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3일 일요일

경향_[사설]‘채동욱 정보유출’ 수사 머뭇거리는 이유 뭔가

한동안 잠잠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사건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청와대가 의혹의 진원지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민정수석실은 물론 청와대 안살림을 맡은 총무수석실과 고용복지수석실도 채 전 총장 주변 인물의 불법 개인정보 수집에 전방위로 개입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특정 개인 사생활 정보를 불법 수집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검찰 수사는 부지하세월이다. 국가 공권력의 사법질서 유린 행위를 이대로 방치하겠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정보 불법 수집의 진원지는 청와대다. 지난해 총무비서관실 소속 조오영 선임 행정관이 서초구청을 통해 채 전 총장의 아들로 지목된 채모군의 가족부를 조회한 사실이 들통난 바 있다. 최근에는 민정수석실 소속 직원이 경찰 전산망을 통해 채군 가족의 주민등록 정보를 들여다본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이어 고용복지수석실도 건강보험관리공단을 통해 채군 모친인 임모씨의 산부인과 진료 기록을 불법 조회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언제까지 채 전 총장 찍어내기 의혹과 무관하다고 우길 건지 궁금하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국가 공권력의 불법 행위는 말문이 막힐 정도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경찰, 교육구청, 서울 서초구청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한통속이다. 개인정보 조회는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하지만 개인 사생활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는 공권력의 횡포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 문제는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보도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국가의 공신력과 사법 질서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이를 방치한 채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하는 것은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채 전 총장이 사표를 낸 뒤 검찰이 정식 수사에 착수한 게 5개월 전 일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아직도 주변을 맴돌고 있다. 혹여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뭉개겠다는 의도라면 가당치도 않다. 이게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문제인가. 청와대의 권한 남용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다. 청와대 눈치를 살피느라 전전긍긍할 문제도 아니다. 국가 공권력의 횡포는 여기서 끝나야 한다. 제2의 채동욱 사건을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검찰의 존재 이유가 뭔가.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 눈치를 살피는 게 진정 검찰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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