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9일 월요일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유토피아는 사라졌다. 사실 그것은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장소, 우리가 지도 위에 위치지을 수 있는 장소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그리고 명확한 시간, 우리가 매일매일의 달력에 따라 고정시키고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유토피아들이 모든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간 집단이든 그 것이 점유하고 실제로 살고 일하는 공간 안에서 유토피아적인 장소들을 구획하고 그것이 바삐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유크로니아적인 순간들을 구획한다.
 
유크로니아: 유토피아가 현실에 없는 장소라면 유크로니아는 현실에 없는 시간일 것이다. 유의해야할 점은 유토피아/유크로니아가 헤테로토피아/헤테로크로니아와 대립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푸코에게 헤테로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라면 헤테로크로니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유크로니아일 터이기 때문이다.
 
위치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반공간-contre-espaces을 아이들은 완벽하게 알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정원의 깊숙한 곳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락방이고, 더 그럴듯하게는 다락방 한가운데 세워진 인디언 텐트이며, 아니면 목요일 오후 부모의 커다란 침대다.
 
반공간은 아이들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아이들은 결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어른들이야말로 아이들을 만들어냈으며, 그들에게 자기들만의 굉장한 비밀을 속삭였다. 어른의 사회는 아이들보다 훨씬 먼저 자기만의 반공간, 자리매겨진 유토피아, 모든 장소 바깥의 실제 장소들을 스스로 조직했다. 예를 들면, 정원이 있고 묘지가 있고 감호소가 있고 사창가가 있고 감옥이 있고 클럽 메드의 휴양촌이 있고, 그 밖에도 많다.
 
유토피아라는 그 이름은 정말로 어떤 장소도 갖지 않는 것을 위해서만 남겨져야 한다. 그 과학은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들, 헤테로토피아들로 재가공됐다. 사춘기의 청소녈들을 위한 특별한 집. 달거리에 들어간 여성들이 쓸 수 있는 특별한 집. 출산을 기다리는 여성들을 위한 오두막. 생물학적 과도기에 있는 개인들을 위한 이러한 헤테로토피아는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신혼여행이 처녀에게는 필경 일종의 헤테로토피아인 동시에 헤테로크로니아가 아니었을지 자문한다. 처녀가 처녀성을 잃는 사건은 그녀가 태어난 집에서 일어나서는 안 됐다. 그것은 말하자면 어떤 곳도 아닌 곳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헤테로토피아는 언제나 그것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열림과 닫힘의 체계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헤테로토피아에 자유롭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거기에 강제로 들어가거나, 특정한 의례나 정결의식에 따라 들어간다. 전적으로 이 정결의식만을 위한 헤테로토피아들도 있다. 이슬람교도의 터키탕처럼 반은 종교적이고 반은 위생적인 목적의 정결의식도 있고, 아니면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사우나처럼 단지 위생적인 목적의 정결의식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라도 온갖 종교적, 자연주의적 가치를 끌어온다.
 
반면 외부세계에 닫혀 있지 않고 전면적으로 열려 있는 또 다른 헤테로토피아도 있다. 누구라도 거기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것은 환상일 뿐, 어디에도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감하게 된다. 헤테로토피아는 열린 장소지만 당신을 계속해서 바깥에 놔두는 속성을 가진다.
 
18세기 남미의 가옥엔 언제나 현관문 옆에 마련된, 하지만 어쨌든 현관문에 앞선 작은 방이 있었다. 이방은 바깥 세계로 곧장 열려 있었으며 지나가는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다. 달리 말해, 누구나 낮이든 밤이든 아무 시간에나 이 방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누구의 눈에 뜨이거나 알려지지 않은 채 다음 날 아침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방이 어떤 식으로든 집 안쪽으로는 열려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곳에 받아들여졌던 사람은 결코 가족이 머무르는 집 안쪽으로는 진입할 수 없었다. 이 방은 완전히 외재적인 헤테로토피아의 일종이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모든 공간에 대한 이의제기다. 매음굴처럼 나머지 현실이 환상이라고 고발하는 환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아니면 그 반대로 우리 사회가 무질서하고 정리돼 있지 않고 뒤죽박죽이라고 보일 만큼 완벽하고 주도면밀하고 정돈된 또 다른 현실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냄으로써.
 
