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0일 목요일

경향 [사설]국민연금 동원해 공기업 부실 메울 셈인가

기획재정부는 어제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공기업 개혁을 올해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한국경제가 더 높이 도약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면서 “공공기관부터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현실성 없는 낙하산 대책도 문제지만 연기금을 동원해 공기업 자산을 사들이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개혁하자면서 공기업에 또 다른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래놓고 무슨 공기업 개혁인가.

이번 대책에는 그간 논란이 된 낙하산 해결 방안도 포함됐다. 공기업 임원의 자격 요건을 담은 지침을 만드는 게 골자다. 임원추천권을 가진 공공기관운영위 산하에 임원 자격 기준 소위를 구성키로 했다. 일정 자격을 갖춘 인사 외에 무분별한 보은성 인사를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침 하나 만든다고 낙하산 인사가 사라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근본 원인보다 규정 먼저 챙기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공기업 낙하산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신임 사장에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이 내정됐다고 한다. 친박계인 김학송·김성회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일찌감치 한자리를 꿰차고 있다. 공공기관장도 모자라 이제 감사·사외이사도 낙하산 천지다. 지금도 공공기관운영위가 있지만 청와대 말 한마디에 모든 게 결정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 자격 기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이참에 공기업을 산하기관으로 둔 정부 관료들의 자리라도 늘리자는 꼼수는 아닌지 모르겠다.

더 걱정은 연기금 동원령이다. 자산 매각이 지연되자 나온 대안의 하나다. 공기업 부채 축소와 본사 지방 이전 과정에 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살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시한을 정해놓고 자산 매각을 독촉하는 마당이니 이대로라면 헐값 매각 시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를 연기금의 풍부한 자금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하지만 연기금이 어디 정부 쌈짓돈인가. 정부가 시킨다고 국민연금이 총대를 멜 리도 없겠거니와 만만한 게 연기금이라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매입한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건가. 전 국민의 노후가 걸린 국민연금을 정부 맘대로 운영하겠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가뜩이나 500조원을 웃도는 공기업 부채의 대부분은 이런 식의 정부 정책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공기업 개혁도 이 같은 잘못을 바로잡자는 것 아닌가. 공기업의 ‘상전’ 노릇하겠다는 관료들이 계속 버티고 있는 한 공기업 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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