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2일 금요일

중앙_[사설]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한국 IT호

2000년대 초반은 한국 전자·IT산업의 ‘위대한 시기’였다. 거셌던 세계 반도체시장 구조조정에서 승자로 우뚝 섰고,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의 디지털 휴대전화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함으로써 드디어 휴대전화에 초소형 컴퓨터를 결합한 스마트폰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이로부터 스마트폰은 통화기능뿐 아니라 이 시대 문화와 소통의 중심에 서는 차원이 다른 게임의 장으로 변모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1980년대부터 세계 전자산업 강국으로 군림했던 일본 업계가 지리멸렬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20세기 전자산업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소니는 2000년대 초반 해외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지금도 여전히 구조조정 중이다. 아날로그 시대 승자가 디지털 시대로의 산업전환기를 대비하지 못했던 후유증은 길고도 깊었다.

 한데 최근 한국 IT산업도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는 신호가 울린다. 과거 공격적 도전자였다면, 지금은 당시 일본처럼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주고 있다. 1분기 중국시장에서 샤오미(小米)에 1위를 내준 데 이어, 세계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레노버에 판매량 1위 자리를 내준 것으로 최근 조사됐다. 세계 최초·최대의 기록도 이젠 중국 업체들이 깨기 시작했다. 최근 독일에서 열렸던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선 중국 업체 TCL이 세계 최대 곡면 초고화질 TV를 발표했다. 또 액정 대신 양자로 구성된 반도체 결정을 넣은 퀀텀닷 TV를 중국 업체가 국내 업체보다 앞서 발표했다. 중국 업체들이 추격자를 넘어 어느새 경쟁자의 자리로 치고 올라온 것이다.

 지금은 10여 년 전처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모하는 식의 혁신적 산업전환기가 아니다. 쟁점은 기술이 아닌 시장으로 옮겨갔다. 기술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한 시장을 놓고 군웅이 할거해 혼전(混戰)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동안 디테일한 기술 개발에서 승부를 냈던 IT시장으로선 새로운 도전이다. 춘추전국시대엔 전통적 강자(强者)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 적과 아군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실적 협력과 경쟁 방식의 체득, 새 국면에 대한 집중력 등으로 승패가 갈린다.

 애플은 그동안 금기시했던 4.7~5.5인치대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한국 업체들이 장악한 대화면 시장에 뛰어들었다. 또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안드로이드의 근거리 무선통신을 받아들여 새 모바일 결제 기능을 선보였다. 그들은 이미 경계를 넘는 필승전략을 짜고 있다. 소소한 기술 개발과 디자인으로 결판나는 상황이 아니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이젠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발상의 전환과 끈질긴 야성(野性)을 깨워야 할 때다. 업계가 ‘과거 승리의 경험을 새 국면에 적용하려 했다가는 실패한다’는 토인비의 경고를 기억해 시장전략을 짜기 바란다.

중앙_[사설] 담뱃값 2000원 인상 결정 잘 했다

정부가 당초 계획대로 내년 1월 한 갑(20개비)당 평균 담뱃값을 2000원 올리기로 최종 확정했다. 담뱃갑에 암 걸린 폐 사진 등의 섬뜩한 그림을 넣고 담배회사의 문화행사 후원 등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동안 복지부가 추진해 왔던 금연 정책의 종합판으로 볼 수 있다.

 담배 가격은 10년 동안 2500원으로 묶여 있었다. 화폐가치 하락을 감안하면 1000원가량 실질 가격이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가격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값이 싸다 보니 청소년들도 쉽게 담배에 접근한다. 고교 3학년의 흡연율이 24.1%로 OECD 성인 흡연율(26%)과 비슷할 정도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한국의 담뱃값이 싸기 때문에 올려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2000원 인상은 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민층의 부담이 증가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가격이 오르면 부담이 늘 수는 있다. 하지만 길게 봐야 한다. 전체 암 발생의 30%, 폐암의 90%가 담배가 원인이다(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 폐암은 사망률 1위의 암이고, 5년 생존율이 20.7%로 췌장암 다음으로 낮다. 여유 있는 계층이야 치료비 걱정이 없지만 서민은 암 치료비 부담에 노후 고통이 커지고 생명까지 위협을 받는다. 정치권도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길이 뭔지를 직시하기 바란다.

 가격을 올릴 바에는 한 번에 대폭 올리는 게 낫다. 찔끔 올려봤자 금연 효과가 덜하다. 그런 면에서 2000원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2000원을 올리면 건강증진부담금 8700억원이 늘어난다. 이 돈은 흡연자 건강관리와 국민건강 증진에만 써야 한다. 담배를 끊을 수 있게 의사의 상담 진료비를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 의사가 밀착 관리하면 금연 효과가 배가(倍加)될 것이다. 흡연치료제나 검사비에 건보를 적용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담배와 관련한 각종 질병의 치료비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삽입하는 정책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10년 공염불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래야 가격 인상과 상승 작용을 일으켜 흡연율을 20%대로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중앙_[사설] 국정원 정치 개입 유죄, 뼈를 깎는 개혁 계기 돼야

법원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11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원장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은 정치활동 관여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국정원법 9조를 위반한 혐의다. 재판부는 “야당 및 정치인을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과 트윗 글은 정치 관여 행위”라며 “이 같은 활동이 원장의 지시에 터 잡아 전개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18대 대선과 관련해 선거운동을 지시하거나 특정 후보의 당선·낙선을 위해 계획적으로 활동한 혐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대선 때 본격 선거운동으로 전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일 뿐 지속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점은 인정한 셈이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역사가 깊다.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을 주도했다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안기부로 이름이 바뀐 87년엔 폭력배를 동원해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한 일명 ‘용팔이 사건’을 조종했다. 김영삼 정권 때인 97년엔 대선을 앞두고 ‘북풍 사건’을 일으켰다. 정보기관의 피해자였던 김대중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정원으로 개명했지만 정치인 등에 대한 불법 도·감청은 계속됐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드러날 때마다 개혁 여론이 거셌다. 그러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 때 정보기관 개혁을 부르짖다가도 정권을 잡으면 국정원을 정권 유지의 도구로 이용하는 행태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국제분쟁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조차 한국 국정원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정보의 정치화, 정치 개입을 꼽았을 정도다.