17~18세기 영국의 청교도 사회는 미국에 절대적으로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시도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리요테 장군과 그 계승자들은 프랑스 식민지들을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는 병영 사회로 만들기를 꿈꿨다. 그러한 시도 가운데 가장 놀랄 만 한 것은 파라과이에 정착한 예수회 수도사들이 보여줬다.
 
파라과이에서 예수회 수도사들은 실제로 경이로운 식민지를 건립했다. 그 안에서 삶 전체가 완전히 규제됐고 토지와 가축이 모두의 것으로 선포됐다. 가장 완벽한 공산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셈이었다. 각 가정의 몫으로는 오직 작은 뜰만 분배됐다. 집들은 십자로 교차하는 두 길을 따라 일정한 대열로 배치됐다. 마을 중앙 광장 깊숙한 안쪽엔 교회가 있었고, 한쪽 옆엔 학교가, 다른 쪽엔 감옥이 있었다. 예수회 수도사들은 식미니 주민들의 삶 전체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다시 저녁부터 아침까지 세심하게 규제했다. 정오의 종소리는 남녀를 막론하고 밭에 나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저녁 여섯 시에 사람들은 저녁을 먹기 위해 모였다. 자정이면 다시 종이 울렸는데, 이는 부부의 기상이라고 일컬어졌다. 식민지 주민들의 생물학적 재생산에 관심을 가졌던 예수회 수도사들이 인구가 번창할 수 있도록 매일 밤 즐겁게 종을 당겼던 것이다.
 
실제로 인구가 번창했다. 식민화 초기에 13만 명이었던 인디언들은 18세기 중반 40만 명이 됐다. 예수회 식민지는 완전히 자기폐쇄적인 사회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예수회가 수행했던 상업 활동과 그에 따른 상당한 수익 창출을 제외하곤 나머지 세계에 그 무엇으로도 연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스스로를 되찾은 자신의 몸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 내 몸이 모든 유토피아의 바깥에서 자기 밀도를 온전히 가지고서 타자의 손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을 가로지르는 타자의 손길 아래서, 보이지 않던 당신 몸의 온갖 부분들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타자의 입술에 대응해서 당신의 입술은 감각적인 것이 되고, 반쯤 감겨진 그의 눈 앞에서 당신의 얼굴은 확실성을 얻게 된다. 이제야 당신의 닫힌 눈꺼풀을 보려는 시선이 있는 것이다. 사랑 역시 거울처럼 ,그리고 죽음처럼 당신 몸의 유토피아를 누그러뜨린다. 그것은 유토피아를 침묵시키고 달래주고 상자 안에 넣은 것처럼 가두고 닫아버리고 봉인한다. 그래서 사랑은 거울의 환영, 죽음의 위협과 사촌지간이다.
 
그때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 미안하다고밖에 말을 못하겠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한 달가량을 살았던 것 같다. 염치도 없다. 들키기 전에 말하려고 했다. 자격이 없으니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오물을 닦고 버린 걸레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J가 좋았다. J가 웃고 울고 먹고 마시고 잠자는 모든 모습이 아름다웠다.
 
옆에 있으면 나도 아름다운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J 앞에만 서면 나는 작아졌다. 고귀한 사람을 모시는 하인처럼 작아졌다. 하인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성스러운 주인을 모시는 하인은 주인에게서 힘을 얻는다. J도 내겐 살아야 할 이유와 살아내야 하는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J가 나 때문에 힘들어한다. 더럽다고 느끼고 있다.
 
힘들게만 한 것 같다. 난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옆에 있어봐야 좋을 게 없다. 좋은 기억도 많이 쌓아갈 수 있겠지만, 2년 전 그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평생을 괴롭게 할 것이다. 내가 잘 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평생을 흉터가 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힘들어하는 J를 보면서 괴로워할 것이고, J는 내 더러움 때문에 계속 괴로워할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가슴 한 켠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때 J는 온몸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텐데, 엄살도 심하다. 그때 기다리는 2주간은 죄인처럼 지냈다. 그러다 S 옆엔 J라는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번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하려고 했다. 이내 거절당했다. 난 더러운데다 속도 없고 눈치도 없다. 버러지라는 말이 딱 적당하다. 한심해 죽겠다.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인 존재를 힘들게 하는 버러지가 바로 S.
 
