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목요일

경향_[사설]대법원의 첫 ‘담배소송’ 판결이 아쉬운 이유

국내 첫 ‘담배소송’이 15년 만에 흡연 피해자들의 패소로 끝났다. 대법원은 흡연 후 암에 걸린 환자와 가족들이 담배 제조사인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에게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의학계 견해 등을 반영해 판결을 내렸을 터이나, 헌법적 권리인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담배에 설계·표시상 결함이 있는지, KT&G와 국가가 담배의 위해성을 은폐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는지,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쟁점에서 KT&G와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제조물로서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고 제조·판매 과정에도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세 번째 쟁점에 대한 판단이다. 대법원은 “흡연과 (상고심까지 온) 원고들의 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상고심 재판부가 판단 대상으로 삼은 것은 폐암 가운데 비소세포암과 세기관지 폐포세포암이다. 항소심에서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된 소세포암(폐암)과 편평세포암(후두암)에 대해서는 별도의 판단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법원이 흡연과 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인했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담배의 해악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지난해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130만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흡연 남성은 비흡연자보다 후두암 위험이 6.5배, 폐암 위험이 4.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흡연 피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미 연방대법원이 2009년 필립모리스에 7950만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선고한 것은 담배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담배협회는 대규모 담배소송을 준비 중인 건보공단을 향해 “대법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야 할 곳은 건보공단이 아니라 KT&G를 비롯한 담배협회 회원사들이다. 대법원이 흡연과 일부 암 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했다고 흡연을 용인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판결문 오독(誤讀)이다. 대법원 판결은 담배의 위해성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인과관계와 책임에 대한 법률적 판단임에 유의해야 한다. 시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흡연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이 위축돼서도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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