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4일 화요일

경향 [사설]근무일지 조작, 허위진술 종용… 이게 군대인가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자살한 병사의 조의금을 여단장이 가로챘다는 사실이 며칠 전 뒤늦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런데 ‘참으로 파렴치한 지휘관’이라는 비난 속에서 유야무야될 뻔한 이 사건의 실상은 ‘조의금 횡령’이 아니었다. 자살 시도 병사를 발견한 시각과 근무일지 등을 조작하고, 부대원에게 거짓진술을 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등 사건 자체를 은폐·조작했다는 의혹이 당시 복무자들의 증언으로 제기된 것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1년 12월4일 경기도 가평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여단 본부중대 김모 일병(당시 20세)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동료들에게 발견됐을 때 숨소리도 들리고 맥박이 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급차 도착이 늦어지고 인명구조에 실패하자 간부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망시각과 구급차 출입기록 등을 조작하고 병사들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여단장과 중대장 등 간부들은 또 김 일병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이전에도 여러번 자살을 시도했음에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왜곡하는가 하면, 빈소에 모금된 조의금 158만원을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고 임의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휘관들이 자신의 직분을 다했더라면 김 일병은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혹행위를 방지하고, 병사들의 내무생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김 일병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김 일병을 발견한 뒤에도 초동 대처만 제대로 했더라면 그를 살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간부들은 결국 김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사건 은폐조작과 조의금 횡령으로 그를 두번 세번 죽였던 것이다. 

군당국은 지금이라도 이 사건의 전면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 증거조작과 은폐, 허위진술 종용 등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처해야 한다. 그것이 김 일병과 유족들에게 뒤늦게나마 사죄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군대 내 사망사건에서 사망자가 소속된 부대장의 결재가 있어야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현행 제도도 뜯어고쳐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 피의자도 될 수 있는 부대장이 수사에 관여하는 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건군 이래 사망한 군인 가운데 군 수사당국이 자살로 결론지은 이들은 1만3000여명이라고 한다. 1개 보병사단 병력보다 더 많은 이 숫자 가운데 김 일병의 경우처럼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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