이번엔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선뜻 말하진 못하겠다. 그런데 만약에 기회를 준다면, 내 위주의 일방향적인 연애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J 위주의 연애를 하겠다. 지금까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해버렸다. 내가 생각한 대로 말했고, 말한 대로 했다. 이젠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내 더러움을 끄집어내서 항상 기억하면서, J의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겠다.
 
이젠 사랑한다는 말도 잘 못하겠다. J는 아마도 S와 함께 보낸 시간이 즐겁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엔 즐거움과 함께 괴로움이 자리 잡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S의 말이 위선처럼 느껴졌을 게다. 항상 S의 사랑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을 게다. S가 더럽다는 것을 은연중에 의식하고 있었을 게다. 스스로 기억할 줄 모르는 SJ의 그런 마음을 잊고 지냈다. J의 강력한 말, 눈물이 있기 전까진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사실이 그렇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나는 모른다. 나는 J가 아니라서 모른다. 그러나 느껴진다. 내가 지금 마음 아픈 것의 곱절은 괴로웠을 것이라고 섣부른 추측을 해본다. 미안하다. 쉽게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미안하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다. 그때 B와 지금 B는 다르다. 변했다.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본성을 이기는 의지가 생겼다. 내 마음과 몸이 J를 향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SJ가 계속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괴로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강요는 못하겠다. 어렵다. 사랑은 정말 어렵다. S가 그때 어렵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계속 예쁘게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서로가 서로를 좀 더 뚜렷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사랑을 계속할 수 있었을텐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소녀상을 지키는 남자>

한파 작문
 
<소녀상을 지키는 남자>
 
두 겹 비닐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악스럽다. 남자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샛바람도 이보다 강하진 않았다. 강남 한복판 빌딩 계곡 사이를 타고 부는 돌풍이 속초 바닷바람보다 더 거셌다. 머리가 하얗게 샌 남자가 신을 구겨 신고 밖엘 나갔다. 옛 기억을 되짚으며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비닐 천막 위에 노끈을 얼기설기 엮었다. 비닐 부딪히는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살을 에는 추위는 여전하다. 속눈썹엔 이슬방울이 내려앉았고, 코털마저 차가운 들숨날숨에 얼었다. 그러나 남자는 춥지 않다. 천막 끝에 아기 고드름이 얼어붙어도 남자는 춥지 않다.
 
살을 에는 한파가 일주일째 계속됐다. 남자의 딸을 형상화한 반도체 소녀상이 비닐 천막 밖을 안 나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소녀는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재벌기업에서 일했다. 이 기업 총수는 마누라 빼고 모든 것을 바꾸라는 경영지침으로 유명한 그이다. 소녀가 일한 공장에선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소녀는 생산라인에 들어가기 전, 눈코입만 밖으로 드러나는 방진복을 입어야 했다. 이 공정에서 저 공정으로 옮겨가기 위해선 클린룸이라 불리는 곳에 들어가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야 했다. 그 곳에서 그녀는 철저히 깨끗해야 했다.
 
그녀의 몸에선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하는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소녀는 정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몸이 아팠다. 한여름에도 으슬으슬 추웠다. 함께 일한 언니도 같은 병으로 회사를 떠났다. 소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같이 일한 언니도 역시 세상에 없다. 소녀를 형상화한 소녀상만이 사람냄새를 없앤 그 기업 본사 앞에 앉아있다. 소녀는 이제 수은주가 깨지는 한파가 와도 춥지 않다. 그녀의 아버지도 춥지 않다. 천막 안은 사람냄새로 가득하기에 외롭지 않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아이리스 M. 영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아이리스 M.
 
