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2일 금요일

경향_[사설]‘꼼수 증세’ 노골화한 담뱃세 인상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했지만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민건강 증진보다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노 대통령과 만나 “소주와 담배는 서민층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2004년 담뱃값 인상을 위한 법 개정안 표결 때 박 대통령과 최경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반대 표시로 기권했다. 세월이 흘러 정권이 바뀌었다. 당시 담뱃값 인상 반대의 주역들이 정반대 논리로 담뱃세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논란 끝에 담뱃세(기금 포함)를 2000원 올리기로 했다. 국회에서 개정 법안이 통과되면 2500원인 담뱃값은 내년부터 4500원으로 인상된다. 늘어나는 세금 중에는 국세인 개별소비세(594원)도 포함됐다. 매년 물가인상분만큼 자동적으로 담뱃세를 올리는 물가연동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번 세금 인상으로 정부 세수는 2조8000억원 늘어난다. 정부는 담뱃세가 오르면 현재 44% 수준인 성인 남자 흡연율을 8%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담뱃세 올려 흡연율을 낮추자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매년 담배 소비자들에게 거두는 국민건강증진 기금은 2조원가량이다. 이 중 실제 금연사업에 쓰이는 돈은 240억원으로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담뱃값의 62%가 세금이다. 담뱃세의 대부분은 흡연자와 무관하게 쓰인다. 이러고도 흡연율 타령을 할 자격이 있나. 더구나 이번에는 담뱃세를 올리면서 국세인 소비세까지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담뱃세를 올려 구멍 난 세수를 벌충하겠다는 의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담뱃세 인상은 명백한 증세다. 서민층에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에 공평과세 원칙에도 어긋난다. 백번을 양보해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전제조건이 있다. 박 대통령 대선공약인 ‘증세 불가’ 파기와 새누리당 입장 변화에 대한 국민적 동의 절차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잣대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서민증세에 앞서 부유층·대기업의 잘못된 과세 시스템을 손질하는 게 우선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 담뱃세 인상분이 당초 목적대로 사용되도록 법제화하고 서민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강구하기 바란다. 쌀 시장 개방으로 설 땅을 잃은 촌로들이 시름을 달래기 위해 피워 무는 담배 한 모금의 고통도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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