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유토피아는 사라졌다. 사실 그것은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장소, 우리가 지도 위에 위치지을 수 있는 장소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그리고 명확한 시간, 우리가 매일매일의 달력에 따라 고정시키고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유토피아들이 모든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간 집단이든 그 것이 점유하고 실제로 살고 일하는 공간 안에서 유토피아적인 장소들을 구획하고 그것이 바삐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유크로니아적인 순간들을 구획한다.
유크로니아: 유토피아가 현실에 없는 장소라면 유크로니아는 현실에 없는 시간일 것이다. 유의해야할 점은 유토피아/유크로니아가 헤테로토피아/헤테로크로니아와 대립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푸코에게 헤테로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라면 헤테로크로니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유크로니아일 터이기 때문이다.
위치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반공간-contre-espaces을 아이들은 완벽하게 알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정원의 깊숙한 곳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락방이고, 더 그럴듯하게는 다락방 한가운데 세워진 인디언 텐트이며, 아니면 목요일 오후 부모의 커다란 침대다.
반공간은 아이들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아이들은 결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어른들이야말로 아이들을 만들어냈으며, 그들에게 자기들만의 굉장한 비밀을 속삭였다. 어른의 사회는 아이들보다 훨씬 먼저 자기만의 반공간, 자리매겨진 유토피아, 모든 장소 바깥의 실제 장소들을 스스로 조직했다. 예를 들면, 정원이 있고 묘지가 있고 감호소가 있고 사창가가 있고 감옥이 있고 클럽 메드의 휴양촌이 있고, 그 밖에도 많다.
유토피아라는 그 이름은 정말로 어떤 장소도 갖지 않는 것을 위해서만 남겨져야 한다. 그 과학은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들, 헤테로토피아들로 재가공됐다. 사춘기의 청소녈들을 위한 특별한 집. 달거리에 들어간 여성들이 쓸 수 있는 특별한 집. 출산을 기다리는 여성들을 위한 오두막. 생물학적 과도기에 있는 개인들을 위한 이러한 헤테로토피아는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신혼여행이 처녀에게는 필경 일종의 헤테로토피아인 동시에 헤테로크로니아가 아니었을지 자문한다. 처녀가 처녀성을 잃는 사건은 그녀가 태어난 집에서 일어나서는 안 됐다. 그것은 말하자면 어떤 곳도 아닌 곳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헤테로토피아는 언제나 그것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열림과 닫힘의 체계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헤테로토피아에 자유롭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거기에 강제로 들어가거나, 특정한 의례나 정결의식에 따라 들어간다. 전적으로 이 정결의식만을 위한 헤테로토피아들도 있다. 이슬람교도의 터키탕처럼 반은 종교적이고 반은 위생적인 목적의 정결의식도 있고, 아니면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사우나처럼 단지 위생적인 목적의 정결의식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라도 온갖 종교적, 자연주의적 가치를 끌어온다.
반면 외부세계에 닫혀 있지 않고 전면적으로 열려 있는 또 다른 헤테로토피아도 있다. 누구라도 거기 들어갈 수 있지만, 사실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것은 환상일 뿐, 어디에도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감하게 된다. 헤테로토피아는 열린 장소지만 당신을 계속해서 바깥에 놔두는 속성을 가진다.
18세기 남미의 가옥엔 언제나 현관문 옆에 마련된, 하지만 어쨌든 현관문에 앞선 작은 방이 있었다. 이방은 바깥 세계로 곧장 열려 있었으며 지나가는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다. 달리 말해, 누구나 낮이든 밤이든 아무 시간에나 이 방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누구의 눈에 뜨이거나 알려지지 않은 채 다음 날 아침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방이 어떤 식으로든 집 안쪽으로는 열려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곳에 받아들여졌던 사람은 결코 가족이 머무르는 집 안쪽으로는 진입할 수 없었다. 이 방은 완전히 외재적인 헤테로토피아의 일종이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모든 공간에 대한 이의제기다. 매음굴처럼 나머지 현실이 환상이라고 고발하는 환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아니면 그 반대로 우리 사회가 무질서하고 정리돼 있지 않고 뒤죽박죽이라고 보일 만큼 완벽하고 주도면밀하고 정돈된 또 다른 현실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냄으로써.
17~18세기 영국의 청교도 사회는 미국에 절대적으로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시도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리요테 장군과 그 계승자들은 프랑스 식민지들을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는 병영 사회로 만들기를 꿈꿨다. 그러한 시도 가운데 가장 놀랄 만 한 것은 파라과이에 정착한 예수회 수도사들이 보여줬다.
