진태 의원의 발언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김 의원은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 정부를 선진국이 아니라고 비하하며 “그런 국가들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빈정거렸다. 김 의원은 심지어 “중국이 북한을 돕기 위해 허위 문서를 우리 쪽에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집권여당 의원이 나서서 중국과의 외교분쟁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주목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다. 박 대통령은 요즘 안현수 선수 문제를 비롯해 ‘염전 노예’,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등 사회적 이목을 끄는 모든 사건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고 있다. ‘만기친람’ 리더십이 화제에 오를 정도다. 그런데 정작 국가의 위신과 신뢰가 걸린 증거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사안의 성격상 이런 사건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해야 마땅한데도 입을 열지 않는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기가 막힌 일들이 많다고 하더니 정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한다.” ‘염전 노예’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증거조작 의혹 사건에 더 어울려 보인다.

한겨레 [사설]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 선임 절차 다시 밟으라

박상증 목사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 이사장 임명을 두고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기념사업회 전·현직 임직원들은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임명 취소 행정소송과 박 목사의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도 낼 것이라고 한다.
박 목사의 이사장 임명은 절차와 인물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
정부는 애초 기념사업회 쪽에 박 목사를 이사장으로 추천하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회 쪽은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거부하고 정성헌 전 이사장과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를 추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둘이 아닌 박 목사를 이사장으로 낙점하는 무리수를 뒀다. 물론 법적 인사권은 안전행정부 장관이 갖고 있다. 그러나 기념사업회 정관 등에는 임원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이사장을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2001년 설립 이후 네 명의 이사장 모두 이 규정에 따라 선임했는데, 이번에 절차와 관행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내리꽂은 것이다.
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며, 민주화운동의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후대에 물려주는 과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지난 2000년 여야 국회의원들의 합의로 설립됐다. 정권에 따라 정치적 색깔을 지닌 인물이 이사장을 맡을 경우 그 가치가 훼손되고 사업의 방향성이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박 목사는 지난 대선 때 “유신 두목의 딸이라는 이유로 두목의 죄를 다 짊어지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친일 교과서’라고 불리는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성명에도 동참한 바 있다.
기념사업회는 임직원 40여명에 한 해 예산이 60억원 정도에 불과한 작은 기관이다. 구조개혁을 할 것도 없고 이권과는 아예 무관한 곳이다. 아무리 정권 초라고 해도 이런 곳까지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걸 보면, 그 의도는 ‘박정희 복권’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박 목사가 이사장으로 실제 활동을 하면 유신시대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굴절된 해석으로 기념사업회의 정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애초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부적절한 인물을 추천 절차마저 짓밟고 선임해버렸으니, 민주적인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이사장 선임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며 나름 우리 사회 발전에 이바지해온 공로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말년에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스스로 물러나는 용단을 기대한다.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중앙 [사설] 또 후진국형 참사 … 제발 안심하고 살게 해달라

지난 17일 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져 그곳에서 신입생 환영행사를 하던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목숨을 잃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미처 피기도 전에 져버린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가슴이 아플 뿐이다.

 이번 사고는 대한민국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을 고스란히 드러낸 참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고가 난 체육관이 이미 안전에 경고음이 울린 상태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같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울산 지역의 공장 건물들이 이미 지난 10~11일 23㎝의 눈으로 무너져 모두 2명이 숨졌기 때문이다. 문제의 리조트가 위치한 경주는 울산보다 많은 50~60㎝의 폭설이 내려 건물 안전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이 지역에 추가로 눈이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와 언론 보도도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대규모 손님을 받은 리조트의 무책임과 안전불감증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특히 샌드위치 패널을 쓰면 짧은 기간에 쉽게 건축물을 지을 수 있어 돈을 아낄 수는 있지만 견고성이나 이용자의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고급 레저시설에 이런 연약한 건물을 지어놓고, 더구나 무거운 눈이 잔뜩 쌓인 상태에서 수백 명의 학생이 모여 행사를 벌이도록 한 것은 리조트 측의 직무유기라고밖에는 할 수 없다.

