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임원들의 연봉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5억원 이상을 받는 대기업 등기임원에 대해 개별 연봉 내역을 공개하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법 개정 이후 대기업의 무분별한 연봉 인상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은 긍정적인 변화의 하나다. 하지만 당초 우려했던 대로 대기업 오너 일가가 대부분 대상에서 제외돼 실효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소액주주들의 권리와 기업 투명성 확보를 위해 연봉 공개 대상을 확대하는 쪽으로 하루속히 법을 손질해야 한다.
GS건설은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통해 오너인 허창수 회장의 연봉을 17억2700만원이라고 공개했다. 지금까지는 보수한도 총액만 공개했지만 올해부터 개별 임원의 연봉을 공시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모나미는 28일 주총에서 오너 일가가 포함된 6명의 이사 보수한도를 14억5000만원에서 20억원으로 증액하려다 소액주주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매출 감소에다 적자를 봤는데 무슨 근거로 연봉을 올리느냐는 반론이 만만찮다. 또 고액연봉 논란이 됐던 동양증권과 현대증권은 최근 주총에서 임원 연봉을 대폭 삭감했다. 연봉 공개 이후 달라진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연봉 공개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500대 기업 가운데 연봉 공개 대상은 170곳을 넘지만 대주주가 등기이사로 선임된 기업은 절반에 불과하다. 삼성만 해도 신라호텔 등기이사인 이부진 사장을 제외하면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SK 최태원 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 CJ 이재현 회장도 최근 등기이사직을 사임해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정작 소액주주들의 감시를 받아야 할 대기업 오너 대신 연봉 결정권도 없는 ‘바지 사장’만 덤터기를 썼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 경영자의 고액 연봉을 무작정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경영자가 일한 만큼 정당한 보수를 받는지 감시하는 것은 소액주주의 권한이다. 외국에서도 기업 연봉 공개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반쪽짜리에 불과한 지금의 연봉 공개 제도로는 당초 법 취지를 살릴 수 없다. 일정 액수 이상을 받는 모든 임원들의 개별 연봉을 공개하거나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들이 공개 대상에 포함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대주주들이 경영 잘못은 도외시한 채 권한만 행사하는 것은 주주에 대한 예의를 떠나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일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