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의 여야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국회의 법안 처리가 다시 막혔다. 정부가 시급한 처리를 요청한 경제활성화·민생·서비스산업 발전·정부조직 개편 등에 관련된 법안 수십 개가 정체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법과 이들 법안의 분리 처리를 주장하나 야당은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국회법에 따라 야당의 동의 없이는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법안뿐 아니라 1차 국정감사 등 다른 사안들도 차질이 우려된다. 노조가 파업을 활용하듯 야당이 정국현안과 법안 통과를 연계시키는 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야당은 적잖은 경우에 명분과 논리가 약한데도 법안의 발목을 잡곤 했다.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야당은 원내대표를 통해 상설특별검사법에 따라 특검을 정해 세월호 사태를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런 합의는 당내 강경파와 ‘외부 개입세력’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원탁회의’로 불리는 원로들과 운동가를 포함한 외부세력의 압력은 당내 강경파를 밀고 박영선 원내대표를 포함한 ‘합의 수용파’를 코너로 몰았다. 이번 사태는 세월호를 넘어 정국 운영에 대한 야당의 자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야당은 비(非)현실적인 이념이나 명분에 사로잡혀 투쟁 일변도로 치닫곤 한다. 이명박 정권 때 야당은 광우병 파동에 휩쓸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협상을 요구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자신들의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한 것인데도 야당은 재협상을 고집했다. 쇠고기나 FTA 협상은 나중에 합리적이고 국익에 도움이 된 것으로 입증됐다. 결국 ‘재협상 강경투쟁’은 야당이 대선에서 실패하는 데에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세월호 사태는 검찰의 수사, 감사원의 감사, 국회의 국정조사라는 많은 절차를 거치고 있다. 미진한 부분은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검으로 규명하고 국가는 보다 중요한 재발방지책에 주력하는 게 정도(正道)다. 7·30 재·보선에서 세월호 사태를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삼았던 새정치연합이 참패했다. 7·30 민심은 세월호를 합리적으로 마무리하고 경제 살리기와 국가개조에 매진하라는 뜻이었다. 선거 직후에는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이런 민심을 읽고 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비등했다. 그래서 박영선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 체제도 구성됐다. 비대위원장의 첫 작품이 세월호 특별법 합의였다. 그런데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민심에 대한 인식은 사그라지고 당은 다시 과거의 강경 정치투쟁으로 돌아가고 있다. 야당은 향후 20개월 동안 선거가 없다고 안심할지 모르지만 이는 유권자의 기억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합의를 뒤엎는 ‘재협상 투쟁’이 과거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야당은 기억해야 한다. 7·30 선거 참패 후 바꿔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으면 야당은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드디어 오늘 한국에 온다. 78세 고령에 여름휴가까지 마다하고 14시간의 길고 긴 비행 끝에 지구 반대편을 찾아오는 귀한 걸음이다. 교황은 이제 한국에서 4박5일 동안의 바쁜 일정에 돌입한다. 30분 단위로 빡빡하게 짜인 일정이라고 한다. 교황 방한의 주된 목적은 천주교 사목방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황이 종교를 초월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서 한국사회를 찾아온다고 믿고 있다. 교황은 방한 첫 미사를 환경미화원·시설관리인들과 함께 봉헌한다. 4차례의 미사 중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밀양·강정 마을 주민 등을 만난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은 특별히 직접 따로 만나 위로할 것이라고 한다. 교황의 평소 말과 행동대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먼저 껴안는 모습이다.지금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갈등과 불안에 싸여 있다. 부실한 국가운영에서 빚어진 세월호 사고, 죽음을 부르는 군대 폭력과 왕따, 날마다 터지는 인면수심의 사건·사고 등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런 가운데 국민 안전을 지키고 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깊어만 가고 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화재사건으로 194명의 희생자가 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 교황의 방한은 갈등과 질곡의 한국사회, 특히 정부,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을 향해 이 같은 성찰과 고해성사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이와 함께 교황은 ‘평화와 화해의 메신저’로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이자 국제적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있는 한반도를 찾아온다. 명동성당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등을 통해 들려줄 평화의 메시지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매우 크다. 인천 아시안게임 협상과 추석 이산가족 상봉 제안 가능성 등이 거론되는 중이어서 타이밍도 좋다. 교황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쟁과 분쟁·갈등으로 얼룩진 인류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화해와 용서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한국에서 교황이 던질 평화의 메시지에 세계적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일부에서는 이번 방한 일정이 교황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이 교황 방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도 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 분단현장, 사회갈등 현장 방문이 일정에 없는 점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교황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사랑과 희망의 목자’로서 가는 곳마다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교황이 한국 방문 중에도 우리들의 삶을 정의롭게 바꾸는 따끔한 가르침과 멋진 파격의 행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약자의 인권이 짓밟히는 암울한 국내 여건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메시아 신드롬’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도 이에 호응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용산참사 피해자 가족,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을 교황이 18일 명동성당에서 집전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했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미사엔 세월호 유가족들을 초청했고, 미사 뒤엔 단원고 학생 10명이 교황을 만날 수 있는 자리도 주선했다.
