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8일 화요일

경향 [사설]박 대통령, ‘간첩 조작’ 논란 지켜만 볼 텐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이 불거진 지 닷새가 지났다. 그러나 법치국가의 근간을 흔들 만한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진상규명 작업은 제자리걸음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외교부는 시민의 기본권이나 나라의 명예보다 조직 보호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입만 열면 국격(國格)을 거론하던 공직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중국 당국이 위조된 문서라고 밝힌 증거서류 3건 가운데 “주선양 총영사관이 입수한 문서는 허룽시 공안국에서 발급한 ‘(출입경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1건”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나머지 서류 2건에 대해선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답변서를 국회에 보냈다고 한다. 윤 장관 발언은 문서 3건 모두 외교경로를 거쳤다는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다. 두 기관의 거짓말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외교부가 뒤늦게나마 사실관계를 밝힌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침묵을 지킨 것도, 침묵을 깬 것도 책임을 면하려는 의도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자체 조사 방침을 밝혀온 대검은 노정환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진상조사팀을 구성했다. 간첩사건 수사를 진행해온 공안부 검사들은 수사팀에서 배제하고, 위법이 확인될 경우 수사로 전환할 것이라며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엉터리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장본인이 자체 조사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정식 수사도 아닌 단계에서 국정원 관계자들까지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는가. 결국 어떠한 조사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은 지금 조사받아야 할 대상이지 조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셀프 조사’를 빌미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오판임을 알아야 한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를 조작했다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태다. 의혹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관련 기관뿐 아니라 정권 전체의 신뢰가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간첩 조작 의혹은 이미 중국과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한 터다. 국가 지도자로서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와 교복 공동구매 문제까지 언급할 만큼 ‘깨알 리더십’을 보이는 대통령 아닌가. 박 대통령은 엄정한 진상규명 의지를 천명하고 국회는 조속히 특별검사 도입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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