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9일 월요일

<그곳에 헤테로토피아가 있었다>

[작문 제시어: 통과]
<그곳에 헤테로토피아가 있었다>
 
유토피아는 사라졌다. 사실 그 곳은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어려움을 잊게 하는 공간, 다른 유토피아라는 뜻을 가진 말이 있다. 헤테로토피아다. ‘다른이라는 뜻의 헬라어 헤테로와 토피아(장소)가 결합된 합성어다. 아이들이 부모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는 다락방, 신혼부부가 일상을 접어두고 떠나는 허니문 여행지, 원양어선 선원이 간만에 정박한 부두에서 찾은 매음굴이 헤테로토피아다. 그곳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 또는 공간을 통과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20154,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인의 장막으로 만들어진 헤테로토피아가 있었다. 청년들은 음악에 맞춰 몸짓을 했고, 어른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박수를 쳤다. 슬픔도 눈물도 없는 그곳은 진정한 헤테로토피아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축제의 현장에 들어오려는 사람들과 막으려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날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이틀 지난 토요일이었다.
 
경찰은 정오부터 버스와 펜스로 철의 장막을 펼치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흘째 광화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유가족 앞엔 차벽을 설치했고 시청 앞에서 이동하기 시작한 집회 참가자들 앞엔 펜스를 설치했다. 펜스와 버스 차벽으로 분리된 유가족들과 시위대가 경찰에게 길을 열라고 외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이내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소란은 밤이 깊도록 계속됐다. 그곳은 디스토피아였다.
 
시위대는 물줄기를 뚫고, 경찰 버스 유리창을 박살낸 뒤에야 유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디스토피아를 통과한 사람만이 축제의 현장, 헤테로토피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낮에 시작한 집회는 자정이 돼서야 끝났다. 시위대는 물줄기에 젖어 무거워진 몸을 막차에 실었다. 경찰들도 만신창이가 된 버스를 타고 복귀했다. 각기 다른 버스를 타고 헤테로토피아를 떠났지만, 흥얼거리는 노랫말은 하나였다. ‘나도 행복에 나라로 갈 테야. 다들 행복에 나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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