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3일 일요일

경향_[사설]‘착한 규제’까지 멍석말이 치도곤은 안된다

경제부처들이 저마다 규제 완화 경쟁에 돌입한 모양이다. 지난 20일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 점검회의 뒤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기재부는 물론 산업부·국토부·농식품부는 덩어리 규제를 풀겠다고 말한다. 공공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환경부, 공정위,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다. 마치 주술에 걸린 듯 경제정책은 규제 완화만이 존재하며, 규제란 이름만 붙으면 멍석말이 치도곤을 하겠다는 기세여서 말문이 막힌다.

현재의 규제 완화 바람은 옥석 구분 없이 뒤죽박죽, 무차별적이다. 정말로 필요 없는 규제를 푸는 것인지, 기업들의 민원해결 통로로 활용되는지 최소한의 구별조차 없다. 당장 유통업계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없애달라고 떼쓰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대기업과 골목상권 간 상생의 상징적 존재이다. 하지만 유통업계는 의무휴일제 때문에 손실이 커지면서 일자리 창출도 어렵게 됐다고 아우성이다. 학교 주변 호텔허가 문제는 기업의 민원 수준이다. 규제개혁 회의에서 호텔 경영자가 울분을 토하자 정부는 관련법 개정에 착수했다. 이 경영자가 말한 학교 주변은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 유해 전단이 깔려있는 곳이라고 우려했지만 “청년 일자리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대통령의 한마디로 방향이 결정됐다. 자연스럽게 서울 풍문여고 인근에서 추진 중인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도 탄력을 받게 됐다. 이 지역은 대법원이 학습권은 지켜져야 한다며 호텔 건립 불가 판정을 내린 곳이다. 해외대학의 영어캠프 허용은 영어 사교육을 잡겠다는 정부 방침과 충돌하고, 인터넷 게임 중독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셧다운제는 게임산업 발전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에 무장해제 일보 직전이다. 소음·분진 공해로 뒤덮인 항만 주변을 친수공간으로 만들자는 인천내항개발대책은 지역 항만하역업체인 선광의 반대로 무산 위기에 몰려있다.

규제에는 종류가 있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거론됐다고 일사천리로 진행할 사안은 아니다. ‘원수’이기는커녕 사회적 약자 보호, 공공성 담보, 지속가능 발전 등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규제도 많다. 이런 ‘착한 규제’들이 광풍에 휩쓸려 해제되면 훗날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 유럽 자동차업계가 국내 디젤차 시장을 장악한 것은 경유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면서 기술개발에 앞섰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에 부과금을 부담시키는 자동차탄소세 규제 역시 강화해야 할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빈말이 아니라면 몰이성적인 규제 완화 광풍은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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