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정치에 뛰어든 이래 안철수는 ‘새 정치’ 기치를 내걸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기득권에 묶인 구 정치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지난 1월 21일엔 창당 추진을 선언하면서 그는 “우리 정치에서 기본이 흔들리고 있어 낡은 틀로는 더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고, 새 정치 세력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당 세력 지지자는 대부분 안 의원이 여러 차례 강조한 ‘독자적인 새 정당’ 공약을 믿었을 것이다.
안 의원이 노선을 바꿔 민주당과 합치려면 ‘민주당이 바뀌었다’는 명분이 똑바로 서야 한다. 안 의원은 민주당이 ‘기초공천제 폐지’라는 대선 공약을 지켰고, 이것이 변화의 출발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득권 고수와 당내 분쟁 등 민주당이 보여준 구 정치의 각종 양태를 보면 이 부분은 안철수의 변신을 설명하기엔 너무 가볍다. 민주당은 여전히 구태의 무게는 크고 변화의 실체는 작은 상태다.
명분이 불충분함에도 변신을 택한 건 안 의원이 여러 현실적인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한때 민주당의 2배를 넘었으나 최근엔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새정치연합은 지역 기반이나 인물·정책의 차별화에서도 빈약함을 드러냈다. 새 인물의 영입이 여의치 않아 구 정치와 관련된 인물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런 점 때문에 안 의원이 서둘러 새 정치의 텐트를 걷고 민주당이라는 구 건물로 도피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고려해도 안 의원은 독자적인 실험을 너무 빨리 포기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많은 제3의 정치세력이 ‘조기 기권’을 거부하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선거 실험’을 완주했다. 정주영의 국민당, 이인제의 국민신당, 이회창의 자유선진당,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이 그들이다. 일정 기간 후에 결국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들은 선거에서 새 정치 목소리를 냈다. 반면에 안철수는 대선 때처럼 이번에도 ‘독자적인 완주’ 약속을 저버렸다.
민주당과 안철수의 통합은 공익에 이바지하는 측면도 있다. 안 의원 측은 부인했지만 6월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야권연대(후보 단일화)를 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후보 단일화는 현실적으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왜곡하는 편법이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일부 지역에서라도 후보 단일화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면 이는 정치에 혼란을 주는 일이 될 것이었다.
안철수 신당 세력이 인물이나 정책에서 별 차이가 없으니 차제에 민주당과 합치는 게 정도(正道)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양 세력은 통합을 선언하면서 신당의 노선으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민생중심주의, 튼튼한 안보, 평화 구축, 통일 지향 등을 밝혔다. 이는 기존 민주당의 지향점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합칠 것이 합쳐진 것’이며 오히려 정도로 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은 2011년 12월 문재인·이해찬·문성근 등이 주축인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으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1990년대 이래 민주당은 여러 차례 통폐합을 거쳤는데 3년여 만에 다시 당명을 바꾸는 부담을 안게 됐다.
민주당과 안철수는 통합하면서 다시 ‘새 정치’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아마도 새 정치의 진실성에 대한 심판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새 당은 구태를 확 뒤집는 정치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통합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사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결합한 세력 합병의 수준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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