교황은 여름휴가 기간에 한국을 찾는다. 30~40년 전도 아니고,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인 나라에서 난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고령의 손님에게 우리의 구원을 부탁하는 것이 부끄럽다. 그러나 이 땅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304명의 산 생명이 눈앞에서 수장당한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진상조사가 가능한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켜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도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교황이 집전하는 광화문 시복식 행사장 안전벽 안에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3일 현재 31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현장과 실천의 중요성을 갈파한 교황의 가르침을 따르는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도 매일 100여명씩 14일째 단식농성에 동참하고 있다. 진상조사조차 어렵다는 절망감이 교황에 대한 간절한 호소로 이어지고 있다.
천주교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광화문 초대형 행사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둬 프란치스코 교황다운 구체적 언행이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교황은 어느 누구보다도 한국적 상황을 잘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등 군부가 1976~83년 7년간 3만여명을 희생시킨 ‘더러운 전쟁’ 속에서 살았고, 양심적인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빨갱이로 몰려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지난해 교황이 된 뒤 첫 방문지로 난민이 많은 람페두사를 택해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울음을 상실해버린 세태’를 질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통받는 이들과 온 국민이 진정으로 함께 울도록 영적 각성을 일으켜줄 것으로 기대한다. 200년 전의 순교자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땅에서 다시는 억울한 순교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이끄는 ‘깨어 있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
정부가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태도로는 한계가 있다. 북한 또한 진정으로 남북관계 진전을 바란다면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부의 11일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제안은 갑작스럽고 내용이 빈약하다. 정부가 밝힌 내용은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비롯해 쌍방의 관심 사항을 논의하기를 희망한다”는 게 거의 전부다. 북쪽이 바라는 5·24 조치 완화·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도 깊게 논의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북한이 입장을 얘기하면 경청할 것’이라고 할 뿐이다. 14~18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8일 시작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9월 인천아시안게임 등을 앞두고 급하게 결정한 흔적이 짙다. 정부가 제시한 19일은 북쪽이 기피하는 을지훈련의 날짜와 겹치기도 한다. 이래서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지난 2월 1차 고위급 접촉 때와 다를 게 없다.
남북관계의 기본은 활발한 교류·협력이다. 그래야 공통분모가 커지고 신뢰가 쌓인다. 5·24 조치 완화·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가 중요한 까닭이다. 이들 사안은 피해 갈 수 없다.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더라도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들 사안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그에 더해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 등 과거 합의를 존중하고 지켜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쪽은 남북관계 교착의 책임을 남쪽에 떠넘기려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이제 일상화한 미사일·방사포 발사와 거친 대남 비난 등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5·24 조치 완화·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와 관련한 남쪽 사람들의 우려를 해소할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풀지 못한 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선언만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다. 남북관계가 순항하려면 남북이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지금 더 요구되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다.
법원이 11일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하혁명조직이라는 ‘아르오’(RO)의 실체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법원은 그러나 이 의원 등이 지난해 5월12일 합정동 모임에서 한 강연 등은 내란선동이라며 유죄를 선고했고, 참석자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그대로 인정했다.
내란음모 무죄 판결은 당연하다.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실제로 내란을 실행하려는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 합의에 ‘실질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기존 판례다. 법원이 인정한 대로, 내란이 모의됐다는 지난해 5월12일 모임에선 온갖 이야기가 어수선하게 오갔을 뿐 어떻게 내란행위를 벌일 것인지 역할 분담이나 구체적 준비방안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 이 의원 등에게 이를 실행에 옮길 힘과 가능성이 있었던 것 같지도, 곧바로 실행에 옮길 만한 급박한 상황인 것 같지도 않다. 실행 가능성 자체가 없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법원이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그런 점에서 법원칙을 지킨 합당한 판단이다.
그러나 법원이 이 의원 등에게 굳이 내란선동죄를 적용한 데 대해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은 이 의원이 강연에서 전쟁에 대비한 물질적 준비를 언급한 것이 선동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의원의 강연 자체에서 폭력적 파괴행위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대목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란음모 혐의가 무죄인 터에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하는 것도 어색하다. 무엇보다 이런 판결로 정치적 소수파의 정부 비판이나 과격한 선동이 처벌 대상으로 굳어진다면 자칫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법원은 “정부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를 넘은 체제전복 선동 등은 용납할 수 없다”고 판시했지만, 용인할지 말지를 가르는 기준부터 자의적일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정치집단을 선동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있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는데, 이 의원의 강연에 그 정도로 급박한 위험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심리중인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 사건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내란선동 혐의는 명백하게 이 의원 등의 개인 문제이지, 정당 조직 전체의 문제일 순 없다. 이를 두고 통합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친다고 법률적으로 인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대법원과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 등 직업성 질환이 발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정밀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관련한 <한겨레>의 심층기획취재 기사가 나온 지 2주 만에 회사 쪽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자기 회사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를 이제야 제대로 조사하겠다니 때늦은 감이 있지만 아무쪼록 철저한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이닉스 반도체공장의 직업병 문제는 이른바 ‘삼성 백혈병 논란’에 가려 지금까지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2012년 하이닉스가 에스케이그룹에 인수되기까지 경영난에 놓였던 상황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취재 결과 1995년부터 2010년까지 하이닉스 반도체공장에 몸담았거나 여기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가운데 적어도 13명이 백혈병 등 림프조혈기계 질환 탓에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 확인된 사망자보다 더 많다. 발병률과 사망률도 삼성전자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하이닉스가 부실한 안전관리를 감추지 않았느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는 이런 의혹에 따른 비판 여론에 발빠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직업병 발생과 작업 환경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는 산재보험 운용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이나 법원 판결에 기대겠다는 태도다. 이래서는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그동안 반도체공장의 질병에 대한 공적 기관의 산재 인정 기준은 의학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작업 환경과 질병의 연관성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게 현행 산재보험제도의 치명적 약점으로 꼽혀왔다. 반도체공장처럼 수시로 작업 환경이 바뀌고 투입 물질 등에 대한 정보 제공이 제한된 여건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최종 입증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헛된 공방을 벌이기보다는 이제는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피해가 끊이지 않는 비극을 막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평균 5명의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산재사망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명색이 선진국 문턱을 바라보는 나라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1위와 2위 점유율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를 바란다.