 아울러 사고 뒤 인근 군부대까지 나서 중장비를 동원해 제설작업을 하고서도 구조대의 접근이 힘들었을 만큼 험악한 상황에서 굳이 행사를 강행한 총학생회의 강심장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은 총학이 이런 상황에서 행사를 벌인 이유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아울러 축제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소비성 행사를 활동의 핵심으로 삼는 일부 총학생회의 그릇된 풍조도 이 기회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학교 측의 책임도 따져 물어야 마땅하다.

 이번 사고는 하필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20주년을 맞는 해에 발생해 국민을 허탈하게 한다. 대한민국은 과연 20년 전보다 국민 안전 면에서 나아졌는가 하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어이없는 이번 사고를 보면서 안전 관련 시스템은 아직도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국민 안전’을 국정목표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이 안전행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안전시스템 준수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고 경위를 낱낱이 파악하고 책임자를 준엄하게 심판하는 일은 당연히 할 일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 재발을 막고 국민안전을 지킬 근본적인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건성건성 이전의 정책이나 재탕 삼탕 끌어 모아 대책이라고 내놓아서는 국민의 분노만 자극할 뿐이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대한민국의 국민 안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이 안전하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되겠는가. 

중앙 [사설] 안철수의 새정치에 새 인물이 없다

공익적 관점에서 신당(新黨)은 두 얼굴을 지닌다. 뿌리를 내리면 기존 정치권의 개혁을 자극한다. 유권자에게는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기존 거대 양당에 실망한 무당파가 많은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부작용이 많다. 제3당이 적잖은 사표(死票)를 초래해 다수 의사 결집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손해를 끼친 적이 많다.

 한국 정치에서 신당이 성공하려면 지역기반, 강력한 지도자, 차별화된 정책 중 최소한 하나를 갖추어야 한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은 2~3개를 갖췄다. 급진진보 정당은 ‘차별화된 정책’으로 살아남았다. 반면 정주영·이회창·이인제·문국현·박찬종은 ‘확고한 1개 요소’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안철수 신당이 탄생의 수순을 밟고 있다. 370여 명의 창당 발기인이 발표됐고 새정치연합이란 이름도 정해졌다. 아직 정강·정책은 없지만 최근 공개된 ‘새 정치 3대 가치’를 통해 정책의 윤곽은 드러났다.

  새정치연합은 신당의 성공조건에서 많은 의문을 안고 있다. 신당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처럼 뚜렷한 지역기반이 없다. 호남에서 인기가 높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와는 성격이 다르다. 최근엔 인기가 흔들리는 조짐도 강하다. 그렇다면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이 역시 불투명하다. 주요 구성원은 대부분 국회의원·장관을 지낸 구 인물이다. 그들은 안 의원이 비판하는 구정치에 몸담았다. 일부는 잦은 변신으로 철새라는 비판을 받는다. 구정치 출신이라고 반드시 구정치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새 정치에 어울리는 참신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안 의원 주장처럼 새 정치의 가치가 절박한 것이라면 개혁적 현직 인사들이 핵심을 이뤄야 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은 정의 사회, 사회통합, 한반도 평화를 3대 가치로 발표했다. 이런 지향점은 기존 정당과 다르지 않다. 정치개혁의 새 좌표를 확보하려면 신당은 각별한 각오로 인물과 정책에서 새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중앙 [사설] 통진당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민주주의

결정적 시기에 국가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이른바 ‘혁명 세력’들은 합법, 반(半)합법, 비합법 투쟁을 교묘하게 배합하는 것을 미덕으로 안다.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선동 혐의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뒤 통합진보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스스로 미덕일지 모르겠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중적 행태다. 통진당은 법원 판결이 나온 그제 밤 당 소속 오병윤·김미희·김재연 의원을 포함해 200여 명 당원이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선고 내용을 규탄했다. 이정희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법원의 선고를 ‘정당해산용 맞춤 판결’이라고 주장하고 “이 판결의 제작주문은 박근혜 정권이 했다. 눈과 귀가 가로막히고 입이 틀어막힌 독재시대가 우리 앞에 현실로 돌아왔다”고 대통령과 사법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 대표와 통진당의 언행은 비현실적인 데다 국민의 판단 능력을 우습게 알며 대한민국 사법부의 독립과 3권분립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국민 상식에 반하고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위법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이 있었다”(민주당),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안철수신당)는 공식 논평이 나왔는데 통진당은 거기에 담긴 국민의 뜻을 경청해야 한다.