지구적 해악을 개선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첫째, 우리는 행위자의 권력을 봐야 한다. 즉 구조적 과정에서 그 과정에 현실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사람의 위치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영향력이 클수록 책임도 커진다.
둘째, 우리는 행위자가 받는 특권을 고려해야 한다. 특권과 권력은 보통 같이 가지만, 인과적 영향력이 별로 없는 행위자가 특권을 갖는 경우도 있다. 권력 없이 특권을 누린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다른 행위자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행위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아이리스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집단인 구조적 부정의의 피해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특히 현 상황의 변화에 가장 큰 이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 부정의의 피해자들이야말로 다른 사람들보다 현 사오항을 변화시키는데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넷째, 집단 역량. 개인은 기존 집단의 자원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집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 집단은 주주 모임일 수도 있고 노동조합이나 교회 조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변화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성원권은 개인에게 더 큰 몫의 책임을 부여한다.
 
초점을 비난에만 고착시키면 우리의 관심이 미래의 과제들에서 멀어지게 된다.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사태를 개선하는 일에 나서야 할 많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
비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개인을 겨냥하기 때문에 부정의를 일으키는 배경 조건에 기울여야 할 관심을 분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비난 게임은 협력보다는 어떻게든 책임을 모면하려는 방어만 낳는다.
죄는 마음을 내면으로 쏠리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 앞에 놓인 과제에 집중하기보다 쓸 데 없이 자신의 성품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기계는 죄가 없다>

[지하철] <기계는 죄가 없다>
 
지하철 신분당선이 연장 개통했다. 수원 광교에서 강남까지 45분이면 간다. 광역버스를 1시간 10분가량 걸렸다. 버스보다 소요시간이 20분 이상 줄었다. 신분당선 전동차엔 운전실이 없다. 기관사 역시 필요하지 않다. 전동차는 종합관제실에서 원격으로 조종한다. 컴퓨터가 전동차의 운행, 출입문 개폐를 비롯해 모든 것을 주관한다. 다만, 기관사 면허를 가진 안전요원이 승객들과 함께 탄다. 안전요원의 역할은 말 그대로 안전 점검이다. 부지런히 객차를 오간다. 안전요원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직접 전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과학기술문명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그러나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처칠은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부형태라고 했다. 지금까지 존재한 다른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한다면 그렇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과학기술문명도 그렇다. 과학기술은 예전에 없었던 편리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인류에게 새로운 위협 역시 선사했다. 능동·피동적인 죽음이 지하철에서 벌어졌다. 사람들이 전동차 앞에 몸을 내던져 목숨을 끊었다. 자살자들이 늘어나자 역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스크린도어도 말썽이다. 자살을 막으려고 만든 자동문에 끼여 사람이 죽었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많이 죽는다. 그러나 자동차를 괜히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로봇 또는 컴퓨터가 기계를 작동시키게 된다면 조금 달라진다. 바야흐로 로봇이 체스 대결에서 사람을 이기는 시대다. 지성을 활용하는 작업도 로봇이 인간을 앞선다. 그러나 기계는 딜레마를 겪지 않는다. 경우의 수를 벗어나는 돌발 상황엔 결과 값 오류라는 답을 내놓을 뿐이다. 선로에 사람이 있어도, 부주의로 스크린도어에 사람이 끼여도 동요하지 않는다.
 
지하철은 죄가 없다. 인간이 조작한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신분당선엔 인간의 조작 없이 달리는 전동차가 있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 인간의 감성과 상황판단 능력이다. 이 능력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 신분당선 기관사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 휴식도, 임금도 필요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책임이 없다.