 국정원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사건에 이어 최근 대공 사건마다 법원에서 판판이 무죄로 깨지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실력도 의심받는 한심한 상황으로 추락한 것이다. 남북이 대치해 있는 우리나라에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강력한 정보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해 일하는 국정원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경향_[사설]‘정치관여 했지만 대선개입 안 했다’는 법원 판결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 대선개입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으나 집행유예형을 받아 재수감을 면했다. ‘대선 기간 중 정치에는 관여했지만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술 마시고 핸들을 잡기는 했으나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논리인가. 상식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이다. 원 전 원장은 처벌하되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은 막으려다 나온 ‘정치적 판결’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활동이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 및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 및 정치인들을 반대·비판했다”며 국정원법이 금지한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러나 이 같은 행위에 목적성·능동성·계획성이 부족한 만큼, 선거법에서 규정한 선거운동으로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정치관여를 넘어 선거개입이 되려면 보다 치밀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법원이 든 근거다. 재판부는 “선거운동은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검사가 선거운동의 시작점으로 기소한 2012년 1월은 18대 대선후보의 윤곽조차 불명확한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로 확정되지 않았을 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의 혁신작업을 주도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후보가 누가 될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었는데, 재판부만 윤곽조차 몰랐단 말인가. 이러니 ‘짜맞추기’ 판결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범죄를 총지휘한 사령탑이 집행유예를 받고 유유히 귀가했다. 이 장면은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에게 좋지 않은 신호를 줄 것이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여론조작에 나선다 해도 선거법 따위는 ‘무사통과’할 수 있다는 신호 말이다.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엄벌해야 할 사법부가 외려 이를 감싸고 관권선거를 사실상 합리화하는 결론을 내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상급심에서는 보다 엄정한 심리를 통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이 내려지기 바란다.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기뻐할 때는 아니다.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받았다고 하나, 국정원이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및 여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한 것은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깊이 반성하고 자중함이 마땅하다.

경향_[사설]‘꼼수 증세’ 노골화한 담뱃세 인상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했지만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민건강 증진보다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노 대통령과 만나 “소주와 담배는 서민층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2004년 담뱃값 인상을 위한 법 개정안 표결 때 박 대통령과 최경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반대 표시로 기권했다. 세월이 흘러 정권이 바뀌었다. 당시 담뱃값 인상 반대의 주역들이 정반대 논리로 담뱃세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논란 끝에 담뱃세(기금 포함)를 2000원 올리기로 했다. 국회에서 개정 법안이 통과되면 2500원인 담뱃값은 내년부터 4500원으로 인상된다. 늘어나는 세금 중에는 국세인 개별소비세(594원)도 포함됐다. 매년 물가인상분만큼 자동적으로 담뱃세를 올리는 물가연동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번 세금 인상으로 정부 세수는 2조8000억원 늘어난다. 정부는 담뱃세가 오르면 현재 44% 수준인 성인 남자 흡연율을 8%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담뱃세 올려 흡연율을 낮추자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매년 담배 소비자들에게 거두는 국민건강증진 기금은 2조원가량이다. 이 중 실제 금연사업에 쓰이는 돈은 240억원으로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담뱃값의 62%가 세금이다. 담뱃세의 대부분은 흡연자와 무관하게 쓰인다. 이러고도 흡연율 타령을 할 자격이 있나. 더구나 이번에는 담뱃세를 올리면서 국세인 소비세까지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담뱃세를 올려 구멍 난 세수를 벌충하겠다는 의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담뱃세 인상은 명백한 증세다. 서민층에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에 공평과세 원칙에도 어긋난다. 백번을 양보해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전제조건이 있다. 박 대통령 대선공약인 ‘증세 불가’ 파기와 새누리당 입장 변화에 대한 국민적 동의 절차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잣대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서민증세에 앞서 부유층·대기업의 잘못된 과세 시스템을 손질하는 게 우선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 담뱃세 인상분이 당초 목적대로 사용되도록 법제화하고 서민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강구하기 바란다. 쌀 시장 개방으로 설 땅을 잃은 촌로들이 시름을 달래기 위해 피워 무는 담배 한 모금의 고통도 생각해 봐야 한다.

경향_[사설]인공기 철거, 한국 보수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이념, 종교, 민족의 갈등을 녹이는 평화의 제전, 화합과 포용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대회.’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정한 이번 대회의 주제이다. 아시안게임 참가 45개국은 서로 정치제도, 이념, 문화, 종교, 민족이 다르다. 이런 차이는 상호 반목과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포용의 당위성을 부각시킨다. 평소 대립 관계라 해도 몸과 몸이 만나면서 화해의 시간을 가지면 갈등도 낮출 수 있다. 그게 아시안게임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선수단의 참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 1진 94명이 어제 인천으로 들어왔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현실에서 북한 참가는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주최자로서 화해와 포용에 앞장서야 한다. 북한이 당초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할 때 대승적 차원에서 기꺼이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건 아시안게임의 이념을 실천하고 남북 화해도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신 체류 비용, 참가자수 등 사소한 문제로 시비했고 결국 북한은 응원단 파견을 철회했다. 

이렇게 아시안게임의 이념을 훼손한 것이 정부만은 아니다. 일부 보수적 시민들은 아시안게임 축구경기장인 고양종합운동장 주변에 게양한 북한 인공기를 내리라고 항의했다. 이는 경기장 및 그 부근에 회원국의 국기를 걸도록 한 아시아 올림픽위원회 규정을 어기는 것이다. 45개국 국기 중 마음에 드는 것, 안 드는 것을 골라 내걸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 선수단·응원단이 참가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도 인공기를 게양한 바 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조직위와 정부는 인공기를 포함한 45개국의 국기를 모두 철거하는 결정을 했다. 보편적 국제규범을 어긴 그릇된 조치다. 