 이번 재판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념갈등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데다 이 대표의 남편이 포함된 21명의 대규모 변호인단까지 참여해 절차적으로 옥에 티조차 용납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46차례에 98일간 이어지는 공판 횟수와 공판 기간은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12·12 및 5·18사건의 공판 때보다 많아 이 사건에 임하는 재판부의 신중함과 엄중함을 잘 보여줬다. 이석기 의원조차 “이번 사건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지난 3일 최후진술을 한 바 있다.

 입만 열면 사상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다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고 손바닥 뒤집듯 금세 사법부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바로 이 수준이 통진당식 민주주의인 것이다.

조선 [사설] 국회, 여야 중진 합의한 '국가 미래 기구' 출범시켜야

여야의 5선(選) 이상 중진 의원 11명이 17일 만나 통일헌법과 권력구조 문제를 비롯한 국가적 미래 어젠다를 다룰 초당적(超黨的) 협의기구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의 "여야 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제안에 따라 처음 만난 뒤 이날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느 것 하나 투명한 게 없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통일(統一) 문제의 경우 방식, 비용 조달, 통일헌법 등 국민적 의견 통일이 필요한 게 하나둘이 아니다. 우리 경제는 최근 3년 연속 잠재성장률(3% 후반대)에도 못 미치는 저(低)성장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져야 양극화 문제도 풀어가고 사실상 실업자가 100만명이 넘는 청년층 취업난도 해결할 수 있다. 현 정부 남은 임기 4년 동안에만 40조 가까운 재정 적자가 예상될 정도로 나라 살림은 쪼들리는데 주(主)된 복지 수요층인 노인 인구 비중은 현재 12%에서 2030년엔 24.3%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초고속 노령화 시대의 복지 모델과 재원 마련 방안 등에 대한 세대 간, 정파 간 합의 도출이 시급하다. 중·일의 각축으로 요동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의 중장기 생존 전략도 찾아야 한다.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매번 톱 3에 드는 핀란드는 1992년 정부에 대해 4년마다 한 번씩 15년 후를 대비한 국가 미래 전략을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고 의회 '미래상임위원회'에서 이 전략의 실행 여부를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영국은 1971년 만든 '중앙 정책 전략실'을 2002년 총리 직속 '미래 전략실'로 개편해 장기 국가 전략 로드맵을 만들어 각 부처의 정책 집행을 지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행정부 내 '정보위원회'가 비슷한 기능을 한다.

노무현 정부가 '2030 미래 비전 보고서', 이명박 정부가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각자 자기 정권만의, 정권만을 위한 5년 시한부(時限附) 작업을 하다 말았기 때문이다. 최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초당적 국가 미래 전략 기구 설치'를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새누리당도 더 이상 말이 없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 뒤 나라의 미래를 그려보고 대비책을 세워 다음 세대(世代)가 우리 세대보다 나은 미래를 맞도록 해 주는 건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것은 1~2년 벼락치기 논의로 해결될 수 없고, 그렇게 다뤄서도 안 된다. 여야가 정치적, 이념적 이해에 따라 마음대로 자르고 붙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여야는 중진 의원들의 이번 합의를 적극 받아들여 우선 국회 차원에서 준비위원회 발족 등 후속 조치를 이어가야 한다. 일단 그렇게 시작한 후에 정부와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범(汎)국가적 기구로 확장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늦었다.

