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5선(選) 이상 중진 의원 11명이 17일 만나 통일헌법과 권력구조 문제를 비롯한 국가적 미래 어젠다를 다룰 초당적(超黨的) 협의기구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의 "여야 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제안에 따라 처음 만난 뒤 이날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느 것 하나 투명한 게 없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통일(統一) 문제의 경우 방식, 비용 조달, 통일헌법 등 국민적 의견 통일이 필요한 게 하나둘이 아니다. 우리 경제는 최근 3년 연속 잠재성장률(3% 후반대)에도 못 미치는 저(低)성장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져야 양극화 문제도 풀어가고 사실상 실업자가 100만명이 넘는 청년층 취업난도 해결할 수 있다. 현 정부 남은 임기 4년 동안에만 40조 가까운 재정 적자가 예상될 정도로 나라 살림은 쪼들리는데 주(主)된 복지 수요층인 노인 인구 비중은 현재 12%에서 2030년엔 24.3%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초고속 노령화 시대의 복지 모델과 재원 마련 방안 등에 대한 세대 간, 정파 간 합의 도출이 시급하다. 중·일의 각축으로 요동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의 중장기 생존 전략도 찾아야 한다.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매번 톱 3에 드는 핀란드는 1992년 정부에 대해 4년마다 한 번씩 15년 후를 대비한 국가 미래 전략을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고 의회 '미래상임위원회'에서 이 전략의 실행 여부를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영국은 1971년 만든 '중앙 정책 전략실'을 2002년 총리 직속 '미래 전략실'로 개편해 장기 국가 전략 로드맵을 만들어 각 부처의 정책 집행을 지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행정부 내 '정보위원회'가 비슷한 기능을 한다.
노무현 정부가 '2030 미래 비전 보고서', 이명박 정부가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각자 자기 정권만의, 정권만을 위한 5년 시한부(時限附) 작업을 하다 말았기 때문이다. 최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초당적 국가 미래 전략 기구 설치'를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새누리당도 더 이상 말이 없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 뒤 나라의 미래를 그려보고 대비책을 세워 다음 세대(世代)가 우리 세대보다 나은 미래를 맞도록 해 주는 건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것은 1~2년 벼락치기 논의로 해결될 수 없고, 그렇게 다뤄서도 안 된다. 여야가 정치적, 이념적 이해에 따라 마음대로 자르고 붙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여야는 중진 의원들의 이번 합의를 적극 받아들여 우선 국회 차원에서 준비위원회 발족 등 후속 조치를 이어가야 한다. 일단 그렇게 시작한 후에 정부와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범(汎)국가적 기구로 확장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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