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1일 금요일

경향 [사설]외교 시험대에 선 박 대통령

외교 관계는 반드시 상호 인식이 같거나 현안에 의견이 일치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쟁 중인 상대와도 협상하고 대화를 한다. 오히려 차이가 있고, 갈등하기 때문에 만나고 대화할 이유가 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외교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첫 대면하는 이 자리에서는 양국 관심사보다 동북아 협력, 북핵 문제, 크림반도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두 정상 간 대면은 상징적인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회담을 본격 대화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정책을 외국이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 아베 총리의 태도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건 비현실적이다. 상대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는 아베 총리가 한국을 더욱 의식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나쁜 선택을 막는 효과가 있다. 대화는 상대의 잘못을 승인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왕 대화를 하려면 3국 정상회담처럼 미국의 손에 이끌려 가기보다 주도할 필요가 있다. 약점 잡힌 일본, 긴밀해진 한·중 관계를 잘 활용하면 한·중·일 3국 관계를 협력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러자면 한·일 관계 진전이 한·중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중 간 긴밀한 관계는 대일 공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일 관계 복원이 한·중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크림 사태도 러시아와의 협력을 전제로 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충돌한다. 러시아의 크림에 대한 입장은 국제적 규범을 따르는 한국 입장과 대립된다. 

이렇게 동북아 주변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미국, 중국, 러시아의 일방적 이익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외교 전략구상을 갖고 대처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현재의 동북아 정세와 충돌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천할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미·러 갈등 상황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현성을 어떻게 보장할지도 불투명하다. 정교한 전략, 장기적 비전, 조화와 균형의 감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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