조선 [사설] 체육관 참사, '異常 기후' 맞춰 새 건축 안전 기준 만들라

17일 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마우나오션리조트에 딸려 있는 부속 체육관 건물이 지붕에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돼 이곳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하던 부산외국어대 학생 중 9명과 행사를 맡은 이벤트사 직원 등 10명이 숨지고 10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체육관 건물은 가로×세로 36×31m에 높이 10m의 단층 건물로 2009년 지어졌다. 벽면에 철근 골조를 세워놓고 그 사이사이는 단열재 양쪽에 철판을 붙인 샌드위치 패널로 채운 PEB 공법으로 지었다. PEB 공법은 시공(施工)이 간편한 데다 벽면 안쪽엔 기둥이 없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가 높아 공장·창고·격납고에 많이 적용한다. 그러나 지붕에 눈이 많이 쌓일 경우 지붕 무게를 버텨주는 기둥이 없어 붕괴 위험이 높다. 울산에서도 지난 10~11일 PEB 공법으로 지은 2개 공장 지붕이 무너져 3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강당·체육관처럼 많은 사람이 몰리는 건물에 PEB 공법을 허용하는 것이 적합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주 양남면의 경우 연이은 폭설로 지난 13일 눈 쌓인 높이가 48㎝에 달했다. 축축한 습설(濕雪)이 50㎝ 가까이 쌓여 있었다면 체육관 지붕의 눈 무게는 200t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50t 탱크 4대가 올라앉은 무게다. 현행 건축물 구조 기준은 지역마다 평년 적설량을 감안해 지붕 1㎡당 견뎌내야 하는 적설 하중(荷重)을 정해놓고 있다. 눈이 많이 오는 속초·강릉은 200· 300㎏이지만 적설량이 적은 경주·울산 지역은 50㎏에 불과하다. 이번에 붕괴된 체육관 지붕엔 설계 하중 기준치의 3배 이상 눈이 쌓였다. 지금의 건축 기준으로 지은 건물로는 도저히 쌓인 눈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당장 동해안 쪽 지자체들은 눈이 많이 쌓인 위험 건물에 안전 경보를 발령해 지붕의 눈을 치우거나 건물 사용을 자제하도록 해야 한다.

기상 이변으로 태풍·집중호우나 폭설(暴雪)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기상이 갈수록 사나워지는 것을 감안해 건축 구조 기준을 바꾸기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지만 그 결과는 2018년에야 나온다고 한다. 건축물 허가 기준을 서둘러 기후(氣候) 변화에 맞춰 바꿔야 한다. 신축 건물만이 아니라 기존 건축물들의 안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조선 [사설] 여야, "또 무슨 일 터질까" 금융 소비자들 걱정 안 들리나

저축은행·LIG·동양그룹 사태 등 금융 사고가 잇따르면서 수많은 고객이 피눈물을 흘렸다. 부실 기업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을 안전한 자산인 것처럼 속여서 파는 등 금융회사들이 금융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금융거래 관행을 바로잡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작업이 국회에서 막혀 있다.

지금 국회에는 정부가 작년 7월에 제출한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안과 함께 의원들이 발의한 여러 건의 관련 법안들이 계류돼 있지만 여야가 본격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연내(年內) 처리마저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카드회사의 개인 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한 신용정보법·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에 설치돼 있는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시킨다는 데 대해서는 여야 모두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금융감독 체계를 통째로 바꿀 것을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금처럼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모두 관장하면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독립성이 약화된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금융위의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에 넘기거나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로 분리시키는 법안을 내놨다.

그러나 어떤 금융감독 체계가 좋은지에 대해서는 모범 답안이 없고 여야 간에 합의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금융감독 체계까지 한꺼번에 바꾸려고 고집부리다가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까지 마냥 뒤로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여야는 무슨 금융 사고가 또 터져나와 금융회사에 맡겨둔 자산이 줄어들지 몰라 조마조마해하는 고객들의 불안감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줘야 한다.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져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부터 처리하고, 금융감독 체계 개편은 추후 논의하는 방향으로 사안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경향 [사설]이런 법령으로 화학물질 사고 막을 수 있겠나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는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그런데 일단 발생했다 하면 확산 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얼마 전 있었던 구미의 불산 누출사고가 그렇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이 그렇다. 화학물질의 유출을 미연에 막아 사고를 예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들 사건은 일깨워준다.