이 대회를 다른 나라에서 개최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나라 일부 시민이 45개국 중 한국이 싫다며 태극기 철거를 요구했을 때 한국은 그걸 받아들일 것인가. 한국은 나쁜 관례를 만들었다.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는 한국인의 자부심이 관용 대신 이런 편협성으로 표출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는 이 같은 비이성적 행태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불합리한 증오의 감정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지 존중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 정부의 자질, 보수의 교양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는지 안타깝다.

조선_[사설] 1년간 나라 흔든 '국정원 선거 개입' 결국 無罪

서울중앙지법은 11일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을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핵심 쟁점이던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다시 말해 원 전 원장이 2009년부터 정치성 인터넷 댓글을 달도록 지시해 국정원법을 어긴 것은 맞지만 그것이 2012년 대선에 개입할 목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11만7000여건에 달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 내용은 대통령·여당을 지지하고 정부의 정책기조에 반대하는 야당 및 정치인들을 반대·비판하는 활동이어서 불법 정치 관여 행위에 해당하고 이 같은 활동은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에 따른 것으로 인정된다"면서도 "원 전 원장이 특정 후보의 당선·낙선을 목적으로 명시적인 선거운동을 지시했다는 점은 전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인터넷상의 '국정 홍보'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 비판' 활동 중 선거 때 이뤄진 것은 불법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구체적인 선거 개입 의도나 계획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선거법 위반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오히려 "원 전 원장의 지시 내용을 보면 대선에 절대 개입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지시한 사실만 확인되는 데다, 국정원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은 (대선이 가까워진) 2012년 10월 이후 뚜렷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아직 2·3심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1심의 판단은 작년 한 해 동안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극심한 정쟁(政爭)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이란 것이 실은 실체도 없는 것이었다는 결론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이미 무죄를 받았다. 오히려 김 전 청장이 수사를 방해했다고 공격한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재판에서 허위 진술을 한 것이 드러났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 사건이 불거지면 증거를 따질 겨를도 없이 곧장 편싸움장으로 바뀌고 만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증거엔 아예 눈감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은 과장해 부풀린다. 이제는 정치 세력만이 아니라 검찰·경찰에까지 이런 풍조가 번지고 있다. 수사 검사들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반대되는 정황에도 주목했다면 검찰 내 분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 전 원장은 비록 선거법 위반 혐의에선 벗어났으나 정치 관여에 대해선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을 좌시할 수 없는 만큼, 국정원의 대북 대응 활동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활동이 정치적 내용을 담는 경우엔 엄격한 통제가 이뤄져 정치 개입 소지를 없애야 한다. 원 전 원장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추기기까지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이 사건을 정치와 완전히 절연하는 계기로 삼지 못하면 국민으로부터 "없는 것이 낫다"는 소리를 듣는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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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_[사설] 담뱃값 인상 '꼼수 增稅'란 말 듣지 않아야

정부가 11일 담배에 붙이는 세금·부담금 등을 내년 초에 지금보다 2000원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연(禁煙)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안대로라면 담배 한 갑 가격은 2500원짜리가 4500원으로 80% 오른다. 정부는 담뱃값을 대폭 올려 흡연율을 낮추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담뱃갑에 흡연 경고 그림을 넣고 편의점 등의 담배 광고를 전면 금지하겠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담뱃값은 2004년 500원 오른 이후 10년간 2500원에 동결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담뱃값 부담이 적다 보니 19세 이상 성인 남성 흡연율은 43.7%로 OECD 최고 수준이다. 더구나 청소년 흡연율은 20%를 넘어서 OECD 성인 평균 흡연율 26%에 육박하고 있다.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을 줄이는 효과가 확실히 나타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면 담배를 끊겠다는 응답자가 32.3%에 달했다. 특히 청소년은 성인보다 3~4배 이상 가격에 민감(敏感)하게 반응한다.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는 연간 2조8000억원 늘어난다. 그런데 정부는 담배에 붙던 기존의 세금·부담금을 올리는 것 외에 사치품에 붙이는 개별소비세를 추가로 매기겠다고 했다. 2500원짜리 담배는 600원 정도 개별소비세를 더 붙이게 돼 인상분 2000원 중 3분의 1 가까이가 기존엔 없던 세금이 된다. 개별소비세는 중앙정부 금고로 들어간다. 경기 침체로 수조원의 '세수(稅收) 구멍'이 예상되는 중앙정부 재정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이용한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흡연율을 낮추고 청소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담뱃값은 올리는 게 맞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 건강은 명분으로만 내세우고 실제로는 세금을 더 거두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으면 국민 동의를 받기 어렵다. 당장 '꼼수 증세'나 '우회 증세'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부과되는 담뱃세를 증세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정책은 언제나 솔직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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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_[사설]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 10년인데 경쟁력이 우간다 수준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전체 144개국 중 종합 순위 26위를 기록했지만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금융시장 성숙도' 순위는 80위에 그쳤다. 아프리카의 케냐(24위)·가나(62위)에도 뒤지고 말라위(79위)·우간다(81위)와 비슷한 후진국 수준이다.

국내 은행들은 흔히 '덩치만 큰 비만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은행 간 합병을 통해 자산 규모를 크게 불렸어도 그에 걸맞은 역량과 실력은 쌓지 못했다. 해외 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서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은행 수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ROA(총자산이익률)는 지난해 0.38%로 아시아에서 꼴찌 수준이다. 은행 직원이 100억원대의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한 것을 비롯해 대출 사기·횡령 등 원시적인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KB금융만 보면 한국 금융의 현주소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금융과 시장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 각기 다른 줄을 타고 회장과 행장으로 내려와 경영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이전투구를 벌이는 게 한때 1위 은행의 몰골이다. 이제는 "신입 직원들까지 인사 청탁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부 규율과 통제 시스템이 무너져버렸다.

