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8일 화요일

경향 [사설]건정심 의결구조를 누구 맘대로 바꾸나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가 2차 의·정 협의결과라며 발표한 내용 중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 개편 문제가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건정심에서 의료계 몫을 늘려주기로 한 것을 두고 “기만적인 밀실협상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집단휴진 사태를 목전에 두고 양측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건정심 구조 개편 또한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파장은 만만치 않다.

건정심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을 심의 의결하는 실질적 의사결정기구다. 건강보험의 주요 결정은 모두 건정심 의결을 거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한 해 건강보험료를 얼마나 올릴지, 어느 치료행위나 약제를 건강보험으로 적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문제가 모두 건정심에서 결정된다. 의사들의 수입과 직결되는 의료수가가 최종 결정되는 곳도 건정심이다. 이 때문에 건정심을 공정하게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은 국민 건강과 보험재정의 건전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외국에서도 건정심 같은 기구를 이해당사자들의 협의체 형태로 구성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건정심은 건강보험 가입자 대표 8명과 공급자(의약계) 대표 8명, 공익위원 8명에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총 25명으로 짜여 있다. 보험료를 내는 쪽인 가입자와 쓰는 쪽인 공급자가 이해관계를 달리할 때 중간지대에 있는 공익위원이 역할을 하는 구조다. 그런데 복지부와 의협은 이 공익위원 자리를 가입자와 공급자가 같은 수로 추천하도록 구조를 바꾸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공급자 몫이 최대 4명까지 늘어날 수 있어 건정심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공급자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의사협회가 겉으로는 여론을 의식해 의료수가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가를 결정하는 기구를 통째로 손에 넣는 시도를 한 것이다. 건정심에서 의사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 의사들의 비급여·과잉진료가 남발될 우려가 있고 의료수가 책정에서도 공정한 심의·의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불문가지다. 뻔히 예상되는 건정심의 편파 운영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정부가 그 같은 구조 개편에 덜컥 합의해주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의 눈으로 볼 때 건정심 구조 개편은 정부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데, 당사자 의사를 묻지도 않고 구조 개편을 공표하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랍다. 더구나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할 건강보험법 개정을 올해 안에 완료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까지 했다고 하니, 이건 명백한 월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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