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0일 목요일

조선 [사설] 국민 세금으로 해운업만 특혜 지원하겠다는 건가

금융위원회는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출자를 받아 연내에 해운(海運)보증기구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항공·발전사업에도 지원은 할 수 있으나, 주로 해운회사들이 선박을 주문할 때 보증을 서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한다.

해운업계는 최근 전 세계 물동량 감소로 1·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까지 알짜 자산을 팔고 있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금 불황의 고통에 빠져 있는 업종은 해운만이 아니다. 작년에만 612개 건설업체가 문을 닫았고, 중소 조선회사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이들에 자금을 지원했던 저축은행들도 흔들리고 있다. 증권업계는 증시 거래대금이 급격히 감소해 점포와 인력을 다투어 줄이고 있고, 이번 불황에 증권회사들이 몇 개나 문을 닫을지 모르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이런 불황 업종들이 단체로 들고일어나 해운보증기구 같은 정부 지원 기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 일일이 하나씩 만들어 줄 것인가.

해운·조선업체들에 대출과 보증 서비스를 맡아줄 선박금융공사를 만들겠다는 것은 지난 대선(大選) 공약이었다. 당초 정부는 특정 업종에 특혜를 주기 위한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통상 마찰의 소지가 있다며 선박금융공사 설립에 반대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부산 지역구 의원들의 요구가 거세자 결국 해운보증기구를 부산에 신설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해운업에 대한 자금 지원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도 보증기구를 따로 만들겠다는 것은 선거용 선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정책금융기관은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중소기업진흥공단·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10여 곳에 달한다. 국민 돈으로 정책 금융을 공급하는 공기업이 넘치다 보니 업무 중복도 심각하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업무의 63%가 중복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대출받은 업체들 중 51%가 다른 정책금융기관의 대출·보증을 이중으로 받았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기업 수출을 지원하는 업무가 대부분 겹칠뿐더러 외국에선 주로 민간이 하는 일을 두 공기업이 독과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경영 부실로 인한 구멍은 매번 국민 세금(稅金)으로 메워주고 있다.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 정부가 출연금으로 넣어준 예산도 지난 10년간 6조원에 이른다. 해운보증기구에도 하염없이 국민 세금이 투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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