현관예우와 일사천리의 전형이었다. 황우여 신임 교육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7일) 바로 다음 날(8일) 취임했다. 전례 없는 초고속이다. 청문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은 5선의 현직 선배를 예우했다. 교육장관 후보자가 필수로 넘어야 할 태산(논문)도 없었다. 일부 여당 의원은 ‘대표님’으로 부르다 멋쩍어했다. 야당 의원들조차 변호사 수임료나 직계 존비속 자료 부실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주로 따졌을 뿐이다. 외형적인 ‘우려’는 없었다. 국회 교육위에 13년간 몸담았던 황 장관은 노련했다. 교육 다자간 협의체 구성이나 자율형사립고 문제 등 예민한 이슈는 “검토하겠다” “노력하겠다” “명심하겠다”며 의원들 화를 돋우지 않았다. 야당의 ‘송곳’인 안민석 의원조차 “유사 이래 가장 밋밋한 인사청문회”라고 했을 정도다. 학자 출신 김명수 전 후보자가 “30초만 숨 쉴 시간을 달라”며 만신창이가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황 장관에게는 넘어야 할 태산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역사교과서, 전교조, 진보교육감, 자율형사립고, 대학구조조정, 등록금, 사립학교법…. 갈등과 충돌이 심한 사안들이다. 황 장관도 사립학교법과 반값 등록금 등 여러 논란에 불을 지폈던 당사자였다. 그는 교육위 경력을 근거로 “교육을 한시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취재해 보니 발의한 법안은 통틀어 12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통과한 것은 1건(2002년 학교급식법 개정안). 더욱이 교육위는 ‘불량 상임위’의 대명사였다. 그래도 1996년 15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총 2352건의 법안이 접수됐다. 황 장관은 소속 의원 중 꼴찌였다. 당 대표 하랴, 원내대표 하랴, 지역구 챙기랴 바빴겠지만 본업 성적표는 그랬다. 황 장관은 종종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는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옳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쪽이 옳다고 했다던 황희와 그의 정치 스타일이 닮았다고 해서 나온 얘기다.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해 사회부총리를 겸하면 그의 성향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여러 의견을 듣는 것은 소통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게 보면 관후(寬厚)지 거꾸로는 줏대의 문제다. 핵심은 소신과 신념이다. 들을 건 듣되 균형 있는 판단과 정체성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우려된다’는 말이 떠돈다. 황 장관도 이름이 엉뚱하게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단어의 어감상 이해할 만하다. 자초한 면도 있다. 2011년 원내대표 시절 반값 등록금을 앞뒤 안 가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치명적이다. 이제부터는 인기영합 발언은 금기다. 정치인의 말잔치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장관의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은가. 황 장관은 여러 약속을 했다. ▶매달 학교를 방문하고 ▶교육감을 만나고 ▶자사고 논란에 신중 대응하고 ▶교육감 직선제 고민하고 ▶단원고 학생을 만나고 ▶대학구조조정 방향 재설정하고 ▶소득연계형 반값 등록금 완성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교육 업무는 현장성과 방향성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에둘러 표현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교육계는 기득권층과 관료들의 장막이 두텁다. 저항을 뚫으려면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영(令)이 서고 일이 돌아간다. 황 장관은 시험대에 올랐다. 역대 교육장관 50여 명(부총리 포함)의 평균 수명은 1년 남짓이었다. 그가 평균을 넘어 2년 이상 일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2016년 4월 총선도 총선이거니와 쉽지 않아 보인다. 섭섭하다면 ‘무소신·무신념 정치인’이라는 딱지부터 떼버려야 한다. 5선의 경륜을 잘 활용해야 한다.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 비전, 그리고 리더십이 필요하다. 윗분 눈치를 보며 정치적 계산만 해서는 안 된다.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장관이 단단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이념과 갈등의 ‘교육지옥’에 빠지게 된다. 황우여(黃祐呂) 장관이 황우려(黃憂慮) 장관이 되는 것은 국민도 원치 않는다. 딱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 교육장관의 마음은 대통령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를 향해야 한다는 것을. 황 장관의 숙제다.양영유 사회에디터
비대위 체제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국민의 정당으로 거듭나기는커녕 운동권 서클 같은 투쟁론에 휩싸여 있다. 의석 130석의 제1야당에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국가 입법권력을 여당과 반분하고 있는 정당으로 봐주기 어려울 정도로 무책임하다. 지난 주말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의 이완구 원내대표와 세월호 특별법안을 어렵사리 타결해 모처럼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가 했더니 금세 이를 뒤엎는 언행이 속출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의원은 오늘 있을 당 의원총회를 앞두고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결의해 달라. 세월호법은 협상을 통해 얻어야 할 성과가 아니라 쟁취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고 주장했다. 2012년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특별법은 정치가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최소한의 참회다. 여야 합의보다 중요한 건 유족들의 동의다. 유족들이 반대하는 특별법에 반대한다”고 썼다. 이들의 주장은 그럴싸한 감성적인 언어로 일부 지지자의 마음을 격동케 하는 데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선거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일반 의사와 합의정치의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7·30 재·보선은 세월호 참사를 자기들만 고통스러워하고 자기들의 방식대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야당의 ‘세월호 정치화’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국민의 일반 의사는 유족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되 국가 법체계의 틀은 유지하고, 한풀이 윽박지르기식 진상조사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사실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진상규명위원회에 전례 없이 당사자인 피해가족 대표들을 참여시키고 강제 조사가 가능한 임의동행권까지 파격적으로 부여하는 ‘이완구-박영선 합의안’이었다. 