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시한 방안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 공인인증 시 설치해야 하는 액티브X를 대체할 공인인증을 개발하고, 인터넷 쇼핑에서 30만원 이상 결제 시 공인인증이 의무화돼 있던 금액규정을 풀겠다는 것. 또 해외 소비자 전용 쇼핑몰을 구축한다는 것 등이다. 즉 정부의 규제개혁 방향은 소비자들의 결제 편의성을 높이는 방안 마련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국내 공인인증제의 진짜 문제는 ‘규제 내용’보다 ‘규제의 구조’ 자체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즉 관(官)이 직접 기술개발에 개입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다른 기술이 진입할 수 없도록 진입장벽을 쳐놓아 기술 자체를 독점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보안이 취약했던 1990년대 초반에나 유용했던 액티브X가 지금까지 존치됐고, 이런 획일화된 보안 기술로 인해 악성코드가 손쉽게 침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줬던 것으로 지적된다. 또 공인인증 시장은 금융권 등이 출자한 일부 업체가 독과점으로 운영하며 규제자와 사업자가 공생하면서 소비자 보호는 취약하고 전자금융거래 시스템은 갈라파고스화됐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국내 공인인증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김기창 고려대 교수는 “공인인증 논란은 기술이 아닌 경쟁의 문제”라며 “당국은 기술에 개입하지 말고 높은 수준의 소비자 보호 정책을 추진하고, 민간 보안업체들이 기술개발 경쟁을 하도록 해 기술수준을 끌어올리면 안정성 높은 기술개발도 가능하고 이들이 세계 보안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적 개혁 없이 눈에 보이는 불편만 제거한 것으로 규제를 개혁했다고 할 수 없다. 당국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치밀하고 구조적인 규제개혁에 나서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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