<굴러온 ‘진박’이 박힌 ‘비박’ 뽑는다>

굴러온 진박이 박힌 비박뽑는다
 
새누리당 이종진 의원(대구 달성)이 지난 18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구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부터 14년간 지역구 의원을 지낸 곳이다. 물갈이론으로 술렁이는 대구·경북 현역 의원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이 의원이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19일부터 23일까지 닷새 동안 경향신문 1, 동아일보 1, 조선일보 3, 중앙일보 2, 한겨레 3, 한국일보 2건 등 총 12건의 기사가 6개 일간지 지면에 실렸다. 한겨레는 대구지역 후보 6인이 결성한 진친박(진짜 진실한 친박)’진박팔이라며 비판했고, 중앙일보는 TK 지역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신문사
기사제목
건수
경향신문
이종진 불출마 대구 달성부터 TK 친박 물갈이(6, 정환보)
1
동아일보
眞朴에 양보총대 멘 대구 달성(6, 홍수영)
1
조선일보
대구에 보이지 않는 손 작동?(5, 선정민)
3
아침에 모여 眞朴 인증샷 찍은 대구 후보 6(4, 선정민)
親朴·非朴, 공천위원장 놓고 충돌(4, 선정민)
중앙일보
대구달성 이종진 의원 불출마 선언(20, 단신)
2
친박 진 박 카지만 필요한 건 대구 상권 키아줄 사람”(8, 최선욱)
한겨레
진박 추경호 투입에 이종진의원 불출마보이지 않는 손 작용?(4, 황준범)
3
대구 낙하산 6비박 심판 외치며 노골적 진박팔이’(4, 서보미)
박대통령 TK 지지율 9%p 급락진박 꽂기후폭풍?(7, 김남일)
한국일보
유승민계 이종진 불출마” TK 물갈이 신호탄인가(6, 정승임)
2
대구 진박출마자 6인 회동... TK 물갈이론에 불붙이기(5, 김지은)
 
이종진 의원에게 닷새 동안 무슨 일이?
 
불출마 선언 닷새 전, 이 의원은 대구 지역 현역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대구 달성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진진박(진짜 진실한 친박)’으로 불리는 추 전 실장과 공천 경쟁에 나설 의지도 내비쳤다. 한국일보는 <친유승민계 이종진 불출마” TK 물갈이 신호탄인가>에서 이종진 의원이 닷새 만에 출마 의지를 꺾은 이유가 청와대의 압력에 따른 것 아니냐는 해석을 인용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동아일보는 <‘진박에 양보총대 멘 대구 달성>에서 이 의원도 한때 박근혜 사람이었다며 지난 9월 유승민 사태 때 이 의원이 중립적 태도를 보이자 유 의원과 함께 덩달아 배신의 정치로 찍혔다는 얘기가 돌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중앙일보도 단신으로 전한 <대구달성 이종진 의원 불출마 선언>에서 친박근혜계가 교통정리를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인위적 선수 재배치 + 보이지 않는 손 = 비박계 OUT
 
이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천 과정에 소수권력자와 계파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힌 직후 나왔다. 한겨레는 <진박 추경호 투입에 이종진 의원 불출마보이지 않는 손 작용?>(1/19, 4, 황준범)에서 이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의 배경을 들여다봤다. “설득이든 회유든 뭔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역 인사들의 목소리를 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대구에 보이지 않는 손작동?>(1/19, 5, 선정민)에서 이 의원이 유승민 의원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진박사이에선 바꿔야 할 대상이란 말이 나왔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의원이 박 대통령과 자신이 대립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 심적 부담을 느껴 온 것으로 전했다며 불출마 선언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구 민심 톺아보기 집중한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대구 유권자들의 의중을 파악한 기사 <“친박 진박 카지만 필요한 건 대구 상권 키아줄 사람”>(1/20, 8, 최선욱)을 지면에 실었다. 이 기사에서 <중앙>은 대구 시민들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우는 후보들의 진박 마케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20일까지 대구 지역 12개 선거구에 등록한 예비후보 39명 중 19명이 친박을 표명하고 있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지지도 조사에서 TK 지역의 경우 잘한다고 답한 비율이 63.9%에 육박했다. 전국 평균은 44.1%였다. <중앙>박 대통령이 말한 진실한 사람의 위력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라며 결국 친박 찍는 기 대구 사람 마음이라는 지역 상인의 목소리를 전했다.
 
진짜 진실한 사람은 과연 누구?
 
대구 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 친박 후보 6명이 모여 조찬 회동을 갖고 인증샷을 찍었다. 조선일보는 친박계 인사의 발언을 빌어 대구 출마자들이 너도나도 진박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진진박이 누군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고 전했다. “아침 출근길 유권자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전했다.
 
한겨레는 “‘진박 6의 과도한 진박 팔이가 대구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특히 “‘진박 팔이는 노골적이었다며 친유승민계 현역 의원들의 대항마로 낙점된 진박 6인의 진박 마케팅 연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내비쳤다. 아울러 의원이 임명직이냐고 푸념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전한 한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