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이 수준 이하다. 품격도, 이성도 내팽개친 채 의혹만 덮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야당을 향해 국익을 생각하라면서 스스로는 외교적 결례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간첩사건 증거서류 위조를 확인해준 중국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은 어제 방송에 출연해 “선진국이 안된 국가들에서는, 정부 기관에서 발행한 문서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서로 다른 문서를 제출할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데, 무조건 우리가 위조했다고 하는 것은 국익을 팽개치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 위험한 행태”라며 일종의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중국이 후진국이어서 발뺌하고 있다거나, 특정한 의도로 한국 사법절차에 개입하려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게 집권당 국회의원이 수교국이자 최대 교역국에 할 소리인가. 중국 정치인이 한국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면 참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설화(舌禍) 제조기’로 불리는 김 의원만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서울시 공무원으로 잠입한 간첩 혐의자를 편들어 정부를 공격하며 거리로 나섰다”고 했다. 최 원내대표가 ‘간첩 혐의자’로 칭한 유우성씨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검찰이 항소심에 제출한 증거는 중국 당국이 위조 서류라고 밝힌 터다. 그런데도 사실상 간첩으로 단정짓다니, 의혹을 덮기 위해서라면 법치인식도 인권감수성도 다 팽개치겠다는 건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주당을 겨냥해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이냐”고 한 것도 치졸하기 짝이 없다.
새누리당의 행태 이면에는 어떻게든 ‘간첩 조작’ 의혹 확산을 막겠다는 속내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막말과 억지로 적당히 묻힐 수준을 넘어섰다. 의혹의 불길이 정권 전체로 번지기 전에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서는 편이 낫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민주당을 향해 “한·중 외교 마찰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자해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외교 마찰을 초래할 ‘자해행위’를 하는 이가 누구인가. 새누리당이 틈만 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국익’을 해치는 이는 또 누구인가. 새누리당의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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