다만 형벌을 집행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상설특별검사법안에 따른 특검에 맡기기로 했다. 가족 대표들은 진상규명위가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부분은 그들이 양보해야 한다. 진상규명과 형벌 문책의 힘은 온 국민이 피해 가족을 지지하는 데서 나온다는 점을 십분 헤아리기 바란다. 헌법상 국민의 일반 의사를 대표하는 입법부 리더들의 합의를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무효화하라거나 법률 제정에서 여야 합의보다 중요한 게 유족이라는 야당의 두 전직 대통령 후보들도 자기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들은 상당히 영향력 있는 당내 계파의 리더인 데다 내년 초 있을 당권 도전을 앞두고 다른 파벌들의 선명성 경쟁까지 유도해 새정치연합을 혼돈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이들에게 휘둘린다면 당과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것이다. 위험한 정국의 정상화를 위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도 결심할 일이 있다. 세월호 청문회 증인 협상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부르는 일을 어려워해선 안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김 실장은 국회에 나와야 한다. 명분과 격식 같은 괜한 고집은 사치에 불과하다.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그제 미얀마에서 11개월 만에 열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에게 일본 지도부 인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고노담화 검증 강행, 극단적 반한 데모를 언급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기시다 외상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은 관계 개선을 위한 일보 전진이라 할 수 있지만 정상회담 개최의 접점을 찾지는 못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을 상대로 한 대통령 명예훼손 고발사건이 불거졌다. 검찰은 이 신문 서울지국장을 출국금지하고 12일 소환을 통보했다. 윤 장관도 기시다 외상과의 회담에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광복절을 앞두고 반일·반한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순수한 법률적 차원에서 차분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가 불신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일 간에는 관계 개선이 모색되고 있다. 중·일 외교장관회담이 그제 1년11개월 만에 성사됐다.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후 처음이기도 하다. 이번 회담 성사는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7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밀리에 만나 대화를 희망하는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일본과의 접촉 자체를 꺼렸던 중국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중·일 간에는 영토분쟁, 역사인식 문제 등 난제가 가로놓여 있지만 양자 정상회담을 위한 조정작업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은 미얀마에서 북한과도 실무자 접촉을 가졌지만, 남북 간에는 의미 있는 대화가 없었다. 중·일 화해가 가시화하고 북·일 접근이 속도를 내면 우리는 동북아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 정세에 밀려 쫓기듯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 명분도, 실리도 잃는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이 절실한 시점이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거나 “군대는 ×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 한다”는 말은 60~70대 어르신 시절의 군대 속담이다. 이 말이 상징하는 야만적 병영문화가 쌍팔년도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여전히 통용되는 게 놀랍다. 최근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을 보면 오히려 더 나쁜 방향으로 진화한 느낌마저 든다. 군의 현실과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다.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이 새로운 군대 속담이 됐다. 병영문화 개선과 군 인권의식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군대 내의 뿌리 깊은 악습은 군 조직의 폐쇄성과 불통 때문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바다. 윤 일병은 죽을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선임병의 가혹행위를 지휘관이나 부대 외부에 알릴 수 없었다. 내부 면담과 소원수리, 국방헬프콜 등의 소통 장치는 아무 소용이 없거나 군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원수리에 쓰면 관심병사가 되는’ 병영문화는 윤 일병 사망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병사들마저 방관자로 만들었다. 구타·가혹행위·자살·총기난사 등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과 군이 거창하게 떠들었던 군 개혁과 병영문화 개선 노력의 결과가 이렇듯 참담하다.그 이유 또한 군의 폐쇄성에 있다고 하겠다. 군은 사고가 터진 뒤에도 조사, 가해자 처벌 등 모든 처리 과정을 독점하면서 외부에는 좀처럼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보안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감시받지 않고 통제받지 않는 조직은 문화가 바뀌지 않는 법이다.현재 국회에는 10여건의 이른바 ‘윤 일병 방지법’이 논의 중이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발의한 ‘군인복무기본법’과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군인 지위 향상에 관한 기본법’ 등은 수년 동안 처리되지 않고 있는 법안들이다. 사적 제재와 병 상호간 명령 금지 등을 통해 가혹행위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군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국회에 군사옴부즈만을 두고 군대 내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영창제도를 폐지한다든가 군사재판의 재판관을 일반 법관에게 맡기는 등의 방안도 나왔다. 