국내 은행들은 신상품 개발은 물론이고 수수료조차 마음대로 못 정한다. 관치(官治) 금융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국 금융은 동맥경화증에 걸린 환자처럼 혈관 곳곳이 막혀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금 중개 기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을 추진한 지 10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금융 한류(韓流)' 수출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 금융회사들은 한국 금융산업의 앞날을 어둡게 보고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우리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되찾고 경제 회복을 뒷받침하도록 하려면 관치의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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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1일 목요일

한겨레_[사설] 선거 때 정치개입이 선거법 위반 아니라니

국가정보원 직원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2012년 대통령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11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정치개입의 국가정보원법 위반은 유죄로,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한 결과다. 댓글과 트위터로 정치에 개입했고 그 상당수가 선거 때 선거 관련 내용인데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니 참으로 이상한 판결이다.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정치 판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법원이 국정원법 위반을 인정한 것은 당연하다. 어떤 형태로든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비방했다면 정치관여에 해당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지시하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도 직원들에게 강제된 업무상 지시이므로 정치관여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따른 댓글·트위터 활동이 선거개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그 근거로 내세운 논리는 궁색하다. 재판부는 ‘선거 때 정치관여가 당연히 선거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선거운동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능동적·계획적 행위라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법정에서 인정된 증거만으로는 원 전 원장이 선거운동을 지시했다거나 국정원 심리전단이 선거활동으로 전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상식과 동떨어진 것이다. 검찰 주장대로 모든 국정이 선거로 수렴되는 선거 때의 정치관여 행위는 특정 후보자의 유불리로 이어지는 선거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대선 직전 조직을 확충했고, 댓글·트위터 활동도 대선 시기에 집중됐다. 그 상당수가 야당과 야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인데도 선거운동이 아니라면 ‘눈 감고 아웅’ 하는 꼴이 된다.
더구나 이번 재판은 시작 전부터 국정원의 조직적인 범행 은폐로 왜곡돼온 터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고, 재판에서도 명백한 증거조차 부인하는 등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결과 법정에서 채택된 증거도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을 뻔히 방치하다 이제 와 증거 부족으로 선거법 위반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했으니 수긍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법원이 지적한 대로 국정원의 여론조작 행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깨뜨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 범죄다. 선거개입은 물론 정치관여 행위도 엄벌해야 마땅하다. 어중간한 절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번 판결은 상급심에서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한겨레_[사설] 우려되는 ‘오바마의 새 중동전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을 선언했다. 1·2차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이어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네번째 중동전쟁이다. 앞선 전쟁들이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새 문제를 낳았듯이 이번 전쟁의 전망 또한 밝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이슬람국가를 제거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미국 내 여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6월 말 이라크·시리아 북부에 들어선 이슬람국가가 미국인 기자 2명을 공개 처형하는 등 반미 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인들의 분노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라는 퇴행적 근본주의 세력에 대해 지구촌의 많은 나라가 불안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의 전쟁 선언은 일방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십만명이 숨진 시리아내전에 대해 거리를 두다가 이제 와서 시리아 지역을 공습하겠다는 것도 일관성이 없다. 미국이 이번 전쟁의 정당성을 갖추려면 적어도 유엔 차원의 확실한 결의가 있어야 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전쟁의 실효성과 부작용이다. 지금 중동 지역은 나라·종파·이념·이해관계 등으로 갈가리 찢겨 갈등이 일상화한 상태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고 적과 동지가 수시로 바뀐다. 이렇게 된 데는 미국이 큰 구실을 했으며,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에 대한 현지인의 신뢰는 크지 않다. 미국의 공언대로 이슬람국가를 제거하더라도 다른 근본주의 세력이 부상해 중동 정세가 더 복잡해질 가능성도 적잖다. 지리멸렬한 시리아 안 온건 반군세력에 대한 지원을 전쟁의 주요한 축으로 삼겠다는 전략의 현실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온다.
이번 전쟁은 2년 남짓한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안에 끝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는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위해 국제연합전선을 추진중이며 현재 40개 나라 정도가 지지 뜻을 밝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전쟁의 앞날에 대해 확신하는 나라는 찾기가 쉽지 않다. 미국이 인도적 지원 이상의 전쟁 참여를 우리나라에 요청한다면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앞선 세 전쟁과 이번 전쟁은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나라에 무력 개입을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중동 평화를 이루겠다면 전쟁이 아니라 정치·외교적 노력이 더 중요하다.

한겨레_[사설] 국민건강 앞세워 ‘서민증세’ 하는 담뱃값 인상

정부가 내년 1월1일부터 담뱃세를 2000원 올리기로 했다. 현재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담뱃값은 가장 낮은 데 반해 성인 남성 흡연율은 44%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담배 가격이 10% 오르면 담배 소비가 3~5% 줄어든다는 세계은행 조사결과도 있다. 흡연율을 낮출 수만 있다면 4500원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라도 올릴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담배의 특성을 고려하면 세금 인상에 앞서 처리해야 할 조건이 있다. 담배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소비하는 품목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우리나라 흡연율의 사회 계층별 불평등과 변화 추이’ 보고서(2007년)를 보면, 2005년 기준으로 소득수준 5분위(상위 20%)의 흡연율은 47.8%였으나 소득이 최하위인 1분위의 흡연율은 무려 64.6%다. 결국 담배에 붙는 세금의 대부분을 서민층이 부담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8조5000억원가량의 세수 결손이 발생한 데 이어 올해는 10조원의 세수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고 한다. 담뱃세를 2000원 올릴 경우 최소 2조8000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거둬들일 수 있다. 세수 부족분의 3분의 1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 때문에 조세 저항이 극심한 직접세보다는 비교적 조세 저항은 적으면서 손쉽게 걷을 수 있는 간접세를 올려 세수를 확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조세는 공정하면서도 공평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세금을 올리는 건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는 역진 현상을 불러올 뿐이다. 삶의 고달픔을 담배 한 모금에 실어 보내는 서민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다.
따라서 담뱃세를 올리려면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고소득자들에게 누진체계를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앞서야 한다. 부자 감세도 철회돼야 한다. 그래야 담뱃세 인상이 국민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또 담뱃세 인상으로 마련된 재원은 금연사업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투입돼야 한다. 정부가 올해 담배에서 거두는 건강증진기금 2조원 가운데 절반가량은 건강증진과 관련없는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금연사업에 쓰는 돈은 1.2%인 243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우리나라도 담뱃세의 일정 비율을 금연 정책에 사용하도록 법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앙_[사설] "좋은 직장만 쉬고 …" 대체휴일제 제대로 하자

2014년 9월 10일의 색깔은 달력마다 다르다. 어떤 달력은 공휴일을 뜻하는 빨간색으로, 또 어떤 달력은 평일인 검은색으로 표시돼 있다. 색깔 차이는 올해 첫 도입된 대체휴일제의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체휴일제란 공휴일과 주말이 겹칠 경우 휴일이 아닌 날을 휴일로 지정해 공휴일 수를 보장하는 제도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지면서 다같이 쉬지 못하는 어정쩡한 제도가 되고 말았다.

