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에서 나오는 공직자들의 언행은 파장이 크다.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쏠리는 국민들의 시선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 정부에선 큰 사건만 나면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라면을 먹다 구설에 오른 것이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해 물의를 빚은 게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세월호 참사 17일째인 지난 2일 그가 “우리 국민은 큰 사건만 나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는 내용의 공개 연설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박 보훈처장은 9·11 사건과 세월호를 비교하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어려울 때 미국은 단결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하는 게 관례가 돼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올랐는데 세월호 사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떨어진 원인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박 처장의 연설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아들 대신 고개 숙여 사과해야 했던 “미개한 국민” 운운한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정 의원의 아들이야 철이 없어 그랬다 해도 고위공직자가 이토록 사리분별을 못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세월호 참사와 9·11 테러는 같은 성격의 재난이 아니다. 9·11은 외부세력의 테러에 의한 것이고, 세월호 사고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생긴 인재(人災)다. 여기에 사고 이후 초기대응 미숙, 국가재난안전 시스템 부재, 관리감독 소홀과 같은 문제들이 줄줄이 드러나면서 정부 불신이 깊어진 게 작금의 상황이다. 한 부처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장이라면 마땅히 근신하고 반성해야 함에도 도리어 국민을 탓하고 있으니 가당치 않은 적반하장이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의 잦은 실언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교육부 장관의 ‘라면 사건’에 대해 “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니고”라고 말해 입길에 올랐던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청와대 면담 요구에 “순수 유가족분들 요청이라면”이라는 표현을 썼다. 유가족이 아닌 사람은 면담 대상이 되기 힘들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유가족마저 ‘순수한 사람’과 ‘불순한 사람’으로 구분짓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이다. 고위공직자라면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사용할 때에도 행여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각별히 헤아리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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