정부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란 이름의 법률을 만든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환경유해물질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촘촘한 관리시스템의 필요성은 지난해 5월 이 법안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될 때만 해도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엊그제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화평법과 화관법의 하위법령안을 보면 갑자기 그런 공감대가 어디로 사라졌나 하는 의문이 든다. 하위법령의 조항들이 곳곳에서 모법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화학물질을 관리하려면 그 물질의 성질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문제의 하위법령안은 화학물질의 성분이나 함량에 대한 정보는 물론 유통 과정에 대한 정보까지 영업 비밀로 간주하고 있다. 취급하는 업체에서 당국에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다. 화학물질의 사용·판매·제조·수입량에 관한 정보도 업체 판단에 따라 생략할 수 있다고 한다. 화학물질은 매일같이 새로운 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데 그에 대한 정보가 깜깜한 상태에서 눈감고 관리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사고를 내거나 법을 어긴 업체에 최대한 관용을 베푸는 것도 문제다. 정부의 예고안은 위법이 적발된 업체에 먼저 계도를 하고, 이어 경고 및 개선명령을 한 다음 그래도 안될 때 영업정지를 내리지만 이 또한 약간의 과징금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과징금을 매길 때도 전체 매출액이 아니라 사고가 난 사업장 혹은 그 공정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연 매출 10억원인 사업장에서 아무리 중대한 사고가 나더라도 최대 5000만원의 과징금만 내면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징벌적 배상은커녕 처벌이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솜방망이 제재다. 이런 법령으로 준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예고한 하위법령안은 결국 사고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환경부는 당초의 입법 취지를 살려 법령을 새로 만들기 바란다.

경향 [사설]박 대통령, ‘간첩 조작’ 논란 지켜만 볼 텐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이 불거진 지 닷새가 지났다. 그러나 법치국가의 근간을 흔들 만한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진상규명 작업은 제자리걸음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외교부는 시민의 기본권이나 나라의 명예보다 조직 보호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입만 열면 국격(國格)을 거론하던 공직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중국 당국이 위조된 문서라고 밝힌 증거서류 3건 가운데 “주선양 총영사관이 입수한 문서는 허룽시 공안국에서 발급한 ‘(출입경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1건”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나머지 서류 2건에 대해선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답변서를 국회에 보냈다고 한다. 윤 장관 발언은 문서 3건 모두 외교경로를 거쳤다는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다. 두 기관의 거짓말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외교부가 뒤늦게나마 사실관계를 밝힌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침묵을 지킨 것도, 침묵을 깬 것도 책임을 면하려는 의도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자체 조사 방침을 밝혀온 대검은 노정환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진상조사팀을 구성했다. 간첩사건 수사를 진행해온 공안부 검사들은 수사팀에서 배제하고, 위법이 확인될 경우 수사로 전환할 것이라며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엉터리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장본인이 자체 조사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정식 수사도 아닌 단계에서 국정원 관계자들까지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는가. 결국 어떠한 조사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은 지금 조사받아야 할 대상이지 조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셀프 조사’를 빌미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오판임을 알아야 한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를 조작했다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태다. 의혹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관련 기관뿐 아니라 정권 전체의 신뢰가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간첩 조작 의혹은 이미 중국과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한 터다. 국가 지도자로서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와 교복 공동구매 문제까지 언급할 만큼 ‘깨알 리더십’을 보이는 대통령 아닌가. 박 대통령은 엄정한 진상규명 의지를 천명하고 국회는 조속히 특별검사 도입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경향 [사설]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빚은 경주 리조트 참사

