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8일 화요일

중앙 [사설] 통진당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민주주의

결정적 시기에 국가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이른바 ‘혁명 세력’들은 합법, 반(半)합법, 비합법 투쟁을 교묘하게 배합하는 것을 미덕으로 안다.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선동 혐의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뒤 통합진보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스스로 미덕일지 모르겠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중적 행태다. 통진당은 법원 판결이 나온 그제 밤 당 소속 오병윤·김미희·김재연 의원을 포함해 200여 명 당원이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선고 내용을 규탄했다. 이정희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법원의 선고를 ‘정당해산용 맞춤 판결’이라고 주장하고 “이 판결의 제작주문은 박근혜 정권이 했다. 눈과 귀가 가로막히고 입이 틀어막힌 독재시대가 우리 앞에 현실로 돌아왔다”고 대통령과 사법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 대표와 통진당의 언행은 비현실적인 데다 국민의 판단 능력을 우습게 알며 대한민국 사법부의 독립과 3권분립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국민 상식에 반하고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위법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이 있었다”(민주당),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안철수신당)는 공식 논평이 나왔는데 통진당은 거기에 담긴 국민의 뜻을 경청해야 한다.

 이번 재판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념갈등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데다 이 대표의 남편이 포함된 21명의 대규모 변호인단까지 참여해 절차적으로 옥에 티조차 용납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46차례에 98일간 이어지는 공판 횟수와 공판 기간은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12·12 및 5·18사건의 공판 때보다 많아 이 사건에 임하는 재판부의 신중함과 엄중함을 잘 보여줬다. 이석기 의원조차 “이번 사건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지난 3일 최후진술을 한 바 있다.

 입만 열면 사상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다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고 손바닥 뒤집듯 금세 사법부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바로 이 수준이 통진당식 민주주의인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