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5일 화요일

경향_[사설]대학가의 군사문화 잔재 청산해야

오랫동안 지속된 압도적 현상은 생명력이 다해도 그 찌꺼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예컨대 정치적 지배체제로서의 군사독재는 오래전에 종식됐지만 그것이 남겨 놓은 부정적 요소는 제도와 관행, 대중의 일상 속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다. 매년 대학 신입생들에게 가해지는 ‘군기잡기’라는 이름의 폭력도 대표적인 군사문화 잔재에 속한다고 하겠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덕성여대 생활체육과 신입생들은 ‘선배들에게 지켜야 할 사항’으로 ‘선배들이 보이면 달려가 인사할 것’ ‘술 따를 때 술 받을 때 F.M.(야전교범을 의미하는 군사용어로 원칙, 규범 등으로 통용됨)대로 할 것’ 등을 카카오톡으로 통보받았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신입생들은 화장은 물론 치마나 트레이닝복 착용도 금지되고, 선배들과 대화할 때 종결어미는 ‘다·나·까’만 사용해야 하며, 이런 모든 규칙은 캠퍼스에서 2㎞ 떨어진 지하철역까지 적용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내부고발자’들을 추적해 ‘입단속’까지 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1970~1980년대 군대 훈련소가 부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학 체육학과의 ‘군기잡기’로 신입생이 사망하는 등 불상사가 빚어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여자대학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학교 당국은 이러한 상식 이하의 행태가 과연 생활체육과에 국한된 것인지, 다른 학과나 동아리에서도 횡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규명해 시정함으로써 군사문화의 잔재를 몰아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군사문화의 찌꺼기는 대학가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웬만한 조직이나 단체에도 구성원들이 새로 오거나, 수장이 바뀔 때면 ‘군기잡기’란 이름의 의식(儀式)이 치러지곤 한다. ‘군기잡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우선 강압적이고 비민주적인 규율과 관행을 과감히 없애고, 쌍방향의 대화와 소통을 제도화해야 하는 것 등의 방안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러나 간단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근본적인 방안은 ‘군기’라는 말 자체를 쫓아내는 것이다. ‘군기’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그것을 당연하게 느끼고, 존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까지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군사문화가 내면화하는 것이다. 군기(軍紀)는 문자 그대로 ‘군대의 기강’이다. 병영 내에 있어야 할 것이 학교와 직장에 존재할 필요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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