 10일 인터넷 게시판에는 근무 직장인이 올린 불만의 글이 쇄도했다. “넌 쉬고, 난 일하고” “좋은 직장은 쉬고, 나쁜 직장은 나오고” “공은 쉬고, 사는 일하고”…. 관공서·학교·금융기관 종사자는 모두 휴일을 즐겼지만 민간기업은 사정이 제각각이었다. 대기업의 80% 이상은 쉰 반면 중소기업의 절반가량은 근무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평소 근무여건이 좋은 직장 위주로 대체휴일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어린이집·유치원이 문을 닫으면서 어린 자녀를 둔 중소기업 맞벌이부부는 아이를 맡길 데 없어 애를 태우기도 했다. 

 대체휴일제 법제화는 여야가 대체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이슈였다.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대체휴일이 늘어나면 개인의 삶의 질과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민간소비가 커질 수 있었다. ‘샌드위치’ 휴일 때 대기업은 쉬는데 중소기업은 일하는, 기존 노동양극화의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경제단체들이 반발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산업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맞섰다. 경총은 국내 공휴일 수가 미국·영국·프랑스보다 2~12일 길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정치권은 입법을 포기하는 대신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시행령’을 고치는 수준으로 봉합했다. 이는 대체휴일제가 민간에 대한 강제력이 없어졌음을 의미했다. 정부는 “공공·교육·금융기관이 모두 쉬면 민간기업도 덩달아 쉴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직장 간 위화감을 조성하면서 긍정적 효과는 그만큼 크지 않은 정책이 되고 말았다.

 우리 경제도 무턱대고 오래 일하는 게 능사인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충분한 휴식이 보장돼야 생산성도 올라가는 구조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어렵게 도입된 대체휴일제를 폐지할 이유는 없다. 보다 많은 직장인이 함께 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시행령 개정 정도로 넘어갈 게 아니라 이참에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나 근로기준법을 손질해야 한다. 인건비 상승 같은 기업의 우려도 반영해야 한다. 기존 국경일을 다소 줄이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등 보완 대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와 노사가 가야 할 미래상은 명확하다. 더 많은 사람이 넉넉한 삶의 질을 누리면서도 노동생산성은 높은 사회다.

중앙_[사설] 남북, 이산가족 고통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

추석은 각지에서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이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지만 이산가족들에겐 올해도 그렇지 못했다. 북녘 땅과 맞닿은 임진각 등지에서 정성껏 차례를 지냈지만 어디 성에 차겠는가. 명절은 오히려 그들에게 한(恨)만 깊게 하는 아픔의 시간일 것이다. 더구나 이산가족 사망자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1988년 이래의 상봉 신청자 12만여 명 가운데 절반인 6만여 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말 기준이다. 지금까지 3000여 가족만이 재회한 점을 고려하면 사망자 대다수가 북측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눈을 감은 셈이 된다. 사망자는 지난 8개월 동안 2500여 명에 이르렀다. 전체 생존자 가운데 절반이 80세 이상이기도 하다. 남북 간에는 현안이 겹겹이 쌓여 있지만 이산가족 문제 해결만큼이나 절박한 것은 없다.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쌍방의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지 오늘로 만 한 달이다.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정치적 문제와 연계하지 말고 호응해 나와야 한다. 마침 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가 그제 정권수립 66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선 가장 절실한 문제부터 풀어 가는 것이 순서다. 신뢰가 쌓이면 남북 간의 대규모 교류·협력 사업도 탄력이 붙지 않겠는가. 북한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에는 성의를 보이면서 남북 간 이산가족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인 억류자 문제를 놓고 미국 정부와도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도 인도적인 문제에는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해올 때는 대규모 인도적 지원 등도 고려해봐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의 큰 틀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남북 간 경제적 격차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부담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해 비공개 상봉 등 실질적인 해결을 꾀할 필요도 있다. 추석 계기 상봉은 무산됐지만 가을까지 놓쳐선 안 된다.

중앙_[사설] '일베' 의 반인륜 집회, 문명 사회의 수치다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 6일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약칭 일베) 회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일베 회원 100여 명은 이날 세월호 유가족 등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곳 앞에서 피자·치킨 등을 나눠 먹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한 인터넷 카페 운영자는 9일 일베 회원들이 행사를 가진 장소에 ‘개보다 못한 것들 사료 먹는 곳’이라는 문구를 써 붙이고 개집과 개밥을 갖다 놓기도 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대립이 일부 극단적인 세력에 의해 ‘조롱’과 ‘막말’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단식 농성장 앞에서 먹거리 집회를 주최한 측은 “정치적 용도로 전락한 광화문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였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진보진영의 불법 집회처럼 과격한 선동이나 거리 점령도 없었고 행사장소를 깨끗이 청소하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취지야 어떻든 꽃다운 자식을 잃고 극한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행사’까지 벌인 행위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광화문광장 농성장엔 추석을 맞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석상까지 차려진 상태였다고 한다. 이는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행위로 문명사회라면 부끄럽게 여겨야 될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엔 서로 의견이 다르면 합리적 논쟁으로 접점을 찾기보다는 상대를 향해 일방적인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 극단적인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 사회에선 점점 약해지고 있는 지역 감정이 이들 사이에선 더 노골화되고 있다. 일베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일베 회원들을 벌레(일베충)로 비유한다. 인터넷엔 일베 회원임을 판별해 주는 일베회원검사기까지 등장했다.

