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 논란을 야기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벌금형 노역(환형유치)을 중단시켰다. 해외로 도피했던 허 전 회장이 지난 22일 귀국해 노역장에 유치된 지 닷새 만이다. 5일 동안 허 전 회장이 실제 일한 시간은 10시간 남짓이라고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쉬고, 월요일은 건강검진 받고, 수요일엔 검찰에 불려갔다. 그사이 벌금 25억원이 탕감됐다. 수사 과정에서 하루 구금돼 깎인 5억원을 합치면 탕감액수는 30억원에 이른다. 황당한 노역형이 중단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한국 법치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이번 파동은 남은 벌금을 받아낸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형사사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절실하다.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황제 노역 파동은 법원과 검찰의 합작품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에 벌금 1016억원을 구형하면서 이례적으로 ‘벌금형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1·2심에서 잇따라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도 항소·상고하지 않았다. 법원은 1심에서 하루치 노역을 2억5000만원으로 정하더니 2심에선 두 배로 올렸다. 허 전 회장 귀국으로 여론이 악화한 뒤에야 법원은 유감을 표명하고 환형유치 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검찰 역시 뒤늦게 노역을 취소하고 재산 환수에 나섰다. 하지만 벌금을 강제집행할 단서가 있었다면 왜 곧바로 노역장에 유치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노역 중단 과정에서 관할 검찰청의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까지 불거졌다. 검찰과 법원은 아직도 중심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벌금 224억원을 모두 받아내야 한다. 대법원과 국회는 벌금형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법관 재량으로 정하도록 돼있는 노역 일당의 상한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또 벌금 미납 시 노역장 유치기간을 ‘3년 이하’로 규정한 형법을 개정해 벌금액에 따라 노역기간을 차별화해야 한다.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액을 다르게 매기는 ‘일수벌금제’ 도입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핀란드 대기업 노키아 부사장이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몰다 벌금 1억7000만원 문 사례를 먼 나라 일로만 여길 게 아니다. 벌금제도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높여야만 땅에 떨어진 사법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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