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6일 목요일

경향 [사설]국정원, 협조자 자살 시도에도 ‘꼬리 자르기’ 할 텐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아온 ‘국가정보원 협조자’ ㄱ씨가 자살을 시도해 중상을 입었다. ㄱ씨는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문서 3건 가운데 싼허변방검사참의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를 입수해 국정원에 전달한 인물이라고 한다. ㄱ씨의 자살 시도는 국정원이 이번 사건의 몸통임을 사실상 확인시켜주고 있다. 국정원은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

검찰 진상조사팀에서 세 차례 조사받은 ㄱ씨는 지난 5일 3차 조사를 받고 돌아간 뒤 숙소인 서울 영등포구의 한 모텔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검찰은 ㄱ씨가 ‘변호인 측 증거를 반박할 자료를 구해달라’는 국정원 요청을 받고 중국 관인을 위조해 문서를 만든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ㄱ씨는 검찰에서 이 같은 내용을 진술한 뒤 심리적 압박에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짙다.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진 뒤 국정원이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자 극심한 배신감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한 모텔 방 벽면에 ‘국정원’이라고 쓰인 혈흔이 남아 있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국정원은 그럼에도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획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조직을 돕던 사람이 자살을 기도했는데 ‘우리도 속은 것 같다’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나섰다니 후안무치하다. 위조 사실을 덮기 어렵게 되자 ‘무능론’으로 버틸 요량인가. 아직도 거짓과 조작과 은폐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국민을 바보로 여겨선 안된다.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엉터리 도장 하나 확인 못했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이제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직접 입장을 밝히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일 때다. 국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검찰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ㄱ씨가 생명에 이상은 없다고 하나 상태가 중해 진상규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핵심 참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검찰은 무엇을 했나. ㄱ씨가 국정원에 불리한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개인 숙소에 방치한 이유는 뭔가. 검찰은 국정원의 증거조작을 묵인했는지와 별도로, 핵심 참고인의 신병관리에 소홀했던 점만으로도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없다. 검찰이 그나마 남은 명예라도 지키는 길은 간첩사건 증거조작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윗선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낱낱이 파헤치는 일뿐이다. 국정원의 꼬리 자르기 시도에 휘말려 면죄부를 줬다가는 특별검사의 재수사를 목도하는 처지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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