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전체 144개국 중 종합 순위 26위를 기록했지만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금융시장 성숙도' 순위는 80위에 그쳤다. 아프리카의 케냐(24위)·가나(62위)에도 뒤지고 말라위(79위)·우간다(81위)와 비슷한 후진국 수준이다.
국내 은행들은 흔히 '덩치만 큰 비만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은행 간 합병을 통해 자산 규모를 크게 불렸어도 그에 걸맞은 역량과 실력은 쌓지 못했다. 해외 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서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은행 수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ROA(총자산이익률)는 지난해 0.38%로 아시아에서 꼴찌 수준이다. 은행 직원이 100억원대의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한 것을 비롯해 대출 사기·횡령 등 원시적인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KB금융만 보면 한국 금융의 현주소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금융과 시장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 각기 다른 줄을 타고 회장과 행장으로 내려와 경영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이전투구를 벌이는 게 한때 1위 은행의 몰골이다. 이제는 "신입 직원들까지 인사 청탁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부 규율과 통제 시스템이 무너져버렸다.
국내 은행들은 신상품 개발은 물론이고 수수료조차 마음대로 못 정한다. 관치(官治) 금융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국 금융은 동맥경화증에 걸린 환자처럼 혈관 곳곳이 막혀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금 중개 기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을 추진한 지 10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금융 한류(韓流)' 수출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 금융회사들은 한국 금융산업의 앞날을 어둡게 보고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우리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되찾고 경제 회복을 뒷받침하도록 하려면 관치의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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