문제는 군과 정치권의 의지다. 군은 2011년 김포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군 인권법 제정 권고를 묵살했다. 옴부즈만 제도도 2005년 연천 28사단 총기난사 사건 후 추진했다가 유야무야된 바 있다. 제2의 윤 일병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강력한 입법 의지와 군의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시민들 사이에 ‘싱크홀’(Sink Hole)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싱크홀은 도로나 지반이 갑자기 내려앉아 생긴 구멍을 말한다. 그동안 해외 토픽에서나 봐왔던 현상이 서울 도심에서 잇따라 발생하면서 “우리 집은 안전한 것이냐”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뒤늦게 사고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도 그만큼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그간 무분별한 개발 욕심만 앞섰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땅 밑 안전에 소홀했던 결과가 아닌지 걱정스럽다.싱크홀이 생기는 이유는 지하수 흐름과 대부분 연관돼 있다. 건물 터파기 공사 중 지하수가 빠져 나가 토사가 유실되거나 상·하수도관이 터져 지반이 내려앉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올 들어 5건의 사고가 난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신축공사장 주변도 비슷한 경우다. 이 일대는 공사 이후 인근 석촌호수의 수위도 계속 낮아져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 생긴 싱크홀은 더욱 미스터리다. 서울시가 160t의 흙을 메워 임시로 복구했지만 이틀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또 도로가 주저앉았다. 유독 이곳에서만 싱크홀이 빈발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다.최근 3~4년간 국내에서 10여건의 싱크홀이 생겼지만 규모나 인명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안심할 계제는 아니다. 지난해 중국 광저우에서는 도심에서 50㎡의 싱크홀이 건물을 집어 삼켰다. 2007년 과테말라에서도 폭 100m의 거대한 싱크홀 탓에 주택 20여가구가 주저앉았다. 인구가 밀집된 서울 도심에서 이 같은 사고가 생긴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근래 무분별한 지하 개발이 이 같은 우려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지하철이나 대형 건물을 짓기 위해 지하 수십m를 파내려 간 뒤 콘크리트를 들이붓는 데 지하수 흐름이 멀쩡할 리 있겠는가. 땅 밑을 개발할 생각만 했지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정부와 서울시가 심각성을 알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잠실 제2롯데 개장도 좋지만 시민 안전이 우선이다. 차제에 전국 주요 도시의 지하 개발 실태와 지하수 흐름에 대한 실태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 땅 속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알아야 대책도 세울 수 있을 것 아닌가. 또 대형 건축물 인허가 때는 지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토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안전을 도외시한 끝없는 개발 탐욕은 도시재앙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90일째인 지난달 14일부터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가족을 잃은 고통으로 이미 심신이 피폐해진 유족들이 곡기조차 끊고 뙤약볕 아래서 농성을 벌이다가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는 사태가 속출했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단원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29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왜곡하는 것처럼 세월호 ‘보상책’ 때문에 벌이는 농성이 아니다. 그리 예쁘고 소중한 아들딸, 사랑하는 가족이 ‘왜’ ‘어떻게’ 죽어갔는지 진실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규명해달라는 것이다. 김씨는 엊그제부터 “이건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되는 것”이라며 응급진료마저 거부하고 있다. 22일 동안 해온 단식을 중단했다가 여야의 ‘특별법 야합’에 분노해 다시 단식 농성에 돌입한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물과 소금마저 끊는 극한 단식을 선언했다.단식 농성을 벌이는 유가족들로 하여금 응급진료와 물·소금마저 끊게 만든 잔인한 이들이 누구인가.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에게 “제대로 단식했으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어… 벌써 실려갔어야 되는 거 아냐”라고 동료 의원들과 수군대는 것이 공개됐다. 안 의원은 “단식은 죽을 각오로 해야 돼. 병원에 실려가도록…적당히 해봐야”라며 마치 유족들이 적당히 단식쇼를 하는 것처럼 매도했다. 극한 상황의 유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찾을 수 없는, 무도하기 짝이 없는 망발이다. 유가족들이 “정말 단식으로 죽어나가길 바라는가”라고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문제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막말이 단순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농성 유가족을 ‘노숙자’에 비유하고, 세월호 희생자를 닭에 빗대는 발언을 해서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쳤다. 당직자들은 지속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며 유가족들의 세월호특별법 요구를 호도하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교만해진 것인가.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세월호 참사에 머리를 조아리며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던 그들이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세월호 진상과 책임 규명, 재발방지책 마련에 제구실을 했다면 유가족들이 농성을 벌일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그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유가족의 피멍든 가슴을 마구 헤집고 아픔을 주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민’을 입에 올리기 전에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을 모독하고 절망으로 내모는 제 집의 막말과 망동부터 징치해야 할 것이다.