 민주사회에선 누구나 자기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를 무시할 경우 대다수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결국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향_[사설]반쪽짜리 대체휴일제 개선해야

이번 추석 연휴에 처음 적용된 ‘대체휴일’이 반쪽에 그치면서 혼란과 부작용을 낳았다. 현행 대체휴일제는 설·추석 연휴가 일요일과 겹치면 연휴 다음날 하루 더 쉬고, 어린이날은 토·일요일이 겹치면 대체휴일을 준다. 하지만 대체휴일이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시행되면서 장애를 야기했다. 재계의 반발에 밀려 정부·여당이 관공서와 공공기관에만 대체휴일을 의무화하고, 민간은 자율에 맡긴 결과다. 그러다 보니 어제 시행된 첫 대체휴일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은행과 일부 대기업에 국한되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인정하지 않고 연차휴가에서 차감하는 영세중소기업은 법정 의무가 아닌 대체휴일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대체휴일 도입 취지로 ‘휴식을 통한 재충전으로 업무생산성 제고’ ‘관광·레저 산업 활성화로 내수 진작 및 일자리 창출’ ‘장시간 노동 완화’ 효과 등을 들었다. 그것이 실현되려면 대체휴일의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하지만 재계의 저항에 굴복해 법이 아닌 ‘공무원 휴일 규정’으로 도입함으로써 누더기 대체휴일제를 자초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대기업은 대체휴일을 누리고,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쉬지 못하는 ‘차별 휴일’을 만든 꼴이다. 그러잖아도 공공부문, 대기업과 나머지 중소기업 사이에 임금·복지 등에서 격차가 심각하다. 쉬는 날까지 차별받는 것은 노동시장의 불평등만 심화시킬 뿐이다.

현행 제도는 ‘대체휴일제’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쪼그라든 것이다. 전체 공휴일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설·추석 연휴와 어린이날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민간의 경우 자율에 맡김에 따라 본디 취지를 달성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대체휴일 실시의 목적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선진국들보다 1년에 300~400시간을 더 일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오히려 절반 수준이다. 노동시간이 길다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대체휴일이 의무가 아닌 이상 앞으로도 같은 문제와 혼선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우선 향후 10년간 9일, 연평균 0.9일에 그치는 대체휴일이라도 온전히 시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휴식권마저도 국민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게 하는 제도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경향_[사설]OECD 최고 교육비에 등골 휘는 한국 학부모들

한국의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이 14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유치원, 초·중·고교 및 대학에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다른 OECD 국가보다 무겁다는 뜻이다. ‘부끄러운 1위’를 언제까지 두고 보기만 할 텐가. 시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실질적 대책을 강구할 때다.

최근 공개된 ‘2014년 OECD 교육지표’를 보면, 201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은 OECD 평균(0.9%)보다 3배 이상 높은 2.8%로 나타났다. 특히 대학 이상 고등교육의 민간 부담률은 평균의 4배가량이나 됐다. 반면 공교육비 가운데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은 평균보다 낮았다. 공교육의 민간 의존도가 높고 그중에서도 대학 등록금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정부가 공교육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떠넘긴 결과다. 사교육비까지 감안하면 각 가계에서 체감하는 지출은 더 커질 것이다. 실제 학부모들은 자녀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등골이 휘고, 대학생들은 학자금대출 상환에 쫓겨 공부보다 ‘알바’에 매달리는 지경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이동의 중요한 통로로 기능해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가 단순히 신화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과외금지 조치 해제 이후 사교육비가 급증하고, 특수목적고·자율형사립고의 출현으로 고교 평준화가 사실상 무너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외려 교육이 부와 빈곤을 대물림해 계층구조를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교육이 서민에게 ‘희망의 사다리’로 남으려면 우선 공교육의 민간 부담부터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8월 “대학 등록금 부담을 분명하게 반으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대선공약에선 ‘소득 하위 80%까지 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다. 시행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은 2015년으로 미뤄 논란이 됐지만, 제대로 시행된다 해도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교육재정 지원을 과감히 확충함으로써 등록금 고지서에 찍히는 금액(명목등록금) 자체를 낮춰야 한다. 최근 황우여 교육부 장관도 명목등록금 인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정부는 사립대 재단의 과도한 적립금 누적을 규제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장학금 확대나 교육여건 개선은 등한시하면서 적립금 쌓기에만 골몰하는 사학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경향_[사설]현실화하는 중국발 가전·IT 공습

중국발 가전·정보기술(IT) 공습이 현실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수 아래’가 아니라 오히려 ‘한 수 앞서’ 시장을 주도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예견된 약진이지만 그 속도감이 두려울 정도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에서 7~10일 열린 국제 가전전시회 ‘IFA 2014’의 주역은 TCL, 창훙, 하이얼, 하이센스 등 중국 업체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TV, 모바일, 스마트홈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 제품을 선보이며 경쟁자들을 놀라게 했다. TCL은 올해 TV의 대세로 자리 잡은 곡면(커브드) UHD 부문에서 ‘세계 최대’인 110인치 모델을 내놓은 데 이어 세계 최초로 ‘퀀텀닷(양자점) TV’를 공개했다. 퀀텀닷은 LCD TV지만 화질이 OLED만큼 뛰어나다. 이들 제품은 삼성과 LG도 내놓지 못한 것들로,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1년 전만 해도 한국과 2년 이상 기술력 차이가 난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약진을 넘어 대도약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모바일의 대세인 시계형 웨어러블 제품군에서도 화웨이가 토크밴드를 내놨다. 여기에 일본의 소니까지 웨어러블 ‘스마트 워치 3’를 내놓으며 한국 타도를 외치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위상은 높지만 예전만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올 상반기 삼성의 휴대전화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7%포인트 하락한 25%로 내려앉았다. 틈을 비집은 것은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이다. 이들은 저가 전략에 기술력, 디자인까지 겸비하고 있다. 평판TV 부문에서는 삼성과 LG가 각각 32%, 16%의 점유율로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기세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

글로벌 업체들의 생존을 건 싸움은 ‘굼뜨면 죽는다’는 냉혹한 경쟁구도에서 혁신만이 살길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재확인해준다. 위기는 성공에 취해 자만하고 혁신을 잃어버렸을 때 다가온다. 삼성은 IFA에 앞서 고사양을 잔뜩 넣은 ‘갤럭시 노트 4’와 웨어러블 기기인 ‘기어 S’ 등을 새로 선보였다. 반면 스티브 잡스 사후 혁신부재론에 시달리던 애플은 어제 ‘아이폰 6’를 내놓으면서 하드웨어 개선 등 ‘잡스식 혁신’과 결별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업체 간 경쟁 결과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그간의 성공을 잊는 것에서 비롯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_[사설] 국회, 15일 본회의에서 무조건 경제·민생 법안 처리하라