또 건물이 무너지고 꽃다운 청춘이 희생됐다. 그제 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갑자기 무너져내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 중이던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 거꾸로 흉기가 되는 것은 후진적 사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생활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졸지에 변을 당한 학생과 그 가족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게다가 이런 사고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현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번 붕괴사고는 최근 일주일 사이에 50~70㎝의 폭설이 내려 체육관 지붕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아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폭설이 원인이라면 더더욱 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폭설은 갑자기 예고 없이 내린 것이 아니다. 이미 강원 영동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어 충분히 경각심을 갖고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체육관의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든가 아니면 체육관 사용을 금지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체육관에는 적정 수준을 초과한 인원을 입장시켜 피해를 키웠고, 안전요원조차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人災)의 정황은 사고 당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너진 체육관은 철골구조에다 샌드위치 패널로 외벽과 지붕을 덮은 형태로 2009년 지어져 지금까지 한 차례도 안전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규모가 작아 진단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허점과 무신경도 대형 참사에 일조한 셈이다. 체육관이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조계산을 잘못했거나 부실하게 시공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너진 체육관과 비슷한 자재나 형태·구조로 지어진 경주지역의 다른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총학생회 단독으로 주최하게 한 부산외대의 학사관리도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결국 이번 참사 역시 가장 기초적인 안전조치조차 무시한 우리 사회의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낳은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지적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부터 확실히 가려야 할 것이다. 리조트의 안전관리와 시설물 구조의 문제는 물론 건축허가부터 설계·시공·준공과 그 이후의 관리실태 등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안전의식은 구호로 고취되는 게 아니라 제도와 문화 속에서 뿌리내리는 것이다.

한겨레 [사설] 공공개혁 하려면 낙하산 인사부터 멈춰야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관행이 개선은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권력 주변에 맴돌던 정치권 인사나 관료 출신들이 공공기관의 장이나 감사, 사외이사 등의 자리에 선임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가 ‘중점관리대상’으로 선정해 강력한 개혁을 주문하고 있는 공공기관 38곳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툭하면 공공부문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가 비정상적인 낙하산 인사를 방치하고 더 나아가 이를 강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다.
<한겨레>가 사회공공연구소와 함께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 38곳의 기관장과 감사의 선임 배경을 살펴보니, 지난해 11월 이후 2월까지 새로 선임된 기관장 13명이 정치권에서 내려온 인사라고 한다. 감사의 경우 상임감사제를 두고 있는 공공기관 35곳 가운데 11곳에서 정치인 출신을 앉혔다. 모두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이거나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진영에 참여한 경력을 지니고 있어 누가 보더라도 ‘보은 인사’다.
공기업이면서 상장기업이기도 한 한국전력은 새누리당 출신의 이강희·조전혁 전 의원과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했다고 17일 공시했다. 정부가 대주주로서 사외이사 추천권이 있다 하더라도 외부 소액주주의 이해와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상장 공기업의 사외이사 자리까지 낙하산으로 채우는 것이야말로 원칙에 반하는 비정상의 전형이다.
정치권 인사나 관료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공공기관 임원 자격을 박탈해선 물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는 생략한 채 전문성이나 능력이 의심스러운 인사들에게 공공기관 경영을 맡기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이런 낙하산 인사들일수록 자율적인 책임경영과 과감한 혁신보다는 정부의 입김이나 내부 비리구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문제로 지적하는 방만경영이나 만연한 도덕적 해이도 사실은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국가적 과제다. 공공성의 강화를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은 지금보다 좀더 효율적이고 건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 임원 선임 권한을 가진 정부가 구태의연한 낙하산 인사 관행과 그에 따른 폐해에는 눈감으면서 공공기관 임직원한테만 일방적 잣대로 개혁을 강요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런 식의 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고 성공하기도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억지 논리로 ‘노조 길들이기’를 할 게 아니라 국민 모두 반대하는 낙하산 인사 관행부터 멈춰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 요구’를 이행하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17일 372쪽 분량의 인권조사보고서를 내놓음으로써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접근방식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북한은 인권 문제를 부인할 게 아니라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에서 ‘최고 지도층의 정책과 결정에 따라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반인도 범죄가 자행돼왔다’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 및 일반수용소 수감자, 종교인과 반체제 인사, 탈북 기도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에 대한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져야 한다’면서, 이의 한 방법으로 유엔 안보리가 북한 정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나 유엔 임시재판소를 만들어 회부하고 책임자를 제재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보호 책임은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 2006년 안보리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수용된 원칙이다.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의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적용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은 인권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쪽은 이번에도 ‘인권 보호를 빌미로 정권을 교체하려는 시도와 압박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하고 있다. 인권조사위가 권고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나 임시재판소 설치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 등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 당장은 보고서 내용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북한 인권 실태와 책임 소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판단 기준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이 ‘최악의 인권침해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길은 그릇된 제도와 관행을 바꿔가는 것뿐이다. 보고서가 권고한 정치범수용소 폐쇄, 출신성분에 의한 차별과 주민 감시 폐지, 이동의 자유 보장 및 탈북자 보호 등이 그 일부다. 북한이 이런 요구를 거부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 커질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요구사항을 이행하기 어렵다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북한 주민의 식량권 보장 등은 혼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실질적인 인권 개선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체제 불안인 만큼 우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진전된 뒤에는 인권 문제를 논의할 공동위원회 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북한의 전향적 태도가 가장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겨레 [사설] 언제까지 이런 황당한 ‘인재’를 되풀이해야 하나