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군 안팎에서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군 기강(紀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가혹 행위로 윤 일병을 숨지게 만든 가해자들은 내무반을 '사설(私設) 고문실(拷問室)'로 만들었다. 상관들의 폭행, 가혹 행위 금지 지시는 안중에 없었다. '군인은 어떤 경우에도 구타·폭언, 가혹 행위 등 사적(私的) 제재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군인 복무규율'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군기(軍紀)는 군대의 기율이며 생명과 같다. 군기를 세우는 으뜸은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인 준수와 복종이다'는 '군인 복무강령'도 무색해졌다.원인이 이렇다면 처방도 군 기강과 규율을 바로 세우는 데 우선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군 안팎에서 논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책 중엔 그게 아닌 엉뚱한 방향도 눈에 띄고 있다. 대표적인 게 병사에게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하는 문제다. '사병들이 보복을 걱정해 군내에선 문제 제기를 못 하니 휴대전화로 부모에게 알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안통제시스템 개발에 많은 예산이 필요한 데다, 휴대전화 중독 문화가 군에까지 이어질 경우 군 기강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군 내부 상황을 시시콜콜 부모에게 일러바치는 일이 일상화하면 지휘관들에게 전투 임무는 뒷전이 된다. 과거 휴대전화 단속이 미비했을 때 병사들이 훈련 상황을 휴대폰으로 밖에 알린 일이 비일비재하기도 했다.우리 군이 전투형 군대 육성을 위해 전투 훈련을 강화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미 일부 정치권이 군에 훈련 강도와 횟수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는 얘기도 돈다. 완전히 본말(本末)이 뒤바뀐 발상이고 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위험한 포퓰리즘이다. 군이 전투력을 잃으면 군내 폭력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적 참사를 겪게 될 것이다. 현직 군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군 출신 예비역들도 "각종 규칙을 엄수하고 훈련을 규정대로 실시하는 기강 있는 부대에선 군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경험을 통해 나온 얘기다.'민·관·군 병영 문화 혁신위원회'가 지난 6일 출범해 군의 악습(惡習)을 없애고 군내 인권(人權)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위원회는 "복무 제도 혁신, 병영 생활·환경 개선, 리더십·윤리 증진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다. 그렇게 해서 병사들에게 군 복무에 대한 사명 의식을 심어주고, 초급 간부와 병사들 사이에 인격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다만, 대책이 무엇이든 군의 기강과 규율을 무너뜨리는 것일 수는 없다. 군 폭력을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인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군의 전투력을 갉아먹는 이적(利敵)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무반 내에 사적 가혹 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가능한 모든 지혜를 짜내되, 전쟁을 막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군이 존재한다는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 유리하도록 법을 고쳐 준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이 9일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같은 의혹에 연루된 새정치연합 의원 3명 가운데 김재윤 의원도 11일의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조사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다. 수사기관은 해당 피의자가 약속을 어기거나 도주 또는 증거 훼손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수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현행범(犯)이 아닐 경우 국회 동의 없이 회기(會期) 중엔 체포할 수 없다는 헌법상 불체포특권을 갖고 있어 강제 수사가 어렵다.국회는 오는 19일까지였던 임시국회 회기를 이달 말까지로 연장했고 곧이어 정기국회 일정에 들어가게 돼 국회 회기는 연말까지 이어진다. 신 의원 등이 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불체포특권을 보호막으로 검찰 수사를 피해보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철도와 해운 비리로 수사받고 있는 새누리당 조현룡·박상은 의원의 구속 여부 역시 본인들이 불체포특권을 활용하려 들지 여부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불체포특권은 독재 권력으로부터 국회의 독립성·자율성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영국·미국 등에서 수백 년 전 도입했던 제도다. 그러나 영국은 불체포특권에 꾸준히 제한을 둬왔고, 미국은 사실상 대부분의 범죄에 대해 불체포특권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독일·일본도 법으로 불체포특권을 일부 제한하고 있다.지금은 독재 권력이 국회의원들의 비리와 약점을 활용해 국회의 활동을 억누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비리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을 형사처벌한다고 국회 운영에 지장이 초래되는 것도 아니다. 입법 권한을 갖는 강력한 특권 조직인 국회의원들의 비리부터 확실하게 단속·처벌할 수 있어야 사회의 부패·비리도 뿌리 뽑을 수 있다. 그래서 여야 정치권도 10여 년 전부터 총선·대선이 있을 때마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단골 공약(公約)으로 들고나왔던 것이 아닌가. 국민에게 수도 없이 내놓고 한 약속이라면 지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정부가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고 그 대금을 어음으로 지급할 경우 어음 만기(滿期)를 3개월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매출 채권의 최대 지급 기일이 180일로 돼 있어 중소기업들의 대금 회수가 최대 6개월까지 늦어질 수 있다.어음 결제는 오랜 상거래 관행이지만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어음을 끊어준 후 대금 지금을 늦추면서 그 기간 동안 돈을 운용해 이자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어음을 은행에 맡기고 돈을 융통하면서 수수료를 내야 한다. 어음 결제 기간이 길면 수수료 부담이 커져 손실을 보기도 한다. 