10일로 추석 연휴가 끝났다. 그러나 5개월 동안 단 하나의 경제·민생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기껏 동료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否決)시킨 일밖에 한 게 없는 국회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명절 후 첫날을 맞았다. 야당은 다른 모든 민생 법안을 세월호특별법의 인질로 잡고 있는 입장 그대로이고, 여당은 이런 야당을 움직일 방법을 찾는 데 속수무책인 모습 그대로다. 여야(與野) 원내대표들은 10일 접촉을 시도하다 만나봐야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여야가 세월호법을 둘러싸고 싸우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시급한 경제·민생 법안들은 통과시켜 가면서 하라는 것이 이미 확인된 민심(民心)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60~70%가 여기에 동의하고 있고 반대는 20% 안팎에 불과하다. 세월호법이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성격이 다른 것을 연계해 장외투쟁까지 해가며 싸우는 데 대한 분노가 반영된 결과다. 이 정도 여론조사 결과면 거의 '명령'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추석 기간 중 지역구에 다녀온 의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 해산' 같은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오죽하면 "세월호 유족 아닌 국민은 국민도 아니냐"는 분노까지 터져 나왔다. 의원들이 민심이 극단적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서야 확인했다면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그런데도 장외(場外) 집회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박영선 비대위원장까지 참여해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걷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의원 중에는 "독하고 질기게 싸우겠다"고 말하는 사람마저 있다고 한다. 재집권 가능성은 고사하고 당의 존속마저 점차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도 작정이나 한 듯이 민심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무슨 이념 집단도 아닌 야당이 여론의 흐름을 이렇게까지 수렴하지 못한다면 국민과의 소통에 큰 고장이 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 본회의엔 상임위와 법사위 심의를 이미 거친 경제·민생 법안이 91건 올라가 있다. 여야 간에 이견이 없어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려 통과시키는 절차만 남아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한 달여 전인 지난 8월 7일 이 법안들을 가장 이른 시기에 열리는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하고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이것을 새정치연합 측이 파기하면서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외에도 부동산 규제 완화 관련 등 8000건 가까운 법안들은 상임위 단계에 막혀 있다.

오는 15일 국회 본회의가 예정돼 있다. 여기서 무조건 경제·민생 법안이 처리돼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법 협상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국회가 국민의 하소연과 아우성을 또 무시하면 인내의 한계에 이른 민심이 세월호법 정도가 아니라 국회 자체를 뒤엎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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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_[사설] 서울시, 제2롯데월드 開場 책임 시민에 떠넘기나

서울 송파구 제2잠실롯데월드엔 9일과 10일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 명품 백화점, 쇼핑센터, 영화관을 둘러봤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가 6일부터 16일까지 시민들이 이 3개 건물을 직접 보고 안전성 여부를 점검하게 한 뒤 그 결과에 따라 건물 임시 사용을 승인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안전 점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민들은 1시간 반 동안 매장과 지하 1층 종합방재센터를 둘러보는 데 그쳤다. 그나마 롯데가 미리 정해 놓은 동선(動線)에 따라 움직이며 롯데가 보여주는 것만 봐야 했다. 안전 시설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롯데의 홍보성 설명을 듣는 게 전부였다.

서울시는 롯데가 지난 6월 초 3개 건물에 대한 임시 사용 승인 신청을 내자 각계 전문가 23명으로 점검단을 꾸려 안전 점검을 벌였다. 서울시는 7월 17일 점검 결과 건물 안전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주변 교통, 방재(防災), 123층 타워 공사장 안전에 관한 대책 등을 보완하라고 롯데에 통보했다. 롯데가 8월 13일 보완을 마쳤다고 알려 오자 서울시는 내부 논의 끝에 이번엔 시민 안전 점검이라는 또 다른 방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제2롯데월드 3개 건물이 개장하면 하루 20만 명이 몰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시가 사용 승인에 앞서 안전을 거듭 점검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건물 안전 점검은 그 분야 전문가들이 정밀하게 해도 허점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서울시는 그런 안전 점검에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 시민들을 끌어들였다. 서울시가 내부적으로 사용 승인을 해주기로 방침을 정해놓고서도 시민들의 안전 점검을 받았다는 명분을 쌓으려고 이번 행사를 계획했다면 쇼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시민 여론을 근거로 사용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면 전문성과 법적 권한이 없는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다. 서울시가 전문가 진단을 믿지 못하겠다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책임지고 사용 승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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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_[사설] 중국이 세계 최신, 최초, 최대 TV 내놓다

최근 독일에서 열린 전자 전시회 'IFA 2014'에서 중국 TV 업체인 TCL이 세계 최대인 110인치 곡면(曲面) UHD(초고화질) TV를 선보였다. 또 다른 중국 업체인 하이센스와 TCL은 기존 LCD(액정디스플레이) TV보다 화질이 훨씬 선명하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보다 제조 원가가 저렴해 차세대 TV로 주목받고 있는 양자점(量子點·Quantum dot) TV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세계 TV 시장은 삼성과 LG가 주도하고 있다. 삼성과 LG는 그동안 LCD TV 대형화와 3D·OLED TV 개발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세계 최초', '세계 최대' 타이틀을 휩쓸다시피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 업체들이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제품을 내놓으며 삼성·LG·소니의 기술력을 거의 따라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스마트폰에서도 레노버와 하이얼 등이 삼성·애플에 별로 뒤지지 않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연동해 원격으로 기능을 조종하는 '스마트홈' 서비스도 선보였다. 아직은 중국 업체들의 브랜드 파워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평가이지만 IT 제조 분야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은 세계 최대 규모인 자국(自國) 시장에서 선진국 기업은 물론 수많은 현지 중소기업과 치열한 생존 다툼을 벌이는 데서 나온다. 중국 시장에선 경쟁력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남은 기업은 세계 어느 기업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창업 4년 만에 삼성·애플을 제치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른 샤오미처럼 듣도 보도 못했던 신흥 강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TV와 스마트폰의 화면을 키우고 기능을 개선하는 식의 점진적 혁신으로는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갖추기 시작한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다.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근본적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모방과 추격이 아닌 창조와 혁신에서 한국 경제와 기업의 살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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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_[사설] ‘아전인수’ 말고 ‘역지사지’로 풀어야

