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사설]교과서적 당위론에 머문 안철수의 새정치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가 어제 소위 ‘새정치’의 기본구상을 밝혔다. 정의로운 사회, 사회적 통합, 한반도 평화를 새정치의 3대 가치로 천명했다. 다음달 창당을 앞둔 안 의원이 새정치의 밑그림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다. 새정치의 첫번째 가치인 ‘정의로운 사회’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지역·성별 등의 차별이 없는 사회, 민주적 공공성이 회복된 사회로 정의했다. ‘사회적 통합’의 방안으론 지역·이념·세대·계층의 갈등구조 해결을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 로드맵으로는 여야 합의가 가능한 대북정책을 마련하고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제안했다. 이념적 지향이나 노선을 가늠키 힘든, 아름다운 수사로 치장된 교과서적 당위론을 펼친 모양새다. 특히 민생문제를 탈이념적으로 접근하는 ‘삶의 정치’, 사회경제적 비전으로 ‘삶의 경제’를 내걸었다. 안철수신당이 탈이념 실용주의 정당을 지향할 것임을 내보인 것이다. 여하튼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3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운위되기도 한 ‘안철수 새정치’의 틀을 내놨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날 제시된 새정치 구상으로는 여전히 안철수신당의 정체성이 뭔지를 알 수가 없다. 안철수신당이 무엇을 위한 정당이고, 어떤 정책을 추구하는지가 잡히지 않는다. 정의·통합·평화 등의 상식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울 뿐, 구체적 실행 계획이나 이념적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 재건, 공교육 내실화, 경제민주화와 참여경제 실현, 성장친화형 복지 실천 등의 사회경제적 비전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것과 차별되는 게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책 중에서 좋은 것만 뽑아 집약한 꼴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이면 누구나 낼 수 있는 정책”이다. 노선과 정책에서 차별점이 없다면, 기존 정당 말고 굳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이념을 초월하는 실용주의가 정체성이 되는 정당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실용’은 결국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과 정치혐오의 반사이익에 기대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는 포장에 그치기 십상이다. 낡은 정치의 타파만을 외치는 것으론 안된다. 낡은 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비전과 정책 대안을 벼리는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것을 대변하고 추진할 걸맞은 인물과 세력은 필수일 터이다. 그렇게 해서 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아니고 ‘안철수신당’인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과거 제3당들처럼 ‘거품 정당’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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