생때같은 젊은 청춘들이 또 어처구니없는 참변을 당했다. 17일 경북 경주의 한 리조트에서 벌어진 참사를 보면서 언제까지 이런 황당한 사고가 되풀이돼야 하는지 참담함을 감출 길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사고 역시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사망자 가족들에 대한 위로, 부상 및 중상자들에 대한 배려와 함께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1000명이나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면서 아무도 안전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선 사고가 난 마우나오션리조트 쪽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경주시에는 40㎝, 리조트가 있는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일대에는 70㎝에 가까운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당연히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눈을 치우는 등 사전 준비를 했어야 마땅하다. 리조트를 소유·운영하는 ㈜마우나오션개발의 모회사 격인 코오롱그룹이 사죄문을 내놓았으나 사후약방문 격이다. 사전에 시설점검만 했더라도 그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휴양지 쪽과 코오롱그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고가 난 건물의 부실시공 의혹도 제기된다. 2009년 6월 공사를 시작해 두 달 보름 만에 준공을 하면서 샌드위치 패널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리조트 인근의 공장이나 식당 등 비슷한 자재와 구조로 지어진 건물들이 폭설에도 멀쩡했다는 걸 보면 규정대로 시공이 됐는지 의문이다. 또 준공 이래 지금까지 한차례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다니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관리가 그렇게 소홀해도 되는지 놀라울 뿐이다.
학교 쪽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부산외국어대 쪽은 이번 신입생 환영회는 전적으로 학생회가 주최한 행사였다고 해명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학교 쪽의 재정지원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렇다 해도 1000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행사에 겨우 교수 3명을 보내 놓고 특별한 안전점검도 하지 않았다니 교육기관으로서 책임이 가볍지 않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당국은 임시 대책을 땜질식으로 내놓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발을 빼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번에도 교육부가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외부 행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역시 미봉책이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거쳐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에야말로 각 부문에 만연한 무책임한 적당주의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울 때다.

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중앙 [사설] 재산권과 직결된 부동산 거래정보까지 유출됐다니

   신용카드사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년간 약 600만 건의 부동산 거래정보가 저장된 공인중개사협회의 인터넷 서버가 해킹당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개인의 재산권과 직결되는 부동산 거래정보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사설단체에 의해 무단으로 수집, 보관돼 온 것으로 밝혀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17일 이 같은 사실을 본지가 보도한 직후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공인중개사협회에 수사요원을 급파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해킹을 통해 이미 유출된 정보가 재산권을 침해하는 불법거래에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경찰은 우선 해킹을 시도한 주체가 누구인지, 또 어떤 정보가 실제 유출되어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신속하게 밝혀내 2차 피해 방지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이번 부동산 거래정보 유출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인중개사협회는 1년간 보관할 수 있는 부동산 매매 및 임대계약 정보를 10년치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었다고 한다. 더구나 협회는 그러한 거래정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수집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인중개사협회를 감독해야 할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거래정보의 해킹 사실은 물론, 그러한 정보가 법적 근거 없이 전산자료로 저장돼 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개인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보안의식조차 없었으니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어디서 또 개인정보가 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정부는 개인정보가 수집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 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 이미 문제가 터진 금융권은 물론, 부동산 거래와 병원과 약국 등 건강 관련 기관, 인터넷 상거래, 교육기관 등 만일의 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는 곳까지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의 불안감을 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