파라과이에서 예수회 수도사들은 실제로 경이로운 식민지를 건립했다. 그 안에서 삶 전체가 완전히 규제됐고 토지와 가축이 모두의 것으로 선포됐다. 가장 완벽한 공산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셈이었다. 각 가정의 몫으로는 오직 작은 뜰만 분배됐다. 집들은 십자로 교차하는 두 길을 따라 일정한 대열로 배치됐다. 마을 중앙 광장 깊숙한 안쪽엔 교회가 있었고, 한쪽 옆엔 학교가, 다른 쪽엔 감옥이 있었다. 예수회 수도사들은 식미니 주민들의 삶 전체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다시 저녁부터 아침까지 세심하게 규제했다. 정오의 종소리는 남녀를 막론하고 밭에 나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저녁 여섯 시에 사람들은 저녁을 먹기 위해 모였다. 자정이면 다시 종이 울렸는데, 이는 ‘부부의 기상’이라고 일컬어졌다. 식민지 주민들의 생물학적 재생산에 관심을 가졌던 예수회 수도사들이 인구가 번창할 수 있도록 매일 밤 즐겁게 종을 당겼던 것이다.
실제로 인구가 번창했다. 식민화 초기에 13만 명이었던 인디언들은 18세기 중반 40만 명이 됐다. 예수회 식민지는 완전히 자기폐쇄적인 사회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예수회가 수행했던 상업 활동과 그에 따른 상당한 수익 창출을 제외하곤 나머지 세계에 그 무엇으로도 연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스스로를 되찾은 자신의 몸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 내 몸이 모든 유토피아의 바깥에서 자기 밀도를 온전히 가지고서 타자의 손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을 가로지르는 타자의 손길 아래서, 보이지 않던 당신 몸의 온갖 부분들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타자의 입술에 대응해서 당신의 입술은 감각적인 것이 되고, 반쯤 감겨진 그의 눈 앞에서 당신의 얼굴은 확실성을 얻게 된다. 이제야 당신의 닫힌 눈꺼풀을 보려는 시선이 있는 것이다. 사랑 역시 거울처럼 ,그리고 죽음처럼 당신 몸의 유토피아를 누그러뜨린다. 그것은 유토피아를 침묵시키고 달래주고 상자 안에 넣은 것처럼 가두고 닫아버리고 봉인한다. 그래서 사랑은 거울의 환영, 죽음의 위협과 사촌지간이다.
그때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 미안하다고밖에 말을 못하겠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한 달가량을 살았던 것 같다. 염치도 없다. 들키기 전에 말하려고 했다. 자격이 없으니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오물을 닦고 버린 걸레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J가 좋았다. J가 웃고 울고 먹고 마시고 잠자는 모든 모습이 아름다웠다.
옆에 있으면 나도 아름다운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J 앞에만 서면 나는 작아졌다. 고귀한 사람을 모시는 하인처럼 작아졌다. 하인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성스러운 주인을 모시는 하인은 주인에게서 힘을 얻는다. J도 내겐 살아야 할 이유와 살아내야 하는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J가 나 때문에 힘들어한다. 더럽다고 느끼고 있다.
힘들게만 한 것 같다. 난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옆에 있어봐야 좋을 게 없다. 좋은 기억도 많이 쌓아갈 수 있겠지만, 2년 전 그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평생을 괴롭게 할 것이다. 내가 잘 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평생을 흉터가 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힘들어하는 J를 보면서 괴로워할 것이고, J는 내 더러움 때문에 계속 괴로워할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가슴 한 켠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때 J는 온몸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텐데, 엄살도 심하다. 그때 기다리는 2주간은 죄인처럼 지냈다. 그러다 S 옆엔 J라는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번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하려고 했다. 이내 거절당했다. 난 더러운데다 속도 없고 눈치도 없다. 버러지라는 말이 딱 적당하다. 한심해 죽겠다.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인 존재를 힘들게 하는 버러지가 바로 S다.
이번엔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선뜻 말하진 못하겠다. 그런데 만약에 기회를 준다면, 내 위주의 일방향적인 연애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J 위주의 연애를 하겠다. 지금까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해버렸다. 내가 생각한 대로 말했고, 말한 대로 했다. 이젠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내 더러움을 끄집어내서 항상 기억하면서, J의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겠다.
이젠 ‘사랑한다’는 말도 잘 못하겠다. J는 아마도 S와 함께 보낸 시간이 즐겁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엔 즐거움과 함께 괴로움이 자리 잡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S의 말이 위선처럼 느껴졌을 게다. 항상 S의 사랑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을 게다. S가 더럽다는 것을 은연중에 의식하고 있었을 게다. 스스로 기억할 줄 모르는 S는 J의 그런 마음을 잊고 지냈다. J의 강력한 말, 눈물이 있기 전까진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사실이 그렇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나는 모른다. 나는 J가 아니라서 모른다. 그러나 느껴진다. 내가 지금 마음 아픈 것의 곱절은 괴로웠을 것이라고 섣부른 추측을 해본다. 미안하다. 쉽게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미안하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다. 그때 B와 지금 B는 다르다. 변했다.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본성을 이기는 의지가 생겼다. 내 마음과 몸이 J를 향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S를 J가 계속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괴로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강요는 못하겠다. 어렵다. 사랑은 정말 어렵다. S가 그때 어렵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계속 예쁘게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서로가 서로를 좀 더 뚜렷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사랑을 계속할 수 있었을텐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