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세월호 특별법 대치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유족을 할퀸 잔인한 고통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 편치 못한 연휴를 보냈다는 이들이 많다. 똑같이 진상규명을 외치고 재발방지를 다짐하면서 절충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 문제를 어째서 이토록 오래 끌어야 하는지 답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분노한 추석 민심을 전하는 여야의 목소리는 이중적이다. 정치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는 점에 대해선 의견이 일치하지만 성난 민심을 만들어낸 원인을 두고선 ‘네 탓’ 공방만 난무한다. 여야 모두 민심의 실체를 외면한 채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있는 탓이다.
국회와 세월호 특별법을 바라보는 추석 민심은 너무도 분명하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국회가 할 일을 신속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특별법 타결과 정기국회 정상 가동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문제를 풀지 못하면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여야가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특별법도 만들기 어렵다. 세월호 특별법은 경중의 차원도 넘어선다. 세월호엔 대한민국의 적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히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안’ 정도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여야 모두 ‘아전인수’를 버리고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나서야 해법을 이끌어낼 수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비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9월15일 본회의’ 방침을 내비쳤다고 한다. 세월호 특별법과 분리해 다른 법안들부터 우선 처리하자는 것으로, 여당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정 의장은 국회의 수장으로서 정상적 국회 가동에 대한 책임감이 클 것이다. 시한을 제시해 여야의 특별법 협상을 압박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야당은 특별법과 다른 법안 분리처리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분리처리에 동의하는 순간 협상의 지렛대를 상실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의 본회의 안건 상정과 여당의 단독 진행은 야당의 강경투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 파행이 심화하고 세월호 특별법 문제는 더욱 꼬이고 말 것이다. 어느 때보다 여야의 대화와 협상이 절실하다.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정 의장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길 기대한다.
세월호 문제는 결국 정치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풀어내지 못하면 여야가 공멸한다. 여야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겨레_[사설] ‘전세 난민’ 양산 우려 큰 부동산정책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셋값 움직임이 심상찮다.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라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전세가율)이 전국 평균 70%에 육박했다. 추석 연휴 뒤의 전세시장 여건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전세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거나 새로 셋집을 구하는 서민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케이비(KB)국민은행이 집계한 전국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8월 현재 69.1%로, 1998년 이 은행이 통계를 낸 이래 두번째로 높다. 매매가격보다 전셋값이 더 큰 폭으로 오른 결과다. 8월의 전국 아파트 매매 시세는 1년 전에 견줘 1.6% 오른 데 비해 전셋값은 4.4%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의 9·1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뒤에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셋값 상승폭이 더 커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빠르게 전환하는데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겹쳐 전세물량 부족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전세 수급의 불균형 해소 대책으로 매매시장 활성화를 내세우고 있다. 9·1 부동산 대책도 재건축 규제 완화와 청약제도 개선 등으로 매매 수요를 늘리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바뀌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8월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전세살이 세입자들에게 빚을 내 집을 사도록 하는 게 정부가 생각하는 전세난 해법이다.
하지만 이는 가계의 주택 구입 여력을 고려하지 않은 책상머리 처방이다. 가계소득 대비 지금의 주택가격 수준을 고려하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옮겨갈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빚을 내더라도 집을 살 형편이 되지 않는 가계도 수백만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매매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집값마저 들썩이게 되면 전세난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민 주거비 부담은 커지고 전세 난민만 양산할 위험이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서민의 주거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체 가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세입자의 주거 안정과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전월세 상한제나 임대계약갱신청구권 등 야당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세입자 지원 대책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중장기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약속한 대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

한겨레_[사설] 야권연대도 ‘종북’이라는 법무부의 견강부회

매향리 미군폭격장 반대운동,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운동, 광우병 촛불시위,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 등은 2000년 이후 벌어진 대표적인 대중운동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에 대한 항의에서 출발해 상당 부분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낸, 국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다. 지역 주민 등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사회단체들이 힘을 합치면서 대중적 저항으로 번진 이들 운동에는 통합진보당도 일부분으로 참가했다.
이들 대중운동이 북한의 대남혁명전술에 따른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나왔다. 심지어 2012년 총선 때의 야권연대까지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삿대질만 일삼는 ‘아스팔트 극우’ 인사의 말이라도 황당했을 이런 주장을, 명색이 정부 부처라는 법무부가 버젓이 공식문서에서 늘어놓았다. 30~40년 전 유신과 군부독재의 암흑기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착오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가 8월 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심리중인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를 보면, 이런 주장의 근거는 이들 대중운동에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참여했다는 것 정도다. 북한 쪽이 이들 운동에 관한 성명을 냈고, 진보당 인사들이 회의를 통해 이들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으며, 북한의 관련 지령도 있으니 결국 북한의 대남혁명전술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북한이 언급한 문제를 주장하면 그게 곧 종북’이 된다. 참으로 단순하고 무지막지한 억지다. 법무부는 이런 주장을 펴면서 진보당이 이들 운동의 참가자일 뿐이라는 점, 이들 운동이 사회적 공분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만 하더라도 당시 대검 공안부장이던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현장을 둘러본 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봐야 한다’며 강경 대응에 반대한 바 있다. 매향리 문제도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주민들의 사격장 폐쇄 요구에서 시작됐고, 효순·미선이 사건도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공분으로 촉발돼 당시 한나라당의 이회창 대통령후보까지 거리 추모행사에 참가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지금 와서 법무부는 여기에 ‘종북’ 딱지를 붙이려 하고 있다. 이것저것 되는대로 끌어다 붙이는 견강부회도 서슴지 않는다. 종북 프레임으로 비판 세력을 봉쇄하려는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병적인 집착이 아닌지까지 묻게 된다.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