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1일 일요일

중앙_[사설] 이름 감춘 13조원 기부천사들의 울림

미국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지난 8일 익명의 기부자 3명의 활동을 보도한 내용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추적한 결과 헤지펀드 TGS파트너스의 동료인 데이비드 겔바움(65), 프레더릭 테일러(54), 앤드루 셰히터(54)는 1990년대 말부터 이름을 감춘 채 약 130억 달러(약 13조3380억원)를 기부해 왔다. 세제혜택도 마다한 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에 옮겼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이 거액 쾌척에 그치지 않고 치료제 개발, 지뢰피해자 지원, 에이즈 예방, 환경, 인권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꼼꼼하게 기부해 왔다는 사실이다.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활동을 비밀에 부치기 위한 기부 쪼개기로 보인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국가나 국제기구가 해야 할 일이지만 민간인 신분인 이들이 적극적인 기부로 힘을 보탰다는 점이다. 이들은 선천성 중추신경계 질환인 헌팅턴병 치료제 개발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참전군인 돕기에 각각 1억 달러를 내놨다. 또한 ‘인권 개선과 사회경제적 정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기업을 세워 아시아에서 에이즈를 예방하고, 남미의 장애인을 지원하며, 미 고교 졸업률을 높이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기부를 통해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자임한 셈이다.

 이들의 미담은 지난 토요일 세계적인 사회학자 기 소르망이 본지와 인터뷰에서 했던 지적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한국은 경제성장기에 모두가 부의 축적에 몰입하는 가운데 ‘인정사정없는(brutal)’ 나라가 됐다”며 “사회적 연대가 없고 아무도 소외계층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할 말이다.

 흔히 복지를 정부의 일로만 여기지만 유럽 복지국가의 실패에서 보듯 현대사회에선 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가 없다. 이제는 개인의 활발한 기부를 통한 사회적 상호부조를 강화할 때다. 기업은 물론 개인도 적극적인 기부로 소외된 계층을 보듬고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뜨거운 피를 돌려야 한다. 그것이 가슴이 더욱 따뜻한 나라를 만드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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