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국민들 사이에는 “글쎄 그게 될까”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선행학습을 막자는 데는 찬동하지만 과연 그걸 법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선행학습 금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제정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지금도 이 의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대통령의 약속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으나, 이 법안으로 망국적인 사교육이 근절될 것이란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특별법안의 핵심은 초·중·고교 및 대학 입시에서 교육과정보다 앞선 내용을 가르치거나 시험으로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의 중간·기말고사, 수행평가는 물론 고입·대입 선발고사에서도 선행학습을 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낼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을 유발하는지 평가를 해서 교육당국이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하지 않으면 행정적 제재를 내린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선행학습 금지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겠으나 자세히 보면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우선 금지 대상이 되는 선행학습의 개념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어 사사건건 논란을 부를 공산이 크다. 예를 들어 과학고 입시에 나온 특정 문제가 정규 교육과정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 일일이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평가의 적절성과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을 우려가 있다.
규제 대상을 공교육에 한정하고 학원 등 사교육 업체는 방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초·중·고에서는 방과후 수업을 통해 선행학습에 해당하는 심화학습을 일부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이런 교육이 금지되면 학원으로 더 많이 몰리는 뜻밖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학원에선 선행학습을 내건 광고만 할 수 없도록 했는데, 이게 아무런 규제효과가 없다는 것쯤은 교육당국도 알 것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자칫 학원만 배불리는 결과를 가져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무슨 일이든 원인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선행학습을 막으려면 선행학습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작금의 선행학습 폐해는 평준화의 틀을 벗어난 특목고와 자사고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일반고는 슬럼화의 길을 걷는 고교 양극화, 공교육의 황폐화 속에서 싹텄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의 모순을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선행학습만 금지하는 것은 과거 과외금지조치가 그랬던 것처럼 수명이 오래갈 수 없다. 교육사회구조의 혁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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