어음을 끊어준 기업이 부도가 나면 대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할 위험도 있다. 지난해 부도 어음 금액은 5조원이 넘는다.정부는 그동안 대기업들에 대해 현금 결제 비중을 높이도록 유도하고 전자어음과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에 노력해왔다. 그 덕분에 기업 간 거래에서 어음 결제 비중은 2001년 42%에서 최근 20%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어음 결제는 중소기업의 주요 애로 사항 중 하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설문조사에선 중소기업의 72%가 어음 결제가 늦어져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어음 만기를 법으로 제한하는 데 대해서는 상거래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논란이 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기업이 어음 결제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도 외면할 수는 없다. 당장 어음제도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법으로 규제하기 전에 재벌 그룹의 대기업들이 먼저 어음 결제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는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8사단 윤아무개 일병 집단폭행 사망 사건’ 자체도 끔찍하지만, 군이 이 사건을 처리한 과정 또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비슷한 사건의 재발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허술한 보고다. 28사단은 윤 일병이 숨진 4월7일 곧바로 3군사령부와 육군본부, 국방부 등에 15쪽 분량의 첫 보고서를 올렸다고 한다. 보고서에는 가래침을 핥게 하는 등의 엽기적인 가혹행위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를 토대로 1쪽짜리 문서를 만들어 8일 아침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상세한 보고를 받지 못해 사건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다면 조사본부가 핵심 내용을 빼고 보고한 게 된다. 이후 자세한 추가 보고가 국방장관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헌병의 조사와 군검찰의 수사도 부실했다. 헌병은 ‘(가해자들이) 입안에 만두를 가득 집어넣고 때렸다’는 진술을 윤 일병 사망 직후 확보했으나 폭행 사실만을 확인하고 ‘미필적 고의’ 등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 군검찰관도 이 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검찰관은 법무 경력이 전혀 없는 초급 장교였다고 한다. 세 차례 진행된 공판도 이 내용을 벗어나지 않았다. 미리 설정한 결론에 맞춰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재판에서 가해병사(공범) 변호사가 주범(이아무개 병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8일 뒤늦게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죄보다 살인죄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1심 재판장을 대령급에서 장성급으로 높이기로 한 것도 전형적인 뒷북치기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데는 인권 문제에 상투적으로 접근하는 군의 태도가 작용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몇 차례 병영문화 혁신이 추진됐으나 국방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제도로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다. 여러 해 동안 논의됐지만 군의 반대 탓에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국방 옴부즈맨’ 제도 도입은 더 늦출 일이 아니다. 또 군 사법체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상 군내 형사사건 처리를 일반 검찰과 법원이 맡도록 논의해야 한다. 국방부와 군이 자신의 불편함과 기득권 상실만을 걱정한다면 또다른 윤 일병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교육부가 ‘학교 앞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업체에 심의위 출석권을 주고,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경우엔 ‘주요 사유’를 적시하도록 의무화하는 훈령을 제정했다고 한다. 학교 앞에 호텔이 들어설 수 없도록 쳐놓은 빗장을 조금씩 풀어주는 내용들이다.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우선, 업체 로비 통로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학교 근처에 숙박업소를 지으려면 학교환경정화위원회(정화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업체가 정화위에 출석하면 교육당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화위원 인적사항과 심의 내용이 유출될 수 있다. 업체로선 위원들에게 로비를 펼 수 있는 절호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지금은 해당 학교의 교장에게만 정화위에 출석해 발언할 권한을 준다. 정화위가 기본적으로 업체의 자료와 의견을 바탕으로 열린다는 점에서 이해 당사자인 학교 쪽에도 충분한 설명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허가 여부를 통보할 때 ‘주요 사유’를 별도의 서식에 써넣도록 한 것도 업체에 유리한 조처다. 업체가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앞 호텔’에 ‘불허’ 결정 내리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교육부 훈령은 3개 학교에 인접한 서울 경복궁 옆에 7성급 특급호텔을 지으려는 대한항공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란 의혹의 눈초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일련의 과정이 이런 시선을 뒷받침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청와대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규제완화 건의를 받은 이후 국회 시정연설에서 관광진흥법 개정을 촉구했다. 앞서 정부는 유흥시설이 없으면 학교 앞에도 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이 강력히 반대해 현재로선 이 법안 처리 전망이 불투명하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이번 훈령은 ‘학교 앞 호텔 건립’의 우회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새로 취임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학교 앞 호텔이나 화상경마장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가 황 장관 취임 직전인 5일 훈령을 서둘러 공고한 것도 황 장관의 발언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된다.
