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5일 목요일

조선_[사설] 이제 유가족들이 슬픔 딛고 일어서도록 도와야 할 때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선 지금도 바다를 향해 아들, 딸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제 집에 가자." "제발 나와줘, 머리카락 하나라도." 자녀가 아직도 세월호에 갇혀 있는 부모들이 그렇게 외치다가는 지쳐 쓰러지고 있다. 안산 장례식장에선 단원고 여학생의 오빠가 "동생 마지막 가는 길 더 예쁘게 보내주고 싶다"며 시신에 립스틱을 발라줬다. 립스틱을 발라주던 그 오빠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16일로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한 달이 됐다. 그 한 달이 가족들에겐 지옥보다 끔찍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눈을 감고 도리질을 해도 "기다리라"는 방송을 믿고 기울어가는 선실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 모습을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두 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으려 했다. 열 몇 살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 간다. 그걸 보는 것이 부모에겐 사는 의미의 전부였을 수 있다. 그 부모들이 이젠 평생 아이 없이 살아가야 한다. 단원고 2학년 338명 가운데 25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아수라장 현장에서 자기는 살아 오고 친구들은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그 엄청난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은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된다. 배가 가라앉는 순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자책감(自責感)은 남은 평생 부모를 고문하게 될 것이다.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당장 세월호 기억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만성(慢性)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 증상은 경우에 따라 평생을 따라다닐 수 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두 달 뒤 부상자 129명을 면담했더니 절반이 PTSD 진단을 받았다. PTSD에 빠져들면 마음의 문을 닫고 원망·분노·자책으로 스스로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른다. 무기력해져 알코올에 의지하거나 가정이 깨지는 어려움이 겹칠 수도 있다. 이들이 일상(日常)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정부는 지금 안산에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를 열어 세월호 가족들의 심리 상담을 해주고 있다. 희생자 가족 가운데 3분의 1이 PTSD 고위험군(群)으로 분류됐다. 세월호 유가족 치료를 돕기 위해 한국에 온 이스라엘 심리 치료 전문가는 가족을 맡는 상담 치료사가 자꾸 바뀌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있는 감정을 다 털어놓게 하려면 같은 전문가가 한 가족을 꾸준히 맡아야 한다. 그러려면 상담 전문가를 크게 늘려야 한다. 뉴욕시는 2001년 9·11 테러 후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자들까지 무료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줬다.

세월호 유족 중에는 아이를 앞세워 보낸 충격으로 일터에 나설 힘조차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그런 유족들이 생계를 유지해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부는 직장에 못 나가는 유가족에게 지난 8일부터 긴급생계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4인 가구 기준 월 108만원이다. 그것도 길어야 여섯 달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온 국민과 기업이 모은 성금 395억원으로 그해 11월 천안함재단이 출범했다. 재단은 희생된 46명 용사의 유족들에게 5억원씩 나눠줬고, 나머지 성금을 운용해 유족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생존한 58명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데 써 왔다.

유가족 돕는 일에 정부가 우선 팔을 걷어붙여야겠지만 기업과 병원, 종교단체, 시민단체들도 자발적으로 함께 나서줘야 한다. 살아갈 기력을 잃은 유족들에게 그들이 고립된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이 사회가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유가족의 억울함은 더 커질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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