훈령을 만든 주무부서는 교육부 학생건강안전과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 학교 주변에 들어서는 것을 방지하는 데 앞장서야 할 부서가 업체의 호텔사업을 거드는 데 앞장서는 게 말이 되는가. 아직 검토기간이 남아 있다. 황 장관은 이 훈령을 재검토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초상집 분위기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쏟아지면서 7·30 재보선 패배로 가뜩이나 위기에 빠진 새정치민주연합은 거의 빈사지경이 됐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잔칫집이나 같다. 이번 여야 협상 결과가 어느 쪽의 승리와 패배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물론 새정치연합으로서도 변명할 말은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몽니를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고집을 꺾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특별법 협상을 무작정 끌고 가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도 됐을 것이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0일 “처음부터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은 진상조사위에 있다고 봤다”며, 야당 추천 인사 5명과 유가족 추천 인사 3명을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 큰 성과임을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것이 수사권 문제에서 야당의 ‘백기 항복’을 상쇄할 만큼 값진 수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라는 세월호 특별법의 애초 제정 취지에 비춰보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주는 것이 백번 합당했다. 그리고 그것이 영 여의치 않다면 수사권만 갖거나, 아니면 최소한 야당이 특별검사 추천권 정도는 가져왔어야 옳았다. 이런 것이 정치에서의 양보이고 타협이다. 그런데 야당은 그동안 핵심 쟁점이던 수사권 문제에서는 무력하게 손을 놓아버리고 뜬금없이 진상조사위 구성을 업적으로 내세우고 나섰다. 게다가 진상조사위가 증인채택권이나 자료요구권 등을 갖는다고 해도 조사대상자들이 이에 불응하면 별도리가 없다는 것은 과거 경험이 잘 말해준다.
지금 야당은 진퇴양난의 처지다. 여당과의 합의를 깨고 다시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도 겸연쩍고, 그렇다고 여야 합의를 그대로 밀고 나가기도 어려운 곤혹스러운 형편이다. 하지만 야당이 이 시점에서 다시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지닌 중요성과 의미다. 그리고 이번 여야 합의로는 확실한 진상규명을 기대하는 게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라는 점이다. 틀렸다고 생각할 때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용기다. 11일로 예정된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면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를 따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며, 이는 당의 민주적 운영 원칙에도 부합한다. 유권자는 야당의 투쟁 일변도 방식도 싫어하지만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야당은 더욱 경멸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영화 <명량>이 관객 1000만명을 넘었다. 흔히 ‘관객 1000만명’은 사회현상으로 인식된다. <명량>이 1000만명을 넘어선 데는 김한민 감독이나 주연 최민식보다 ‘이순신 장군’의 공이 더 큰 것 같다. 사람들은 ‘이순신’을 갈구하는 것이다. 이순신에게 있고, 지금의 정치인, 특히 명량해전을 준비하기 전의 이순신처럼 백의종군 처지로 떨어진 새정치민주연합에 없는 게 뭔가?
자기희생. 언론이 어떨 때는 정치인에게 “권력의지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한편으론 무욕에 가까운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게 모순인 것 같기도 하다. 7·30 재보궐선거 다음날 손학규 새정치연합 고문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한겨레>는 2면에 ‘세대교체 신호탄 되나’라는 제목을 넣었다. 하지만 그 기사를 넘길 때 ‘그렇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맞다’ 판단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일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발의 ‘탄’도 더해지지 않았다. 합리적인 이유는 많다.
명량해전에 임하기 전 이순신은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살려고 마음먹지 말라.” 그는 “사즉생, 생즉사”(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 하지 않았다. 왜선 330척 앞에 외가닥 일자진 12척이니 우리 모두 어차피 살기 힘들다 본 것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130척이다. ‘잘하면 살 수 있다’는 마음이 왜 아니 들겠는가?
민(民)을 위한 마음. 아무리 지질한 정치인일지라도 민심을 생각 않는 정치인은 잘 없다. 민심이 곧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심이란 도대체 뭔가? 7·30 다음날 <한겨레>는 ‘새정치연합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첫날 제목에 ‘민심 동떨어진 그들만의 정치’라고 썼다. 개인적으로 의구심이 일었다. “민심 동떨어진 것으로 치자면 새정치연합보다 새누리당이 훨씬 더하지 않은가?” “민심이란 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올리고, 집값 올라가는 걸 바라는 건가?” “세월호 참사 그만 덮고 경제만 생각하자, 새정치연합이 그걸 못했다는 건가?”라는.
민심은 천심이라 할 때, 민심이란 하늘같이 어질고 정(正)하다기보단, 언제 맑았다 흐릴지 알 수 없는 변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이 됐든 그 천심을 살피고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쯤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새누리당은 확실히 새정치연합보다 촉수가 뛰어나다. 새정치연합은 이 점에서 늘 작은 승리에 곧잘 취한다. ‘새누리가 저 정도니 우리가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라고 할 때 늘 철퇴를 맞는다. 잠시도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민심은 늘 의(義)보단 이(利)에 가깝고, 그래서 민심은 새누리에 더 가깝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보면, 명량해전을 앞둔, 모순된 세상 앞에 놓인 이순신의 독백이 나온다. “이 방책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능력. 명량해전에 임하는 이순신에게 자기희생과 민을 위한 마음만 있었다면 장렬히 전사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몰살당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준비했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면 훈련했고, 적의 정세를 염탐했고, 둔전에 농사지어 군량을 확보했다. 취미는 활쏘기였다. 사람의 능력이란 때론 타고난 자질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일상의 자세가 좌우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갑옷을 입고 잠을 잤다.
오늘날 정치인에게 400여년 전 이순신이 되라 하는 건 무리한 당부일지 모른다. 그러나 <명량> 흥행에서 보듯 ‘민’은 “나는 이(利)를 위하더라도, 지도자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명량해전 있기 5년 전인 사천해전(1592)에서 이순신은 왼편 어깨에 총을 맞아 등이 뚫렸다. 그날 일기에 이순신은 이렇게 썼다.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권태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